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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아날로그

작성일201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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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벌써 90년대 이야기가 시대극으로 방영되는 요즘. 응답하라1997이란 드라마가 대히트를 쳤다. 8,90년대 생들은 한창 팔팔할 때 아날로그의 마지막과 디지털의 시작과 정점을 겪었다. 엠피쓰리플레이어를 들으며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며 출근시간을 때우는 사람들. 지금 우리네의 삶에서 디지털이 단 1분이라도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10년 전 만해도 우리는 아날로그 적 이였다.(물론 그 당시에는 최신이었을지는 몰라도) 얼마 전 코닥 필름사가 파산신청을 했다. 우리의 성장과정을 그대로 담아주었던 필름이 이젠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사라져서 안타까운 것들, 사라지기에 소중한 것들. 그들을 다시 되짚어보자.

 

 

 

 

 

 

 

지난 1990년대 세계 카메라 업계를 주도한 코닥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디지털 시대 대응에서 뒤쳐졌다. 지난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지만 아날로그 시절의 영광에 취해 필름 판매에 집중한 것이 패착으로 지적된다. 세계최초의 필름개발회사이자 최초 디지털카메라개발 회사였던 코닥이 디지털카메라 때문에 파산했다.

 

 

 

 

 

 

 필름카메라는 정해진 필름을 다 써야지만 그제야 사진관으로 갈 수 있었다. 인화를 기다리는 시간이 어찌나 설레던지, 인화된 사진을 가져오면 가족과 식탁에 앉아 한 장씩 돌려보곤 했다. 한번 찍으면 수정이 불가능한 카메라였기에 온갖 구도를 다잡아가며 겨우 한 장을 찍었던 필름카메라. 필름카메라로 찍은 하나하나의 사진은 스토리가 존재했다. 오빠와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부터 놀이 공원 가서 찍은 가족사진, 그리고 1997년 초등학교입학식 사진까지 우리에게 필름카메라는 어린 시절 모든 추억을 함께 했고 기억해주고 있었다.

중학생이 된 후 디지털카메라가 유행처럼 번져나갔고 나의 성장앨범도 그때부터 채워지지 않기 시작했다. 이젠 하나에 몇 백 만원을 넘나드는 카메라를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화질은 좋아지고 사진의 수는 많아졌지만 이제 사진은 컴퓨터 안에 단지 파일로 존재할 뿐 사진관에 가서 인화하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다. 기억도 안나는 어린 시절을 모두 담아준 필름카메라. 현상이 될 때까지 사진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설렘도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다.

 

 

 

 

 

70년대 카세트 플레이어와 테이프의 등장은 미디어 혁명을 열었던 사건이었다. 이들의 등장은 세계음악 콘텐츠로서 자리매김을 했고 2000년대 초까지 전 세계 중, 고등학생들의 입학, 졸업선물의 대표 주자였다. cd의 등장으로 주춤한 모습을 보이지만 90년대까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승승장구했던 카세트테이프. 지난 1962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왔던 카세트테이프가 2007년 영국 등 해외 주요시장을 중심으로 판매중단에 들어갔다. CD마저 엠피쓰리 플레이어에 밀려 보기 힘든 마당에 카세트테이프의 행방은 더욱이 알 수 없어졌다.

 

 

출처-드라마 응답하라 1997

 

5시간 이상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도 지루해 추석이나 설날 같은 대 명절이 싫었다. 집 떠나기 전 나에게 카세트테이프는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HOT테이프 한 개를 한 시간에 한번 씩 꺼내 AB면 바꿔 들어가면 금세 할머니 집에 도착하곤 했다. 오빠는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며 공부를 했고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노래를 녹음했다. 혹여나 테이프의 필름이 엉키면 볼펜이나 연필로 필름을 쭈욱 빼서 다시 구멍에 넣어 돌리면서 감아주기도 했던 기억. 친구들이 놀러오면 여럿이 모여 라디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다시 틀면서 깔깔 거리며 웃던 기억들.. 이제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아니 이젠 없는 것 같다. 터치한번으로 모든 음악을 다들을 수 있는 세상이니 참 편리하다. 하지만 음악이 모두 끝나고 뒷면 테이프노래를 들으려고 딸칵딸칵 여는 카세트테이프가 가끔 생각나고 보고 싶다.

 

 

 

전화기가 처음 등장한 70년대에는 다이얼 자체가 없는 전화기였다. 수화기를 들면 전화국의 교환원이 나왔고 교환원에게 상대방 전화번호를 알려주고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기다려야했다. 왜냐하면 다시 전화 받는 사람이 사는 위치에 있는 전화국의 교환원과 통화를 해서 전화 받는 사람과 연결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84425,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한국형 전자교환기 (TDX-1)가 서대전 전화국에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얼굴을 보면서 통화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가졌던 때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젠 인터넷 전화로 통화비 없이도 전화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등장했다.

 

 

출처-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안녕하세요. 예슬이 친구 정윤인데, 예슬이 집에 있나요전화걸기 3분전 두 세 번은 연습하고 걸어야했던 전화. 어린 시절 굉장히 소심했던 나는 제발 친구 가족이 아닌 친구가 전화 받길 원했다. 그땐 친구에게 연락하려면 가족들과 먼저 인사를 나눴다. 때문에 밤9시가 넘어서는 아무리 급해도 전화하기가 망설여졌다. 필자의 어머니는 친구의 전화통화예절로 친구를 판단했다. 꼬박꼬박 인사를 잘하고 싹싹한 친구는 착한친구였고 인사에 서투르고 냉랭한 목소리를 가진 친구는 부모님께 썩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랬기에 옛날엔 전화한통에도 신중했고 목소리를 한 번 더 가다듬어야 했다.

그땐 발신자 번호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생겨난 친구들과의 놀이 중 하나가 장난전화였다. 말도 안 되는 말로 상대방을 당황시키고 뚝뚝 끊어버렸던 그때, 지금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친구들과 어찌나 신나게 웃었는지 모른다. 시도가 늘어날수록 대담해졌던 장난전화는 질릴 때가 돼서야 그만두곤 했다.

핸드폰이 없으면 원시인 취급받는 요즘, 제일 친한 친구의 번호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다이어리 뒤에 친구의 이름과 생일, 그리고 집 전화번호를 채워 넣었던 옛날에는 친구의 전화번호를 아는 것은 우정의 상징이었다. 3D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기계 안에서의 소통은 많아졌지만 현실은 어딘가 삭막해진 기분이 들고 만다.

 

 

 

 

최신기계들이 나오고 예전의 것들이 금세 사라져버리는 요즘. 더욱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어 좋기는 하지만 사람간의 소통이 부족해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직 출시되지 않은 최신기계들도 1년 뒤엔 구식이 될 테고 10년 뒤엔 추억의 상자 안에 담길 것이다. 그 말은 지금 이 기사를 읽고 있는 이 순간 우리 옆에 있는 스마트폰도 언젠간 우리 곁을 떠나고 추억이 되겠지. 수수하고 소박한 단어 아날로그’. 단순히 디지털의 반대말이 아니라 우리네의 삶을 좀 더 여유롭게 환기시켜주는 추억의 윤활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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