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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간의 수요일

작성일201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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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사진=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홈페이지.



최근 일본 내각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다. 오사카시 시장(市長)인 하시모토 도루(이하 하시모토)는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성이 없었던 자발적인 행위로 이는 전시 중 범죄가 아니며 성 노예라고 표현할 수도 없다는 말을 내뱉었다. 일본의 아베 총리 역시 이에 가세하여 일본군 ‘위안부’는 전쟁범죄가 아니라는 말과 함께 공식석상에서 계속되는 국제사회의 질문에 외면으로만 대처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낮 12시,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일본대사관 앞에는 수십 명의 사람이 몰려든다. 이들은 이렇게 21년째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이들은 누구이며, 왜 이곳에 모이는 것일까



  60여 년 전, 13살의 꿈 많던 소녀의 이야기


 여느 날과 같이 집 뒤뜰에서 나물을 뜯고 있었다. 그때, 일본 순사들이 찾아왔다. 순사는 나에게 아버지가 못하게 한 공부를 시켜주겠다고 말했다. 같이 공부하러 좋은 학교로 가자고 했다. 나는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동생에게 글을 읽어주는 다정한 누이가 되고 싶었다. 어머니가 장에 나가 고기를 끊을 때, 판자에 적힌 글자를 또박또박 읽어주고 싶었다. 일본순사가 이상한 책을 가져와 법이라며 우리 집 물건을 가져갈 때마다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일러주고 싶었다. 다만, 순사는 부모님께서 걱정하시니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옆집 사는 내 동무에게는 돈 많이 버는 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했단다. 그렇게 시작한 세월이 벌써 어언 60여 년.


 그곳엔 학교도 공장도 없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들이 끊임없이 있을 뿐이었다. 커다란 고기 무게 재는 저울 위에 올라가 무게를 달던 그 순간부터 새까만 내일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우리를 ‘정신대’ 혹은 ‘위안부’라고 불렀다. 우리는 일본 군인들의 성적 노예로 취급되었다. 재수가 좋지 않아 죽임을 당해도, 몸에 칼로 낙서를 당해도, 혹은 몸 일부가 잘려나가도 그 누구에게도 원망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참 많이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방이 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 사람들 앞에, 부모님 앞에 차마 설 수가 없었다. 그 누구 앞에서도 이 모든 치욕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도중 나와 같은 일을 당했다는 사람이 TV에 나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만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 사람은 저기 앉아서 내가 겪은 일을 나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말한다. 그녀의 이름은 ‘김학순’이라고 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이라는 곳이 있다고 했다. 피해 신고 전화를 받는다고 말한다. 나는 내 인생 어쩌면 가장 큰,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용기를 내어보기로 했다.



 *위의 글에 등장하는 서술자는 실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설정한 가상의 인물이며, 글 속의 인물 ‘김학순’은 실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로 세상을 향해 처음 용기를 낸 인물이다.






                                    ▲ 수요집회에 참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김복동 할머니. 사진=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홈페이지.

 



 고백


고백은 늘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널 좋아해, 혹은 내가 잘못했어. 등 모든 고백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 세상을 향해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용기를 냈던 여성이 김학순이다. 1990년 일본 정부는 국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자리를 가진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군이 개설한 것이 아니며 일본 정부의 관할이 아니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에 여기저기 퍼져있던 피해자들은 분노하기 시작한다. 내가 여기 살아있다고, 내가 그 피해자이며 당신들이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것인데 이제 와 아니라고 감히 말을 한다고. 1991년 광복절 하루 전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은 최초 공개 증언을 하는 용기를 낸다. 아직도 난 일장기만 봐도 가슴이 울렁인다는 그녀의 고백은 많은 피해자를 일어서게 하였다. 그렇게 긴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수요집회의 한 참가자가 자신이 만들어 온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홈페이지.

 

 

 21년간의 수요일


매주 수요일 낮 12시,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일본대사관 앞에는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든다. 이들은 각자의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한 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같은 문제에 대해 동의하고 있음을 표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다. 또한, 같은 문제에 대해 잊지 않고 깨어있음을 알리는 표시이기도 하다.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인정하고 사죄하라!’


