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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어디까지 가봤니? 쉬러즈와 이스파헌

작성일201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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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사진 = 김초아 )  쉬러즈에 있는 코란 게이트. 여행을 떠날 때 이 문을 지나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다고 믿었다

 페르시아 제국을 바탕으로 세워진 이란. 아직도 이란의 도시 곳곳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번영과 쇠락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러한 이란의 아름다운 문화재와 찬란한 페르시아 역사를 가장 잘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쉬러즈이스파한이다. 이 도시들은 이란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도시들로써 많은 역사적 유물들로 인해 볼거리가 풍성하여 도시를 자세히 둘러보기엔 23일도 모자라다. 이란의 보물 쉬러즈이스파한’. 이 두 도시들을 통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란의 아름다운 문화와 찬란한 역사를 느껴보자.

 

 

(사진 = 김초아 ) 버게 에럼 (baghe eram). 지금은 쉬러즈 대학교에서 관리 하고 있으며 왕이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있다.

 이란에 직접 오기 전까지 나에게 이란은 단지 중동 국가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전공으로 이 나라 언어를 배우고 있으니 한번쯤은 가 봐야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 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이란에 갈 기회가 주어졌다. 막상 가려고하니 막막한 게 아니던가! 그래서 이란에 친숙함을 느끼기 위해 먼저 인터넷에서 이란인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이란인 친구가 자신의 나라라며 쉬러즈에 있는 유적지 중 한 곳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 사진 한 장은 그 동안 이란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차가운 내 마음에 불 지피기 충분했다.

 사람을 한 순간에 사로잡은 쉬러즈는 어떤 매력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쉬러즈는 이란인들이 사랑하고 이슬람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두 시인 허페즈와 사디가 태어난 곳이며, 모든 여성들이 사랑하는 장미를 전 세계에 전달한 원산지이다. 이 때문에 쉬러즈는 흔히 꽃과 문학의 도시라고 불린다, 놀랍게도 이 아름다운 도시는 그 역사가 4000년에 이른다고 한다. 이란 역사 중 분열시기였던 1750-1781년은 800년 만에 일어선 순수 폐르시아계 왕조인 잔드 왕조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당시 쉬러즈는 수도로 이용되었는데 당시의 영광을 쉬러즈에 남아 있는 문화재들을 통해 지금도 느낄 수 있다.

 

 

(사진 = 김초아 ) 허페즈 묘. 허페즈의 묘에는 항상 사람들고 가득하다.

   ‘이란 가정에는 두 가지 책이 있다.’ 라는 말이 있다. 두 가지 책은 무엇일까 하나는 코란이고 다른 하나는 허페즈의 시집이다. 이 말은 이슬람을 믿으며 시를 사랑하는 이란인들의 모습을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 허페즈는 시인이다. 이란에서 시인은 다른 위인들 보다 더 존경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허페즈는 이란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다. 서정적인 연애시를 주로 썼던 허페즈는 은유적인 표현 즐겨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좀처럼 한 번에 이해하기가 어려워 2-3번을 읽어야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 의미가 짙어지는 매력을 지녔다.

(1) 허페즈의 묘에 들어서면 보이는 정원  (2) 허페즈의 관 주변에 모인 사람들

 

 이란인들의 허페즈 사랑은 쉬러즈에 위치한 그의 묘에서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허페즈의 묘에 갔을 때 처음 떠올랐던 생각은 사람이 정말 많다정말 아름답다.’였다. 묘라고 하면 흔히 흙으로 만든 무덤과 잔디가 깔린 장면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묘와는 달리 허페즈의 묘는 정말 아름답다. 입구에 들어서면 예쁜 꽃들과 푸른 나무로 만들어진 정원이 나오고 그 뒤로는 하얀 돌로 만들어진 석조물이 보인다. 마치 비밀의 정원에 온 느낌이랄까 이 석조물을 지나면 진짜 허페즈의 묘가 나온다. 허페즈의 묘는 묘라고 하기엔 정말 잘 만들어진 마치 신전 같기도 한 아기자기한 건축물이다. 365일 이 곳은 허페즈의 숨결을 느끼려고 온 수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허페즈의 관 주변에는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그 중 일부는 허페즈의 관에 손을 올리며 허페즈의 시를 읊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은 허페즈의 시를 읊으면서 감정에 복받쳐 때론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쉬러즈에 위치한 다른 시인의 묘인 사디의 묘와 달리 아기자기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허페즈의 묘와 허페즈의 관 주변에 모인 이란사람들의 모습은 허페즈에 대한 이란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사진 = 김초아 ) 페르세폴리스 전경

