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호국의 전당 '6.25 전쟁기념관'을 가다.

작성일2013.06.10

이미지 갯수image 9

작성자 : 기자단

 

                                                                                                                                       (Photo by 진영승)  

 

6월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누군가는 당장 치러야 할 기말고사가 생각날것이고 누군가는 다가올 여름방학을 떠올릴것이다.

그럼 호국보훈의 달 6월 이라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 아마도 당신의 머릿속엔 현충일과 6.25전쟁이 가장 먼저 떠오를것이다. 우리는 6.25전쟁을 얼만큼 알고 얼마나 올바르게 알고 있을까 국사책을 뒤적여보기 어렵다면 함께 호국의전당 6.25 전쟁기념관을 가보도록하자.

 

◆ 전쟁기념관 그곳은 어디


 

                                                                                                                        (사진출처_naver지도)  


전쟁기념관은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4호선과 6호선이 닿는 삼각지역에서 내려서 도보로 5분정도 걸으면 전쟁기념관에 도착할 수 있다. 버스를 타면 삼각지역정류장 또는 전쟁기념관 정류장에서 내려 갈 수 있다. 또한 서울시티투어버스가 지나는 곳이기도 해서 서울을 찾는 국내외관광객들도 어렵지 않게 방문할 수 있다고 한다. 관람시간은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이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므로 관람을 원한다면 참고하도록 하자.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다양한 문화행사와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고 관람할 때 전시해설사를 따라 관람한다면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  그곳에서 보고 느끼는 6.25전쟁

 

고등학교 때 보던 먼지 쌓인 국사책을 펼쳐보면 너무 딱딱하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있다. 

우리가 잘 알지못했던 6.25전쟁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전쟁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전사자명비와  F-5비행기의 모습 (Photo by 진영승)  


 

먼저 기념관 내부로 들어가는 길에 전쟁 당시 사용된 탱크와 전투기가 전시되어있는 옥외전시장에서는 대형무기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모형이아닌 실물이 전시되어있어서 지금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웅장함이 느껴진다. 옥외전시장을 돌아 전시관내부로 가는 길에 전사자명비를 지나게 된다. 셀 수 없을 만큼 빼곡히 적힌 전사자들의 이름과 그 아래 놓여진 한 송이의 국화꽃에서 숙연함이 느껴진다. 

 

이제 전시관내부로 들어가보자.

 

 

▲ 호국추모실에 전시된 전사자 명부 (Photo by 진영승)   


 

내부로 들어서면 정면에 마주하는 호국추모실을 만날 수 있다. 호국선열들의 넋을 추모하는 공간인 만큼 엄숙한 분위기로 가득한 곳이다. 호국추모실의 입구에 보이는 전사자명부는 전쟁기념관에 발을 내딛는 관람객으로부터 하여금 경건한 마음을 되새기게 한다. 추모실 내부에서는 호국영령들을 상징하고 그 넋을 기리는 조형물들을 볼 수 있다. 

 

 

그럼 다음으로 6.25전쟁실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6.25전쟁실에서는 전쟁의 발발배경부터 전쟁의 경과, 정전협정에 이르기까지 6.25전쟁의 모든 과정이 전시되어있다. 국사책을 펼치면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6.25역사의 한페이지가 이곳에 다 모여있다. 그 발자취를 따라 6.25전쟁의 역사를 되짚어보자.


▲ 6.25전쟁실의 내부전시모습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문 (Photo by 진영승)


 

전쟁의 시작은 북한의 무력남침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 전체에 걸친 북한의 무력남침에 의해 일어나게 된다. 갑작스런 공격에 우리 국군은 속수무책으로 3일만에 수도 서울을 북한에게 점령 당하고 만다.

 

유엔연합군의 창설
북한의 무력남침이 일어난 지 하루 만에 이 소식을 접한 미국에서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게 된다.
전쟁중단의 결의문을 북한에 통보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되어 본격적으로 국군을 지원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맥아더장군이 유엔군사령부의 초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
유엔연합군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북한의 공세에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까지 후퇴를 하게 되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우리 군은 낙동강에 방어선을 구축한다. 마지막 보루였던 부산과 그 일대를 지키기 위해 국군과 유엔군, 경찰과 학도병까지 모두가 함께 낙동강 방어선을 필사적으로 사수했다고 한다.

 

모두가 반대 했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맥아더장군
6.25전쟁에서 최고의 작전 중 하나로 꼽히는 인천상륙작전이 그 당시엔 모두의 반대가 있었던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당시 인천은 서울에 인접해있어서 그 중요성이 매우 컸지만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수로가 좁았기 때문에 군함들이 접근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작전사령부에서도 인천상륙작전을 반대 했지만, 맥아더장군의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지휘력이 이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전해진다.  



▲ 맥아더장군이 사용한 모자/선그라스/파이프 (Photo by 진영승)


 

중공군의 개입으로 또다시 후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다시 서울을 되찾고 이렇게 승리할 것만 같았던 분위기 속에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은 다시 후퇴를 결정하게 된다. 국민들은 또다시 얼어붙은 한강을 걸어 남쪽으로의 고달픈 피난길에 오른다.

 

마지막까지 멈출 수 없었던 고지전 그리고 휴전협정
계속되는 전쟁에 부담을 느낀 연합군과 공산군은 정전협정을 위한 접촉을 시작한다. 휴전회담의 시작에서 정전협정까지 걸린 시간은 2년. 그 과정에서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전개되었다고 전해진다.  영화 ‘고지전’을 통해 많이 알려지기도 했었다. 2년여간의 협정접촉 끝에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최종적으로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이로써 6.25전쟁도 잠시 휴식을 갖게 된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공군의 공격(좌측상단) / 휴전협정을위해 모인 유엔측,북측 대표단(우측상단)  

우리군의 고지쟁탈전 전투모습(좌측하단) / 영화 '고지전'의 한장면(우측하단)  

(사진_전쟁기념관 홈페이지, 영화 '고지전 '스틸컷_네이버 이미지) 

 

 

6.25전쟁이 남긴 흔적들 


3년이 넘는 전쟁은 우리나라에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을 가져왔다. 약 15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20만명의 행방불명과 25만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피해액도 최대 3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이다.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본 듯 머릿속에 남는것 같다.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를 기억하고, 잊고 있던 애국심과 호국정신을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기회를 가져보도록 하자.


 

 

 (Photo by 진영승)

 

역사바로알기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는 요즘,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는 우리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작은 실천하나하나부터가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가 될 것이다. 현충일을 단순한 빨간 날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태극기를 달며 잠깐이나마 호국선열들을 기리는 생각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시간이 된다면 현충원이나 전쟁기념관등을 직접 방문해보고 호국정신의 의미를 몸으로 느껴보는 경험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역사책을 하나하나 들춰보는 것은 힘들겠지만, 호국의 달을 맞아 전쟁기념관방문기를 함께하니 흥미 있는 역사공부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결코 호국선열들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6.25전쟁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라는 것을 명심하고, 전쟁의 고통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나부터가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호국정신을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모두 호국정신을 기리고 호국보훈의 의미를 마음속으로 되새겨보자. 

 

 

 

 


해당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 영현대 저작권이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며, 비영리 이용을 위해 퍼가실 경우 내용변경과 원저작자인 영현대 워터마크 표시 삭제는 금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