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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하철 4호선, 수안역 안 잠든 임진왜란 속으로.

작성일201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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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지하철역에 왠 역사관이!

 

  벚꽃이 휘날리는 계절 4월은 낭만이 피어나는 계절임과 동시에 대학생에게는 과제가 봇물처럼 흘러넘치는 계절이다. 부산의 역사와 관련해 수업을 듣는 대학생들이 평소 가보지 않던 부산의 명소와 유적지를 찾아 분주하게 다니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나 또한 과제를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중, 지하철역 한 쪽 구석에 평소에 눈에 들어오지 않던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어제 갔던 역사관과 엇비슷해 보인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니 넓은 공간에 녹슨 철제 칼과 투구, , 갑옷들이 전시되어 있다. 과연 이곳은 어디이며, 왜 이곳에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걸까.

 

 

 

언뜻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지하철역.

 

 

  평소 우리들이 이용하는 부산 지하철 4호선 수안역의 한 쪽에는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이 함께 만들어져 있다. 언뜻 보기에는 그냥 지하철역과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자세히 보면 꽤 넓은 장소에 다양한 유물들과 프로그램을 비치해뒀다. 먼저 수안역 안에 왜 역사관을 만들었는지부터 알아보자.

 

 

 

 

왜군을 막기 위해 만든 못, 동래읍성의 해자(垓字)’

 

 

400년 전 임진왜란.

 

  2005년 부산교통공사의 수안역 건설현장에서 조선 전기 동래읍성의 해자가 별견되었다. 여기서 해자(垓字)’라고 함은 보통 성을 적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성을 둘러싸고 있는 강이나 연못이다. 동래읍성의 해자가 의미하는 바는 이곳에서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 전투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뼈와 무기 등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 박물관과 부산교통공사가 함께 임진왜란의 참혹함과 선조들이 어떻게 항쟁을 했는지를 기리기 위해 수안역에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을 세우게 되었다. 그렇다면 임진왜란 역사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동래읍성을 수안역에서 한 눈에!

 

 

1:100으로 축소한 동래읍성.

 

  역사관에 들어서자마자 볼 수 있는 것은 동래읍성을 1:100으로 축소해둔 모형이다. 이 모형은 동래 읍성의 이전 모습을 동래부순절도를 토대로 거의 흡사하게 복원을 했다. 가운데 있는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 어디가 성문이고, 어디가 군영인지 등 읍성의 주요 시설들에 대해서 쉽게 알 수 있도록 만들어 놨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모형의 양쪽에 한자로 단문의 글이 적혀있다. 왼쪽 단문은 왜적이 동래읍성으로 쳐들어와 송상현 장군에게 전즉전의 부전즉가아도(戰則戰矣 不戰則假我道,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거든 우리에게 길을 비켜 달라)라는 팻말에 쓰인 단문이다. 오른쪽 단문은 그에 대한 송상현 장군의 대답으로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리기는 어렵다)을 써서 팻말을 일본 장군에게 던졌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며 이런 장군이 있었기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 400년간 묻혀 있던 임진왜란의 흉터, 해자 속 유물.

 

 

 

임진왜란은 탄식하는 이안눌.

 

  임진왜란을 흉터라고 표현한 이유는 역사관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해자가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어 어떤 유물들이 있나라고 쳐다보는 순간 눈앞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사람의 유골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함락 당한 부산의 백성들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후 해자 속으로 버려졌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유골이 나왔다는 것이 이 가설을 충분히 증명해 준다. 그리고 역사적 기록에서 1608년 동래부사로 부임한 이안눌(李安訥)동래맹하유감(東萊孟夏有感)’에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그 당시 상황을 송상현 부사를 쫓아 성 가운데로 모여 들어온 백성들이 동시에 피바다를 이루고 쌓인 시체 밑에 몸을 던져 천 명 백 명 중에서 한 두 명이 살아남았으며.. (중략).. 곡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은 오히려 슬프기가 덜할 것이나, 휘두르는 적의 흰 칼날 아래 온 가족이 다 죽어서 곡해줄 사람조차 남기지 못한 집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라고 표현하였다.

 

 

 

 

 

해자에서 나온 유물들.

 

 

  유골 이외에도 그곳에서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전계되어 왔는지에 대해 보여주는 무기와 무구, 활과 화살, 갑옷과 투구 등 전쟁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이 녹슨 상태와 복원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일본이 조총을 사용하여 침략할 당시 조선 군인들은 직궁(直弓, 활이 곧음)과 만궁(彎弓, 활에 굴곡이 있음) 그리고 칼과 창으로 대항을 하고, 의병들과 백성들은 집에 있는 곡괭이나 막대기를 들고서 대항을 하였다. 의병들과 백성들이 곡괭이를 들고 전투를 치룰 정도면 얼마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었는지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단편적으로 군사들의 수와 무기 수준을 고려해보았을 땐, 일방적인 전투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3.영상으로 보는 임진왜란 역사관, 두 배 쉽게 바라보기!

 

 

 

영상을 보고 역사관을 관람하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역사관의 한 방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니 몇몇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영상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이 영상은 임진왜란 당시의 동래읍성과 동래읍성의 해자가 가지는 의미 등에 대해서 역사 전문가가 나와 설명을 해주는 내용이었다. 단지 전시된 유물들과 쓰인 설명들을 읽기만 했다면 꽤 지루했을 법한데, 영상관에서 임진왜란과 해자에 관한 전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역사관을 둘러보니 재미도 있고, 이해도도 훨씬 높았다. 특히, 송상현 장군의 시를 읽을 땐 그의 충절 때문에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까지 생겼었다. 만약 역사관을 방문한다면, 먼저 영상관에서 영상을 본 후 둘러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4. 내 손으로 왜군을 막아보자! 화차와 장군전 무기체험.

 

 

 

조선 무기체험을 하고 있는 아이들.

 

 

  임진왜란 당시 우리는 재래식 무기 말고는 없었던 걸까 물론 아니다! 영화에도 있듯이, ‘신기전한 번에 100발 이상을 동시에 쏠 수 있는 다연장 로켓발사기이다. 신기전은 주로 조선 전기에 여진족과 임진왜란 당시 많은 왜적을 물리치는데 꽤 큰 공을 세웠다. 장군전은 1~4km까지 날아가는 장거리 미사일과 같다. 장군전을 동거(董車)에 실어 움직이고, 한 장군전 당 파괴력은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왜군들한테 큰 위협이 되었다.

  게임은 간단하게 이뤄졌다. 세 개의 버튼이 있는데 좌우의 버튼을 통해 방향을 조절하고, 바람의 세기를 계산하여 가운데 버튼으로 발사를 한다. 다섯 발 중 세발은 맞추면 승리하는 게임인데, 처음해서 세 발을 맞추기엔 바람을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그만큼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던 무기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적과 배경은 왜군들과 왜군들의 성으로 나오기 때문에 무기체험에 기분은 한 층 더 끌어올려 줬다.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데 꽤 괜찮은 프로그램인 것 같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지하철역에 만든 이유는 우리가 겪었던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을 잊지 말자는 의미와 동래읍성을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송상현 장군과 해자에 시체가 묻힌 그 수많은 군인과 의병, 백성들의 죽음이 있었기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 것 같다. 때론 우리는 바쁜 삶 속에서 우리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곤 한다. 이번 기회에 부산 지하철 4호선 수안역 임진왜란 역사관을 통해 우리에게 소중한 그 가치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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