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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작성일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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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어렸을 적, 누구나 이루고자했던 꿈들이 있다. 어른이 되어 그 꿈을 이룬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기억 저편으로 밀어 버린 사람들도 있다. 아마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렇게 어렸을 적의 꿈들을 잊고 살아왔을 것이다. 여기 22살의 기자도 어렸을 적엔 열 손가락을 다 꼽아도 부족한 많은 꿈들이 있더랬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허무맹랑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개중에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뛰는 그런 꿈들이 있었다. 

 

어느 가을날, 훌쩍 경춘선행 열차에 올랐다. 그 열차는 잊고 있었던 꿈을 찾으러 가는 열차였다. 

 

 

 

 

 

 

만화책을 공부했던 소녀

 

 

그림 꽤나 잘그리던 친구들은 주위에 많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녔던 친구도 있고 만화동아리에 들어 직접 만화책을 만드는 친구도 있었다. 기자는 둘다 아니었지만 만화그리는 것을 업으로 삼겠다고 부모님께 으름장을 놓았었다. 그저 그림그리는 게 좋았고 만화 보는게 좋았다. 만화 속 남자 주인공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떼를 쓰고 공부하러 책상에 앉아서는 낙서만 해댔다. 마법소녀를 따라하며 요술봉을 학교에 들고 간것도 여러번, 이 글을 읽는 친구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다. 중학교에 들어서는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안돼 만화책을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때는 따라그리는 것도 그저 즐거웠다. 그림대회는 무조건 나가서 상을 휩쓸었다. 난 내게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부모님은 좋아하셨지만 '저러다 말겠지'하며 크게 신경쓰지 않으셨다. 그리고 난 정말 그러다 말았다.

 

 

 

 

그림에 대한 꿈과 환상을 가졌던 친구들이라면, 아니 그냥 어렸을 때 TV앞에 앉아 만화를 즐겨봤던 어린이 시절을 보냈다면 이 곳에 오자마자 탄성을 지를 것이다. 입구서부터 울려펴지는 익숙한 노래.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자축인묘~" 22살인 기자가 8살부터 봤던 TV애니메이션의 주제가들이 사방에 울려펴졌다. "아, 나 이노래 알아!" 어른이 된 모두는 만화가 더이상 자기들의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여기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에 오면 모두가 철모르던 8살로 돌아간다.

 

 

 

 

애니메이션 박물관은 그 이름처럼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거의 모든 것을 집대성해놓은 곳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장 압권인 곳은 추억의 만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1층 전시실일 것이다. 우리 엄마가 어렸을 때 보던 만화책부터 현재 대학생인 친구들이 보던 TV애니메이션까지- 이 곳에 오면 모두가 도사다. 여기저기 아는 척 하는 사람들로 넘친다. 공중파에서 방송된 만화의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기억 저편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세상에- 맞아, 이런 만화도 봤었어.' 나조차도 기억못하는 만화들을 이 곳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만화를 그저 좋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진지하게 공부했던 (나같은)친구들이라면 애니메이션의 작업과정을 소개해놓은 부분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직접 손으로 그림들을 그려냈던 초기의 애니메이션 작업부터 '셀룰로이드 판'을 이용해 원하는 부분만 움직일 수 있도록 그린 것까지. 우리가 어렸을 때 보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이 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고 생각하니 놀라우면서도 그 노고에 감탄했다. '예전에는 미국의 애니메이터들이 한국인의 값싼 노동력을 사 셀작업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지 못할 역사지만 이 유명 애니메이션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세세한 손놀림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하니 경건한 마음마저 들었다.

