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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만 멀지않은 에티오피아 이야기

작성일201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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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우리는 에티오피아라는 나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커피에 대해 관심 있는 당신이라면 예가체프 커피를 떠올릴 테고, 혹은 스포츠에 일가견이 있는 당신이라면 마라톤을 떠올릴 것이다. 올림픽에서 최초로 풀코스는 맨발로 뛴 마라토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금시초문이라면 어쩔 수 없고. 역시,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 어느 한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말곤 딱히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 없다. 이렇게 먼나라 같지만 너무나도 가까웠던 에티오피아, 그 이유를 지금 당장 알려드리겠다. 지상최대의 쇼, 아프리카 글쎄. 지금부터 에티오피아 in 아프리카에 대해 알아보자.

 

 

 

 

 

나라를 알기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에티오피아의 시작은 기원전 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하고 있을 때, 이웃나라에서 이름도 특이한 ‘시바여왕’이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오게 되고,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바로 에티오피아의 초대황제 메넬리크 황제라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기자가 직접 만났던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다들 키도 크고, 준수하고 예쁜 용모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역사 속 시바여왕은 당대 최고의 미녀였다고 전해지고 있고 또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AIDA’의 주인공인 아이다 역시 에티오피아 공주 역으로 나온다. ‘청아한 아이다’라는 곡을 들어본다면 아이다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남자주인공의 진심어린 고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대륙의 뿔이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지부티와 소말리아, 남쪽은 케냐, 서쪽은 수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에티오피아는 바다를 볼 수 없는 내륙 국가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가 내륙국가가 된 역사적인 배경이 있으니, 조금 뒤 설명하겠다. 에티오피아의 수도는 아디스아바바로 '새로운 꽃'이라는 뜻이다.

 

 

 

아프리카라고 하면 뜨거운 날씨만 생각하지만, 에티오피아만큼은 그렇지 않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평균기온이 16℃인 이 곳은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더운 공기보다는 선선하고 건조한 공기에 놀라게 된다. 물론 저지대는 덥고 강수량이 적어 사막을 이루고 있다. 에티오피아 역시 계절이 2가지로 나뉘는 데,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진다. 비가 온 아침에는 바람막이를 착용할 정도로 추운 날씨였던 적도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만든 말과 글자를 사용하고 있는 데, 바로 '암하릭어' 이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럽열강들의 침략을 받아 강제로 국경이 그어지고, 알파벳을 사용해 그들의 소리를 적어 사용하고 있다. 혹은 아랍권국가들의 영향을 받아 아랍어를 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만큼은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글로 남겨 보존하고 있으며, 이것이 시바여왕의 후손인 그들의 또 하나의 자존심이다.

 

 

 

에티오피아의 주식은 ‘테프’라는 에티오피아 고유의 곡물로 만든 인제라injera이다. 인제라는 부침개처럼 넓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먹을 때는 손으로 인제라를 찢어서 소스를 찍어먹거나 스파게티, 고기 등을 싸서 먹는다. 인제라는 테프에 효소를 넣어 만들기 때문에 시큼한 맛이 난다.

 

 

 

 

아프리카인들의 종교가 밤에 둘러앉아 불 피우고 창을 들고 춤추는 원시신앙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에티오피아인들의 종교인의 많은 수가 에티오피아정교인 기독교이다. 그래서인지 에티오피아에는 교회를 많이 볼 수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났던 유대인들은 대부분 중동이나 유럽에 정착했지만 일부는 인도, 일부는 아프리카로 떠나왔단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흑인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에티오피아 유대인 팔라샤족이다. 그 외에 에티오피아에는 유대교와 비슷한 비율의 이슬람교, 개신교 토착종교가 있다. 도시에서 지내다보면 매시마다 종을 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데, 이슬람교도들의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종소리이다.

 

 

 

에티오피아는 우리와 지구반대편에 있는 나라이다. 시차는 6시간. 한국은 8월 15일 오후 1시라면 같은 시간 에티오피아는 같은 날 오전 7시가 되는 셈이다. 재미있는 점이 있는 데, 에티오피아의 시간을 우리와 다르게 간다. 에티오피아는 아직도 2004년에 머물고 있다. 그 이유는 에티오피아가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13월까지 있는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고 있는 우리보다 7년 8개월이 늦어, 우리의 2000년 밀레니엄은 이들에게 1992년을 지나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커피가 발견된 곳, 그 역사적인 곳이 바로 이 에티오피아의 카파지역이다. 그래서 이름도 카파의 이름을 딴 ‘커피’가 되었다. 아프리카에서 최대생산량을 자랑하며 아라비카 커피의 원산지로 ‘커피의 고향’이라고도 불린다. 선선하고 습기가 낮은 고원지대의 기후는 커피가 자라기에 안성맞춤의 환경이기 때문에 에티오피아 커피의 맛과 향은 유명할 수밖에 없다. 고급커피로 분류되는 예가체프 커피 또한 에티오피아의 이르가체페 지방의 적토에서 자라는 커피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단순히 커피를 생산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커피 세레머니. 사람들을 초대하거나, 손님이 찾아왔을 때 함께 둘러앉아 생두를 화롯불에 볶고 조그마한 절구에 빻아 주전자같은 항아리에 넣고 끓여내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친목을 다지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묻어나는 여유와 그 커피 맛은 맛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다.

