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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의 24시를 카메라에 담다.

작성일20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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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이번 역은 노량진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 지하철 문이 열린다.

 

갓 잡은 생선 냄새가 구수하게 코를 찌르는 수산시장,

한 손엔 책과 한 손엔 공책을 들고 열심히 어디론 가 향하는 사람들,

오늘 하루도 힘차게 시작하자는 포장마차 주인 아저씨,

 

여기는 바로,

 

노량진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량진 수산시장은 북적북적했다. 오늘 팔아야 할 생선들과 어패류들을 손질하고 있는 상인들도, 경매를 준비하는 경매꾼들도, 생선을 사러 구경 나온 동네 주민들도모두들 제각각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시장 골목골목 사이로, 수산물을 가게로 싣고 나르는 오토바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달콤한 잠을 자고 있을 시간에, 또 누군가는 이렇게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만큼, 노량진 수산시장의 치열함과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여기서 10년 동안 장사 했는데, 난 신참이야.”

 

수산시장의 생선 비린내가 너무 심해서 처음에는 코를 막았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자, 어느덧 나의 발걸음은 한 어패류 가게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내가 만난 아주머니는 홍합을 팔고 있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는 어패류, 고등어 등등 각각 품목별로 구역 표시가 되어있는데, 홍합을 파시고 계셨던 아주머니를 어패류 판매 구역에서 만날 수 있었다.

 

굳은 살이 베긴 손이 아주머니의 고단한 삶을 반영하는 듯 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홍합 장사를 하신 지 10년이 되셨다는 아주머니. 그렇지만 아주머니는 그녀가 신참이라고 했다. 수산시장에서는 그만큼 자신의 한 평생을 수산시장에 묻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아주머니. 그녀는 노량진을 전쟁으로 표현했다.

 

얼마나 힘들겠어요. 생각을 해 봐(웃음). 매일 새벽 1시에 나와서 밤 12시에 들어가. 그만큼 여기가 치열해.”

 

 

 

지난 10년 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듯, 아주머니는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오후가 되어서 시장을 빠져나갈 때쯤, 나가는 방향까지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며, 배웅을 해 주셨다. 노량진에서의 삶의 방식이, 아주머니께서 표현하셨듯이, ‘전쟁일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 그 인심만큼은 푸짐한 듯 하다.

 

 

 

 

 

 

수산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배에서 끼니 시간을 알리 듯, 꼬르륵 소리가 진동을 했다. 노량진에는 비단 수산시장 만 아니라, 각종 고시 및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어, 흔히 고시촌이라고도 불린다. 그래서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다양한 음식을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이색 음식점들이 있다. 바로, “길거리 음식점이다.

 

 

 

수산시장을 빠져 나와, 육교를 건너자 마자, 옹기종기 붙어있는 포장마차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메뉴를 보고 놀라고, 또 한번은 가격을 보고 놀랐다. 점심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모습은 여느 비싼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곳에서, 6년 동안 노량진에서 길거리 음식점을 운영해 오신 부부 1쌍을 만날 수 있었다. 아담한 크기의 포장마차, 하지만 그 앞은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가게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이들 부부가 운영하는 포장마차의 메뉴는 수제소시지와 오므라이스. 하지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직접 개발한 수제소지지, 그리고 아내가 직접 만든 오므라이스“

 

 

 

 

주인 아저씨께서는 6년 전, 노량진에서 이런 저런 길거리 음식점을 운영해 보다가, 실패를 거듭했고, 이에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수제소시지를 직접 개발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현재는, 전국으로 자신이 만든 수제 소시지를 유통하고 계신다고또한 사모님께서는 베트남 출신이신데, 베트남식의 요리법을 한국의 오므라이스와 결합해서 독특한 맛을 내신다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베트남고 한국의 식문화가 달라서, 이 음식이 노량진 고시생들의 입맛에 맞을 지 확신이 없었다고 하셨지만, 지금은 누구나 노량진에 와서 한번은 먹어보고 갈 정도로 유명한오므라이스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노량진의 푸짐한 인심을 맛볼 수 있었다. “학생, 이거 먹고 해. 서비스로 소시지도 넣었어.” 하시며, 오므라이스 위에 직접 개발한 수제소시지를 양껏 얹어주시는 사장님. 노량진에서 먹는 첫 식사이자, 마지막 식사였다.

 

 

 

 

 

 

 

 

 

해질녘이 되고, 조금씩 날이 어두워지고, 찬 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씩 간판들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OO학원, OO고시원, OO고시텔 등등 노량진 고시촌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한 손엔 두꺼운 O급 공무원, OO고시 등이 크게 적힌 책을, 또 한 손엔 천원 몇 장을 들고 다니며 식당을 전전하는 고시 준비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다들, 양복이나 화려한 복장보다는 편한 츄리닝과 슬리퍼를 신고 밥을 먹으러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량진 고시촌은 이에요. 합격해야만 나갈 수 있으니깐.”

 

 

 

 

고시촌 주변을 맴돌다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한 여성 수험생 분을 만날 수 있었다. 고시 준비 때문에 예민한 상태여서 그런지, 자기 소개는 일체 거부하셨던 그녀. 그녀는 아직 노량진에 온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슬리퍼와 츄리닝 차림의 그녀는 자연스러우면서도, 노량진 고시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짠했다.

 

 그녀에게 노량진을 한마디로 표현해달라고 부탁을 하자, ‘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시험에 합격해야만 노량진을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만큼 무섭고 치열하게 공부를 해서 합격해야만 나갈 수 있는 노량진 고시촌. 그녀는 노량진은 암울하지만, 그래도 목표하는 바가 있어 시험 준비에 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시 공부를 하러 가야 한다는 그녀. 노량진 고시촌의 꺼지지 않는 불빛들이 마치 고시준비생들을 방불케 했다. 끊임없이 쉬지 않고, 하나의 목표에 돌진하는 그들. 어쩌면, 그들이 있기에 노량진이 있고, 노량진이 있기에 그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노량진의 24시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노량진이 제일 서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휘황찬란한 불빛들보다는, 높이 들어선 학원 건물들, 달동네처럼 옹기종기 붙어있는 고시원들, 그리고 편한 복장으로 길거리 음식점에서 서서 밥을 먹고, 얼른 또 다시 공부하러 가야 하는 사람들… ‘빨리빨리의 문화로 대표되는 서울의 모습을 너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노량진에서, 나는 사람들의 인심을, 그리고 그들의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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