애니메이션 박물관을 나오면서 다시 한번 그때의 꿈을 생각했다. 이젠 단순히 취미가 되어버린 만화그리기. 하지만 기자는 다시 희망을 품어본다.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그릴 수 있게된 지금, 나도 하일권같은 웹툰작가가 되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꿈을 잊지 않고 가슴속에 언제나 기억하는 것.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백석, 김유정은 내 이상형

 

 

불과 3년 전, 온통 여자애들에게 둘러쌓여 공부했던 여고시절. 언어시간에는 남모를 두근거림이 있었다. 남자 선생님 때문도 아니요, 그건 책 속에만 존재했던 사람들 때문인데- 백석, 윤동주, 김유정, 이상... 수능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했던 문학천재들. 그들은 공부를 떠나 시와 소설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안겨주었고 또한 그들의 삶으로써  인생의 쓴 맛을 이야기 했다. 실제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삶을 살아간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모두가 '문학소녀'가 되어 그들을 추앙하게 된다. 특히나 잘생겼던 백석은 흑백사진 한장으로 여고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검정펜으로 머리카락 더 그려넣어 그럴싸하게 현대인으로 탈바꿈시켰던 재미가 쏠쏠했다.

 

 

 

 

개중에도 김유정은 짧지만 가슴아픈 인생사로 여고생들의 마음을 샀다. 29살의 한창 젊을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한 김유정. 김유정은 그 개인사보다 소설이 더 유명하다. '봄봄', '동백꽃' 등 농촌을 배경으로 한 맛깔스런 문체가 일품이었던 작품들. 언어시간에 등장했던 많은 소설들이 어려운 한자어를 내세웠던 것과 달리 김유정의 작품들은 소박하고 재미나게, 그러나 다 읽고나면 씁쓸함마저 안겨주는 농도 짙은 소설들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실제 김유정의 고향이었던 춘천을 배경으로 했다. 춘천역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만 더 가면 '김유정 역'이 있다. 역 이름만큼이나 주변엔 김유정의 소설 속 농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마을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김유정 문학촌'이 있다. 김유정의 옛 집터가 그대로 복원된 곳이다. 문학촌 입구에는 이 지역 일대를 소개해놓은 표지판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 마을 이곳 저곳이 김유정 소설의 배경들이었다. 바로 뒤뜰이 동백꽃의 배경, 마을을 더 들어가면 나오는 집이 봄봄의 배경인 식이다. 그야말로 이 마을 전체가 김유정 소설속의 마을인 것이었다. 달뜬 마음을 안고 들어간 김유정 문학촌은 입구에서 부터 두 사람의 동상으로 시선을 끌었다. 아마 야학운동을 했던 김유정과 그의 제자의 모습일 것이다. 비록 동상에 불과했지만 제자를 바라보는 눈길이 사랑스럽다. 가만히 옆에 앉아봤다. 70년 전, 그의 고향을 너무 사랑했던 한 젊은이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입구에서 얼마 안가면 김유정의 삶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이 나온다. 작가로서의 삶을 떠나 하나의 인간이었던, 그것도 너무나 가슴아프고 슬픈 삶을 살았던 비애의 인간으로써 그의 삶을 깊게 살펴볼 수 있다. 일곱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김유정은 죽을 때까지도 어머니를 잊지 못한다. 기어코는 어머니를 닮은 여자를 사랑한다. 당시 기생이었던 박녹주다. 2년 간의 끈질긴 구애에도 김유정은 박녹주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또 다른 사랑인 시인 박봉자와는 편지만 오간 사이다. 엄연히 말하면 김유정이 일방적으로 편지를 쓴 것이었다. 후에 박봉자는 김유정도 아는 평론가와 결혼해 김유정을 또 한번 좌절케 했다. 이렇듯 사랑에 목말라하다 죽어간 한 인간의 모습을 소설 밖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이 곳 '김유정 문학촌'이다.

 

 

집에 돌아오는 경춘선 열차안. 이미 어둑어둑해진 바깥을 바라보며 다시 현실의 나로 돌아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시간 남짓 걸리는, 길다면 긴 열차에서의 시간동안 나는 오늘 보았던 춘천의 가을 하늘과 내 어릴 적 꿈들을 다시 곱씹어보았다. 그림 그리고 글쓰는 것을 좋아했던 어릴 적 소녀는 이제 없지만 그 꿈만은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작게나마 소망해본다.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이 꿈들을 이룰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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