  이란사람들이 말하길 이란에 와서 쉬러즈를 보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이란을 오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한다. 무엇이 이처럼 이란사람들에게 쉬러즈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일까 바로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이다.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인 들의 수도라는 뜻으로 당시에는 파르사라고 불렸는데 그리스인들에 의해 지금의 페르세폴리스로 불리게 되었다. 페르세폴리스는 잠시드의 왕좌라는 뜻의 이란어로 이란에서는 타크테 잠시드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페르세폴리스는 이름의 뜻과 다르게 페르시아의 수도가 아니었다. 페르시아 시대의 수도는 파르스 지방의 수사였지만, 페르시아를 처음 건국한 아케메니아 왕조의 다리우스1세는 만국을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쉬러즈에서 북쪽으로 60km떨어진 곳에 페르세폴리스를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 페르세폴리스는 그의 손자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까지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150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완성된 페르세폴리스는 당시의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페르시아 왕들은 페르세폴리스 궁전을 건축하고 가꿔나가면서 왕권을 강화시켰다. 끝날 것 같지 않은 페르시아의 영광은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정복 때 끝이 났다. 페르시아의 놀라운 문화와 번영을 본 알렉산더는 위기감을 느끼고 모든 문화재를 약탈하고 페르세폴리스를 모두 태워 버렸다. 그 이후 페르시아의 영광은 흙과 먼지로 뒤덮여지는 것 같았지만, 1930년에 이르러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고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진 = 김초아 ) 다리우스 1세 궁전의 군인 부조  

 

 이 찬란한 역사를 가진 페르세폴리스에 처음 갔을 때 첫 느낌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뜨겁다 이었다. 나무 하나 없는 허 벌판에 위치한 페르세폴리스에는 이란의 강한 햇빛과 햇빛이 만들어낸 무더위를 식힐만한 그늘이 없었다. 그늘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 2시간을 돌아 다녀야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입구에 놓인 거대한 계단을 지나 처음 만국의 문을 보는 순간 페르세폴리스의 웅장함에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면서 더위를 참고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임을 느꼈다. 페르세폴리스에는 왕들의 궁전들과 보물창고 그리고 왕들의 무덤이 있다. 하지만 알렉산더 왕의 질투로 인해 모두 불타버린 페르세폴리스는 그 터와 주축 돌만이 그 당시에 이 곳이 어떤 곳 이였는지 말해주고 있다. 멀리서 페르세폴리스를 한 눈에 보면 유서 깊은 이 곳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돌덩이들 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기 싶다. 하지만 이 돌덩이들을 가까이서 보면 이란을 소개하는 책자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한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각 시대의 왕의 생활 모습이다. 궁전의 벽면에는 당시 왕의 모습과 신하들의 모습이 곳곳에 조각되어 있다. 이것들을 보고 있으면 섬세하게 한 땀 한 땀 조각했을 당시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이 큰 돌들을 어떻게 이 곳에 옮겨 왔는지 와 같은 호기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거대한 유적지를 보고나니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란사람들이 자국에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리고 왜 쉬러즈를 이란사람들이 사랑하는지를.

