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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은 열두 번째 책 - 불안

작성일201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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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사진 박가은 학생리포터

 

불안

알랭 드 보통 저 | 이레 펴냄 | 1만 3천원

불안을 탐구한 인문서로, 사랑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소설로 더 알려진 알랭 드 보통의 스테디셀러.

현대 사회를 통해 바라본 불안의 원인과 해법이 쉬운 예시와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보편의 불안, 그래서 더욱 공감 가는 불안에 대해 두 친구가 책을 읽고 이야기 했다.

 

 

 

어떻게 읽었어

영현 학교에서 ‘불안’을 읽고 서평을 쓰는 과제가 있어 처음 읽었다. 불안에 대해 추상적이고 난해한 철학적 방법으로 접근할 줄 알았는데, 원인과 해법으로 범주를 구분하고 일상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쉽고, 읽기 편했다. 무엇보다 처세술이나 화술과 같은 외적인 것을 다룬 책이 주류를 이루는 요즘, 불안의 원인과 해법을 대체로 내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지현 저자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내용을 추측하기가 힘들었다. 헌데 가만히 보니 영어 제목이 ‘Status Anxiety’더라. 영어 제목을 보고, 또 사회과학 섹션에 책이 꽂혀 있는 걸 보고 나서야 불안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에 그치는 내용은 아닐 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불안해

지현 거의 항상 불안하다. 이 책을 읽고 나의 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내가 평소 불안해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대학 진학만 해도 그렇다. 과연 우리는 능동적으로 고민해본 끝에 대학 진학을 선택했던 걸까. 선택을 내리는 주체가 나였는지도 의문스럽다. 이렇게 고등학교 졸업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해서 지나온 선택과 앞으로 거쳐야할 선택까지 때때로 모든 것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영현 원인이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선택을 한 것은 나 자신이다. 애초에 사회와 타인의 영향 없이 오로지 나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지 않나.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라”는 말이 있다. 타인이 이룩해 놓은 값진 경험과 지혜라는 소산물 위에서만 나의 선택도 가능하다. 그러니 선택을 내릴 당시, 어느 정도 순응하고 동의하여 결정한 것이라면 이미 지나온 길,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이었을 거다.

지현 불안은 죽는 순간까지 우리 곁에 있을 것 같다.

영현 맞다. 인간은 완벽하게 이성으로 제어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불안은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책에 제시된 해법 중 ‘보헤미안’이라는 대안으로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변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내 가치관만 관철시키며 살 수는 없더라. 사회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에게 제한된 몫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세상의 가치를 마냥 거부한다고 해서 세상이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또 긴장감이나 불안이 유발하는 무언가를 해내야겠다는 욕구가 없는 삶도 생각해보자. 그저 하루하루 산다는 것에만 의미를 두고 흘러가는 감정에만 끌려다니 게 될지 모른다.

지현 그래서 나온 게 능력주의인 것 같다. 문제는 능력주의가 너무 지나칠 때다. 능력이 곧 그 사람 자체인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 말이다. 능력주의와 상반되는 개념이 평등주의다. 아무리 능력주의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뒤처지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재능과 능력은 평등하게 배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능력이 부족하니까 어쩔 수 없다’ 혹은 ‘동등한 기회를 줬으니 당연한 결과다’라고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공감했어

영현 어릴 때는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내가 행한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이 나를 그 자체로 사랑해주셨기 때문에 충분한 안정감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나서는 확실히 타인과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조건적으로 사랑할 테니까.

지현 지위나 능력이 낮으면 타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할 거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지위와 능력에 목매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들이 서로 계속해서 순환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 역시 가족들 덕분에 내가 받는 사랑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알고 있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아무도 나에게 먼저 사랑을 주는 것 같지는 않더라. 그래서 나는 내가 먼저 다가가는 법을 터득하기도 했고.

영현 사람이 태어나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무서움, 상처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은 보편적이다. 그러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여리다는 것을 알고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는 것이 진짜 어른이 되는 거라 생각한다.

지현 지위의 높고 낮음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도덕적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 지위에는 도덕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것 하나가 정답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선택하기 나름인 것 같다.

영현 만약 어떤 친구가 내가 잘나갈 때는 친한 척을 하다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외면해버린다면, 그것도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현 걔는 속물인거지! (분노)

영현 우리가 이런 사례를 듣고 자연스럽게 분노하게 된다는 것은 이미 지위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능력을 보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을 꼭 부정적으로만 봐야하나. 현실적으로 지위 자체만 보고 다가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스펙이나 학벌, 인간관계 같은 것은 그 사람을 봤을 때 한 번에 판단할 수 있는 척도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자세와 성실성을 배우고 싶어 다가갈 수도 있다고 본다.

