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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발레 만큼 우아한 러시아 미술!

작성일201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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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러시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하얀 설경과 하얀 자작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시베리아 벌판일 것이다! 그렇다면 러시아 예술로 범위를 좁혀보면 어떨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발쇼이 발레단과 아이스 발레 등을 떠올리지만 그 이상 어떤 예술들이 발전해왔는지 모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러시아는 발레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이번에는 잠시 눈을 돌려 러시아의 다른 예술들을 돌아보고 취재하고자 한다. 그럼 지금부터 러시아의 미술을 알아보자!


 러시아의 미술은 러시아 발레만큼 우아하고 아름답다. 러시아 미술은 대체적으로 18-19세기가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소비에트 체제 아래에서 그려졌던 실용적, 사실주의적 그림들을 비롯하여 사회체제에 저항함으로써 등장하게 된 다양한 화풍들이 어우러져 있다. 역사와 함께 미술사 또한 격변의 시대를 맞이했던 때인 19세기의 아름다운 작품 안에는 미술가들의 저항정신과 고뇌, 희망 등 이 담겨있다. 지금부터 러시아 박물관을 통해 러시아 미술을 둘러보자!





박물관 관람을 시작하기 전 준비할 것!



1. 운동화

(간혹 미술관에서 조명이 예쁘다는 이유로 예쁜 옷에 예쁜 구두까지 신고오시는 분들이 있다. 작은 전시회는 좋지만 의자가 거의 없는 이런 큰 박물관에서 운동화는 필수!)

2. 사진기

(박물관에서 사진을 찍으면 실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물론 플레쉬 사용은 금지이나 에르미따쥐에서는 추가비용 지불하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티커를 붙여준다. 러시아 박물관에서는 1m 거리정도를 남겨놓고 사진촬영을 마음껏 할 수 있다!)

3. 국제학생증(ISIC), (교환)학생증

에르미따쥐에서 ISIC를 보여주면 공짜! 국립 러시아 박물관에서는 ISIC를 통해 할인을 받을 수 있고 러시아 대학 학생증이 있다면 공짜!

4. 박물관 지도

커다란 박물관 안에서 보고 싶은 작품들은 어떻게 찾을까 입구에서 지도를 꼭 가져가자!

5. 오디오 대여

설명을 들으며 100%즐기는 작품 감상

6. 큰 가방은 반입 금지! 작은 핸드백을 준비하자.




에르미따쥐


 겨울궁전, 에르미따쥐 박물관 사진= 남궁경




국립 러시아 박물관




러시아 국립 박물관  사진-남궁경





서태지만큼 파격적인 자퇴, 14인으로 시작된 ‘이동파’를 아십니까




지금으로부터 조금 먼 19세기 187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왕립 미술학교에서 공부하던 14인이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들은 학교에서 촉망받던 인재들로 곧 학비와 유학길을 보장받아 유럽에서 그림을 그리며 평탄한 생활이 보장되어있던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자퇴목적은 하나. ‘예술의 주제와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는 것. 당시 지도층은 유럽 미술만 숭배하며 미술가들에게 신화나 종교적 그림을 그리길 강요했고 그들의 작품세계에 적지 않은 한계를 만들었다. 졸업 작품을 준비하던 그들에게 학교는 어김없이 제한적인 그림을 그리라고 하였다. 결국 14인은 “졸업작품의 주제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것이 거절 당하자 모두 자퇴를 선언한다.

14인은 화려한 미래에서 방향을 바꾸고 서민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당시 가난한 서민과 시베리아 영토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에게는 미술작품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자신들을 억압하는 정권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서민들에게도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위해 14명의 화가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자신들의 작품을 들고 러시아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러시아를 이동하며 전시회를 열었다고 하여 훗날 ‘이동파’로 불리어 지게 된다. 이동파 화가로는 이반 크람스코이(Ivan Kramskoy· 1837~1887)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풍경화 전문가인 이반 시시킨(Ivan Shishkin·1832~1989)이나 바실리 수리코프(Vasily Surikov·1848~1916), 레핀도 유명하다. 풍자적인 그림을 그렸던 바실리 페로프(Vasily Perov·1833~1882), 이사크 레비탄(Isaac Levitan·1860~1900) 등도 있다. 14인의 화가들 이후에 많은 화가들이 그들의 뜻에 합세해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아이바좁스키 또한 그들과 공통된 방향을 작품에서 나타내었다.




