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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kg의 황금으로 만들어진 돔?! 상트페테르부르크 이삭성당을 가다!

작성일201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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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북쪽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해질녘의 네바강변은 물의 반짝임과 노을로 환상적인 경관을 자랑한다. 아름다움을 한층 더 높여 주는 데에는 네바강변에 위치한 건물들이 한 몫을 하고 있으며 그중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이삭성당이 있다. 멀리서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황금빛을 띄는 돔은 노을과 만나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당이자 러시아 변화의 시간을 함께한 이삭성당. 지금부터 속속들이 소개해보겠다!

 

 

 

성 이삭과 표트르 대제를 기념하는 이삭성당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미술이 전성기를 맞았을 시절 건축의 수준도 절정에 올랐다. 1818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858년에야 완공된 이삭성당은 공사기간 40년, 동원된 사람만 50만여 명에 다다른다. 성 이삭의 날인 5월 30일에 태어난 표트르 대제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성당으로 현 상트뻬쩨르부르크의 상징인 청동기마상 맞은편에 위치해 있으며, 총 14,0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성당 꼭대기 황금 돔을 만드는 데에는 100kg 이상의 황금이 들어갔으며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의 장식에도 엄청난 양의 금이 사용되었다. 이삭성당의 황금 돔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황금 돔으로 내부의 철골 구조의 우수성으로 인해 불필요한 소리 울림이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성당을 짓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기초공사를 위해 기둥만 2만 4천개를 박아야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계획도시로 건설 전에는 늪지대에 불과하여 지반이 단단하지 않아 건물을 세우기가 힘들었고 이 어려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 직원 분을 통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현대자동차 공장 또한 지어지기 전 지반이 불안정하여 많은 양의 파이프를 박아 기반을 잡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이삭 성당은 1818년 몽페란드가 설계하고 40년이 지난 뒤에 완공되었다.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에 못지 않은 예술계의 후원자였던 알렉산드르 Ⅰ세와 니콜라이 Ⅰ세는 특히 건축 후원자들이었다. 그들의 시기에 미술과 건축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는데 모든 건물들이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졌으며 '황제 스타일'의 건축풍이 자리 잡는다. 이삭성당은 알렉산드르 Ⅰ세 때 시작되어 알렉산드르 Ⅱ세 때 완성된 석조 건물이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 시키는 이삭성당의 외관!

 

 이삭성당의 외관은 대리석과 황금 돔, 청동상까지 재작 당시 쓰일 수 있던 고급스러운 재료들은 모두 다 있으며 생김새 또한 독특하고 아름답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붉은 대리석 기둥들이 엄숙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잡고 황금 돔은 러시아에 위치한 그 어떤 성당과도 다른 매력을 만들어 준다.

 

 성당의 모양은 언뜻 보면 정사각형 같지만 동서남북의 문들이 앞으로 나와 마치 길이가 같은 십자가 모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이삭 성당의 내부 계획도

 

 이삭성당은 네 개의 방향, 즉 사방에 문을 가지고 있다. 붉은 대리석이 새워진 현관위에는 성경의 장면들로 이루어진 조각과 예수님의 제자로 알려진 12 제자의 동상이 모서리와 꼭대기에 위치한다.

 

 

-북쪽:

 

 

              ▲ <그리스도의 부활>

 

 

            

▲ 왼쪽부터 차례로

베드로 -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받았다고 전해져 항상 손에 열쇠를 든 모습

바오로 - 복음을 전파하다 잡히는데 당시 로마시민이었기 때문에 칼로 참수 당한다. 예술작품 속에서 항상 칼을 찬 모습으로 등장한다.

요한 - 항상 미소년으로 표현되며 수염이 없는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독수리와 함께 나오는 예술작품이 많다.

 

 

-남쪽:

 

 

          ▲ <신비에 대한 찬양>

                    

 

▲ 왼쪽부터 차례로

안드레아 - 안드레아 또한 설교를 하다 순교를 하는데 예수님과 같은 십자가에 매달릴 수 없다하여 길이가 같은 십자가에 매달린다. 그 후로 길이가 같은 십자가와 함께 등장

필립보 - 십자가 막대를 쥐고 있는 필립보성인.

마태오 - 천사와 함께 복음을 전파하는 모습으로 등장. 세리였던 마태오는 돈주머니와 책을 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동쪽: 

 

         ▲ <달마스 이삭 황제 발렌스를 중재하다>

 

 

                   

▲ 왼쪽부터 차례로

야곱 - 책·칼·외투·조가비·모자·지팡이·자루·호리병

시몬 - 톱으로 사형을 당하였다하여 톱을 든 모습으로 등장

루크 - 의사,예술가의 성자로 언약의 고결함을 상징하는 소와 함께 있는 모습

 

 

-서쪽:

 

 

           ▲ <이삭과 황제 테오도시스와의 만남>

 

 

 

               

▲ 왼쪽부터 차례로

토마스 - 예수님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보아야 부활을 믿겠다고 말하여 손가락을 세우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됨

마르코 - 용맹한 모습이 사자에 표현되어 사자와 함께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짐

바톨로메 - 온몸의 가죽이 벗겨지는 형벌을 받았다고 하여 자신의 가죽을 든 모습 혹은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외관에 기죽지 않는 황금빛 내부!

