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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도시 익산, 그 속 숨은 진주 보석박물관

작성일201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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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각 도시에는 그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이 하나씩은 있다. 사과나 포도 같은 특산물로 유명한 도시도 있고, 나비나 머드와 같이 그 도시를 대표하는 축제가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짓기도 한다.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아름다움의 결정체, 보석!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친구(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라는 노래 제목도 있듯이, 보석은 여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물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누구나 사랑하는 이 '보석'을 자신들의 대표로 삼고 있는 도시가 있다. 바로 익산이다. 그렇다면 익산은 어떻게 보석의 도시가 된 것일까

 

익산은 과거 귀금속 보석 산업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1975년 정부에서 인구 분산과 공단의 지역 균형 개발을 위해 이리(익산의 옛 이름) 수출 산업 단지 내에 귀금속 보석 가공단지를 조성했다. 그 과정에서 전국에 분포되어 있던 귀금속 보석 제조업체들이 익산으로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1980 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저임금의 노동력 덕분에 보석 가공 생산을 통한 보석 산업이 익산에서 급격히 발달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제조업체들이 중국이나 필리핀 등지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귀금속 산업에서 익산의 경쟁력과 입지가 점점 약화되고 말았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익산은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보석 산업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귀금속 전시 판매 센터와 보석 가공단지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2002년 5월,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익산의 보석 박물관이 개관하게 되었다.

 

1975년부터 무려 27년여의 오랜 기간을 통해 '보석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달고, 또 이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익산! 그렇다면 익산에 있는 보석의 아름다움을 어디서 가장 가까이 볼 수 있을까 위에서 말한 보석 가공단지 조성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보석박물관에 그 해답이 숨어있다. 보석박물관의 역사는 채 1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익산의 보석에 대한 자부심만은 30년의 시간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석에 대한 지식 쌓기

 

 

왕궁보석테마관광지에는 주얼팰리스, 화석전시관, 보석박물관과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공원까지 포함해 거대한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특히 익산 지역 특화산업인 귀금속 가공 산업을 알려주고자 하는 취지가 담긴 보석박물관의 상설전시관에는 다양한 원석과 광물을 전시해두고 있다. 총 7 개의 구간(초대의 장, 인식의 장, 아트 갤러리, 체험의 장, 역동의 장, 감동의 장, 결실의 장)으로 구성된 상설 전시관을 둘러보다보면 관람객들은 이곳이 보석에 대한 모든 것을 다 담아놓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인식의 장, 체험의 장, 역동의 장에서는 보석 산업에 대해 좀 더 쉽고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컨텐츠를 전시하고 있다.


어둠으로 둘러싸인 입구에 들어서면 홀로그램으로 반짝이는 '초대의 장'이 기다린다. 짧은 '초대의 장' 터널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인식의 장'에서는 보석과 연관된 백제의 유물 복제품과 보석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보석의 의미와 최초로 보석이 사용된 시기, 대중화 된 과정 등을 패널로 설명해서 관람객들이 보석의 역사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다. 전라도에 위치한 익산의 특성 상, 백제의 보석 관련 유물들이 많이 전시된 이곳엔 옛 백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백제의 귀걸이 장식이나 금동신발, 금관들을 보고 있자면 익산은 27년보다 더 오랫동안 보석의 도시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인식의 장'에서는 '탄생석'에 대한 키오스크와 그 탄생석들을 전시하고 있다. 탄생석 키오스크를 보면 각 월을 상징하는 탄생석에 대한 소개와 그 의미, 그리고 그 탄생석의 주산지를 알 수 있다. 1월부터 12월까지 죽 늘어선 탄생석 실물 또한 볼 수 있으니, 자신의 태어난 월을 상징하는 탄생석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역동의 장에서는 보석에 대한 좀 더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동굴이미지 터널을 통과하면 보석을 캐는 인부들의 모형을 볼 수 있다. 또한 보석을 캐고 나서 그 원석이 다듬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데, 실물 크기의 모형을 통해 보석 생산 과정이 꽤 많은 단계를 거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크게 선광, 정광 → 대절단, 형태그리기 → 세절단 → 보석연마작업 → 완성이라는 다섯 단계를 거치는 보석 가공 과정을 거치고 나면 우리가 흔히 매장에서 보는 보석이 완성된다. 특히 익산이 이 부분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점이 있다. 바로 익산은 보석 원석의 대량 생산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석 가공'과정으로 유명해져서 '보석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달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체계적이고 정교한 보석 가공 과정을 선보이면서 익산은 이 과정 하나하나가 노하우임을 보석박물관에서 보여준다.

