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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은 잊기 위함이고, 아날로그는 간직하기 위함이다

작성일201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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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디지털은 잊기 위함이고, 아날로그는 간직하기 위함이다. 사진가 로버트 폴리도리(Robert Pollidori)의 한 마디에 아날로그의 가치가 담겨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일회성으로 오고 가며 동시에 즉시 다른 것으로 교체되는 디지털 매체에 우리는 얼마나 길들여져 있는가. 디지털 매체와 그 곳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은 항상 새로워지지만 동시에 비어있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이 비어있는 간극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아날로그이다. 아날로그의 대표격인 책, 한 권의 책 속에는 책을 읽는 나와 나의 주관적인 느낌, 감정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책에 끌리는가.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 경우를 떠올려보자. 잘 구성된 목차와 컨텐츠를 훑어보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필자의 경우는 제목과 커버 사진 혹은 그림이 주는 분위기로 읽고 싶은 책을 정하는 편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글과 사진의 조합이 주는 느낌이 곧 그 책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자연스럽지만 알게 모르게 계산된 글과 사진의 편집과 배열은 책의 의도와 분위기에 다가서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단순한 책 한권에서 끝나지 않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런 책 만들기의 과정을 예술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보는 색다른 전시를 찾아가 보았다. 바로 대림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이다.


1/슈타이들展을 찾아나서다


경복궁 3번출구에서 직진해서 3분정도 걷다보면, 대림미술관의 안내판이 나타난다.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전시장까지 걸어가고 있노라면, 벽에 다양한 전시 정보가 새겨져있어 더욱 전시 내용을 기대하게 만든다.



사진/임지예


전시장에 도착하게 되면, 1층에서 발매를 할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슈타이들 전시와 그의 생애, 작품에 관련한 서적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데 티켓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책을 구입하면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대림미술관 온라인 홈페이지(www.daelimmuseum.org)에 회원가입을 하는 것만으로도 성인 요금이 5,000원에서 3,000원으로 인하된다. 미리 가입하고 가면 더욱 편리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대림미술관 온라인 페이지에서 회원 가입을 마치고 신분증으로 인증하면 2천원 할인된 가격에 관람할 수 있다,사진/임지예


전시는 총 4층의 구획된 공간에서 진행된다. 칼 라거펠트(샤넬), 로버트 프랭크(사진가), 권터 그라스(노벨문학상), 짐 다인(화가)와 함께 작업한 대표적인 내용들을 보여준다.1층의 북스토어 및 안내데스크, 2층에는 게르하르트 슈타이들과 작업과정과 Paper Passion을 테마로, 3층에는 타이포그래피와 칼라거펠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주된 테마로, 4층에는 전통 프린팅 기법에 대한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다양한 예술가와의 협업의 과정, 종이, 글자디자인, 이미지, 대표적인 책들의 작업과정이 모두 들어서 있으니, 시간을 넉넉히 잡고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관람을 하면 된다. 매주월요일은 휴무라는 점도 기억해두자. 전시는 오는 10월 6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관람할 수 있다.



전시관 입구에서 슈타이들전 기획전시에 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사진/임지예


2/슈타이들, 그는 누구인가 


본격적인 관람에 앞서 슈타이들이란 인물이 생소하다. 슈타이들은 게르하르트 슈타이들(Gerhard Steidl)은 1950년 독일 괴팅엔(Gottingen) 출생으로, 17세부터 독학으로 습득한 인쇄기술로 인쇄 출판업을 시작했다. (1972년 첫 번째 책의 출판을 시작으로 80, 90년대에는 문학, 사진, 예술서적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유르겐 텔러(Jurgen Teller),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짐 다인(Jim dine), 그리고 로니 혼(Roni Horn) 등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할도르 락스네스(Halldor Laxness)와 귄터 그라스 (Gunter Grass)를 포함한 문학작가들과의 작업으로 명성을 획득하였고, 샤넬(Chanel), 펜디(Fendi), 엘리자베스 아덴(Elizabeth Arden) 등 상업브랜드 및 구겐하임미술관(The Guggenheim Museum, Bilbao), 휘트니미술관(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The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등 세계 유수의 뮤지엄과 갤러리의 인쇄물도 함께 제작해오고 있다. 아날로그 매체와 종이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편집, 디자인, 마케팅 등 책 제작에 있어서 모든 공정을 직접 진행하는 그는 현재까지도 매 년 400권이 넘는 책을 꾸준히 출판하며 세계적인 퍼블리셔(Publisher)로서 왕성한 활동 중이다. 

