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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봉평에서는

작성일201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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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더위가 한풀 꺾이고, 높아진 파란 하늘엔 낮게 구름이 깔려있는 요즘. 본격적인 가을로 들어서는 이맘때쯤이면 강원도 평창군의 작은 마을 봉평은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얗게 빛나는 메밀꽃으로 뒤덮인다. 메밀꽃이 절정을 이루는 이 때를 맞춰 한국의 대표적인 단편 소설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로 유명한 이 곳에서는 그의 문학혼을 기리는 효석문화제가 열렸다.

 

 

 

 

 

효석문화제는 봉평의 효석문화마을 일원에서 열렸다. 마을의 초입에선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첫 장면처럼 봉평장이 열리고 있었다. 장을 가로지르고 난 큰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조금씩 장터와는 다른 활기가 느껴지고, 길의 왼편엔 널찍한 공원이 보인다. 소설가 이효석의 호를 딴 가산공원으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이며 효석문화제의 무대행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공원은 무대를 보기 위해, 각종 체험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 인다.

 

 

 

공원의 한편엔 이효석 동상과 문학비가 세워져 있고, 소설 속 주인공 허생원과 그의 동료 조선달이 파장 후 짐을 챙겨 들렀던 충주집도 복원되어있다. 복원된 충주집은 작고 허름하기 그지 없는 초가집이지만 그래서 더욱 이들이 장사로 지친 몸을 술 한잔으로 달래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 했다. 공원을 지나 사거리로 나가면 오른편엔 각종 특산물과 기념품을 판매를 하는 부스와 공예체험, 전통음식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부스들이 줄지어 서있다.

 

 

 

 

길 건너 맞은 편에는 충주집에서 만난 동이와 함께 세 사람이 대화 장을 향해 가던 중 건넌 흥정천이 흐르고 있다. 소설에서 동이가 허생원을 업고 건너던 이 개울은 두 사람이 알 수 없는 혈육의 정을 느끼게 하고, 허생원이 동이가 왼손잡이인 것을 알아차리는 계기가 되어준 곳이다. 현재 이 개울에는 두 가지 다리가 놓여있다. 하나는 널찍하고 보기 좋게 놓인 다리이고, 하나는 바로 옆의 나무를 엮어 만든 섶다리이다. 사람들은 소설 속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은지 다들 큰 다리보다는 섶다리를 통해 개울을 건너갔다.

 

 

 

봉평장을 시작으로 충주집을 거쳐 개울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모두 소설 속의 무대이다. ‘메밀꽃 필 무렵은 다른 소설과는 다르게 압축 없이 이야기 속 시간의 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러니 허생원이 자신의 단 한번의 사랑이야기를, 동이가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걷던 길을 따라 걸으며 소설의 이야기를 되짚어보면 좋을 것 이다.

 

 

 

 

 

 

 

 

 

 

 

 

다리를 건너면 한 눈에 들어오기도 벅찰 만큼 넓은 메밀꽃밭이 펼쳐진다. 굳은 날씨에 해조차 구름에 가려졌건만 하얗게 가득 메운 메밀꽃은 그 자체로 눈부시게 빛이 났다. 소설 속에서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다는 표현이 직접 눈으로 보니 확실히 와 닿는다.

 

 

 

 

허리에도 채 오지 않는 메밀꽃 앞에 주저앉아 들여다보자면 줄기 끝에 동그랗게 뭉쳐있는 하얀 것이 한 송이가 아니라 수 십 송이다. 너무 작아서 자세히 보아야만 제대로 꽃을 볼 수 있는데, 아무리 작아도 다섯 개의 꽃잎은 착실히 붙어있다. 각이 진 꽃잎은 정말 소금과 닮았다. 가까이 보아도 멀리 보아도 메밀꽃은 눈을 호강시켜준다.

 

 

 

 

드넓은 메밀꽃밭 사이에는 산책하기 좋게 나뭇길이 나있다. 그리고 그 나뭇길 양 옆을 따라 소설 속의 문구가 새겨진 한지등이 놓여져 있다. 봉평에서 대화까지 한국 문학사상 가장 아름다운 밤길이라 일컬어지는 그 길을 산허리에 깔린 메밀꽃과 달빛이 만들어 주었다면, 이 곳의 밤길은 머리 위를 밝히는 달빛과 더불어 발 밑을 밝히는 한지등이 그 분위기를 고조시켜준다.

 

 

 

 

 

 

메밀꽃밭을 나오면 마을의 또 다른 명물인 메밀음식전문점들이 길 양편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 곳을 지나면 힘차게 돌아가는 커다란 물레방앗간이 나타난다.

 

 

이 곳이 바로 허생원이 봉평장을 빠트리는 법 없이 매번 찾는 이유이자 그의 첫사랑,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생애 단 한번의 사랑이 이뤄졌던 장소이다. 그는 우연히 들어온 물레방앗간 안에서 맺은 성서방네 처녀와의 인연을 추억하며 반평생 동안 봉평장을 찾는다. ‘봉평에 풋풋한 첫사랑의 이미지가 생긴 것도 그의 일편단심 순수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런 그의 마음을 기리기 위해서인지 마을 곳곳에서 심심찮게 물레방아를 볼 수 있다.

