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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문화와 역사의 도시, 칸사이 지방 여행 두번째

작성일201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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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사진/김현진

 

칸사이 지방의 중심지

 

사진/구글 이미지

 

칸사이 지방은 오사카, 교토와 나라, 그리고 효고, 시가 등의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가장 번화 되어 있으며 칸사이 지방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지역은 오사카이다. 부산이 한국의 제 2의 수도라 불리듯이 오사카는 일본 제 2의 수도라 일컫는다.

오사카는 상업의 도시라고도 한다. 부산과 마찬가지로 오사카도 예부터 항구가 발전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약 2.6km로 일본에서 가장 긴 상점가인 텐진바시 시장이 바로 오사카에 있기 때문이다. 텐진바시 시장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오사카가 상업도시로 발전하게 된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사진/구글 이미지, 네이버 지식백과

 

오사카가 상업의 도시가 된 데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역할이 크다. 당시 천황이 있던 일본의 수도인 교토의 경제력을 오사카로 불러들였고 그리하여 오사카에는 시장이 발전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 하면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임진왜란의 주범으로 적대시하는 인물이지만 일본, 특히 오사카에서는 신으로 모실 정도로 추앙 받고 있다. 그 증거로 칸사이 지방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관련된 건물들이 많고 대체적으로 신사는 신을 모시는 장소지만 오사카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신격화하여 모시는 도요쿠니 신사가 있다.

 

 

교토와 오사카의 관광지

 

칸사이 지방에는 일본 전통과 역사가 깃들어 있는 장소가 많다. 일본에게는 옛 수도의 역사가 남아있는 전통문화의 도시 그리고 한국에게는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는 칸사이 지방의 관광지를 몇군데 소개하고자 한다.

 

[교토 - 금각사]

 

사진/김현진

 

금각사는 교토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이며 이름 그대로 금으로 된 건물이다. 사실 금각사는 한 번 방화로 불타버린 적이 있다. 이후 복원되었고 현재의 모습은 1987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사진/김현진

 

이 금각사가 유명한 이유는 금으로 된 화려한 외관도 있지만 그 독특한 형태에도 있다. 금각사의 뒷편을 보면 각 층마다 형태가 다르다. 1층은 “호스이인”으로 헤이안 시대에 유행하였던 양식이며 2층은 “초온도”로 무사들이 선호한 양식, 그리고 3층은 “불당식”으로 석가모니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한 건물에서 여러 역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이 금각사의 진정한 가치인 것이다.

 

[교토 - 은각사]

 

사진/김현진

 

은각사는 금각사와 함께 쌍을 이루는 곳이다. 하지만 은각사는 금각사와 같이 은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절은 금각사의 건축가인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손자인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세웠으며 금각사처럼 은각사에도 은을 입히려 하였으나 예산문제와 그의 죽음으로 인해 은을 입히지는 못하였다고 한다.

 

사진/김현진

 

은각사의 정원은 특이하며 꽤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은각사 본 건물의 옆에는 산모양의 모래탑이 있으며 그 옆으로 밭처럼 갈려있는 모래밭이 있다. 모래밭은 발자국 하나 없이 평평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그 형태가 흐트러질 텐데 어떻게 그 모양을 다시 만들고 관리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교토 - 키요미즈데라]

사진/김현진

 

교토의 대표 건물로 자주 등장하는 키요미즈데라는 교토의 자존심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벚꽃 피는 봄과 단풍 진 가을에는 절경이 펼쳐진다.

 

사진/김현진

 

본당 옆에는 작은 신사가 있는데 이 곳에는 특이한 것이 있다. 이 신사는 사랑의 신을 모시기 때문에 연인들이나 연애에 관심이 많은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

 

사진/김현진

 

이 신사에는 코이우라나이노이시 즉, 사랑을 점치는 돌이 있다. 한 쪽의 돌에서 눈을 감고 반대편까지 도착하면 사랑이 이루어지거나 영원하다고 한다. 돌 사이를 건너는 동안을 사랑의 선로라고 하는데 다른 길로 새거나 땅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 사랑 전선에 장애물이 많다고 한다.

 

[교토 - 미미즈카 (귀무덤)]

 

사진/구글 이미지

 

위의 세 군데의 장소가 교토의 대표 관광지라면 미미즈카 즉, 귀무덤은 한국의 아픈 역사가 있는 장소다.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들은 자신의 공적을 과시하기 위해 조선인의 머리를 잘라 일본으로 가져갔는데 그 사람 수가 많아지자 부피가 작은 코로 대신하였다. 본래 이름은 코무덤이었으나 이름이 섬뜩하다고 하여 귀무덤으로 바뀌었다. 귀무덤은 일본 정부나 단체에서 별도의 관리와 예산이 지원되지 않으며 한국에서도 지원되지 않고 있다. 귀무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당 앞의 놀이터 옆에 초라한 표지판과 함께 방치되어 있어 더욱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는 귀무덤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다. 3대 째 이 무덤을 개인이 관리하고 있는 시미즈 시로 할아버지(사진 오른쪽)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어린 시절, 무덤을 청소하는 아버지를 도우며 자연스럽게 무덤관리를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귀무덤의 의미를 아버지께 듣고 나서 충격을 받았던 그는 귀무덤을 “과거 일본의 잘못을 반성하기 위해 잘 가꿔야 할 소중한 곳”이며 “한국과 일본 사이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귀무덤과 시미즈 할아버지는 큰 감동과 함께 안타까운 현실을 알려주었다. 시미즈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한일 양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귀무덤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교토 - 윤동주, 정지용 시인 시비]

 

사진/구글 이미지

 

교토에는 일제강점기에 한글로 시를 썼다는 이유로 옥생활을 하시다 돌아가신 시인 윤동주, 정지용 시인의 시비가 있다. 두 시인이 유학하였던 도시샤 대학의 한 편에 두 시인의 시비가 놓여 있다. 윤동주 시인의 시비에는 “서시”가 정지용 시인의 시비에는 “향수”가 새겨져 있다. 이 곳은 한국인들이 두 분을 기리기 위해 많이 찾는다고 한다. 필자도 방문하여 두 분을 기리고자 하였으나 신정인 관계로 학교 내 출입이 금지되어 아쉽게도 방문하지 못하였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보던 시를 일본에서 직접 보게 된다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오사카 - 오사카성]

 

사진/김현진

 

일본 3대 성 중 하나인 오사카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 쟁탈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축성하였다. 웅장한 겉모습과 금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망루형 천수각, 그리고 넓은 정원은 당시 그의 권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사진/김현진

 

오사카성의 또다른 특징은 가파르게 쌓아 올린 성벽이다. 그 주변이 호수로 둘러싸여 있는데 성벽의 색이 2가지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보면 물이 많이 빠져나갔음을 알 수 있다.

 

[오사카 - 역사 박물관]

 

사진/김현진

 

오사카성 근처에는 오사카 역사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 10층부터 아래층으로 내려올수록 발전하는 시대순으로 박물관 관람을 할 수 있다. 작은 조형물과 전시품들은 물론 중세시대로 들어오면 1:1 사이즈의 인형들과 함께 당시의 배경을 그대로 재현해둔 것을 볼 수 있다.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그 안에 깃든 역사를 보면 가슴이 뭉클한 지역이 칸사이 지방이다. 특히 교토와 오사카는 한국의 역사와 관련된 곳도 많아 그 장소들을 방문할 때 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칸사이 지방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그 안의 의미를 떠올리며 관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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