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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를 가다. (부제:엄마의 편지)

작성일201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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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일요일 오후, 어머니는 장롱 속에서 귀퉁이가 다 닳은 졸업앨범을 하나 꺼냈다. 소파에 앉아 앨범을 넘겨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 어머니의 정수리엔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지난번보다 더 늘어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반찬투정을 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우리 땐 햄 반찬은 상상도 못했다.’라고 나무라셨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표어를 그리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어렸을 적, 북한 사람들은 모두 괴물처럼 생긴 줄 알았어.’ 라며 웃으시고는 했다. 교정 진달래꽃나무 사이에서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서있는 단체 사진 속 국민학생 어머니는 너무나도 귀엽고 예뻤다. 20년이 넘게 두 자녀의 엄마로 살아온 삶 이전에 분명 어머니의 추억과 삶이 존재하고 있었을 텐데 왜 나는 그걸 몰랐을까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책가방을 돌리며 달려간 곳은 우리 동네 코주부 아저씨가 운영하는 만화방이었어. 딱딱한 나무의자에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엉덩이가 하나도 안 아픈 게 참 신기했었지. 코주부 아저씨는 만화책을 한 권 볼 때마다 쿠폰을 줬는데 그 쿠폰을 모아오면 사탕이나 만화주인공이 그려진 딱지로 바꿔주고는 했었어. 추운 겨울엔 만화방 가운데 있는 난로에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했고, 난로 위에 놓여진 주전자에서 치익- 하고 더운 김이 뿜어져 나올 때면 한참을 만화책을 읽다말고 고개를 들어 만화방 미닫이 창문밖을 내다봤어. 그러면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 엄마한테 혼날까봐 그제서야 읽다만 만화책을 내려놓고 만화방을 나서며 만화 주인공이 과연 마지막에 악당을 물리쳤을지 짝꿍이랑 옥신각신 토론을 벌이며 집까지 걸어가곤 했었어.

 

 

 

 

열두 살, 엄마의 꿈은 미스코리아였어. 예쁜 드레스를 입고 왕관을 쓰고 우아하게 손을 흔들며 걸어가는 미스코리아는 책에서 읽었던 공주님처럼 아름다웠으니까.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춘자네 미장원에는 미스코리아 대회 다음날이면 아가씨 손님들이 북적거렸지. 춘자 이모가 제일 자신 있는 건 뜨겁게 달군 화로식 고데기로 머리를 볶아주는 거였어. 사자처럼 부풀어진 꼬불머리를 보며 아가씨들은 환하게 웃었지. 외할머니를 따라간 미장원에서 머리를 볶아 달라고 하니까 할머니는 엄마를 집으로 데려와 바가지를 씌여놓고 내 머리를 잘라주었어. 덕분에 나는 다음날까지 챙피해서 학교에 안간다고 이불 속에서 버티다가 등짝을 맞고 울면서 학교를 갔지.

 


 

 

삼촌이 사라지면 100% 약속다방에 앉아있는 거야. 왜냐하면 약속다방에서 주말마다 서빙을 하는 마담의 대학생 딸이 우리 동네에서 제일 예뻤거든. 주말마다 다방에서 맛을 알지도 모르는 커피를 시켜놓고 서빙을 하는 마담 딸에게 윙크를 날리던 삼촌은 할아버지한테 귀를 잡히고 끌려오기가 일수였어. 하지만 삼촌의 소심한 구애는 끝나지 않았지. 빈 커피잔에 쪽지를 숨겨두기도 하고 알 듯 말 듯한 눈빛을 보내기도 했지만 정작 그 여대생은 삼촌이 아닌 다방에서 저녁마다 음악을 틀어주는 DJ를 좋아했지. 짝사랑의 슬픔으로 삼촌은 일주일간 식음을 전폐하다가 자기네 학교에 전학 온 여학생을 보고 새로운 짝사랑을 시작하더라고. 암튼 삼촌의 귀는 외할아버지 전용 손잡이였던 건 확실했지. 다음 제사 때 삼촌 보면 오른 쪽 귀를 자세히 봐봐. 왼쪽 귀보다 더 크고 늘어나 있을 테니까.