(작가소개 참조 http://www.daelimmuseum.org/exhibition/exhibition_1.docl_dspl=A&p_tab=2&p_year=&no_dspl_asbl_seq=451)



사진/임지예


그와 함께 협업했던 아티스트와 작가의 이름을 들여다보면 출판계의 거장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책은 단순히 내용을 담는 것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소장가치 있는 예술이라는 개념은 다소 생소할 수도 있지만, 출판가, 인쇄가도 엄연한 예술가라는 것을 그가 증명해보이고 있다. 



사진/임지예


입구에서 티켓을 보여주고 2층 전시관에 올라가게 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관람을 즐길 수 있다. 기계와 사람이 흑백의 사진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보그, 바자, 엘르와 같은 유명 매거진과 에르메스, 롤스로이스와 같은 명품브랜드와 함께 작업을 해온 코토 볼로포가 슈타이들과 슈타이들 작품과 관련한 사진을 찍은 것이다. 분주하고 다소 복잡해 보이는 작업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슈타이들이라는 인물이 더욱 궁금해지면서 창작에의 욕구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의 작업과정은 마치 공장과도 같이 계획성 있게 이루어진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사진들은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과도 연관이 있는 사진이다. 사람들의 손으로 정교한 것들을 창조해 내는 일을 담아낸 것에 관심을 기울였던 코토 볼로포와 슈타이들의 일상의 공간이 결합된 창조 과정이 사진 속에 담기게 된 것이다.


책 인쇄-제작-바인딩 공간은 보통 따로따로 분리되 있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슈타이들은 이 세가지 공간을 모두 결합시켜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게 했다. 한마디로 융합을 꾀한 셈이다. 아이디어 선정, 디자인, 제작까지 슈타이들 빌레라는 4층의 공간에서 이루어 진다. 작업을 위한 4층의 공간 속에서 그만의 독립적이면서도 연속적인 창작업이 분주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개발자 스토리를 듣는 것 같이 그에대한 궁금증이 조금 해소되었다. 


3/좋은 책은 자취를 남기고 



사진/임지예


컬러사진과 흑백사진이 쭉 배열된 공간을 쭉 둘러보던 중 어디선가 향기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 향기, 어딘가에서 많이 맡아본 향기이다. 바로 Paper Passion 이라는 종이책 냄새를 가진 향수이다. 갓 인쇄된 책의 묘하고 매력적인 냄새, 그리고 개별적인 책의 냄새를 담은 향수 냄새는 어딘가 친근하면서도 서점이나 인쇄소에서 맡을 수 있는 좋은 책 냄새였다. 구겨진 종잇장으로 뒤덮인 작은 부스에서 왠지 모르게 파리 여행을 하던 중 책 냄새를 맡으며 반나절을 있었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한 서점가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구매가는 15만원이다.   


 향  

                                              by Gunter Grass


아직 나 자신을 찾아 헤매던

어린시절

열심히 탐독했던

책들 중 한 권을 여는 순간

나는 낡은 종이에 사로잡혔지.

개가 냄새를 남겨

자신의 넓은 구역을 확보하듯,

나는 냄새 밴 책들에

둘러싸였기 때문이지.

책을 읽는 자는 향기가 난다.


이 향수 시를 지은 권터그라스는 노벨상 수상자로도 저명한 작가이다. 바로 옆에 위치한 전시관에서는 그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대한 메시지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책을 제작하는 데 있어 일러스트를 직접 그려서 표현하고자 했는데 이는 아날로그로 만들어진 것은 각기 다르며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지털로 a를 인쇄하면 모두 같지만 아티스트가 a를 10개 그리면 모두 다르다. 아날로그는 풍요로우며 더 많은 경험을 선사한다" 는 말이 나의 오디오 가이드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디오가이드는 대림미술관 어플로도 무료 사용이 가능해서 간편하며, 전시 전반에 관한 이해를 더 높일 수 있다.  


4/책은 전시다 


사진/임지예


아코디언 북같은 형태를 지닌 이 사진들은 다이아니타싱의 "Film Room"을 길게 채우고 있었다. 한개의 사건, 한 명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 것 같은 이 작품은 누군가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연속적인 이미지들로 만든 책이라 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책이 곧 전시가 된다는 개념을 전달하고 있다. 얼핏 보면 책이 곧 전시가 된다는 것이 특수한 개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그 반대를 생각해보면 쉽다. 이전까지는 전시를 하기위해 혹은 전시의 내용을 담기 위해 책을 제작했다. 즉 책이 부수적인 개념인 것이다. 하지만 이 연속적인 마치 영화의 장면들을 조각낸 것과 같은 이 사진이 담긴 아코디언 북은 엄연히 그 자체로서 하나의 전시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길게 늘어뜨려서있는 이 사진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그대로 깃들어 있는 이 작품은 슈타이들의  작품은 아니지만 아날로그의 가치를 가장 잘 담아 돋보이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5/타이포그라피