 아이바좁스키 (1817년 7월 29일 ~ 1900년 5월 5일)




이반 아이바좁스키 출처 = 위키피디아





아이바좁스키는 바다그림의 거장이다. 일생동안 바다그림을 그리며 살다간 아이바좁스키는 아르메니아 출신의 화가이다(구 소련시절 러시아의 영토).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학교를 다니며 그림 실력을 쌓았고 훗날 지금의 터키지역까지 이동해 그곳의 아름다운 바다를 그렸다. 그의 그림은 너무나 정교하고 섬세해서 처음 보는 순간 헉! 하고 숨을 크게 들이 쉬게 되었다. 아! 바다다!




아이바좁스키의 그림들 사진= 남궁 경




러시아에 오기 전 나는 수업시간에 아이바좁스키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여러 장의 러시아 그림들을 보며 그림을 설명하는 수업이었는데 그림의 정교함과 색감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국립 러시아 박물관에 전시된 아이바좁스키의 바다그림을 보고나서는 실제 그림의 정교함에 한번, 그림의 크기에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 그의 작품에는 바다의 위대한 힘과 무한의 광대함이 담겨있다고 한다. 아이바좁스키의 작품이 걸려있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바닷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그림들을 발견했다!





이반 아이바좁스키 ‘아홉번째 파도’ 사진 = 남궁 경




‘아홉번째 파도’ 사람들이 파도를 해쳐 나가기 위해 힘쓰는 모습이 매우 긴박해 보인다.

사람들이 올라타 있는 나무 왼편에 작게 아이바좁스키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 사진= 남궁 경





아이바좁스키의 작품에서 바다는 무한한 힘을 가진 자연력의 상징이자 동시에 자유와 로맨틱함을 동시에 표현한다. 바다에 몰아치는 무서운 폭풍은 거대한 자연력이며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이다. 파도는 바다가 가지는 본질적 특성을 의미하고 구름 또한 자연 현상으로 로맨틱한 아름다움을 주지만 동시에 비와 폭풍,눈,회오리등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에 비해 그의 그림속에 나타난 인간은 거대한 자연력과 대비되며 인간이 탄 배는 인간의 피조물로서 또 다른 형태의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다. <아홉 번째 파도>의 붉은 태양은 로맨틱함과 동시에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위의 작품을 볼 때 바다위의 인간은 자연의 힘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자유와 의지를 상징한다.






이반 아이바좁스키 ‘파도’ 사진 = 남궁 경





부서진 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사람을 그린부분. 사진 = 남궁 경




니꼴라이 레릭



일평생 바다를 그리며 살아간 아이바좁스키가 있다면 산을 그리며 살아간 러시아 화가도 있다. 이 화가는 우연히 이번 기사를 준비하며 러시아 홈스테이 주인과 대화를 나누다 알게 되었다. 아이바좁스키를 좋아하는 나에게 알롁 아저씨는 아름다운 산을 그리기로 유명한 레릭을 알려주셨다. 알고 보니 그의 작품 또한 내가 박물관에서 보았던 것 이었다!




그림속의 칼날, 일리야 레핀 (1844년 8월 5일~1930년 9월 29일)



한국에서 수업을 듣거나 러시아 미술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등장하던 미술가 ‘일리야 레핀’. 당시엔 관심이 별로 없어서 레핀의 존재외에는 그의 작품이 어떤 것 들이 있는지 몰랐다. 그러나 굉장히 유명한 러시아 작품들 중 레핀의 작품이 많았다.

레핀은 사회비판과 풍자를 그림 속에 잘 담아낸 사실주의 화가이다. 그는 러시아 회화의 거장으로도 불린다. 러시아 회화란 제정러시아 시대부터 소비에트로 이동하는 시기를 말하며 위에서 언급했듯이 격변의 시기였다.










