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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헌책방 골목... 그곳에서 추억을 읽다.

작성일201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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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10월의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BIFF)부터 시작해 각종 축제가 많은 그야말로 시끌벅쩍한 달이다. 특히 남포동 일대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초가 된 곳으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어 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엄청난 인파를 간신히 헤쳐나와 국제시장을 벗어나면 어느샌가 만나게 되는 작은 골목... 바로 보수동 책방 골목이다. 옆동네가 지금 영화제로 난리법석을 떨고 있는 것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곳은 도도하리만큼 조용하다.

 

 

보수동 책방 골목은 한국 전쟁으로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었을 때, 이북에서 피난 온 부부가 이 일대 골목 안 처마 밑에서 미군 부대로부터 나온 헌 책으로 노점을 시작한 것을 시초로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50여개의 헌책방이 좁은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진풍경을 연출한다. 고문서 관련 서점, 아동도서 전문 서점, 대학전공 교재 관련 서점 등 전문적인 책만 취급하는 곳부터 헌책만 다루는 곳, 헌책과 새책 모두 판매하는 곳까지 다양하다.

 

추억을 읽는 사람들...

 

마치 딴 세상에 진입한 듯 조용한 골목을 느릿느릿 걷다보면, 유독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께서 책방에 기대어 독서을 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좁은 점포안 그마저도 책들이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어 불편한 곳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책에 빠져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비록 눈이 밝지 않아서 안경을 만지작 거리시며 독서를 하실지라도 그 모습만큼은 평온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어울리는 풍경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어르신과 대화를 청해 보았다.

 

불편하지 않으세요 불편하긴 뭐가 불편해, 익숙해져서 편하기만 하구먼...

    원래 책 좋아하시나봐요, 책 많이 읽으세요 에이,,, 예전에야 좋아했지,,,

     늙은이가 책 읽어봐야 얼마나 읽겠어, 그냥 자주 오는 곳이니까 재미삼아 한 장

     한장 넘기는 정도지 뭐...

    여기 자주오신다고요 언제부터 오셨는데요 이사람아 나 여기 놀러 오는거

     30년도 넘었수다. 그땐 대학생이었는데...

    30년이 넘게 이곳을 찾으신 거예요 큰 서점가면 이렇게 불편하게

    안보셔도 되잖아요.

     거긴 비싸잖아. 그리고 그런데는 옛날 책이 많이 없어. 난 여기가 익숙하고   

     좋아. 젊은 시절 책은 사고 싶은데 돈은 없고... 그래서 이 골목에서 책 한권 다

     읽다가고 그랬지. 옛날생각도 나고, 귀중한 서재나 다름없는 곳이여...

 

대화를 나누던 어르신은 잠시 생각에 잠기시는 듯 하다가 이내 책으로 눈을 돌렸다. 골목 전체가 마치 하나의 골동품 같다고 말씀하신 어르신에 말에는 운치가 느껴졌다. 그러던 중 아름다운 운치 저 끝에서 애타게 옛날 추리소설을 찾는 한 아주머니를 보았다.

뭘 찾으시는데요 "아.. 옛날 추리소설요. 요즘 번역된 거는 싱거워서 재미가 없어. 옛날에 번역된 추리소설이 좀 더 맛깔나고 재밌어요. 그래서 내가 해운대 사는데 매번 이렇게 발품팔아 가면서 헌책 찾으러 온다 아입니까."

헌책방 주인께서 이윽고 헌책 꾸러미를 꺼내자 그 아주머니는 자신이 찾으시던 바로 그 책을 발견하셨는지 아이처럼 좋아하였다. 딸과 아들을 데리고 골목을 찾으신 평범한 아주머니는 헌책을 가슴팍에 꼭 안고, 30년전 순수한 소녀가 되어 내려가셨다.

 

추억을 찾아주는 사람들...

