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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음악가들, 그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

작성일201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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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지난 7 23, 세계적인 천재 음악가인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27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사망하기 직전에 연인과 비밀약혼을 올렸으며, 입양절차도 밟아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더 큰 안타까움을 준다.

 

 이렇게 꿈꿔온 미래를 누릴 여유도 없이 요절한 이들을 두고 어느 누가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중에서도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비롯한 천재 음악가들의 요절은 우리 가슴 속 한구석을 더 허전하게 만든다.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위로의 악수를 건네던 그들의 손길이, 하루 아침에 전설 속의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 하지 않았던가.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죽음이 빛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 즉 음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음악은, 단순한 음악 그 이상의 것으로 우리에게 남는다. 아직 남겨둔 긴 인생을 음악과 맞바꾸면서, 그들은 역사와 위로, 희망, 그리고 미래를 남겼다..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27세의 나이로 음악계를 떠나게 되면서, `27세 클럽이 화제가 되었다. 27세 클럽은 27세에 요절한 대중음악가들을 두고 붙여진 이름이다. 27세에 숨진 뮤지션들이 공교롭게도 계속 이어져온 것. 그리고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각계 언론에서 `27세 클럽의 저주가 걸렸다며 그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뮤지션 중에는 지미 헨드릭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여성 록커 제니스 조플린, 롤링 스톤즈의 브라이언 존스, 그리고 로버트 존슨 등이 속해있다. 이들은 이름에서부터 뿌리깊은 곳에 있는 토양의 냄새를 풍긴다. 지미 헨드릭스와 제니스 조플린은 각각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와 여성 록커로 칭해진다. 커트 코베인은 풍자적이면서 시적인 노랫말로 당대의 음악계 판도를 뒤집었다. 이를 제외하고도 블루스의 선구자 로버트 존슨, 음악계의 아이콘으로 추앙 받던 짐 모리슨 등이 속해있다.

 

과연 이러한 자들을 두고 우리가 이들이 저주를 남겼다며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저주라고 하기엔 너무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바로 역사다. 그들은 이후 음악계에 토양이 되어준 대지이자, 후대 음악인들에게 정도를 제시한 표본이다. 이 후 음악인들은 그들의 연주와 노래를 교과서 삼기도 하며,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자신들의 자질을 키워왔다.

 

`The good die young’, 곧은 나무가 먼저 찍힌다는 격언이다. 그들은 곧게 음악계를 다지고, 아직 다져지지 않은 것들에 살길을 열어주며 장렬히 자신의 운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그들의 짧지만 강렬했던 음악은 현재의 음악계를 낳았다. 음악인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유산을 남긴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음악인들은 자칫하면 언론사들의 먹잇감이 된다. 그만큼 그들의 생활은 특별하다 못해 유별나다 할 정도로 굴곡진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러한 뮤지션들의 요절 뉴스에는 폭행, 약물중독, 자살 등 어둡고 아픈 단어들이 당연하단 듯 어질러져 있다. 하지만 시퍼런 멍으로 물든 무용수의 발이 더 아름답듯, 그렇게 일찍 아프게도 떠나간 음악인들의 음악은 더 찬란하게 빛이 난다.

 

최근 에이미 와인하우스 요절 이후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했던 그녀가 만든 `Rehab’이라는 노래가 새삼 재조명 된 바 있다. 이는 바로 그 노래가 그녀가 보낸 삶, 그리고 그녀의 죽음과 긴말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노래 `Rehab'의 가사 中)

 

`Rehab’는 재활치료 등을 뜻하는 단어이며, 노래 가사는 그녀가 약물중독에 걸린 이후 재활원 문턱을 넘다 들던 사연이 담긴 노래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그녀는 아직까지는 약물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그녀의 약물 복용의 기저에는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과 이별의 반복, 그리고 싸움 등으로 불거져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그녀의 음악은 고통과 슬픔, 외로움 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어두운 감정들은 리스너들로 하여금 위로를 받게 해준다. 때로는 서로 마주보고 있을 때 보단, 같은 곳을 보고 있을 때 진정한 교감을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그녀의 아픈 노래는 2008년 그래미 어워즈에서 5개 부분의 상을 휩쓸며 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바 있다. 비록 그녀는 약물 복용 죄로 수상의 기회조차 없었지만, 그녀의 진심 어린 고통의 노래는 요절 이후에도 한줄기 미명과 같이 우리의 귓가에 남게 될 것이다.

