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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울 5대궁 답사기

작성일201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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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서울의 5대 궁이라 하면 하면 어디어디를 지칭할까 K본부의 일요 예능 프로그램 12일 서울역사기행 편에서 잠깐 나왔던 퀴즈이다. 프로그램 출연 연예인들도 쉽게 맞추지 못했던 것처럼, 따로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답은 바로 경복궁, 경희궁, 덕수궁, 창경궁, 그리고 창덕궁.

 

  이러한 궁에 방문해 보면 대부분의 방문자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나 외국인 관광객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우리 젊은 층은 오래전부터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곳들에 무관심하다. 우리가 종로에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대형 어학원을 찾을 때, 친구를 만나러 대학로에 나갈 때 등등 무심히 지나쳐 가던 그 곳들. 도심 한 가운데, 고층빌딩들 사이에서 조선 역사 500년의 자취를 품고 우리 곁에 항상 남아 있는 바로 그 곳들로 함께 떠나보자.

 

 

 

 

 

 

  덕수궁은 크게 두 번, 즉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그리고 일제시대 직전 고종이 사용했던 궁이다. 또한 이 곳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곳이다. 퇴위 이후에 고종은 러시아 건축가에 의해 덕수궁 내에 세워진 정관헌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고, ‘함녕전에서 승하했다.

 

  개화 이후 많은 서구 외교관 및 선교사들이 이 주변에 몰려들어 덕수궁 근처에는 외국인들에 의해 세워진 학교, 교회 등이 아직도 남아있고, 덕수궁 내에는 서양 건축과 전통 양식을 혼합하여 지은 정관헌과, 서양식으로 지은 석조전이 남아있다. 또한 오늘날 덕수궁은 많은 연인들이 산책을 하러 오는 덕수궁 돌담길로도 유명하다.

 

고종이 승하한 함녕전

 

고종이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정관헌

 

정관헌의 내부

 

일제시대때 파괴되어 아직 복구중인 석조전

 

 

1시간에 한 번씩 열려, 시간을 잘 맞춰가면 볼 수 있는 덕수궁 수문장 고대의식

 

 

 

 

 

 

  경복궁이나 창경궁 등 다른 궁들을 먼저 방문한 후 경희궁에 가보면 다른 궁들에 비해 너무나도 작은 면적에 대해 의아해진다. 하지만 본래 경희궁은 면적도 매우 컸고 100채가 넘는 건물에, 그만큼 중요시 되었으며 여러 왕들의 즉위식도 거행되었고, 많은 왕들이 정사를 보았던 곳이다. 광해군 시대에 지어졌으며, 일제 시대에 일본인 학교였던 경성중학교가 이 곳에 설립되었다. 서울 시내의 5대궁 중에서 가장 많이 훼손되어 지금 남은 건물은 세 채에 불과하며, 그에 따른 아픔을 가지고 있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

 

 

경희궁의 편전인 자정전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가장 한국적인 궁으로, 왕의 근엄함이 느껴지는 경복궁과는 다르게 인위적이지 않고, 주변 지형 및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세워졌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모두 불타버린 이후 거의 300여년 간 왕들은 창덕궁을 법궁으로 사용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를 건너면 보이는 진선문에는 비록 제 기능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억울한 백성들을 위한 신문고가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왕비가 생활하던 대조전 옆에 있던 흥복헌’은 경술국치가 결정되었던 비극적인 장소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창덕궁도 일제시대에 수난을 피할 수 없었는데, 그 증거로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 위해 원래 창덕궁과 붙어있던 종묘 사이에 도로를 낸 것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이렇게 자연친화적, 한국적으로 이름난 창덕궁은 또한 왕의 휴식처 역할 및 여러 가지 왕실 행사가 거행되었던 아름다운 후원으로도 유명하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사신 접견 등의 중요한 의식을 행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왕이 행차를 했던 곳으로, 백성들은 다른 문을 이용했다.

 

왕이 대신들과 정사관련 회의를 하고 일상 업무를 보던 선정전 내부

 

낙선재. 소박한 모습을 한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및 사랑채였다.

 

밖에서 본 낙선재

 

 

 

 

 

 

 

 

 

 

 

창경궁은 창덕궁 바로 옆에 자리 잡은 궁으로, 왕실 가족들이 거주하기 좋아했던 창덕궁의 생활공간을 좀 더 넓히기 위해 지어진 궁이다. 따라서 창경궁에 들어가면 창덕궁처럼 자연친화적이며, 좀 더 생활공간으로서 편리하도록 조성되어 있고, 왕실의 위엄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추구하여 지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창경궁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동물과 식물을 들여와 이름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고 일종의 놀이공간처럼 만드는 등의 수난을 겪기도 했었다. 우리가 드라마나 역사소설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도세자이야기 등의 비극도 모두 창경궁을 배경으로 일어난 일들이다.

 

  창경궁 내 연못인 춘당지와 그 근처에 위치한 국내 최초 식물원인 대온실은 매우 아름다우므로 창경궁에 간다면 꼭 보고 가길 추천한다.

