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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와 80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곳

작성일20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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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스크린, 브라운관을 막론하고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191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어둡고 또 밝았던 역사를 상상이 아닌 현실과 같도록 조성해놓은 이곳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시 한 번 조명해보고자 한다.

 실제 이곳에서 촬영한 영화와 드라마 장면을 곁들여 장면과 장소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하였다.

지금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전쟁 후 어려웠던 시절, 70-80년대 복고를 느낄 수 있는 곳! ‘합천영상테마파크’로의 여행을 시작해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일본어로 쓰인 간판들과 당시대를 나타내주는 건물이 있는 거리었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색하지 않은 일본식 표현들이 참 많았다.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남아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생활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 시대에 고통 받던 우리 민족과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한 독립투사들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을까

거리를 조금 지나다보니 종로경찰서가 보였다.

 

 

 

 서슬 퍼런 일제 경찰들의 <종로경찰서>

 의열단원 김상옥 열사의 ‘종로경찰서 투탄 의거’로 유명한 그 역사 속의 종로경찰서. 한국의 독립의지를 분명하게 하고자 결성된 항일비밀결사단인 ‘의열단’의 단원이 이곳을 거사 장소로 결정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만해 한용운 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 등이 구금되었을 뿐만 아니라 1926년 6.10만세 운동 당시에도 많은 학생들이 구금되어 고초를 겪었던 곳으로 현 종각역 근처에 있었던 종로경찰서는 조선총독부와 더불어 일제 무력통치와 문화통치를 대변하는 산물로 알려져 있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고문하고 탄압했던 일제강점기 그 시대, 그 순간에 잠시나마 온듯하여 기분이 묘했다.

 

 

▲KBS드라마 ‘각시탈’ (일제강점기 배경)

 

 2012년 방영되어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각시탈.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의 명연기 덕에 종로경찰서에서 근무했던 일제경찰들의 악랄함과 무자비함이 얼마나 당시 사람들에게 고통이었을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어 경성을 잘 나타내주는 또 하나의 건물. ‘경성역’을 볼 수 있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었을 <경성역>

1900년, 약 10평 규모의 목조건물에서 업무를 시작한 경성역. 하지만 그 당시 명칭은 ‘남대문역’이었다고 한다. 1925년에 르네상스식 건축물로 새롭게 신축되었고 역사명도 경성역으로 변경되었다. 당시 신축된 경성역은 규모도 상당하였지만 지붕의 돔과 독특한 외관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는데. 경성역의 건축 자재는 주로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고풍스러움을 강조했다고 한다. 광복을 맞이한 뒤 경성역은 서울역으로 개명되었고 한국전쟁 때에는 역사의 일부가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다. 현재는 '문화역 서울 284'로 재탄생하여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요즘 어느 도시를 가도 같은 모양의 역사를 봐서 지루하다 생각했는데 역사를 가진, 특색 있는 역사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화 ‘모던보이’ (1937년 일제강점기 배경)

 

 1937년 일제의 만행이 극에 치 닫았을 시기 경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모던보이’. CG를 이용하여 한층 더 화려한 경성의 밤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에서는 경성의 아픔과 동시에 화려한 이면을 보여주는 요소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차, 자동차 등 당시대를 드러내주는 다양한 소품들을 볼 수 있다.

 이어 도착한 곳은 해방 전후를 맞이할 때 즈음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바로 돈암장이라는 곳인데 어떤 용도의 건물이었을까

 

 

 

 

사계절이 아름다운 이승만 박사의 <돈암장>

KBS드라마 <경성스캔들>에서 ‘명빈관’으로 나왔던 이 수려한 건물은 바로 ‘돈암장’이다.

돈암장은 1939년에 건립된 한식 목조 팔작지붕으로 근대시기 지어진 한옥주택이다. 이승만 박사가 1945년 미국에서 귀국하여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에 2년간 거처한 곳으로 근대정치사적으로 중요한 역사적인 곳이다. 집이 대문에 비해 높이 위치해있어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을 맞기에 안성맞춤인 구조인데다 아기자기한 한옥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자꾸 눈길이 가는 곳이었다.