 

 

 

 

비록 50세라는 나이로 다른 요절 아티스트에 비해 긴 여정을 보내다 갔지만, 그의 죽음 또한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수십 차례의 성형수술, 파란만장한 가족사 등, 마이클 잭슨은 높게 치솟는 명성에 걸맞게 온갖 스캔들로 얼룩져 있던 뮤지션이다. 아마도 그의 죽음은 그러한 비정상적인 이유들로 장안의 주목을 받았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슬퍼하는 이유만은 명확해 보인다. 그의 음악과 무대만은 어느 여타의 음악인들보다 촉망 받을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업적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으로도 존경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음악상 수상’, `빌보드 차트 top 10 점령등의 기록에서부터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연예인이라는 기네스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이 세운 공식적인 기록들)

 

그리고 그러한 기록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대목들이 있다. `전세계 연예인 중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한 사람', `We are the world라는 노래로 가장 많은 자선금을 번 아티스트라는 등의 기록들이다. 그를 떠올리면 많은 이들이 `Thriller’, `Beat it’과 같은 댄싱 곡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의 음악 세계에서 그는 빈번히 희망의 찬가를 불렀다. 물론 그의 화려한 댄스와 남다른 몸동작 또한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지만, 그 사이에서도 그는 우리가 곧 세계(we are the world)이며, 세계를 치료할 것(heal the world)’이라며 희망의 손짓을 내보였다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이 후원한 자선단체 목록)

 

마이클 잭슨은 살아 생전에 끊임 없이 자선 활동을 이어갔다. 자선 공연과 더불어 병원에 방문하여 아이들을 돌보았으며,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직접 데려가 키우는 등의 봉사활동을 통해 한평생 마음을 베풀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선단체를 후원하는 연예인답게 39개의 자선단체를 지원해주었고, Heal the world 재단을 설립하여 수없이 많은 희망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는, 50세의 나이에 요절하면서 사후에 자신의 수익에 20%를 기부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그 누구 보다 희망찬 유산을 남긴 것이다.

 

 

 

 

마이클 잭슨이 희망을 유산으로 남겼다면, 유재하는 이른 나이에 죽은 뒤에 꿈의 길을 열어준 음악인이다. 그는 앞서 나온 세계적 음악인들 못지 않게, “한국의 음악사는 유재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한국의 음악사에 굵고 진한 획을 그은 음악가다.

 

유재하의 음악이 처음부터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음악이 처음으로 공개되었을 당시인 1987, 음악계의 평론가들은 노래를 못하는 가수가 나왔다며 그를 저평가했다. 하지만 유재하가 자신의 데뷔 일에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하면서, 그러한 평가의 궤도는 역방향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지난 2007, 경향신문과 음악웹진인 가슴네트워크가 선정한 `한국 100대 명반의 반열에서 2위를 기록했다.

 

그의 음악이 과소평가 받았던 것은 그가 생경했다는 이유에서 이기도 했다. , 그의 음악에 종래의 한국 가요계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과 새로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생경함은 오히려, 죽음 이후에 빛을 발하며 그의 죽음을 길이며 탄생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후배들에게 새로운 꿈의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의 뮤지션들)

 

유재하는 요절 후 유재하 경연대회를 통해 한국 음악사의 미래를 터줬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의 음악가로는, 조규찬, 유희열, 심현보 등 한국 음악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 음악가들과 더불어, 현재 활발히 그들의 꿈을 펼치고 있는 방시혁, 김연우, 스윗소로우 등 끊임없이 재능 있는 후배 음악가들을 양산해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가 펼쳐 놓은 꿈의 길을 밟기 위해 제2의 유희열, 2의 김연우를 꿈꾸는 자들이 있다. 유재하는 그렇게 음악으로서 후대의 인물들에게 꿈을 불어 넣어줌과 동시에, 꿈꾸는 자들에게 살아 생전에도 쉽지 않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면서, 남아 있던 인생의 길이보다 훨씬 더 길고 먼 길을 후배들에게 내준 셈이다.

 

 

 

 

(▲그 외의 음악을 유산으로 남기고 요절한 음악가들)

 

이들 외에도 짧게 생을 마감하고 우리의 귓가에 잔향을 남긴 음악가들이 있다. 엘리엇 스미스, 제프 버크리, 2Pac, 김광석, 김현식, . 제 각기 다른 음악들을 노래하고 연주하다가 그들은 전설이 되었다.

 

그들의 존재는 전설이 되었지만, 그들의 음악은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에게 손 내밀어 줄 그들이 없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악수를 청하면 된다그들은 그들의 음악처럼 제각기 다른 빛깔의 유산으로서 우리의 손을 잡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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