 

 

대비의 침전인 경춘전

 

왕과 왕비의 침실 통명전

 

보물 제 386호인 옥천교와, 옥천교를 건너면 나오는 명정문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원 대온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활 쏘던 정자 관덕정

 

아름다운 연못 춘당지

 

 

 

 

 

 

조선왕조 법궁이었던 경복궁에 들어가면 바로 느낄 수 있는 것이 건물들이 딱 틀에 맞춰진 위치에 건설되어있다는 것이다. , 창덕궁이나 창경궁과는 다르게 약간은 경직된 느낌과 함께 왕의 권위와 위엄까지도 느낄 수 있는 궁이 바로 경복궁이다.

 

  경복궁은 1390년대에 세워졌으며 임진왜란으로 다 타버렸고, 흥선대원군이 중건시켰다. 하지만 이 역시 일제시대 때 심하게 훼손되었고, 경복궁 부지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세워지기도 했다. 1990년대에 와서야 총독부 건물 철거와 함께 경복궁은 복원되었고, 2010년도에는 광화문이 복원되었다.

 

  워낙 큰 면적을 자랑하는 궁이라 한 바퀴 도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 중에서도 매우 아름다운 연못인 경회루와 궁 내의 또 다른 궁인 고종과 명성황후의 건청궁은 정문에서 멀지만 꼭 한번 가 보아야 할 곳으로 추천할 만 하다. 건청궁은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된 비극의 장소이기도 하다. 별 관심 없이 궁을 한 바퀴 돌면 눈치 챌 수 없는 디테일함이 경복궁 곳곳에 숨어있는데, 건물 벽에, 지붕에, 기와에 새겨지고 조각된 것들, 그림 하나하나도 다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왕의 침전이었던 강녕전

 

왕비의 침전이었던 교태전

 

'천하의 일을 부지런히 하여 잘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지닌 근정전. 왕권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1876 경복궁 화재 이후 고종이 생활하던 집옥재. 청나라풍의 건물이다.

 

건청궁 입구. 고종과 명성황후 부부가 흥선대원군의 간섭 없이 생활하고 싶은 바램에 궁 안에 지은 또다른 궁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비극적 장소이다. 

 

건청궁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나오는 내부

 

경회루

 

향원정

 

 

 

tip>

그런데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지 않으면 눈치챌 수 없는 경복궁의 몇 가지 진실이 있다고 한다. K본부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짚고 넘어간 이 진실들을 사진을 통해 알아보자.

 

 

# 1. 경복궁의 정문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복궁과 광화문을 따로 놓고 생각하는데, 경복궁의 정문은 바로 이 광화문이다.

 

 

 

# 2. '메롱'하는 조각

 

 

광화문을 지나 매표를 하고 경복궁에 들어가다 보면 다리를 하나 건너게 되는데, 이 다리에는 이렇게 생긴 천록들이 조각되어 있다. 그 중 단 하나의 천록 조각만이 이 사진에서 보이는 것 처럼 근엄한 궁 안에서 혀를 내밀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조각가의 센스이자 유머러스함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 3. 박석

 

 

서울 5대 궁 모두 건물들 앞의 바닥을 보면 벽돌이 이런식으로 깔려있다. 이것을 '박석'이라고 하는데, 비나 눈이 많이 오면 물이 빠져나가기 쉽게 물 길을 만들어 둔 것이다.

 

 

#4. 쇠고리

 

 

박석에 매달려 있는 쇠고리. 과연 이것의 용도는 무엇일까 바로 궁에 사신들이나 귀한 손님이 오면 맞이 행사에 쓸 천막을 치기 위한 것이다.

 

 

#5. 드므

 

 

건물 앞 계단쪽을 잘 살펴보면, 이렇게 생긴 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드므'라고 부르며, 불이 나지 않게 방화수를 담아놓아 화마가 달아나게 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물건이다.

 

 

# 6. 굴뚝

 

 

 

온돌문화인 우리나라는 열을 보존하고 또한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굴뚝이 필요했는데, 바로 위에 보이는 두 장의 사진이 경복궁 내에 있는 굴뚝이다. 위에 있는 굴뚝은 왕의 침실인 강녕전의 굴뚝이고, 아래에 보이는 굴뚝은 왕비의 침실인 교태전 뒤에 있는 왕비를 위한 정원인 아미산 정원에 놓여진 교태전의 굴뚝이다.

 

 

 

경복궁

경희궁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요금(성인기준)

3,000원

무료입장

1,000원

1,000원

3,000원

인근지하철역

경복궁역

서대문역

시청역

혜화역

혜화역

정기 휴관일

매주 화요일

매주 월요일

매주 월요일

매주 월요일

매주 월요일

 

 

조선왕조 500년 동안 있었던 왕족의 생활, 왕의 권위, 조상들의 지혜, 그리고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비참함 등을 엿볼 수 있는 곳, 조선 5대 궁은 항상 우리 곁에 함께하고 있다. 따뜻해지는 봄 날씨 속 한가한 주말 하루 시간을 내어 가족이나 친구와, 혹은 연인과 함께, 한적한 우리 역사의 터전에 들러, 고궁 분위기를 한껏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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