수없이 외쳐왔다. 매주 수요일이면 피해자들과 뜻을 함께하겠다는 용기들이 모여 ‘사죄’와 ‘배상’을 부르짖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1년이 지났다. 21년째 이곳 안국동 일본대사관 앞에는 마치 일상처럼 사람들이 모여든다.


지난 수요일, 이곳 일본대사관에는 여느 때처럼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이곳 시위에서는 재미있는 점이 있다. 무더위에도, 선선한 가을 날씨에도, 따스한 봄날에도 일본대사관의 창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는 점. 블라인드를 내려놓고 단 한 번도 열리지 않는 그 창을 향해 수십 명의 사람이 계속해서 구호를 외친다. 경찰들이 이곳 수요 집회 주위에 있지만 어떤 행동도 제재하지 않는다. 이는 수요 집회가 지난 21년간 ‘평화’를 우선으로 하여 이루어졌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중고등학생들도 눈에 띈다. 한 고등학생 참가자는 ‘학교에서 교과서로 역사 시간에 이 문제를 알게 되었고, 뜻이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이게 됐다. 마치 시간이 맞아 참석할 수 있어서 뜻깊다.’라고 말한다. 몇몇 젊은 사람들은 ‘과거를 외면하지 마라.’, ‘일본 정부, 비겁하지 마라.’ 등의 플래카드를 만들어 들고 있었다.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두 분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로 거의 매주 수요집회에 참석한다. 고령인 탓에 거동이 쉽지 않지만, 이 자리만은 꼭 찾는다. 5월의 수요일, 일본으로 순회강연 및 시위를 떠난 김복동 할머니는 ‘내가 자리를 비워 어떡하누. 그 자리가 텅 비어있으면 어떡하누. 오늘이 수요일인데......’라며 걱정 어린 목소리를 전해왔다. 이렇듯 먼 타지에 나가서도 이들 피해자는 많은 사람이 문제를 알고 조속한 해결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벌써 2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피해자들에게는 삶의 모든 시간이 온전하게 녹아든 긴 세월이었다. 이젠 많은 피해자가 세상을 떠나 58명의 생존자만이 남아있다. 너무도 길고 고생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오늘도 계속해서 각종 망언만을 남기고 있다. 이곳 수요 집회에서는 오늘도 계속 소리치고 있다.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배상!



*수요집회에 참여하고 싶다면 매주 수요일 낮 12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 별도의 참가신청 없이 함께하면 된다.


 





  아는 것만으로도 함께 할 수 있는 이야기



 다음 중 가장 올바른 표현은

①정신대,   ②위안부,   ③종군위안부,   ④일본군 ‘위안부’



  정답은 무엇일까


 우선 1번 정신대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정신대(挺身隊)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뜻으로 일본을 향해 몸을 바침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남녀를 불구하고 징용, 징병 등의 목적으로 한국인을 착취했던 일본의 행위를 모두 포함하게 되는 말로,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을 지칭하기에 적당하지 못한 표현이다.


다음으로 2번 위안부. 위안부는 위로하며 마음의 안정을 주는 여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안부는 지극히 가해자의 입장에서 지어지고 불리는 이름이다. 즉, 일본 군인이 자신을 위안해주는 여성이라는 뜻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며 나아가 일본군 ‘위안부’는 위로와 안정을 가져다주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행동에 동원된 것이 아니다. 이에 2번 위안부도 적절치 못한 표현이다.


 다음으로 종군위안부. 종군(從軍)은 군을 따른다는 의미가 있다. 이에 종군위안부는 군인을 자발적으로 따라다니며 위안부 활동을 했다는 뜻으로 이 표현 역시 일본이 역사를 부인하기 위한 입장에서 사용하는 표현일 것이다. 즉, 종군위안부는 일본 군인들을 한국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따라다니며 위안부 활동을 했다고 말하기 위해 사용하는 명칭이다. 따라서 이 표현 역시 적절하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일본군 ‘위안부’. 앞선 세 가지 표현이 모두 잘못된 것이고 일본군 ‘위안부’라고 지칭함이 맞다. 여기서 ‘ ’를 붙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 ’라는 표시를 통해 일본군에 의해서 비자발적으로 ‘위안부’ 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있게 된다. 즉, 일본군과 일본정부에 의해 행해진 범죄였으며 그들이 ‘위안부’라고 이야기함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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