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요르단의 기독교 성지에 가다. - 마다바, 느보산

작성일2013.03.22

이미지 갯수image 15

작성자 : 기자단

 

 ‘요르단은 아랍국가, 아랍 국가는 대부분 이슬람을 믿으니까 아랍 내에 있는 성지는 다 이슬람 성지겠지’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요르단의 대부분 사람이 무슬림인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인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 또한 기독교 성지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요르단에 있는 기독교 성지를 보러 가보자.

 

 

 

 

마다바의 역사

 

요르단 서남쪽에 위치한, 요르단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인 마다바. 현재는 그리스도교인들이 모여 살고 있고, 역사적으로도 가치있는 기독교 유적들이 많이 있어, 대표적인 그리스도교 도시로 알려져 있다. 해발 700~800m 지대에 있으며 4,500년 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4000년부터 존재한 고대 국제 무역 통상로인 왕의 대로(King's High Way) 상의 한 지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발굴 작업을 통해서 밝혀지고 있다. 구약 성서에서는 ‘메드바’라고 일컬어지는 곳이 바로 여기다.

 

(사진 조수현)

 

 

 

 

모세가 이집트를 나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도중에 당시 마다바를 차지하고 있던 아모리 왕국의 시론 왕에게 모세가 사신을 보내 아모리 왕국의 영토 내에 있는 왕의 대로를 통과하는 것을 허용해 줄 것을 부탁하지만 시론 왕은 이를 거절하였다.

시론 왕은 군대를 보내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민족과 전투를 치른다.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여 이곳을 차지하고 있던 아모리 왕국 사람들을 몰살하고 주변의 모든 도시까지 차지한다.

 

 

이와 관련된 성경 구절이다.

 

민수 21,21-24 이스라엘은 아모리인들의 임금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청하였다. “우리가 임금님의 땅을 지나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밭이나 포도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물물도 마시지 않겠습니다. 임금님의 영토를 다 지나갈 때까지 ‘임금의 큰길’만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시혼은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를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치려고 모든 군대를 모아 광야로 나왔다. 그는 야하츠에 이르러 이스라엘과 싸웠으나, 이스라엘이 도리어 그를 칼로 쳐 죽이고, 아르논에서 야뽁까지, 곧 암몬 자손들의 영토에 이르기까지 그의 땅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암몬 자손들의 경계는 굳건하였다.

 

민수 21,29-31 불행하여라, 모압아! 크모스의 백성아, 너는 망하였다. 그는 아모리인들의 임금 시혼에게 제 아들들이 쫓겨 가게, 제 딸들이 끌려가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활을 쏘아 대자 헤스본에서 디본까지 다 망하였다. 우리는 노파까지, 메드바까지 다 황폐시켰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아모리인들의 땅에 자리를 잡았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는 이스라엘 12지파중 하나인 르우벤 지파가 이곳을 분배받고 지배하는 이 지역은 땅이 기름지고 물이 풍부하고

농업과 목초 재배에 유리하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기독교 도시로 번성하던 이곳은 7세기 중반, 현재의 요르단, 팔레스타인, 시리아에 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대규모 지진으로 인하여 도시가 파괴되어 1000년 이상을 폐허로 남아 있다가 1800년대 말 마다바에서 남쪽으로 80km지점에 위치한 케락이라는 도시에서 2000여명의 기독교인들이 집단으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도시가 재건되는 계기를 맞는다. 당시 아랍 전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 터키는 이주민들에게 교회는 8세기 경까지 이 도시에 많이 있던 교회터를 찾아서 그 위에 짓도록 함으로써 비잔틴시대의 교회들이 발굴되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1800년대 말에 발굴된

성 조지(St. George)성당이다.

 

 

 

성 조지(St.George) 성당

 

성당 내부에 아름다운 그림들이 성스러움을 더한다. (사진 조수현)

 

 

마다바에 머물던 라틴선교사 슈마허(G.Schumacher)가 처음으로 도시의 주요 흔적을 찾아냈으며, 1897년에 클레오파스 키킬리디스(Cleopas Kikilidis)신부에 의해 마다바 지도가 발견되었다.

