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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를 치기 위해 영남의 인재들이 걸었던 영남대로, 문경새재.

작성일2012.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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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부산에서 한양까지 가장 빨랐던 길인 영남대로 위의 고개 문경새재, 그 길을 걷다.

 조선시대 과거를 치기 위해 부산에서 한양까지 걷는 가장 빠른 길이 바로 영남대로이다. 영남대로는 약 960리, 실거리로 약 340km정도라고 한다. 부산에서 대구, 문경새재, 충주, 용인을 지나 서울로 이어진다. 영남대로는 단 하루를 위해 수년간의 준비 끝에 올라가는 14일간의 무한도전의 길이다. 이는 마치 21C에 수능을 치는 고3과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심히 공감을 줄 수 있는 길이다. 영남대로에는 좌, 우로 영남좌로와 영남우로가 있다. 영남좌로는 약 15일, 영남우로는 약 16일이 걸린다고 한다.

 부산에서 한양까지 과거를 치러 가는 길에는 고개가 3개가 있다. 추풍령, 죽도령, 문경새재이다. 추풍령을 거처 과거를 치러 간다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해서 걷지 않았고, 죽도령을 지나가면 죽죽 떨어진다고 해서 걷지 않고, 문경새재를 거쳐서 갔다고 한다.

 왜 영남대로에 문경새재를 걷냐고 묻는다면 영남대로를 걷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영남지역의 인재이기 때문이다. 21C를 살아가는 대학생이자 영남의 인재가 되기 위한 바람으로 이 길을 걸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경새재는 그 영남대로의 가장 중요한 길목이기 때문이다.

 

 영남대로의 중요한 길목인 문경새재, 그곳에 성곽이 세워진 이유.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부산에서 한양까지 올라갈 때, 가장 중요한 길목인 문경새재에 아무런 방어가 되어 있지 않아 왜군이 파죽지세로 한양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문경새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성곽을 3중으로 쌓았다고 한다. 하지만 성곽을 쌓고 난 이후에 왜군의 침략은 없었다고 한다.

 

 제 3과문 조령관에서 제 2관문인 조곡관까지..

 

 

 시대를 거슬러 걸었던 길처럼, 그 마음을 잇기 위해 제 3관문부터 제 1관문까지 걸어서 내려갔다. 문경새재의 제 3관문이자 마지막 관문인 조령관에 차로 이동을 하였다. 지나가는 길마다 우거진 숲 그리고 자동차가 들어서기에는 조금 비좁을 길을 종종 걸음으로 올라갔다.

 제 3관문인 조령관에 도착하였다. 웅장한 성문을 좌우로 감싸고 있는 성곽은 어느 적들도 들여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성문 앞의 드넓은 초원은 축구장을 두 개 연결해 놓은 듯 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10m도 훨씬 넘는 나무들이 종종 보였다. 이곳은 500년의 역사를 가졌다기에 의심할 바가 없어 보였다.

 

 

 조령관을 시작으로 제 2관문인 조곡관으로 내려갔다. 우거진 숲으로 길이 나있는 곳을 따라 걸어 가다보니 “금의환향”이라는 글이 쓰여 있는 길이 팻말이 보였다. 가이드분에게 간단한 질문을 하니, 이 길은 과거를 급제한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올 때 걸었던 길이다. 이 길을 걸으면 마치 내가 과거를 합격한 듯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나무 사이로 흘러내리는 따스한 햇볕을 따라 걷는 도중, 종종 인위적으로 소나무의 껍질을 낸 자국들이 보였다. 아래로 칼을 내리친 모양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소나무는 ‘상처 난 소나무’로 불리고 'V'모양의 상처로 일제말기(1943~1945)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 에너지원인 연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송진을 채취한 자국으로서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일제감정기 때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해주었다.

 

 

 시간이 정오를 넘어가고 점점 날씨가 더워질 무렵, 고개를 돌리니 개울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공기 좋은 문경새재를 걸으며 ‘이 개울물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흐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지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문경초점’이라고 바위에 쓰인 글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밑에 낙동강 발원지라고 쓰여 있었다. 이곳이 바로 경북에서 부산까지 흘러 바다로 빠지는 경남지역의 식수원인 낙동강의 시작점인 것이다. 뒤에는 낙동강이 세종실록지리지에 쓰인 이야기와 그 의의에 대해서 글로서 표현해 놓았다.