사진/임지예


아코디언 북의 여운을 뒤로하고 3층으로 올라가면, 이제는 익숙한 활자들이 반겨준다. 타이포그라피는 서체디자인과 조판을 위한 글자들의 배열로 정의 된다. 가장 최적의 아름다운 타이포그라피는 책의 가독성 뿐만 아니라 미적 가치를 높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전시장에서는 각기 다른 타이포그라피가 쭉 늘어서 있다. 샤넬의 서체 18세기부터 1900년 중반부에 만들어진 모던한 글자체까지 내 맘에 드는 서체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요즈음 기업이나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잘 표상하는 것이 또한 서체이다. 현대자동차에 '현대체'가 있듯이 샤넬에는 '샤넬체'가 있다. 두 서체 모두 기업 이미지의 깔끔함, 모던함, 고급스러움을 잘 나타낸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다.  나의 아이덴티티를 표상할 수 있는 서체는 내가 쓰는 필기체인걸까 순간 나를 위해 개발된, 나를 잘 표상할 수 있는 서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임지예


앞 전시장에서 샤넬체를 맛보고 이번 전시장에서는 어딘가 익숙한 책을 한권 접할 수 있었다. 바로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전시 의 원본이 되는 사진집이었다. 책에서 나는 냄새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직접 종이의 질감과 결을 만져볼 수 있는 체험 테이블이 친절하게 셋팅되어 있었다. 어렸을 적 검은 색도화지를 만지는 듯한 질감의 이 사진집은 그 속에 담긴 샤넬 옷을 입은 멋진 셀러브리티들의 모습에서 눈과 손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6/슈타이들과 칼라거펠트



사진/임지예


슈타이들과 많은 사진, 패션, 문학계의 거장들이 콜라보 작업을 했던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에드루쉐의 이미지 작업과 소설 가 결합되어 아트북 이자 텍스트 북이 창조되었고, 현대 사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로버트 프랭크의 도 각기 다른 버전으로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단연 칼라거펠트와 슈타이들의 샤넬 패션 카탈로그였다. 슈타이들에게 작업 요청을 했던 칼라거펠트 사이에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진다. 바로 세일즈로 직결되는 패션 카탈로그를 만드는 데 있어 슈타이들이 부담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에 칼라거펠트는  "패션을 파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파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에 슈타이들도 책을 만들 때 오히려 세일즈에 대한 고민 없이 정보와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 독자만을 염두에 두고 카탈로그 제작에 열정을 기울인다. 패션 카탈로그 하나 하나를 놓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컨셉과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어 특히 여자들은 쉽게 눈을 떼지 못할 전시이다. 동시에 세일즈를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카탈로그에 표현된 옷, 악세서리, 향수 하나하나를 다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패션을 담은 광고, 책 모두가 예술작품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 전시장에서 생생히 맛볼 수 있다. 


7/짐다인과 전통 프린팅 기법



사진/임지예


짐 다인의 전통 프린팅 기법이라는 테마로 4층의 전시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책이었는데, 이 52권의 책은 1년동안 1주일에 책 1권씩 출판한다는 짐 다인의 아이디어이다. 'Hot dream'이라는 52권의 책 시리즈는 단 500세트만이 존재하며, 각기 다른 내용과 컨셉. 드로잉, 시, 사진등으로 채워져 있다. 직접 책을 보며 확인 할 수 있다. 책의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알록달록한 판화가 눈에 띈다. 마치 동화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판화는 그 자체의 전시품보다 영상에 나타난 작업의 과정이 더욱 흥미로워 눈길을 뗄 수 없었다. 팝 아트의 선구자로 유명한 짐 다인의 작품은 비비드한 색채를 사용해 동화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8/책은 가치를 담은 예술이다



사진/임지예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혹은 전시장 바닥 구석구석에 의미 있는 슈타이들의 말이 기록되어 있어 하나 하나 읽는 재미가 있었다. 다채로운 전시 뿐만 슈타이들의 작업복을 비슷하게 차려입은 도슨트의 설명과 분위기 연출도 일품이었다. 처음 도착했던 1층으로 가면 또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슈타이들의 작업내용과 관련한 책들이 즐비해 있다. 전체적으로 너무나 잘 구획된 전시였고 구석구석 슈타이들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적절한 설명, 그림, 글 뿐만아니라 촉각과 후각까지 자극하는 흥미로운 전시였다. 비오는 날, 따분한 날 슈타이틀전에 와서 잠시 책의 매력에 풍덩 빠져보는건 어떨까 책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진정 책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슈타이들에게 책이란,
"고품질의 책이란 훌륭한 디자인, 아름다운 종이, 최상의 프린팅, 좋은 냄새를 가져야 한다. 그러한 책들은 또한 읽기 위해서만 만든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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