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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아닌 현재, 게이샤의 길 하나마치

작성일201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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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교토, 주목받다!  

 

2006년, 아서 골든의 ‘게이샤의 추억’을 원작으로 한 영화 ‘게이샤의 추억’이 전 세계에 상영되었다. 기자 본인도 일본에 대해 처음 신비한 느낌이 들게 된 것이 그쯤이 되겠다. 많은 사람이 일본의 문화, 그중에서도 ‘게이샤’의 문화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게이샤의 유명세에 덩달아 유명세를 탄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의 천 년의 수도, 교토였다.

 

여기에서 아이러니는, ‘게이샤’라는 호칭은 도쿄에 거주하는 기생들을 의미하는 호칭이다. 진작 교토에서는 ‘마이코’, ‘게이코’로 나뉘어 불리고 있다. 마이코는 게이코(게이샤)가 되기 위해 연습 및 공부를 하고 있는 수습생의 호칭이다. 이 마이코들과 게이코들이 존재하는 장소를 ‘하나 마치’라고 부른다. 그 중 한 곳인 현지인에게도 생소한 유서깊은 ‘미야가와초’ 의 하나 마치를 소개하고자 한다.

 

        ▲정장 차림의 노신사와 기모노 차림의 여인.                             ▲마이코. 종종걸음으로 어딘가에 향하고 있었다.                     

 

지지 않는 꽃, 마이코와 게이코

 

방금 언급한 바와 같이, 교토에 오래 거주한 현지인들도, 미야가와초의 하나 마치를 방문해본 경우는 드물었다. 하나 마치는 마이코, 게이코 들이 일을 하는 고급 요정들이 줄 서 있는 지역이다. 그러기에 하나 마치(花街, 꽃 마을) 라고 불리고 있다. 마이코, 게이코들이 일을 하는 고급 요정들은 대부분 단순한 간판 하나만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 첫 번째로 방문을 한 손님은 거절하는 ‘一見さんおり’ 라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방문 경험이 있는 손님의 소개가 없으면 방문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불경기 때문에 그 전통이 없어지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는 소문은 존재한다.

 

           ▲하나 마치를 지나 가고 있는 현지인들.

 

하나마치의 꽃, 마이코, 게이코 들의 활동은 저녁부터 시작되지만, 그들의 하루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아침 일찍 시작하는 청소부터, 기예의 연습, 노래의 연습, 그리고 악기 연주 등. 화장도 스스로 하기에 도중에 그만두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의문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 입는 기모노만 해도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니, 게이코 한 명을 기르는 데에는 수억 원이 넘는 돈이 든다고 하는 이야기도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 

 

 ▲마이코 변장을 체험하고 있는 관광객들


그러기에 게이코는 만나는 데에도 비용이 많이 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인과 전혀 떨어져 있지는 않다. 관광객을 위하여 1~2만엔 (한화 12~24만 원)에 게이코의 복장부터 화장까지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변장한 관광객들과 마이코, 게이코의 경우, 동양인은 쉽게 구별이 안가는 경우가 있다. 특히, 처음 교토를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걸음걸이, 걸을 때의 시선 등 마이코와 게이코는 거리를 걸을 때는 대부분 멈추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 감으로 길에 서서 사진을 찍거나 이리저리 둘러보고 다니는 마이코, 게이코는 대부분 관광객이라고 보는 것이 낫다. 

 

그뿐만 아니라, 카미시치켄등의 극장에서 매년 봄, 가을에 마이코, 게이코 들의 단체공연을 관람하거나, 함께 술을 마실 기회가 오곤 한다. 교토 3대 마쯔리(축제)중 하나인 기온 마쯔리 에서도 마이코, 게이코들이 맥주를 따라주는 코너가 존재 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평소에는 비싼 가격으로 그들을 접하지 못한 일반인들 에게도 축제의 때가 되면 그들을 가까운 곳에서 구경할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하나 마치 

 

하나 마치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게이샤의 등장은 16세기 후반이 최초였다. 한국의 경주 천년의 역사에 비하면 짧은 편이다. 그리고 마이코, 게이코 들의 숫자도 과거 (1920년도에는 8만명이 종사)에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아진 수치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마이코 지원자 숫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이코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중학교 졸업자만이 지원할 수 있게 되었으며, 대부분 성년이 되는 20살까지 계속하다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직은 하는 등 사회에 복귀하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에야 할 점은 짧은 역사이지만 아직 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야가와초의 하나 마치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이 수 십 년, 그 이상의 세월을 겪은 건물들이다. 그 건물들은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마이코, 게이코 등의 무형 문화재들에 뿐만이 아니라 일반인, 주민이 거주하고, 사용하는 장소들이다. 사실상 보존을 한 것은 나라가 아니라 주민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고급 요정의 직원 

 

일본인에게 있어, 마이코, 게이코 들은 존경의 대상이다. 일본의 문화를 짊어지고 이어가는 중요한 매개체 들이기에, 그뿐만아니라, 마이코, 게이코 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교토 출신이라는 말 한마디에도 사람들은 존경을 표하곤 한다. 역사를 보존해 있고 그것을 이어가는 이들이 교토에서 살아간다는 무의식 속의 생각이 남아 있는가 보다.  

 

이렇게 아름다운 거리가 유지되고, 마이코와 게이코 등과 같은 역사가 몇백 년째 존재하며 전 세계 사람들이 그에 대해 알고 있고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은 배워야 할 점이 틀림없다. 역사가 우리의 기억 속에 남는 추억만으로 남지 않고, 현재와 공존하며 더욱더 그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키고 홍보하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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