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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아름답지 아니한가.

작성일201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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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청계천, 아름답지 아니한가]

 

청계천은 조선왕조 때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개천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복개된 도로를 벗기고 복원 공사가 완료되고 물이 흐르는 곳으로 탈바뀜이 됐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 등 동대문과 종로 등을 찾은 사람들에게 자연을 선사하고 있다. 밤이면 물에 발을 담그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즐기는 명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계천은 본래 이런 모습의 개천은 아니었다. 과거 청계천은 지금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우리는 과거의 청계천은 잊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나라의 역사와 같이 한, 피와 땀이 스며있는 청계천은 기억 속에 사라지고 있다. 청계천이 아름다운 이유는 화려한 조명과 이색적인 행사가 진행되어서만은 아니다. 그 안는 오랜 시간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 전, 청계천은 자연상태 그대로였다. 봄과 가을에는 건조해서 대부분이 말라있는 건천으로 물이 흐르지 않았고, 여름의 우기에는 조금만 비가 와도 물이 넘쳐 흘러 홍수가 날 정도였다. 특히 청계천은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해 있어 주변에 시전행랑 및 민가가 밀집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우기가 되면 물이 흘러 넘쳐 집이 침수되고, 다리가 유실되는 등 익사자가 발생했다. 그래서 서울이 조선시대 수도로 지정되며 청계천의 정비 사업은 중요한 일이었다. 태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개천 정비가 벌어졌고, 하천의 바닥을 쳐내고 넓혔으며, 양안에 둑을 쌓아 정비된 하천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광통교, 혜정교 등의 돌다리를 만들었다.

 

 

세종에 이르러서는 시전행랑 뒤편에 도랑을 파서 물길을 하천 하류에 바로 연결시켰다. 이는 청계천의 지천이 한꺼번에 개천 상류로 몰려 넘치는 것을 방지하는 것으로 도심의 홍수를 예방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세종은 청계천을 생활하천으로 규정하여 조선왕조 500년 동안 도성에서 배출되는 많은 생활쓰레기를 씻어내는 하수도로 기능하도록 해 도성 전체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영조때에 이르러 청계천은 다시 정비가 이뤄진다. 임진과 병자의 전란을 겪은 후, 많은 유민들이 도성에 몰려 인구가 급증했으며, 유민들이 생계를 위해 개천 주변에 채소밭을 경작해 수로가 막혀 배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개천 양안을 돌로 축조했으며, 버드나무를 심어 큰 비가 올 때도 제방이 무너지지 않도록 했다. 이런 대공사는 유민들을 구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일종의 뉴딜정책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용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대규모의 준천사업을 실시해 5만여 명의 고용인력을 투입했다.

 

 

 

일제강점기 때의 청계천은 일본사람들의 마을 혼마찌와 민족의 거리 종로를 구분짓는 경계선으로 인식됐다. 즉 이는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을 가르는 차별의 선이 됐다. 이 당시 청계천은 100년 가까이 방치되어 탁계천으로 비웃음 거리가 됐다. 더러운 하수구로 전락한 것이다. 일본은 조선총독부 및 일본인들의 거주지를 청계천 이북으로 이주하기 위해 청계천 정비 사업을 발표했다. 이 사업은 청계천을 생활하천이 아닌 하수구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등으로 재정이 확보되지 못해 제대로 실시되지 못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준설된 다리는 콘크리트로 보강되고, 관수교, 주교 같은 근대식 토목공법을 이용한 새로운 다리가 가설되기도 했다.

 

 

1950년 청계천은 가난하고 불결한 도심의 대표를 하는 곳이었다. 슬럼지역, 불결한 위생, 도시 경관의 폐해를 보여주는 청계천이었다. 그 당시 생활필수품조차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웠던 시대 상황에서 청계천의 문제를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복개공사였다. 청계천 주변의 판자집은 헐리고, 현대식 상가건물이 들어섰다. 복개공사가 완료되자 청계천은 가장 부끄러운 곳에서 근대화, 산업화의 상징으로 서울을 드러내는 곳이 됐다.

 

청계천 복개로 그곳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봉천동, 신림동, 상계동으로 강제 이주됐으며, 달동네라는 빈곤의 상징이 다른 곳에 형성되기도 했다.

 

 

 

지금의 청계천은 물이 흐르고 있다. 화려한 조명과 여러 편의시설 및 행사 등으로 사람들의 발을 머물게 하고 있다. 사진전이 열리고 있고, 조명을 이용해 물의 흐름까지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과거의 청계천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한강의 물을 끌어와 물이 마르지 않고, 365일 내내 물이 흐르는 것이다. 또한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 사진 동호회의 출사 장소 등 아름다운 곳이 됐다.

 

 

하지만 청계천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시련과 고난을 딛고 청계천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조선왕조때부터 진행된 정비 공사, 그리고 일제의 시련과 고난, 그리고 복개공사로 인해 숨조차 쉬지 못했던 청계천에는 이제 물이 흐르고 있다.

 

 

[청계천의 다양한 문화행사는 일정표에 따라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http://www.cheonggyecheon.or.kr/ 이곳에 방문하여 일정을 확인하고,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다. 해당 일정에 맞춰 청계천에 방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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