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신비로운 사막성으로...

작성일2012.12.21

이미지 갯수image 20

작성자 : 기자단

 

메마른 사막에 신비로운 사막성이 존재한다!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니다. 각각 개성 넘치는 신비로운 사막성의 아름다움을 함께 파헤쳐 보자.

 

 

 

 

 

사막성에 들어가기 전에 왜 사막에 성이 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그 중 크게 네 가지 설이 있는데 먼저 이것부터 알아보자.

 

사막성들은 우마이야 왕조(*661년부터 압바스 왕조 이전까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한 이슬람 왕조) 시대에 많이 지어졌었다고 한다. 그 첫 번째 설은 우마이야 시대의 칼리프(*이슬람에서 무함마드 이후에 무함마드의 대리자라는 뜻에서 종교적, 정치적으로 절대적인 통치자를 칭함.)들은 그들의 뒤를 이어 칼리프가 될 아들들이 많은 사막에 있는 종족들과 소통하고 생활하길 바랐다. 그들과 함께 지내며 아랍어를 익히고 리더십을 기르길 원해 그의 아들을 사막으로 보냈고 아들과 사막에 있는 종족들이 생활할만한 공간을 위해 사막성을 지었다는 견해가 있다.

 

두 번째로 많은 전염병자들을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에 격리할 곳이 필요했고, 사막 한 가운데 병자들을 보내기 위해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 견해에 대해서는 많은 고고학자들이 동의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우마이야 시대에 전염병이 존재했었다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설에는 중점을 두지 않고 있다.

 

세 번째는 그들은 사냥꾼이 되길 원했다. 사막에 살고 있는 수많은 동물들을 사냥하는 연습을 하고 생활할 곳이 필요해서 성을 지었다는 견해 또한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많은 고고학자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사냥꾼이 되고자 했다면 사막이 아닌 도시 안이나 근처에서도 충분히 많은 짐승들이 있고 사냥이 가능한데 굳이 사막에 성을 지으면서 사냥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다.

 

마지막으로 우마이야 왕조는 비잔틴 제국과 대결하기 위해 사막에 성을 지어 비잔틴과의 전쟁을 대비하고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고자 했다는 설이 있다.

 

우마이야 시대에 사막성의 건설에 대한 많은 견해가 있다. 그만큼 아직도 많은 비밀스러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 지어진 성이다. 우마이야 칼리파 중 한 명이었던 ‘알 왈리드 이븐 압드 알 말리크’가 지은성이다. 이슬람은 종교특성상 예술이 다른 종교에 비해 많이 발달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이 칼리파는 예술을 좋아했다. 여러 건축물들을 세우고 예술적인 것들을 많이 남겼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하르라나 성이다.

 

이 시대의 건축물들은 아치형태의 구조가 눈에 띤다. 입구부터 시작해서 천장까지 모두 아치 형태로 되어있다. 성 곳곳에 있는 아치 구조가 성의 미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성 안에 들어가 보면 저런 문들이 여러 개 있는 벽들이 정사각형 형태로 둘러싸고 있다.

(사진 조수현)

 

성 내부에도 아치 구조의 부드러운 곡선미를 엿볼 수 있다. (사진 조수현)

 

하르라나 성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중, 마치 얼굴 모양의 입구를 발견하고 한 컷 담아보았다. (사진 조수현)

 

 

  

 

이 성 역시 우마이야 시대에 지어졌다. ‘왈리드 이븐 와지드’라는 칼리파가 지었다. 그 역시 예술을 좋아했고, 이렇게 아름다운 성을 남겨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까지 이 성을 볼 수 있다. 이 성은 우마이야 시대의 벽화를 온전히 볼 수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그만큼 보존 상태도 좋고 미적가치도 뛰어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아득히 멀게만 보였던 성이 가까이 다가가니 그 모습을 더욱 분명히 드러냈다. (사진 조수현)

 

 

성 앞에 깊은 우물과 우물에 물을 끌어올려 성 안으로 보내는 기구들이 눈에 띠었다. 여기서 끌어올린 물을 도자기관을 통해 성 안으로 보냈다고 한다. 성에 돔이 있는 작은 방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사우나다.

 

사람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곳이 과거 우물이었던 곳이다. 현재는 물은 없고 우물만 남아있다. (사진 조수현)

 

위 사진은 돔 바로 아래서 천장을 올려다보고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아래 사진은 세월의 풍파에 많이 허물어져 있지만, 돔 아래에 사우나였던 공간이다. (사진 조수현)

 

 

이슬람 종교 특성상 인물화를 그리지 않고 장식을 위해 기하학적 무늬를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이곳은 특이하게도 성 안 대부분의 벽화가 인물화다. 심지어 종교적으로 금지된 누드화까지 가득 그려져 있다. 이런 벽화들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공적인 건물이 아닌 사적인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공간이었기에 성 안에 마음껏 그림으로 채울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이곳에는 소수의 특별계층의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었다.

 

사람과 짐승 그림이 성 안 모든 벽과 천장에 그려져 있다. (사진 조수현)

 

입구 쪽에 있는 가장 큰 벽에는 중국, 인도, 로마, 페르시아, 에티오피아, 스페인 이렇게 6개국 왕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누드화도 있다. 이 여성들의 체형을 보면 깡마른 체형이 아닌 육감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다. 당시의 미인상이 이렇게 통통한 여자들임을 알 수 있다.

 

아치형 천장 쪽 벽에 벌거벗은 여인의 그림이 있다. (사진 조수현)

 

그 외에도 동물, 과일, 그리고 기하학 무늬 등 다양한 그림들이 벽 전체에 그려져 있다.

 

포도 넝쿨과 열매가 그려져 있다. (사진 조수현)

 

벽에 그림 뿐만 아니라 기하학적 무늬도 새겨져 있다. (사진 조수현)

 

 

 

 

아즈라끄 성은 우마이야 시대가 아닌 한참 뒤에 건설되었다. 기원 후 1200년 경, Ayyubid 왕국 때 세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소개된 두 성 보다 규모도 훨씬 더 크다. 그리고 위에 두 성이 palace인 반면에, 아즈라끄 성은 castle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Ayyubid 왕국 시대는 십자군 전쟁을 치르던 시기다. 그래서 이곳은 전쟁을 위해 지어진 곳이다. 여기에 많은 군사들과 말이 살았었고, 이들이 먹을 식량창고와 무기고 등도 있었기 때문에 세 개의 성 중에 가장 클 수밖에 없다.

 

아즈라끄 성은 그 규모가 꽤 크다. 단단한 바위성을 볼 수 있다. (사진 조수현)

 

이 성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 바위판들이다. 여기에는 짐승과 식물, 기하학 무늬 등이 새겨져 있다. 과거 사막에서도 예술을 추구하던 인간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여러 문자들이 적힌 바위판 또한 있다. 이 성에는 로마인, 아랍인 등 여러 종족의 사람들이 이 성에 머물기도 하고 거쳐 가기도 했다. 그만큼 라틴어 등 다양한 언어들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 적힌 언어의 의미에 대해서도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먼저 길거리의 표지판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두 번째로 여기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을 남겨 놓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여러 가지 무늬와 형태를 가진 바위판들. (사진 조수현)

 

아즈라끄 성 역시 다양한 아치형 구조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 조수현)

 

 

사막성이 여러분이 상상했던 성과는 조금 다른 형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막성을 거닐며 과거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해당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 영현대 저작권이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며, 비영리 이용을 위해 퍼가실 경우 내용변경과 원저작자인 영현대 워터마크 표시 삭제는 금하고 있습니다.

SNS 로그인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할 계정을 선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