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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맞이하여 -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작성일201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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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우리 조국이 광복을 맞게 된지 어느덧 67년이 지났다. 흐른 시간만큼 세대는 바뀌고 세상은 변했다. 선조들이 피땀 흘려 쟁취한 자유와 주권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고, ‘민족혼’은 국경일에만 끄집어내는 먼지 쌓인 태극기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잃어버렸던 민족의 빛을 다시 찾은 1945년 8월 15일을 기념하는 광복절. 그저 흘러가는 빨간날로 치부하기에 지워지지 않을 우리 민족이 흘린 붉은 피가 아직도 도시 곳곳에 짙게 남아있다. 그 흔적들을 되짚어보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기억해야 할 것들을 마음에 담기 위해 필기구와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다. 

 

8. 13.

 

조선의 법궁 '경복궁'

 


▲ 경술국치 후 근정전에 내걸린 일장기

 

 평일이었지만 경복궁은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거행하던 근정전 앞 뜰은 각종 언어가 섞이며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냈는데, 그 사이로 들리는 일본어 소리에 더욱 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건청궁에서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되었다.(사진 : 박지용)

 

 인파를 피해 향원정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전부터 종종 머리가 복잡할 때면 향원지(연못) 곁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곤 했는데 오늘은 마음이 더욱 무거워짐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건청궁이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궁궐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건청궁은 고종이 사비를 들여 지은 정치적 자립의 상징이자 자신과 명성황후를 위한 보금자리였다. 근심과 불안에 쌓여 답답할 때면 그녀도 향원지를 보며 마음의 안정을 구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짐승만도 못한 일본 낭인들이 자신을 살해하기 위해 들이닥칠 것이란 사실은 꿈에도 상상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녕 인간이라면 저지를 수 없는 처참한 만행이었다.


나를 죽이면 조선의 혈기가 하늘 높이 치솟을 것이야.
내가 구차하게 몸을 피하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이 나라의 군주이신 전하와 내 백성들이 나를 잊지 않을 것이니
오늘 내가 이 자리서 흘린 피가 두고 두고 마르지 않을 것이야
이 놈들 내얼굴을 똑똑히 봐두어라 내가 조선의 국모니라
오늘은 내 나라가 힘이 없고 약해서 네 놈들에게 이런 수모를 당한다만
언젠가는 반드시 부국강병을 이뤄서 오늘 진 빚을 갚아줄 것이다.
내가 너희들의 만행을 다 내 눈 속에서 담아서 갈 것이니
 내 백성이 어찌 오늘의 일을 잊겠느냐

-드라마 명성황후 中-

 

 

3.1 운동의 함성이 남아있는  탑골공원

 

 ▲ 삼일문과 3.1운동 기념비 (사진 : 박지용)

 

 평소 탑골공원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의 벽을 살짝 넘어서면 삼일문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공원 내에는 3.1 운동 당시 민족의 목소리가 퍼지던 팔각정을 중심으로 3.1 운동 기념탑, 벽화, 손병희 선생 동상, 한용운 선생 기념비와 원각사지 10층 석탑 등 문화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니 독립을 향한 민족의 뜨거운 열망이 느껴졌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선조들이 목청껏 자유와 진리를 외쳐 얻어낸 투쟁의 산물임을 알 수 있었다. 일제의 총칼도 우리의 민족혼을 꺼트릴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국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만방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로써 자손 만대에 일러 민족이 스스로 생존하는 바른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선명함이며, 민족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 양심의 발로에 기인한 세계 개조의 큰 기운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를 제기함이니, 이는 하늘의 밝은 명령이며, 시대의 큰 흐름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갈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라,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지니라."

-독립선언서 中-


8.14.

 

민족의 아픔이 서린 서대문 형무소.


 

 ▲ 민족의 상처가 아직 곳곳에 남아 있다. (사진 : 박지용)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우리 민족 고통을 그대로 품고 있는 장소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들이, 독재정권기에는 민주화 열사들이 붉은 담장 안에서 무참히 짓밟혔다.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 못 이겨 내질렀을 한 서린 육성과 붉은 피가 서려 있는 장소에 섰다. 분노, 통한,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뒤엉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조국을 위한 그들의 고결한 희생을 사형장 앞 미루나무는 기억하고 있을까. 형무소의 붉은 벽돌은 기억하고 있을까. 당신은 기억하고 있는가.

 

절명시

1920. 11. 29.  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강우규 의사가 순국 직전에 남긴 유시.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斷頭臺上)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猶在春風)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有身無國)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豈無感想)

 


 한 일본인 관광객이 어두운 표정으로 사형장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연민의 감정, 올바른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사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모습에 얼어있던 마음 한 켠이 녹아 내리며 희망의 빛을 보았다. 명백한 사실에 대한 인정과 진심 어린 반성이 이어진다면 한, 일 국민간 진정한 화합도 꿈은 아닐 것이다. 


8. 15.

 

광복절


 오전 8시, 빗소리에 눈을 뜨고 크게 한 숨 들이마신 공기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오늘이 광복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침대에 누워 생각하길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더 나아가 민족에게 다가 올 미래를 우리의 의지대로 행복하게 그릴 수 있다는 것에 나라를 지켜내신 선조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듯, 항상 민족혼을 가지고 깨어있는 것이 누군가 그토록 바라던 ‘그 날’을 살아가는 청년 세대로서의 임무일 것이다.

 

그 날이 오면 - 심 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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