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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근대문화골목 | 도심 속 근대문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

작성일20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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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평일, 대구 고층 빌딩 사이로 길을 거닐다 마주치게 되는 오래된 건물들과 거리로 접어들게 되면 그 많던 인파들은 이내 사라져 버린다. 갑작스럽게 주위가 조용해 질 무렵 시야에 들어오는 이미지는 그리 낡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이끈 도시, 대구 근대문화골목의 풍경이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한 대구는 이국적인 근대화 건물들과 거리들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쉽게 지나쳐 버린 거리 모퉁이로 근대 문화의 자취를 발견하게 된다면 대구의 또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잘 보존을 한 덕분에 근대골목이 위치한 대구시 중구와 대구시티투어, 대구문화재단을 통해 골목 투어에 참여를 할 수가 있다.

 

 

  대구 근대문화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옛 골목들은 동산병원 남문을 통해 들어가 3.1운동길, 90계단, 이상화, 서상돈 고택, 진골목에 이르기까지 많은 볼거리와 먹거리들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평소 쉽게 지나쳐 버리는 거리지만 조금만 더 유심히 찾아본다면 우리의 근대사를 좀 더 알수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일제강점기 때의 민족의식이 엿 보이는 설명들을 읽게 되면 내 고장, 내 선조들에게 감사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계산오거리를 지나 약령시 방면으로 접어들게 되면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이 나란히 위치해 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 배웠던 '시인에게', '통곡',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해를 먹다' 등 이 보석처럼 빛나는 저항적 서정시가 나오기까지 이상화의 울분과 통곡은 일제강점기 조국의 참담했던 현실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살아생전 사용했던 유품들이 보존되어 있는 이 상징적 공간은 이상화의 드높은 민족정신을 이어받는 교육장이 되어, 하루에도 지역의 수십명 학생들이 다녀간다.

 

 

 옛 과거길인 영남대로부터 약전골목(약령시)으로 이어지는 길은 한약향기가 가득하다.  약령시는 조선시대부터 국내 제일의 한약재시장이였을 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의 한약재 유통의 거점역할을 했으며 대구시의 명물이기도 하다.

 

 약전골목에서 나와 경상감영공원 방면으로 가면 바로 옆 대구 근대역사관이 위치해 있다. 근대 문화골목의 현재를 다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게 되면 당시의 모습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대구 근대역사관의 시설은 근대의 문화, 교육도시 대구, 삶의 향기, 근대화의 산실, 구국의 정신, 근대의 태동 이 6가지의 테마로 관람하기 쉽게 나누어져 있다. 

 

 

 대구 근대역사관 건물은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되었으며,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된 근대문화유산이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분류되는 이 건물은 단순하게 처리한 전면부의 장식과 수평선을 강조한 지붕 슬라브의 처리가 특징적이며 원형이 잘 남아있어 2003년 유형문화재 제 49호로 지정되었다. 2008년 대구도시공사로부터 기증받아 대구근대역사관으로 조성하고 올해 2011년 개관하였다.

 

 마침 본 건물 2층에서는 대구근대역사관 특별사진전 - '대구, 근대의 삶과 추억'을 전시 중이었다.

 

 

향토 사진가들에 의한 이 사진들은 암울했던 1930년대 일제의 검열을 피해 풍경사진이나 민족의 서정성, 사진의 내면에 민족정신이 담겨져있으며, 한국전쟁과 1960년대까지 격변하는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하였다.

 

 

 희망이 싹트고, 빠르게 근대화되어 가는 대구와 주변지역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사진으로 제작한 엽서들과 근대 교육의 역사를 잘 나타내주는 사진들까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쉽게 지나쳐 버린 거리, 그 곳에는 쉽게 잊혀질 수 없는 우리의 근대사가 살아숨쉬고 있다.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겪지 못했던 흘러간 역사. 이번 기회에 대구 근대문화골목길을 따라 우리의 근대사를 찾아 떠나는 테마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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