 

▲KBS드라마 ‘경성스캔들’ (일제강점기 배경)

 

 나의 조국에서 자유롭게 연애하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쾌하게, 때로는 슬프게 그려졌던 경성스캔들. 대부분 이곳에서 촬영되어 촬영장에서 이 드라마의 모습과 분위기를 좀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일제치하 길고도 힘들었던 그 시절이 끝을 향해 치닫을 무렵이었던 해방 전후. 하루하루 불안한 삶 속에서 독립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취재했던 ‘민주올레’를 통해서도 볼 수 있었던 ‘경교장’이다.

 

 

 

 

 김구가 최후를 맞은 이곳 <경교장>

 ‘경교장’은 일제 강점기의 금광업자 최창학의 별장, 1945년 11월 4일부터 1949년까지 김구의 사저이자 공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청사, 한국독립당의 당 본부였다. 1949년부터 1952년까지는 주중화민국대사관으로 활용되었다. 지금은 서대문역 인근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부지에 위치해있다.

 경교장은 일본식 건물로, 1938년 완공 당시에는 죽첨장(竹添莊)이라 하였다. 8·15광복 이후 최창학이 김구의 거처로 제공하였는데, 김구가 죽첨장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에 있는 '경교'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였다. 1945년 임시정부 위원들과 함께 귀국한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집무실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되기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건국에 대한 활동 및 반탁, 통일운동을 이끌었다.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처로 이용된 경교장. 2005년 6월 13일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었다. 현재 동 건물 2층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김구 선생의 옛 집무실이 김구 기념실로 운영되고 있다.

 

 

 해방을 맞은 기쁨도 잠깐. 우리 민족에게 또 한 번의 커다란 시련이 닥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한국 전쟁의 발발. 이념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 민족 간의 전쟁은 3여 년간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물적 피해를 남기고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휴전상태로 진행 중이다. 당시 전쟁은 수많은 전쟁고아와 이산가족을 남겼고 한국의 경제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전쟁 후 1950년대, 1960년대의 모습을 재현한 골목과 건물들도 볼 수 있었다. 여러 가닥의 전깃줄이 이리저리 꼬여있고 그 아래로 빽빽하게 들어선 판자촌을 보고 나니 힘들고 배고팠던 부모님 세대의 어린 시절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곳곳에 붙어있던 반공 방첩이라는 포스터와 산아제한을 독려하는 표어가 당시 시대를 잘 보여주었다.

 이 거리를 따라 조금 더 갔더니 1970년, 1980년대를 재현해놓은 거리를 만날 수 있었다.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서기 위한 노력을 했던 시대. 1910년 우리나라를 빼앗기고 한차례의 큰 전쟁이 있고 난 뒤 바닥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발전해가던 시기의 모습이다. 1960년대와 겨우 10년 상간이지만 우리나라가 조금이나마 살기 좋아졌음을 보여주는 건물들이 많아 신기했다.

 사람이 의식주가 해결되면 다음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70, 80년대 교육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건물 또한 볼 수 있었다.

 

 

 

 영어 교육의 열기는 이때도 여전히 <배재학당>

 한국 최초의 근대식 중등 교육기관인 배재학당. 1885년 아펜젤러가 인천에 입국하여 7월 19일 서울에 들어와 방 두 칸 벽을 헐어 작은 교실을 만들어 수업 했다. 그 당시 고종이 아펜젤러가 열심히 두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또 앞으로 여러 학생을 교육할 학교를 세울 뜻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곧 학교 사업을 허락하여 1886년 6월 8일 인재를 배양하는 ‘배재학당’이라는 교명과 액을 내려 주었다고 한다. 그 후 교육뿐만 아니라 민족 운동으로 명맥을 이어오던 배재학당.

 배재학당은 민족운동 측면에서도 구한말에 교육구국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다하였고, 일제강점기 36년 동안에는 민족의식과 정의감을 굽히지 않고 용감히 항쟁하였으며, 그들이 한글(나라말과 나라글자)을 끝내 지켜냈을 뿐 아니라 한국의 민족운동을 해외에까지 선전하였다. 이후에도 영어교육원, 영미문화학원으로 남아 외국어 교육을 했다.

