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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이 사랑한 그녀, 에디 세즈윅의 뒤엉킨 삶

작성일201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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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 동성애적 성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그가 한때 사랑했던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에디 세즈윅(Edith Minturn Sedgwick)’.

 

깊은 눈망울을 돋보이게 하는 인조속눈썹과 스모키한 눈 화장. 마릴린 먼로의 것도 부럽지 않은 오른쪽 뺨 위의 예쁜 점. 여성으로서의 청순함 따위에는 어떠한 미련도 없다는 듯한 그녀만의 반항아적이고 고집스러운 숏 커트 헤어. 그리고 작은 얼굴을 부각시키는 무거우리만큼 커 보이는 샹들리제 귀걸이까지. 이러한 파격적인 스타일은 그녀가 아티스트로서 절대적인 미적 감각을 가졌던 앤디워홀의 뮤즈가 되어 한 시대의 패션 아이콘으로 칭송 받게 해준 그녀만의 시그니쳐이자 가장 큰 자산이었다.

 

 

1943 4 20일 에디는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은 세즈윅가에서 태어났다. 독보적인 미모와 부유한 집안 환경을 갖고 태어났다 하면 그 누구라도 평탄하고 탐스러운 삶을 살았을 거라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에디 세즈윅의 삶은 뒤엉킨 실과 같았다. 길게 내리 뻗어야 하는 삶의 실이 너무 복잡하게 엉켜 붙고 뭉쳐져 끝내 1971 11 16, 서른을 맞지 못한 나이에 남들보다 더 짧게 삶의 끈을 맺어야 했다.

 

(▲어린 시절 순수한 모습의 에디 세즈윅)

 

에디 세즈윅의 비극적 죽음에 일조한 것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 자신의 집안 환경이었다. 그녀가 태어난 집안인 세즈윅가는 흑인 여성에게 법적인 자유를 안기는 혁명적 업적을 이뤄낸 테오도르 세즈윅 판사를 비롯해 미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조상들을 자랑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성쇠가 있는 법이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정신병력이 그들 가문의 족보를 마냥 빛나게 하지만은 않았다. 퍼지(Fuzzy)라고 불렸던 에디 세즈윅의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담당 의사가 아이를 낳지 말 것을 제안할 정도로 심적으로 불안정했던 에디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지 못하고 마침내는 에디의 많은 형제 자매들을 정신병, 자살 등으로 몰고 가고 말았다.

 

에디 세즈윅은 그들로부터 도망치듯 뉴욕으로 몸을 이끌어와 영화배우를 꿈꾸기 시작한다. 그리고 1965 3, 그곳 찬란한 도시 뉴욕의 한 파티장에서 그녀는 운명적인 인생의 파트너인 앤디워홀을 만난다. 앤디워홀은 파티장에서 소담스러운 미모와 톡톡 튀는 매력을 가진 그녀에게 반하여 슈퍼스타로 만들어주겠다라며 그녀를 유혹했고, 그 둘의 만남에 스파크가 튀면서 에디 세즈윅은 제 2의 인생을 맞이한다.

 

(▲에디 세즈윅을 다룬 영화 팩토리 걸)

 

2006년 개봉한 영화인 팩토리 걸(Factory Girl)’은 앤디워홀의 뮤즈로서의 에디 세즈윅의 일대기를 다룬다. 혼란의 중심인 뉴욕이라는 도시 속에서도 특히, 워홀과 세즈윅의 관계는 ‘Factory’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여기서 Factory는 앤디워홀의 작업공간을 의미한다. 낮에는 스튜디오, 밤에는 문란한 파티장소로 쓰인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으로 충만한 이 공간에서 에디 세즈윅은 자신을 괴롭혔던 아버지의 족쇄로부터 벗어난 채 마약, 섹스 등을 접하며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된다.

