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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사와 함께 한 밀리터리룩의 숨겨진 이야기

작성일201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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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패션은 종종 그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전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의 역사를 빼 놓을 수 없으며, 인류의 역사 속 전쟁의 슬픔과 고통, 평화를 위한 바람들을 패션은 재해석하기도 하며 풀어나가기도 한다. 그것이 밀리터리룩의 탄생 배경이 아닐까.

 

 

 

밀리터리룩은 군대 풍 옷차림이라고 풀이 되지만 단순히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한 스타일로 한정 짓기엔 너무나도 다양하다. 밀리터리룩은 유에스(U.S) 아미룩, 카키룩으로도 불리며, 북아프리카 사막지대의 군복스타일인 데저트룩, 해군 군복스타일의 마린룩, 아라비아 스타일 등 전쟁이 발발한 시대, 국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밀리터리룩 스타일들이 존재한다.

 

 

 

 

 전쟁은 특히 여성복 패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여성들은 원피스 드레스 보다 투피스 드레스나 코트 드레스를 선호하였고, 싱글 재킷이나 더블 브레스트 재킷으로 허리에 벨트를 매었다. 1916년 경 스커트는 기존에 비해 6인치나 더 짧아지고 테일러드 재킷의 밀리터리룩이 유행하였다. 또한 전쟁기간 중 군복의 영향으로 헐렁한 무릎 길이의 바지인 니커보커스와 승마용 짧은 바지가 출현하는 등 여성의복은 길이가 점점 짧아지거나 심플한 스타일이 유행하였고, 이 시기의 밀리터리룩이 더 발전되어 기존의 여성복에서 보다 남성적이고 활동적으로 디자인이 강조 된 캐주얼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밀리터리룩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다. 이브 생 로랑은 1966년 견장과 금빛 단추, 패치 포켓, 아코디언 포켓, 훈장 등 군복 풍의 액세서리들을 활용하였고, 군모, 군화 등을 활용하여 군복의 이미지를 재해석하여 밀리터리룩을 잘 표현하였다.

 

 

 

 

 사실 트렌치코트는 트렌치(Trench 참호)라는 말 그대로 1차 세계대전 중 겨울 참호 속 혹독한 날씨로부터 영국군인과 연합군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쟁 후에도 기능적이고 우아한 디자인의 트렌치코트 유행하였고, 트렌치 코트의 방수 코트 디자인은 남성 레인코트의 기본적인 의복이 되었으며, 후에 여성도 레인코트로 착용하게 되었다.

 

 

 버버리(Burberry)와 아쿠아스큐터(Aquascutum)이 대표적인 트렌치 코트 생산업체이다.

 

 

 

 

반대로 군복의 디자인을 중시한 예도 있는데, 바로 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군복이 그 예이다.

 1차 세계대전의 패배 이후 히틀러는 독일군의 재정비를 위해 가장 먼저 신경을 쓴 것이 바로 군복이었다. 독일군대에 제공될 군복의 디자인을 맡은 기업은 현재 세계적인 패션 기업인 휴고 보스(Hugo Boss)였는데, 히틀러는 자국민들에게는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주고, 적군에게는 위압감을 심어주기 위해 남성적이고 강한 이미지의 군복을 제작할 것을 주문하였다.

 

 

 보통 군복의 디자인은 전쟁이 치뤄지는 지역의 상황에 따라 실용적인 점을 중요시하지만 품위 있고, 세련된 군복으로 재정비한 독일군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독일군은 단 10만여명에 불과했지만, 독일의 많은 젊은 엘리트들이 군입대를 자원하였고 독일군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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