 

 

 

 

 

 

 

 

 

큰 길을 따라 쭉 걸어 올라가면 오른편에 커다란 책 기둥이 쌓여있는 독특한 입구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가산 이효석의 문학관이다. 문학관은 조금 높다란 언덕 위에 위치해있다. 입구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왼편엔 이효석 문학비가 보이고 오른편엔 역시나 하얗게 깔린 메밀꽃이 보인다. 그리고 언덕의 끝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문학관이 보인다.

 

 

 

 

이효석 문학관에는 그의 유품과 육필 원고, 초간본 책, 그의 작품이 발표 된 잡지와 신문들, 친필 편지와 엽서 등 그의 삶과 문학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볼 수 있게 전시되어있다. 그는 1907년 강원도 봉평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평창에서 보통학교를 다녔다. 어린 이효석은 평창에서 하숙을 하며 봉평집까지 100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왕래하였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그 길은 그가 6년 동안 수없이 오갔던 길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가 직접 피부로 느끼며 자랐기 때문에 그 길이 그렇게 아름답게 표현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유년기를 보낸 그는 청소년기와 청년기엔 서울에서 지냈다. 성인이 된 이효석은 온화한 성격에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댄디한 남자였으며 커피에 거의 인이 박힌 듯하다고 말할 정도로 커피를 좋아했던, 매우 서구적인 취향을 가진 모더니스트였다. 또한 이상향을 찾아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했던 보헤미안이기도 했다.

 

 

그는 대학에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일생을 마감할 때까지 문학과 예술에 심취해있었다. 초기에 그의 문학은 소위 동반자 작가(작품 성향이 식민지 민중의 비참상을 고발한다거나 일제의 폭압을 비판하는 등 자신들의 지향과 일치하는 작가들을 일컫는 용어­)라고 불릴 만큼 강한 사회성을 띄고 있었다. 하지만 1933년 구인회에 가입하면서부터 그의 작품 세계가 바뀌기 시작했다. 구인회는 1930년대를 풍미한 가장 우수한 작가들이 대거 모여 있던 일종의 동인인데 이상, 박태원, 유치환, 정지용, 김기림, 김유정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모두 구인회 출신이다.

 

 

 

그는 사회비판적 주제를 접고 이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자연과 향토성에 대한 탐구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메밀꽃 필 무렵은 이런 그의 탐구가 절정에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작품이다. 소설가 김동리는 언젠가 이효석을 두고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라고 말한 적 있다. 이것은 그의 후기 작품들에서 보이는 서정적인 문체와 향토적 어휘, 이야기의 구성 등이 소설이라기보단 차라리 시에 가까울 정도로 유려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어가던 그의 문학인생은 1940년 아내와 아들을 잃은 2년 뒤, 36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끝이 난다.    

 

 

 

 

자연인 이효석과 소설가 이효석의 흔적들이 전시되어있는 곳 옆에는 메밀의 역사와 가공과정, 다양한 음식들이 소개되어 있는 메밀전시관이 있다. 그렇게 한 바퀴 돌아 다시 밖으로 나오면 붉은 벽돌이 휘감아 도는 찻집이 있고, 푸른 잔디가 깔린 마당 한가운데에는 효석문화마을과 대관령 산맥을 배경으로 책상에 앉아 집필하고 있는 모습의 이효석 좌상이 있다.

 

 

 

 

 

문학관을 내려와 다시 큰 길을 따라 걸으면 이효석 생가마을이 나온다. 생가마을 앞에는 소설에서 허생원이 반평생 함께하며 분신처럼 아꼈던 당나귀를 실제로 기르고 있다. 그 옆엔 작은 개울을 건널 수 있게 그에 맞는 아담한 다리가 놓여져 있고, 양 옆으로 메밀꽃이 펼쳐져 있는 오솔길을 걸으면 이효석의 생가가 나온다.

 

 

 

이 생가는 복원해 놓은 것으로 실제 생가터에 있는 건물은 주인이 바뀌면서 이효석이 출생할 당시의 모습을 잃은 상태이다. 하지만 복원해 놓은 생가일지라도 주변 경관을 잘 꾸며놓아 왜 생가마을이라고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메밀꽃 필 무렵속 장돌뱅이들의 삶의 터전인 봉평장터를 시작으로 주인공들이 들렀던 충주집과 개울에 놓인 섶다리를 건너면 펼쳐지는 눈부신 메밀꽃의 향연, 허생원의 단 한번의 사랑이 이뤄졌던 공간인 물레방앗간, 그리고 소설가 이효석의 흔적을 돌이켜볼 수 있는 문학관에서 생가까지의 길은 천천히 산책하듯 걷기에 좋다. 마을 전체가 정갈하며 곳곳에는 이효석의 흔적과 소설 속 풍경들이 숨어있고, 눈을 두는 곳마다 하얀 메밀꽃이며 오색의 가을꽃들이 피어있어 길을 걷다 보면 누구나 소설 속 주인공이 되는 듯하다. 지금 봉평에서 열리는 효석문화제는 오는 18일에 막을 내리지만 봉평을 뒤덮은 메밀꽃은 가을의 절정까지 함께하니, 가을꽃의 정취에 취하고 문학의 감상에 젖고 싶다면 이번 주말 효석문화마을로의 여행을 계획해보는 것은 어떨까.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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