 

 

이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걷다보니 어느새 제 2관문인 조곡관에 도착하였다. 기분 탓일까 조곡관은 조령관보다 조금 낮은 듯 해 보였다. 조곡관은 제 1관부터 등산하기에 적당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과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었다. 이 관문은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문경 조령의 중간에 위치한 제 2관문으로 삼국시대에 축성되었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

 

 제 2관문 조곡관에서 제 1관문 조흘관까지..

 

 

 제 2관문에서 제 1관문인 조흘관까지 걸어가는 길, 한 쪽에는 약 5m정도 되는 높이의 절벽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래로는 떨어진 물은 소가 들어가서 뛰어 놀만한 물웅덩이가 만들어 져있었다. 이 폭포의 이름은 응암(매바우)폭포이다. 시민들이 발을 담굴 수 있도록 바위로 계단을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폭포 사진이 전체적으로 잘 나올 수 있는 거리에 사진 촬영대를 설치해 뒀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많이 몰리는 관광지가 될 수 있었다.

 

 

 계속해서 길을 걷다보며 웬 비석에 언뜻 ‘산불조심’이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가서 자세히 보니 바위 가운데 ‘산불됴심’이라는 글이 붉은 색으로 쓰여 있었다. 표석에 설치연대는 확실치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조선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비석은 원추형 화강암 자연석에 음각된 순수 한글비석이라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산불에 대한 경계는 중요했던 것 같다. 이 비석은 국내 유일의 순수한글 비석이기에 그 가치가 더 크다.

 

 

 산불 비석을 거쳐 오래 지나지 않아 자그마한 돌들이 쌓여 있는 탑들을 여러 개를 보게 되었다. 이 돌탑들은 소원성취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돌맹이를 쌓고 간 흔적들이 모여 탑을 이루게 되었다. 조선시대 지나는 길손들이 이 길을 지나면서 선비들은 장원급제를 하고, 몸이 아픈 사람은 쾌차하고, 상인들은 장사가 잘되며, 아들을 못 낳는 여인은 옥동자를 낳을 수 있도록 소원을 빌고 지나갔다고 한다.

 

 

 조금 더 나아가 문경새재의 유명한 문화재 중 하나인 교귀정이 나왔다. 교귀정은 약 5m의 높이의 주위보다 높은 돌로 쌓인 언덕에 존재하였다. 교귀정은 조선시대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구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수인계 하던 교인처이다. 1896년 의병전쟁 때 화재로 소실이 되었다가 1999년에 다시 복원을 하게 되고 매년 이곳에서 재현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그리고 교귀정과 함께 500년을 함께해 온 소나무가 있었다. 이 소나무는 길손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남쪽으로 향해 있으며, 마치 여인이 춤을 추는 듯 하여 새재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제 2관문에서 제 1관문으로 가는 길의 막바지에 들어서자 곧 KBS촬영장이 나왔다. 그곳에선 사극을 촬영을 위한 촬영지를 따로 두었다. 촬영장에 직접 들어가서 보지는 못했지만 복장으로 봐선 백제와 신라라 전쟁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듯 했다. 많은 장비와 촬영을 위해 대기하는 배우들과 말 등 시민들이 촬영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기에 더 많은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문경새재를 찾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문경새재의 제 1관문인 주흘관에 도착하자, 주위에 다양한 볼거리들이 존재하였다. 경북의 100주년의 기억을 보여주는 타임캡슐광장, 백두대간의 중심인 문경시가 백두대간 천년비젼선포를 기념하는 비석 등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경북과 문경새재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성곽은 적으로부터 모든 것을 지켜줄 수 있는 듯 보였다.

 

 

 잊혀 가는 기억의 끝자락에서.. 다시 문경새재를 생각하다.

 사람들에게 좋은 추억과 나쁜 기억은 언젠간 잊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시대의 기억 속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우리의 좋았던 그리고 나빴던 역사도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 그런 마음이 섭섭해서 일까. 수백 년의 기억이 흘러간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가 버린 길. 수많은 길손들이 지나가면서 삶의 희노애락을 노래하던 길. 너무나 많은 역사가 녹아 있어 소중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길. 하지만 이제는 점점 잊혀져가는 길인 영남대로의 문경새재. 슬며시 눈을 감으며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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