지현 하지만 거기에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가치가 우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오늘 날에는 사람이 얼마나 고귀한 영혼을 가지고 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맡은 바 역할을 얼마나 잘하는지, 즉 능력을 중시한다.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과정보다 성공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과정을 더 배우려 한다. 주위를 보면, 친구들이 소개팅을 했을 때의 첫 질문이 “그 사람 어느 학교인데” 혹은 “어디에서 일하는데”와 같은 것이다. 번듯한 학교, 직장이면 부러워하는 모습 속에서 현재 사람들이 어떤 것을 중시하는 지 알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지현 예술과 철학의 영역에서 해답을 찾는 게 가능할 것 같다. 감정의 배출과 이성을 통해 자기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불안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로 자기 위안을 하기도 하고, 타인이 나를 비난한다면 이성을 통해 그것을 무시해도 될지 혹은 받아들여야할지 먼저 생각하려는 식이다. 또한 자연 풍광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끼며 불안을 떨치기도 한다. 덕분에 그날의 환경과 날씨에 따라 너무 많이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나와 내 욕망이 세상의 얼마나 작은 부분인가를 실감하면 조금은 초연해질 수 있더라.

영현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해법으로 제시된 기독교의 교리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추상적이다. 원형적이고 근본적인 개념이라 이것을 삶에 적용시킬 때에는 많은 해석이 들어갈 수 있다. 때문에 똑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사랑, 위선, 자기만족 등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해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상은 같아도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한 방법적인 측면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이 갈등의 대부분이라고 할 때, 교리 역시 상당히 난해한 것 같다.

지현 최근에 카이스트 학생 여러 명이 자살했다. 책의 내용이 고스란히 적용된 경우로 보인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는 불안이라는 코드가 모든 사람의 삶에 적용되는 것 같다. 모두가 불안하면서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영현 그것을 버틴다고 봐야할까.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래서 그만큼 희망을 가질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불안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어떻게 해소하느냐의 문제 아닌가. 오히려 불안이 있기에 사람들이 불확실성에 대한 유대감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지현 불안한 이들이 모두 뭉치면 답이 나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뭉쳐본 경험이 없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학생회 활동을 한다고 하면 모두 일반적인 대학생의 생활은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요즘이다. 80년대만 하더라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학생운동도 하고 사회적인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나부터도 무척 소극적이다. 많은 이들이 나서서 다른 이와 손을 잡고 사회를 바꿔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신을 더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영현 불안에 대한 해법으로 예술을 이야기하면서 비극이나 희곡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나 역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비극적인 문학작품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분출하며 풀기도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개그나 유머로 불안을 떨치는 친구들도 있다. 웃다 보면 나도 모르게 불안의 순간을 넘기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불안은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까.

지현 비극이나 희극으로 배출구를 찾고 진통제를 맞은 것처럼 불안을 견뎌 지나간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라는 생각이 남는다.

 

행복의 등식

영현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도 있을까. 욕구를 갖는 것도 꿈을 꾸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허나 꿈을 완벽하게 이룰 필요는 없다. 꿈이라는 것은 전진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자존감=이룬 것/내세운 것’의 등식은 내게 무효하다. 내세운 것에 비해 이룬 것이 없어도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그러므로 꿈을 향한 과정의 불안은 불가피하며, 피하기보단 극복해야할 것이다.

지현 나는 ‘자존감=이룬 것/내세운 것’이라는 행복의 등식에 동의했다. 이루기 위한 노력만큼이나 욕망의 크기를 줄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기가 정확히 무엇을 얼마나 원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진짜 욕구를 찾으려는 노력을 통해 욕망을 끊임없이 걸러내서 최대한 작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큰 욕망과 그것을 성취하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할 때의 좌절감, 불안은 인생을 풍요롭지 못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물론 옳고 그름은 없으므로 선택은 자신의 몫으로 남지만.

 

 

다음 주에 읽을 책

염소의 맛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 미메시스 펴냄 | 1만 2800원

2009년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서 ‘발견된’ 유럽 만화 작가 비스티앙 비베스의 작품을 함께 읽어 봅니다. 색과 여백을 눈여겨봐야 할 만화입니다. 제목의 의미를 해독하려면, 수영장으로 오세요.

 

 

 

본 기사는 대학내일에서 영현대에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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