 

 

 안으로 들어오면 화려한 황금 모자이크와 우랄산맥에서 가져왔다는 공작석의 푸른빛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벽은 모두 벽화와 모자이크들로 감싸져 있고 황금과 대리석으로 인해 눈이 부시다. 그런데 중앙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사람들이 일제히 천장을 향해 얼굴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 뭐가 있는 거지 돔의 정중앙 아래로 다가가 보았더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 돔 정 중앙에 위치한 황금 비둘기 사진-위키피디아

 

 

돔 아래에서 아름다운 돔 장식을 바라보면 가장 꼭대기에 성령을 의미하는 황금색 비둘기가 보인다! 흐린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둘기는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 이삭 성당의 성전. 높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사진-남궁경

 

 

  중앙 돔을 지나 동쪽의 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면 성전이 나온다. 성전은 그 어떤 방향보다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있으며 예수와 열두제자를 표현한 그림이 많다. 성전 안을 바라보면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을 사로잡는다. 성전 안은 사제의 허가를 받은 남자만 들어갈 수 있으며 여자의 출입은 엄격히 제한된다고 한다. 위층에는 열두 제자들의 그림이 위치하고 중앙에는 황금으로 장식되어있다.

 

 

▲ 눈이 부시게 정교하고 아름다웠던 황금 예수와 천사,성인. 사진-남궁경

 

 

이런 황금으로 만들어진 장식과 이콘화들 이외에도 저명한 22명의 화가가 그린 103점의 벽화와 52점의 캔버스 그림이 있다.

 

                      ▲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 성인의 모자이크 앞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이콘과 성화에는 성인들이 긴 수염을 가졌다. 표트르 대제가 대 개혁을 감행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수도로 만들고 네덜란드를 모델로 삼아 유럽처럼 도시를 만들어 갈 당시 이발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단발령과 같이 수염을 기르는 귀족들은 수염을 잘라야 했고 수염을 기를시 벌금을 내야했다고 한다. 그것으로 보아 과거 러시아인들이 수염을 길게 기르고 다녔음을 알 수 있었다.

 

 

이삭성당의 변화

 

 이삭 성당은 사실 4번의 변화를 거치게 되었다. 표트르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할 당시 이삭 성당을 지었으나 후에 전쟁 등의 일들을 겪으며 이삭 성당의 위치와 외관모두 바뀌게 된다.

 

▲ 이삭 성당 최초의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그리고 조국전쟁 당시에는 눈에 띄는 황금 돔으로 인해 폭격우려가 있어 돔을 회칠하기로 한다. 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세계대전 당시 이삭 성당을 향해 날아온 포탄이 정확하게 이삭 성당 기둥에 맞게 되었다. 모두가 그 순간 이삭 성당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날아온 포탄은 터지지 않았다고 한다. 러시아 사람들은 신이 이삭 성당을 지키고 자신들을 지켰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아직도 이삭성당에 가면 그 포탄이 떨어진 기둥을 볼 수 있다.

 

 

▲ 포탄을 맞아 조금 부서진 대리석 기둥

 

 

 험난한 시간을 거치면서 이삭성당은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소련시기 때는 종교를 금지하던 소비에트 사상에 의해 박물관으로 바뀌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서러움을 겪게 된다. 소비에트 정권이 무너지고 다시 사람들이 종교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이삭 성당은 다시 성당으로서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온 도시가 한눈에! 이삭 성당의 전망대

 

 

 43m 정도의 전망대에 오르면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를 한눈에 내다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취재를 위해 이삭성당을 방문할 당시 폭우가 쏟아져 전망대에 오를 수가 없었지만 아래에서 바라본 전망대는 충분히 멋있고 가슴이 뻥 뚫리게 만들겠단 생각이 들었다.

 

        ▲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진- 정바름( 러시아 연수 선배)

 

 

          ▲ 전망대에 올라가기위해 외부 계단을 오르는 관광객   사진-정바름

 

 

 

  이삭 성당을 취재하면서 느낀점은 러시아도 우리나라 처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종교의 모습이 위협받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박해받았을 때 처럼 러시아에선 러시아 정교가 소비에트 정권에 종교활동이 없어지기도 하고 황제들의 가장 큰 사업이 되기도 한 중요한 역사적 산 교육장인 셈이다. 러시아 정교에 대해 아직 모르는 점이 더 많지만 종교를 예술로 승화시켜 후세대에 남겨준 옛 러시아인들의 수고는 두고두고 온 러시아인들이 잊지 않을 것이라 느껴졌다. 외관도 내관도 너무나 아름다웠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러시아인들의 노력도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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