현대 추상미술의 창시자 칸딘스키 (1866년 12월 4일~ 1944년 12월 13일)




 러시아 박물관 본관을 지나 19-20세기 작품이 있는 전시장으로 발을 옮기면 전에 보았던 웅장하고 장엄했던 그림들과 다르게 현대적 감각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계단을 올라 방으로 눈을 돌리면 아! 추상미술의 시작 되었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추상미술 작품들이 한가득인 방을 지나고 지나다 보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을 만나게 된다. 어지러이 늘어진 선들의 움직임과 그 속의 색. 도대체 이게 뭘까 생각이 들면서도 혹시 이건가 추측해 보는 재미에 빠져드는 작품. 바로 칸딘스키의 작품이다.










그는 러시아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법률자로서의 미래를 꿈꾸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택한 아주 신기한 케이스의 사람이다. 그는 모네의 작품을 보며 많은 영감을 받았고 곧 유럽으로 넘어가 공부를 시작한다. 그는 독일에서 여러 작품들을 보며 공부했고 서서히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칸딘스키는 추상미술의 창시자로 불리지만 그도 처음부터 추상미술로 그리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풍경화도 그리고 말 타는 기사의 그림들을 주로 그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선들은 간소화되었고 점점 추상미술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국립 러시아 박물관에 있는 칸딘스키의 작품들은 거의 완벽한 추상의 모습을 갖춘 작품들이다. 그에 비해 에르미따쥐에 전시된 작품은 좀 더 이른 시기에 완성된 작품으로 색과 선이 얼마나 추상적으로 변했는지 알 수 있다. '구성', '푸른산' '검은선들' '즉흥' 등을 그림.





색채의 마술사 샤갈 (1887년 7월 7일 ~ 1985년 3월 28일)




마르크 샤갈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샤갈은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이다. 그는 러시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힘들게 자라다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를 오게 된다. 그는 유태인이라 도시 출입을 위한 통행증 발급이 어려웠으나 아는 지인의 도움으로 임시 통행증을 만들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 대학에서 2년간 공부를 한다. 샤갈에게는 사랑하는 약혼녀 벨라가 있었는데 그가 프랑스 유학도중 그녀를 잃을까 많이 두려워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속에는 벨라와 함께있는 모습이 자주 나오며 얼마나 연인을 사랑하는지 느껴진다. 1914년 전쟁이 터지며 고국으로 돌아온 샤갈은 1915년 벨라와 결혼을 하는데 전쟁통에 그려진 그의 작품에는 어려운 상황에 굴하지 않는 사랑이 담겨있다.안타깝게도 국립 러시아 박물관에 있던 샤갈의 작품이 전시회로 인해 현재 박물관에 없었다.



 러시아인들의 예술문화는 많은 러시아인들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잘 계승되었고 보존되어 왔다. 예로 그들의 작품은 상인 뜨레챠코프 같은 인물을 통해 수집되었다. 러시아 화가의 그림이 있는 박물관을 세우고 싶었던 상인 뜨레챠코프는 당시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쳐주며 가난했지만 재능있던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을 사주었고 훗날 자신의 수집품들을 모스크바 시에 기증한다. 그리하여 시는 뜨레챠코프의 뜻을 기리며 그의 이름으로 된 박물관을 세우고 시민들에게 러시아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국립 러시아 박물관에도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박물관을 가서 매우 놀랐던 점은 러시아 전국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관광 온 사람들이 모두 자국의 박물관에 가서 관람을 하고 따로 도트 신청을 하여 미술사 그리고 역사를 들으며 공부한다는 점이다. 부모님들은 작은 아기부터 학생들까지 데리고와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줄을 서고 진정한 산 교육장을 통해 역사를 보여주고 자긍심을 새겨주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한국 전통 미술과 한국 미술가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하고 자랑한다면 분명 한국 전통 미술도 러시아 미술처럼 더 사랑받는 날이 오리라! 다가오는 주말에 모두 가까운 박물관 혹은 미술관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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