 

 (1) 이스파헌의 유명한 장식품  (2) 직접 그릇을 만들어내는 장인

 

 이란 사람들에게 이란을 여행하고 싶다고 하면 10명중 9명은 제일 먼저 이스파한에 가보라고 말한다. 이란사람들은 연휴만 되면 각 도시로 여행을 간다. 여행 시 주로 버스를 이용하는 이란에서 연휴에 버스표를 가장 구하기 어려운 도시가 이스파한이다. 우연한 기회로 갔었던 이스파한. 이스파한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스파한은 내가 이란에서 가장 사랑하는 도시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도시들에도 물론 멋진 문화유산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스파한에 남겨진 문화재들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도시 가운데에 흐르는 강과 그 주변에 꾸며진 푸른 공원들은 잠시나마 그 곳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왜 이스파한에는 멋진 문화재들이 많이 남겨지게 된걸까  이스파한은  이란의 왕조 중 16세기 사파비 왕조때 수도였다. 사파비 왕조는 다른 왕조들과 달리 카펫, 타일장식 등 가장 페르시아를 잘 느낄 수 있는 유적들을 많이 남겼는데 이때 이스파한은 세상의 반이라고 불릴 만큼 문화 중흥기를 누렸다.

 

(사진 = 김초아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로 뽑히는 이맘 모스크 

 이스파한의 중심광장인 이맘광장. 이맘광장은 이스파한을 대표하는 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행사와 페르시아 시대에 생긴 폴로 경기를 하기위해서 만들어진 이맘광장은 그 크기에 처음 놀라고 아름다운 푸른 타일들이 만들어낸 이맘광장의 우아한 모습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이맘광장에는 3개의 건축물이 있는데 이맘 광장 남쪽에 위치한 이맘 모스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로 뽑히는 걸작이다. 이란 곳곳에서 푸른 타일로 만든 모스크를 흔히 볼 수 있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운 모스크는 찾아 볼 수 없다. 동쪽에는 세이크 로폴라 모스크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모스크는 주로 왕족들이 사용하던 곳으로 다른 모스크들과는 달리 옅은 황금색을 띄고 있다. 노을 지면서 점점 진해지는 황금색은 이맘광장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이 모스크는 이맘 모스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이스파헌에서 가장 정교한 모스크라고 평가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쪽에는 알리 카푸 궁전이 있다. 보기와 다르게 이 궁전은 6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충부터는 왕족들이 사적으로 이용했다. 이맘광장에 있는 이슬람식 모스크들은 다른 어떤 이란의 문화재들 보다 이란 문화의 정교함과 화려함을 느끼게 충분하다.

(사진 = 김초아) 씨오쎄 다리 낮의 모습

 

 이스파한을 가로지는 저 얀데 강은 사막에 둘러싸인 이스파한에 단비같은 존재이다. 저 얀데 강 주변은 푸른 녹지들이 무성하고 강 위에는 아름다운 다리들이 놓여있다. 그 중에서 가장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씨오쎄 다리이다. 씨오쎄 다리는 아치가 33개인데 여기서 착안하여 다리이름 또한 이란어로 33인 씨오쎄를 이용, 씨오쎄 다리라고 짓게 되었다. 강의 가장 넓은 부분에 위치한 씨오쎄 다리는 그 주변에 있는 공원들이 그 가치를 더한다. 씨오쎄 다리는 주말만 되면 가족들과 야외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 좋아하는 이란사람들로 가득 찬다 . 이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 또한 여유로워지는 느낌이다. 한없이 너그럽고 포근할 것만 같은 씨오쎄 다리는 밤이 되면 여기에 우아함이 더해진다. 밤의 씨오쎄 다리는 말로 형용하기 힘들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뽑낸다.

 

 쉬러즈에서는 이란의 문학과 역사를 그리고 이스파헌에선 이란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과 한 여름이 가지고 온 무더위로 이란의 유명한 도시들을 다 돌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동안 각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그동안 내가 이란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어두운 이미지들은 점차 사라지고 오히려 지금은 이란이 문화적으로 아름다운 나라로 기억되고 있다혼자만 보기 아까운 이스파한과 쉬러즈의 문화재들. 언젠간 많은 한국사람들이 이란에서 와서 이 문화재들을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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