 

현재 성 조지 성당에 남은 지도의 모습. (사진 조수현)

 

 

이 지도는 지금까지 발견된 로마-비잔틴 시대의 가장 오래된 모자이크 지도다. 현존하는 성지 지도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원 후 542년 11월 20일에 봉헌된 예루살렘의 네아 교회가 지도에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유스틴 황제 (기원후 527-565)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성당 옆 박물관에 전시된 마다바 지도의 모습이다. (사진 조수현)

 

 

이 모자이크 지도는 고대 근동지역의 지도로서, 북쪽의 레바논의 시돈과 두로(티르), 남쪽으로는 이집트의 북부 델타 지역까지 연결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중근동 지역의 성지와 주요 도시를 다양한 색상의 돌을 이용하여 약 30평 넓이의 크기였으나 절반 이상이 훼손되고 지금은 10평 정도 분량만 남아있다. 

하지만 지도의 가장 중심점인 위치에 예루살렘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사해, 요단강, 예수님 세례 터, 아르논 강, 세렛 강, 나이 강 등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비잔틴 시대의 예루살렘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마다바 지도 외에도 아름다운 모자이크 작품들이 많이 있다. (사진 조수현)

 

 

 

잠시 성당을 벗어나 마다바 시내를 둘러보았다. 평온하고 여유로운 모습의 사람들과 거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얼핏 봐서는 누가 무슬림이고 기독교인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그만큼 두 종교가 조화롭게 지내고 있다는 뜻이리라 생각했다.

 

여유로운 마다바 시내의 모습 (사진 조수현)

 

 

시내를 돌아다니다, 마다바 성당에서 머지않은 곳에 이슬람 사원(모스크)가 있는 것을 보았다. 종교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운 공존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마다바 내에 위치한 모스크. (사진 조수현)

 

 

 

 

느보 산

 

느보 산은 마다바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산이다. 모세는 이곳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다 죽었다고 전해진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모세가 느보 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기만 하고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두 가지 전승이 기록되어 있다. 그 하나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반도에서 야훼께 반역한 죄 때문이라고 한다.(신명 1:37, 4:2)

다른 하나는 모세가 시나이반도 씬 광야 카데스에서 하느님의 명을 어긴 죄 때문에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없었다고 한다. 즉,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백성을 불러 모은 뒤 바위를 향해 물을 내라고 명령하라고 했는데, 모세는 이를 따르지 않고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내리쳤다고 한다.(민수 20:1~13) 이 불충으로 모세는 느보 산에서 임종하였다고 한다.(민수 27:12~14, 신명 32:48~52, 34:1~8)

 

느보산 입구에 들어가 조금 올라가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다녀 간 것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사면이 각각 다른 무늬와 글이 새겨져 있고 웅장함이 느껴지는 비석이다. 이 비석이 마치 이곳의 표식처럼 우뚝 솟아있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기념비. (사진 조수현)

 

 

희미하지만 저 멀리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과 사해가 보였다. 아마 모세도 이쯤에서 가나안 땅과 사해까지 내려다 봤을 것이다. 이렇게 뜻 깊은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나무들 사이로 저 멀리 가나안 땅과 사해가 보인다. (사진 조수현)

 

 

지금 서있는 곳에서 사해를 보지 않고 뒤돌아서면 구리로 만든 커다란 십자가와 뱀이 보인다. 이것은 모세가 불뱀으로 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지킨 것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것을 보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구리 십자가와 뱀. (사진 조수현)

 

모세의 무덤 위에 모세 기념 교회가 394년에 처음 세워졌다. 이후 수차례의 확장 보수 공사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고 예배 또한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는 공사 중이라 막아놔서 교회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요르단에도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성지가 많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마다바의 성 조지 성당과 느보 산이다. 아랍에는 이슬람만 있을 것이라는 편견이 사라졌는가 이곳에서 모세의 기운과 축복을 받아가길 바란다.

 

 


해당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 영현대 저작권이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며, 비영리 이용을 위해 퍼가실 경우 내용변경과 원저작자인 영현대 워터마크 표시 삭제는 금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