 

 

보석의 아름다움 느끼기

 

 

보석박물관에는 위처럼 보석의 역사나 생산 과정같이 정보 중심의 전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보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몸에 걸치는 장신구의 용도를 생각한다. 하지만 보석박물관에서는 단순히 장신구의 역할을 하는 보석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세공 과정을 거쳐 예술 작품으로도 가치가 있는 보석을 소개하고 있다. 아트갤러리와 감동의 장, 결실의 장에서는 예술로 재탄생한 보석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관람객들이 보석에 대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아트갤러리에서는 실물 크기의 20분의 1로 축소한 미륵사지 석탑 모형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형이 아닌, 진짜 보석으로 만들어진 모형이라서 더 가치가 있다. 크리스탈과 금도장으로 만들어진 미륵사지 보석탑은 보석박물관을 대표하는 전시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륵사지'라는 익산 최고의 유물과 '보석'이 결합되어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단순한 보석보다 몇 배의 가치를 지닌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아트 갤러리 한 가운데에 위치한 게 다른 이유가 아닐 것이다. 물론 그 뒤에도 굉장한 작품이 걸려있다. 조선시대 왕이 앉던 자리에는 항상 있었던 오봉산일월도가 다양한 보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를 제작하기 위해 쓰인 보석의 종류가 17여 종이고 10만여 개의 보석이 사용되었다. 거대한 크기도 그렇지만, 촘촘히 박혀있는 보석이 만들어낸 장관을 보면 새삼 오봉산일월도가 이처럼 아름다웠나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감동의 장'은 그 이름답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수정이나 토파즈, 에메랄드와 같은 자연보석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천연 보석으로 만든 작품을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461개의 천연보석으로 만들어진 '보석꽃'은 커다란 꽃 모형에서 밝은 빛과 그 아름다움이 함께 쏟아져 나온다. 그 뒤에는 수정을 절단하거나 붙이지 않고 원석을 그대로 가공해 만든 작품이 나열되어 있다. 커다란 성배와 예수, 아담과 이브를 조각한 작품은 백수정의 맑고 영롱한 느낌을 잘 살려냈다.

 

마지막으로 '결실의 장'에 도착하면 전국 보석 공모전의 수상 작품과 공예작가들이 기증한 보석 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이곳에는 이리귀금속보석가공업협동조합에서 가공, 생산한 귀금속 제품을 직접 볼 수 있다. '보석의 도시'라는 명성답게 익산 내 보석단지에서 직접 가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고 있는 작품들이 많아서 더 눈길이 간다.

 

 

보석의 도시, 익산으로!

 

 

사실 보석은 어느 도시에서나 살 수 있는 물건이다. 하지만 그 보석의 진가를 알고 이를 진심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곳은 몇 군데나 될까 익산은 자신 있게 자신을 '보석의 도시'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과거 익산만이 갖고 있던 보석 세공업에서의 뛰어난 실력에 대한 자부심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도 분명히 있다. 바로 그만큼 보석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 역사와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이유일 것이다. 또한 보석박물관에서는 이번 9월 18일부터 21일까지 보석문화상품공모전을 개최하니, 앞으로 볼 거리는 더 늘어날 것이다. 진짜 보석을 알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익산의 보석박물관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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