 

 

 

 

 

얼마 전에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역대 올림픽 출전 중 가장 높은 순위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에티오피아의 스포츠 이야기는 어떨까 이번 올림픽을 관심 있게 봤다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에티오피아가 스포츠로 세계적인 조명을 받은 첫 사건은 바로 ‘맨발의 왕자, 비킬라 아베베’이었다. 그는 황제의 친위대 하사관으로 17회 로마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맨발로 달려 우승하면서 ‘맨발의 왕자’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그 후 18회 도쿄올림픽에서도 세계신기록(2시간 12분 11초 2)을 갱신하며 올림픽 사상 최초로 2연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마라톤계의 새로운 별이 다시 태어났다. 에티오피아의 티키 겔라나 선수이다. 그녀는 2시간 23분 7초라는 기록을 세우며 올림픽마라톤신기록을 다시 썼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마라톤종목에 강세를 나타내는 이유는 평지보다 부족한 양의 산소가 있는 환경인 고원지대에서 훈련을 받기 때문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수많은 국가의 청년들이 이 땅위에서 희생의 피를 흘렸다. 그 중엔 검은 용병들도 있었으니, 바로 아프리카대륙에서 20일 넘게 배를 타고 온 1,185명의 에티오피아 칵뉴부대원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강원도에서 복무하였는데, 생애 처음으로 만나는 한국의 강추위를 온몸으로 견디며 종전협정까지 235회의 전투를 벌였다.
이들은 용맹하기로 유명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단 한명의 포로도 없었는데, 아마도 그건 그들이 황제를 호위하던 황제의 근위병들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에티오피아의 셀라시에 황제는 한국전쟁의 소식을 듣고 이탈리아와의 전쟁을 떠올리며 파병을 결심하고 1951년 4월 철저하게 훈련시킨 근위병들을 파병하게 되는 데, 이 파병군들은 교육수준이 매우 높고 영어에도 능통한 귀족출신들이었다. 이들이 지금은 여러 곳에서 불안정한 환경속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데, 아디스아바바의 참전기념관을 방문하여 만났던 노병은 전생으로 잃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세계 속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은 참전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위해 경기도 동두천에 ‘보화고아원’을 설립하여 아이들을 돌보는 따뜻한 정을 나누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침략의 역사, 식민지배의 역사 그리고 분단의 역사를 겪으며 격동의 시기를 지내온 나라이다. 그런데 지구반대편에서도 비슷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1896년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지만 용감하게 싸워 자국을 지켰다. 그 후 40년 후인 1935년 이탈리아의 재침공이 시작되고 1년간의 전쟁을 끝으로 6년간의 식민지배를 겪게 된다. 황제의 한국전쟁 파병 결심도 바로 식민지배 아래에서 자유를 잃은 민족의 슬픔 속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또한 에티오피아는 우리와는 조금 다르지만 국가가 나누어진 부분도 비슷하다. 에리트리아는 미국과 영국의 점령아래 있다가 에티오피아로 강제합병되었다. 그 후 30년간의 독립을 위한 내전이 일어났고, 결국 1993년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에리트리아와 한 국가였을때는 바다를 이용한 무역활동도 있었지만, 국가가 분리되며 긴장관계가 고조되면서 에티오피아는 내륙국가로 수문이 닫히게 된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한국과 인연이 깊었던 에티오피아. 그들은 우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보다 에티오피아 학생들은 한국의 K-POP과 태권도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화장실이 없어 건축봉사를 위해 방문했던 조그마한 도시의 초등학교 한 켠에 마련된 태권도 클래스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또 한국에서 온 학생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어느 한 여학생은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가수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우리들의 이메일주소까지 적어갔다. 또 교류를 통해 방문했던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KBS월드를 통해 드라마를 즐겨본다며 배우 ‘이민호’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또한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영웅인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 선수는 에티오피아에서 현대차를 팔고 있다. 10년에 100대, 11년에는 200대의 현대차를 판매한 그는 한 언론을 통해 "현대차와 한국처럼 열심히 일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에티오피아에 대해 알아보았다. 처음 ‘에티오피아’라는 미지의 땅을 상상했을 때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단적으로 수치만 따지자면, 에티오피아는 IMF에서 발표한 10년도 PPP기준 1인당 GDP가 1,016달러로 170등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GDP는 29,836으로 약 30배 더 높은 수치다. 우리가 그 나라를 판단하는 근거로 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치이다. 세계 몇 위를 하고 몇 등을 하는 지 말이다. 방금 GDP수치를 보고 에티오피아의 모습이 상상이 됐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나 또한 봉사활동을 위해 찾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통사고 사망률, 자살률 등등 좋지 않은 항목으로 상위권을 달리는 우리나라를 보자면, 수치로만 그 나라를 따지기엔 많은 어폐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다녀온 에티오피아는 시원한 날씨와 낯선 이들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나라였다. 이 기사를 통해 세계를 보는 눈이 조금은 더 넓어지고 세계를 품을 그 넓은 가슴이 한 뼘 더 자랐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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