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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 배다리 벽화마을,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마을

작성일201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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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동인천 배다리는...

현재 배다리의 위치는 인천 동구 금창동,송현동 그리고 창영동 일대로, 이 곳은 19세기말까지 화수동 괭이부리에서 수문통을 걸쳐오는 커다란 개울이 있었고 밀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경인철도가 놓이기 전까지는 이 곳에 배를 대어 놓을 수 있는 다리가 놓여 있어 '배다리' 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복개돼 그 개울이나 다리를 찾아볼 수 없지만 이 곳을 아는 사람들은 1950년대 말까지도 먼 갯내음이 풍겨오고 갈매기도 몇 마리씩 날아들었다고 한다.

(배다리의 명칭은 교각을 세우지 않고 널조각을 이어 놓은 다리이다.)

ⓒJungmin

 

옛날에는 배다리 공터에서 서커스단, 유랑극단, 떠돌이 약장수, 차력사들이 자주 찾아와 그 당시 별다른 구경거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그리고 옛날이곳의 어린아이들은 기차가 지나가기 전 대못을 철길에 올려놓아 기차가 지나가면 납작해진 못을 갈아 장난감 칼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쓸쓸하게 헌책방 골목만 남게 되었는데...

ⓒJungmin

 

그 후...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산업화의 급격한 발전때문에 이 곳에도 산업화도로가 생겨나야 한다는 이유로 어른들의 추억의 장소인 이곳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은 물론 몇몇의 문화단체가 이곳을 지키기위해 나서게 되는데...

 

 

ⓒJungmin

 

그리하여 2007년 무렵부터 퍼포먼스 반지하와 지역주민들의 벽화가 이곳에 하나, 둘씩 그려지게 되어 지금 이곳 배다리에는 많은 벽화가 구석구석 그려져 있어 연인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이 되고있다.

ⓒJungmin

 

벽화들을 따라 이곳 저곳 걷다보면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인 '창영초등학교'를 만날수가 있다. 창영초등학교는 3·1운동 당시 인천 만세운동의 진원지이면서 6·25전쟁 등 역사의 흔적이 교내 곳곳에 남아 있는 학교로 겉모습만 보아도 옛모습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Jungmin

 

일제강점기에 강암과 홍예석으로 만든 근세풍의 양식으로 지어진 창영초등학교는 현재에도 옛날 그 모습 그대로의 그 모습을 지니고 있어, 옛날 이 곳 출신인 영현대기자의 고모님도 종종 모교인 창영초등학교를 찾아와 추억을 곱씹는다고 한다.

ⓒJungmin

 

창영초등학교에 인근에는 어른들이 아직도 추억의 장소인 이곳을 곱씹을수 있는 소품들이 구석구석 남아있다.

ⓒJungmin

 

벽화내용 중에서...

 나는 1930년대부터 이 곳 창영동에서 살았단다. 이 마을에서 다시 나무도 많아지고,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곳도 있으면 참 좋겠구나.

함께 산다는 건 옛날과 지금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함꼐 나누어가는 거란다.

그래서 난 이마을이 좋고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Jungmin

 

 

ⓒJungmin

▲ 퍼포먼스 반지하의 아지트 카페인 "풍경"과 변화하고있는 배다리의 모습들...

 

 

 

 

 

 

 

 

 

 

이곳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기위한 주민들과 주민들을 위해 이곳에 상주하고있는 문화예술단체인 퍼포먼스 반지하는 텃밭을 만들고 오래된 간판을 교체하고, 낡고 오래된 벽들을 새롭게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사람들의 발자취를 이끌게 하고있다. 아직까지도 앞으로도 개발의 위협속에 살고 있지만 시민들과 이곳주민들 그리고 다양한 단체들이 힘을 합쳐... 우리 어른들의 추억의 장소인 이곳을 지금 아이들에게도 영원히 추억의 장소로 남겨줄수 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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