 

 

에디가 놀이터 삼아 드나들기 시작한 Factory에서 앤디워홀은 당시 비닐(Vinyl)’이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워홀은 그녀를 “Factory의 여왕으로 만들겠다라고 선포하면서 이미 정해진 모든 배역을 전면 수정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면서까지 그녀를 메인 배우로 쓰기 시작한다. 이후 앤디워홀과 그의 시나리오 작가 척 웨인(Chuck Wein), 그리고 에디 세즈윅의 환상적 호흡으로 만들어진 영화 뷰티 넘버 투는 흥행이 성공적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디 세즈윅을 슈퍼스타로 거듭나게 한다. Vogue를 비롯한 여러 패션 잡지에서 그녀의 패션센스와 미모를 주목하면서 그녀만의 스모키 메이크업과 풍성한 인조눈썹, 화려한 샹들리에 귀걸이는 선풍적 인기를 끌어 모은다.

 

 

창조적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에게 그를 자극하는 완벽한 뮤즈가 있다는 것도, 피사체로서 그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표현해 주는 감독이 존재하는 것도 모두 드문 일이다. 앤디워홀과 에디 세즈윅처럼 이러한 관계가 서로에게 성립된다면 그는 기적적인 일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워홀과 에디의 환상적인 호흡이 대중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더욱 빠져들게 된다. 에디 세즈윅은 동성애자로 알려졌던 앤디워홀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어머니에게 소개받은 여성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끈끈한 관계도 결국 파국에 이른다. 에디 세즈윅에 대한 앤디워홀의 관심이 다른 데로 옮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에디의 삶은 또 한번 뒤엉킨다. 워홀 예술의 메인 피사체로서의 자리를 박탈당하고 자금주를 빼앗긴 그녀는 당대 음악계를 장악했던 밥 딜런(Bob Dylan)을 비롯한 자신의 친구들의 권유에 힘입어 진정한 자유를 얻고자 Factory를 벗어난다. 하지만 감독의 피사체로서 카메라 속을 휘젓던 그녀는, 카메라를 벗어나자 해방감 대신 길을 잃은 듯한 허망함에 빠지게 된다.

 

에디 세즈윅은 밥 딜런의 연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바로 이 때가 그녀와 밥 딜런이 연인의 관계로 발전한 때다. 혼란 속에서 친구로 알고 지내던 밥 딜런으로부터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삶의 끈은 이미 뭉쳐질 대로 뭉쳐져 풀릴 기미가 없었다. 밥 딜런이 비밀 결혼을 한 사실을 알자 다시 한번 사랑의 관계에 실패하고 절망에 빠지고 만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철저히 외면 받고 배신 당한 에디는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의 구렁텅이에 깊게 처박힌다그녀는 마약 중독자가 되어 사회적 명성과 부를 모두 잃고 처참하게 길 바닥으로 내쳐졌다. 마약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그녀는 재활 센터와 정신병원들을 전전 긍긍하다 1971 7월 한 재활원에서 마이클 포스트(Michael Post)라는 또 다른 마약 중독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드디어 안정을 되찾는 듯 했지만그 해를 채 보내지도 못하고 약물 중독으로 28살이란 젊은 나이에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에디 세즈윅의 생애는 시종일관 요동쳤다. 그리고 아마 그녀의 삶을 뒤흔들었던 것은 그녀 자신이었을 것이다. 매혹적인 아름다움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했던 그녀가 고통 속에서 살아 숨쉬어야 했던 것은 그녀가 아무도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았으며 그 어떤 다른 평범한 이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우리네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 그토록 연약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녀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도 그녀가 아무도 대체할 수 없는 빛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에디는 1971 11, 죽기 바로 전날 산타 바바라에서 열린 한 패션쇼의 파티장에 참석했다. 파티장에서 그녀는 재미삼아 한 점쟁이로부터 손금 점을 보았는데, 점쟁이가 그녀의 손바닥 위에 짧게 그어진 생명선을 보고 놀란 기색을 보였고, 그런 그에게 에디는 괜찮아요. 알고 있어요라는 담담한 말투로 반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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