 

 

 

 

외할아버지는 엄마에게 종종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곤 했어. 노란 양은 주전자를 들고 국밥집 할머니에게 가면 할머닌 주전자 가득 손수 담은 막걸리를 부어줬지. 그걸 들고 오는 길에 호기심에 한 모금 마셨는데 너무너무 맛있는 거야. 몇 걸음 가다가 한 모금, 또 몇 걸음 가다가 한 모금, 그러다보니 주전자는 반이 넘게 비었고 엄마는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논두렁에 벌러덩 누워서 잠이 들어버렸어. 그 이후로 외할아버지는 엄마한테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지. 대신 직접 할매네 국밥집에 가서 동네 아저씨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거나하게 드시곤 했단다. 외할머니는 늦은 시간까지 할아버지가 오지 않으면 엄마한테 늬 아부지 찾아오라며 엄마를 할매네 국밥집으로 보냈어. 엄마는 막걸리 심부름을 하지 않았지만 외할아버지를 끌고 오는 새로운 심부름을 떠맡게 된거지. 술에 취한 외할아버지 등에 업혀서 외할아버지가 부르는 잘 알지도 못하는 그런 구성진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가는 길은 늘 꼬불꼬불하게 굽어있었다. 길이 굽은 건지 외할아버지의 걸음이 굽은 건지 휘청거리는 외할아버지의 술냄새 나는 등짝과 제목도 모르고 흥얼거리던 그 노랫소리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도 항상 생각이 나는구나.

 

 

 

 

학교를 졸업하고 막 서울로 올라온 엄마는 아버지를 만났어. 촌뜨기인 엄마에게 유람선도 태워주고 남산 케이블카도 태워주고 가방도 사주는 아버지가 못생겼지만 왠지 점점 좋아졌지. 돈가스도 아버지가 사줘서 처음 먹어봤어. 그때 남산 돈가스에 넘어가면 안됐는데 말이야. 스물 셋,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외할아버지는 펄쩍 뛰면서 말렸지. 늬 아빠는 그때 외할아버지에게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 뺏어간 어디서 굴러들어온 소새끼나 다름없었어.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아버지랑 엄마는 결혼을 하게 됐어. 결혼식을 하기 전, 없는 살림에 외할머니는 제일 좋은 양장점에서 엄마의 투피스를 맞춰줬는데 나는 철모르고 좋은 옷 입고 방방 뛰기만 했었지. 외할머니가 사준 투피스를 입고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나중에 인화된 사진을 보니까 우리 가족은 다 해묵은 정장을 입었는데 나만 반짝이는 새옷을 입고 있는 거야. 어찌나 내자신이 철없고 부끄럽던지.
 

 

 

 

결혼 후 1년 만에 너를 낳았어. 진통도 컸고 입덧도 심했지만, 엄마는 너를 처음 안고 쭈글쭈글한 네 얼굴을 본 순 간 눈물이 나더라. 너무나도 행복하고 감격스러운 눈물이었어. 24년을 누군가의 딸로만 살다가 이제는 이 작은 생명의 ‘엄마’가 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아마 넌 모를 거다. 어린 시절 엄마의 꿈은 이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완전히 꿈이 사라진 건 아니야. 갓 태어난 너를 안았을 때부터 엄마의 꿈은 줄곧 너 하나였으니까. 네가 처음 ‘엄마’라고 부르고 처음 걸음을 걷고, 유치원에 입학해서 색동옷을 입고 재롱잔치를 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나와서 수능을 보고 대학에 입학하고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나에겐 꿈같은 행복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같은 시절이 있고 같은 시간을 사는 거지. 어린 시절의 엄마가 외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을 몰랐던 것처럼 지금의 너도 엄마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거야. 나중에 네가 누군가의 엄마가 됐을 때, 그때는 엄마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까 어쨌든 사랑한다. 내 행복이자 꿈인 나의 사랑하는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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