 

 

▲KBS드라마 ‘사랑비’

 

 70, 80년대에는 지금의 멀티플렉스 극장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큰 상영관과 시설을 갖춘 극장들이 많았던 듯했다. 이곳에서 극장으로 이용되는 건물만 3개였다. 모두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상업 영화들이 유행하고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였던 듯하다. 70, 80년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사랑비와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는 각각 극중 주인공들이 영화를 보는 장면과 문화 예술 사업에 종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약 90년의 역사를 간직했던 <국도극장>

 ‘국도극장’은 을지로에 1913년부터 1999년까지 있었던 영화관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황금연예관이란 이름으로 세운 영화관으로 시작했다. 1946년 신축 개관하면서 ‘국도극장’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1999년 건물을 허물고 호텔을 세우기 위해 폐관하였다.

 

▲MBC드라마 ‘빛과 그림자’ (1970, 1980년대 배경)

 

 

 

 

 건물마다 빽빽하게 들어선 간판이며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인테리어까지. 휴지통 하나, 공중전화 부스 하나에도 그 시대가 느껴진다. 요즘은 심심치 않게 보이는 백화점이며 극장, 카페 중에는 저러한 형태를 띤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고속버스 터미널 역시 존재하지만 모든 것이 수동인 저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는 곳은 드물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고 기술은 발전했으며 사람들의 안목도 높아졌다.

 

 

▲영화 ‘써니’

 

 요즘 ‘복고’를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왜일까 역사는 흘러가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발전은 있기 마련이다. 끝없는 발전 속에서 사람들은 편리함을 얻었지만 그것이 곧 행복과 연결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어른들은 종종 풍족하진 않았지만 서로 돕고 작은 것에도 행복함을 느꼈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보다 모든 것이 조금은 불편하고 느렸지만 행복이란 것을 느꼈던 그 시대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그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고 위로하는 것이 아닐까 나 또한 격동의 70, 80년대를 겪으며 성장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저 때 태어났다면 적어도 버스나 기차를 탈 때 스마트 폰이 아닌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이라는 것을 한번쯤은 더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기에 70, 80년대의 이 거리는 의미가 있었다.

 

 

 

 하루만에 1910년대를 지나 해방 전후, 한국전쟁 전후, 1970년대, 1980년대까지 다녀와 볼 수 있었던 시간.

일제강점기 시대의 거리를 지날 때는 내 나라에서 일제경찰들의 핍박을 견뎌야했을 때의 비참함과 아픔을 느낄 수 있었고 전쟁 전후 좁디좁은 골목과 판자촌을 지날 때는 그때를 살았던 우리 할머니 세대의 고생이 떠올랐으며, 1970년대, 1980년대 거리를 지날 때는 딱 30년 전 나와 같이 대학생이었을 부모님의 젊은 시절이 어땠을까 궁금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당시를 느낄 수 있도록 작은 것까지 신경을 쓴 것이 느껴졌던 합천영상테마파크.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이 가도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곳이지만 정말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할머니와 부모님과 함께 간다면 더욱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봄이 되면 가족들과 한번쯤 방문해보면 어떨까

 

 

합천영상테마파크 이용안내

 

<이용요금>

구분

개인

단체

어른

3,000원

2,000원

학생, 군인, 어린이

2,000원

1,500원

65세 이상, 유공자 장애인(4급 이상)

1,500원

1,000원

장애인(1~3급), 6세 이하, 합천군민

무료

무료

 

<개장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 ~ 18:00

동절기(11월~2월)

09:00 ~ 17:00

 

<대중교통 이용>

- 서울남부터미널 → 합천읍 시외버스정류장 (4시간 30분소요)

- 진주시외버스터미널 → 합천읍 시외버스정류장 (1시간소요)

- 부산서부터미널 → 합천읍 시외버스정류장 (2시간소요)

- 대구서부정류장 → 합천읍 시외버스정류장 (1시간소요)

 

- 내비게이션 주소: 경남 합천군 용주면 합천호수로 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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