금새 소녀가 되어버린 아주머니를 보며 이 골목에 매력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순간 눈에 익숙한 문구가 가게 앞에 걸려있었다. SBS 방송 “생활의 달인”에 출연하셨던 책찾기의 달인의 가게가 그것 이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한번 방송으로 가게 깊숙한 곳에 있는 책도 망설임 없이 찾아주는 달인을 본 기억이 났고, 그분이 바로 그 앞에 계신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달인 선생님! 이 많은 책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에 아신다고요

그거야 여기 일하는 분들은 기본이지! 나만 달인이 아니라 여기 계신 대부분에 분들이 다 달인이야. 지금 여기 헌책들 다 중구난방으로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다 장르별, 시기별, 또 잘 팔리는 것 기준으로 나눠져 있지요. 한권한권 내가 손수 책장에 꽂아 정리한 건데 내가 모르면 안될 거 아냐

 

아무리 달인이라 해도 눈씻고 찾아도 못찾는 책도 있었나요

많지! 여기있는 책 중에 한 90%는 다 알겠는데 10%는 나도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아. 한번은 얼마전에 어떤 손님이 ‘국부론’ 원서 책을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연락처만 받고 그냥 돌려보냈는데 그 다음날 청소할 때 보니까 바로 눈앞에 있더라고... 그래서 다시 부랴부랴 그 손님 연락해서 책 찾았다고 연락했었지. 달인 이름에 체면 좀 상해도 손님이 먼저 아니겠나 허허 달인도 사람인데 뭐...

 

원래 책을 좋아해서 일을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 촌놈이 책을 접할 기회나 있었겠나 시골에서 올라와서 이것저것 다해보다가 우연한 기회에 지인이 소개를 해줘서 이 골목에 들어오게 됐지. 그게 벌써 40년이 다 돼가네. 내가 원래 많이 부지런하고, 꼼꼼하거든. 헌책이라고 책들도 아무렇게나 방치해 놓는 것 같지만, 오히려 헌책이라서 더 깨끗하게 관리해야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어야 하는 법이지. 헌 책 사러온 사람들이 새 책 못지않게 상태가 좋은 걸 보고 만족해하는 모습 보면 나도 기분이 좋고 그렇지. 그런 부분들이 나랑 적성에 잘 맞더라고...

 

40년전과 지금.. 골목에 모습은 변한게 없나요

음... 그때는 가게들이 지금 보다 더 작게 따닥따닥 붙어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단 가게들 공간이 커졌지. 울퉁불퉁한 바닥도 걸어다니기 편하게 바꾸고... 그런 거 말고는 바뀐거 많이 없어. 여기20~30년 된 단골손님들 옛날 추억 곱씹으려고 오는데 너무 많이 바뀌어 버리면 안되지 않겠나 90년대 말, IMF때 골목 전체가 장사가 너무 안되서 문을 닫는 집도 여렷 생기고, 더군다나 인터넷 서점이니, 대형기업체 서점들이 들어오면서 골목자체가 위기에 놓였던 적도 있었는데, 요즘엔 오히려 인터넷 블로거나 관광명소로 광고가 되어서 구경하러오는 사람도 많고 좋아. 부산에 향토서점인 문우당 서점, 동보서점 다 문닫고 없어져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 골목만은 유지 하고 있어야지.

 

오랜 추억을 간직한 골목에서도 제일 유명한 달인이 되셨는데, 보람감도 느끼시겠어요.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 얼굴마담으로 골목을 지키실 계획인가요

자꾸 달인, 달인 해서 처음에는 많이 부담스럽고 그랬는데, 그래도 그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헌책방 골목에 믿고 찾아와주고 해서 이제는 참 고맙지. 40년 가까이 일하면서 여태껏 성실하게 일해온 부분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내색은 잘 안해도 보람은 많이 느끼는게 사실이지. 그래도 무엇보다 좋은 건, 여기 같이 헌책방 운영하시는 골목 상인들 하고, 또 어김없이 찾아와 주는 오래된 손님들과 같이 만나고 얘기하고 하는 게 제일 행복하다. 앞으로도 체력이 되는 한 계속 이렇게 지낼 것 같아.

 

 

오랜시간을 골목과 함께 해온 달인에 말에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이곳에 깃든 애정이 넘치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 급하게 달인에게 달려온 한 학부모 어머니가 옛날 초등 참고서를 찾는 바람에 대화는 끊겼지만, 책들로 빼곡한 2층에서 주저없이 책을 찾아주는 달인의 실력을 다시한번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어서 오히려 아주머니께 고맙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훨씬 오랜시간 동안 달인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 하늘은 어두워지고, 골목은 형광등 불빛이 켜지고 있었다. 골목을 한걸음, 한걸음 내려올 때마다, 추억에 불빛이 하나씩, 하나씩 켜지는 것만 같았다. 참 조용하고 좁은 골목이지만 이곳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옛날이야기는 결코 조용하지 않고, 깊은 여운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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