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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양한 이별에 대하여

작성일201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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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어느 덧 영현대와 함께 1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이것이 마지막에 도달했다. 50명의 영현대 기자단들이 여러 시간속을 헤쳐 이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별이라는 생소한 말에 어색하기도 하고 조금은 아쉽기도 한 마음에 문득 이 세상 모든 것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이별’ 이라는 것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끝을 말하는 것만이 ‘이별’ 의 전부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도 신화 중 ‘이공본풀이’ 라는 무가(巫歌)가 있다. 그 내용 중에는 서쪽 삼천리에 있는 저승 꽃밭이라 해 서천꽃밭이라 불리는 곳의 꽃감관이 된 남편과 그를 떠나보내는 아내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임신한 몸으로 남편을 쫓아가다 결국 채 다 쫓아가지 못하고 자현장자의 집에 자신과 뱃속의 아이를 팔아 남편의 노자돈을 만들어주고 아내는 그 집에 머물게 된다. 둘의 마지막 밤에 자현장자는 남편에게는 사랑채에 그럴싸한 밥상을 차려주고 아내에게는 부엌 구석에 찬 밥에 물을 말아 준다. 이를 본 남편은 “이 동네의 풍습은 알지 못하겠으나 우리의 풍습은 이별할 때에는 함께 얼굴을 맞대고 밥을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라며 아내와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게 된다. 이 때 이 부부는 머리빗을 꺾어 이별의 증표를 삼으며 아이의 이름도 지어 놓는다. 마치 주몽이 자신의 아내와 이별할 때 부러진 칼을 그 증표 삼아 건넨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 식사를 함께하고, 이별의 증표를 나누는 것은 결국 이별 후에도 몸 건강히 잘 지내길 바라는 것과 동시에 다시 만나기를 기원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별의 슬픔을 넘어서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이별 증표이다.

 

 

 비슷한 이야기는 삼국사기에도 등장한다. 신라 총각 가실과 설씨 처녀의 사랑 이야기가 바로 그것인데, 그들은 이별할 때 거울을 쪼개어 나눠 가진다. 이 증표를 가지고 6년의 세월을 기다린 끝에 두 사람은 거울을 맞대 사랑을 확인하며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이 두 사람에게 있어 이별증표인 이 거울은 전제가 ‘이별’ 이 아니다. 바로 ‘만남’이 그 전제인 것이다. 이별이 있으면 만남이 있다고 했던가. 깨어진 거울이 제 짝을 다시 만나듯 이별과 만남은 하나였던 것이다.

 

 

 

 

▲ 자유를 향해 훌훌 날아가길 바라는 마음의 상징 `나비`.

 

 

 조선시대에도 ‘이혼’ 이 가능했다. 비록 사대부들의 이혼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서민층에게는 ‘할급휴서’ 라는 것이 있었다. 이혼 증서로 남편이 웃옷 자락을 베어 아내에게 줌으로 이혼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잘라준 세모꼴의 옷섶은 ‘나비’라고 불렸다. 새벽녘에 이 나비를 가지고 성황당에 서성이다 처음으로 만난 남자에게 보쌈당해 가는 것, 즉 습첨이 이혼한 여자의 운명이었다. 현재의 눈으로 보면 이토록 비인권적이고 무지막지한 제도가 어디있겠느냐 생각하겠지만 당시에는 ‘다시 결혼할 수 있는 증표’ 였기 때문에 이를 받으려는 여자와 주지 않으려는 남자와의 실랑이도 흔했다. 또한 할급휴서는 말 그대로 합의이혼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여자의 장래를 최대한 배려한 제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모양 때문에 ‘나비’ 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지만 나비처럼 훌훌 날아가라는 의미도 있었던 이별 증표 ‘나비’. 이 ‘나비’와 인연이 깊은 사람은 바로 퇴계 이황이다. 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 혼자 남게 된 며느리를 걱정해 직접 며느리의 갑사저고리 깃을 잘라 새롭게 자유를 향해 떠나가길 빌어주었다는 이야기는 이황의 인품과 함께 자주 오르내리는 이야기이다. 또한 아내와 아들들을 일찍 보내고 홀로 남은 이황은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어 관기 두향과 사랑에 빠졌지만 결국 이황은 두향에게도 ‘나비’를 잘라 주게 된다. 이 일화들을 통해 과거 조선시대 이별 증표였던 ‘나비’ 는 억압된 사회 속에서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배려심으로써 어찌 되었건 떠나는 사람의 미래는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증표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가 아닌 과거 중국에서도 벗과 이별 증표로 자주 쓰였던 것이 있다. 바로 버들가지가 그것이다. 떠나는 사람에게 이 버들가지를 꺾어 주면 떠나는 이는 그것을 땅에 심어 버드나무를 키운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이별한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기 위한 것이 바로 이 ‘버드나무’ 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이를 ‘절류’ 라고 말한다. 이별의 증표로서만이 아니라 그 뛰어난 재생력으로도 유명한 버드나무. 결국은 이 버드나무는 이별의 정을 나누기 위함이기도 하면서 새 희망을 싹틔우기 위함이기도 한 것이다.

 

 

 


 

 

 흔히들 동화를 떠올린다면 하나의 결론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것은 우리 전래동화 콩쥐팥쥐에서도, 바다 건너 들어온 신데렐라에서도 맺어지는 결말이다. 다수의 동화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고난과 역경, 기회의 반복 속에서 결국 행복을 찾는 것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 새 마지막 페이지, 동화와의 이별이 찾아온다. 서운하기도 하지만 우리들은 그 어릴 적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희망찬 메시지에 좋아하곤 했다. 비록 그들의 이야기는 그것이 끝이었지만 기억 속 주인공들과의 이별은 언제나 ‘행복한’ 이별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별의 증표를 나눠 가질 만큼 멀고 먼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처럼 이별의 회한을 증표로 표현할 만큼 애틋하진 않다. 그렇지만 과거 증표 속에 담겼던 의미처럼 ‘앞으로도 부디 안녕하고 행복하길 바라며 또 다시 만나길’ 바라는 마음은 동일할 것이다. 한 권의 동화책처럼 단순하진 않지만 그 만큼의 이야기를 담고 끝나는 영현대 6기 모든 기자들의 미래가 행복하길 바라며, 앞으로 새로 활동하게 될 영현대 7기 기자들의 활동을 기대하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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