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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작성일201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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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최근에 친구와 "Welcometo North Korea"라는 체코 다큐멘터리를 봤다. 북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북한과 제일 가깝기도 하고 한민족인 남한에서 살지만 실제 북한은 누구도 없는 미스터리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체코 관광객들이 자기 나라의 과거로 돌아간 듯이, 공산주의 시기를 다시 떠올리기 위해서 북한 여행을 갔다. 하지만 거기서 것들은 그들의 기대보다 훨씬 심각했고 유럽의 공산주의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현대적이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한국과 달리 북한은 다른 나라와 어떤 시기와도 비교가 정도로 가난하고 모든 것이 지도자에게 달려 있는 이상한 나라다.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것들, 장소들, 사람들이 가짜다. 가게에서 전시된 음식들 가짜고 가게의 선반들이 비어 있다. 북한엔 사람이 없듯이 병원에는 환자가 없다. 병든 사람이 필요 없으니깐. 식당은 없다. 호텔 내부엔 손님이 없고 호텔 식당도 비어 있다.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닌 슬픈 얼굴들로 가득한 나라다. 살아남기 위해서 적어도 평생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좋은 사람들에게만 연기를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나라는 밤만 되면 한국처럼 휘황찬란이 빛나지 않고 잿빛으로 변하며 지구의 블랙홀이 되는 느낌이 든다


북한 시민의 마음조차 정확히 파악 없다. 표현의 자유 모든 인간 권리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북한에서의 여행은 무조건 가이드와 함께 해야 하고 모든 관광객들이 같은 코스를 거치게 된다. 코스의 마지막 목적지는 바로 남북 경계선인 DMZ. 경계선을 지키는 군인의 말을 빌자면: "우리는 한국과 민족이고 우리도 자유롭게 한국으로 여행하고 싶으며 통일을 바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이 나라 사이에 끼어들었기 때문에 서로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라고 말했다. 말을 듣고 놀랐다. 북한 쪽에서 통일을 바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만아니라 무조건 북한은 한국을 막무가내로 제일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한민족의 통일 바라고 있지만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을 적으로 여기는 같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의 관계, 미국에서 받은 영향 등을 다시 돌릴 수도 없고 있다고 해도 과연 돌리고자 할까 


한국 통일에도 장단점이 있다. 통일 바라는 사람이 있고 통일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통일이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통일 바라는 사람의 마음이 크지 않을까 싶다. 중에는 경계 넘어 가족이 있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들을 떠나 단순히 한민족의 통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통일을 이루어 못사는 북쪽 사람들을 살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한국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고 다른 관점, 한국 쪽에서 경계의 상황을 직접 체험하러 영화를 같이 봤던 친구를 데리고 DMZ 다녀왔다. 

 

 

임진각 

 

 

경의선 타고 문산까지 갔다가 기차로 갈아타서 10분만에 임진각에 도착했다. 임진각에 내리자마자 기분이 묘했다. 앞에서 보이는 이정표 때문이었다. 평양 <-----> 임진각. 임진각 다음 역은 바로 북한의 수도- 평양이라고 있었다

임진각 전망대에 올라가 주위를 살펴봤더니 정말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차가 전혀 보이지 않고 관광객 말고는 사람도 없다. 뒤돌아서 보는 한국의 산맥, 구름이 얹혀진 산맥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주위의 자연이 도시 자연보다 산림이 배는 우거져 있었다. 그리고 앞에 펼쳐지는 건너편은 거기 어딜까 바로 북한인가 임진강 반대쪽을 자세히 봤지만 아무도 안보였다. 주위에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없었고 낚시하는 아저씨들도 없고 결국 아무도 없다. 북을 연결하는 다리가 보이지만 다리조차 비어 있다. 다리는 바로 "자유의 다리".

 

 

“자유의다리” 

 

 

"자유의 다리" 임진강의 남과 북을 잇는 유일한 통로라고 한다. 원래 경의선의 철교였던 다리는 6.25 전쟁 열차 운행이 끊겼고 다리가 폭격으로 파괴되기까지 했다. 전쟁이 끝나고 전쟁포로가 다리를 건너 자유를 얻을 있도록 다리를 다시 복구했다. 12773명의 전쟁포로가 자유를 얻을 있었기에 다리의 이름은 "자유의 다리"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유 다리 얽힌 이야기를 듣고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유 다리라고 부르지만, 이렇게 좋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결국 다리를 건너지 못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슬픈 추억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리 건너편에 자기 가족을 놔두고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다리는 헤어짐의 다리가 된다. 정말 불공평한 일이다. 코앞에서 가족이 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평생 그들을 본다고 생각하면 아픔을 해소 있을까 그래서 해마다 실향민들이 곳에서 고향과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한다. 다리 접근 막는 철조망에는 많은 리본이나 다른 글귀들이 붙어 있다. 글의 내용은 대체로 나라의 통일을 바라는 소원들을 담고 있다.

 

 

임진각에 전시 되어 있는 경의선 장단기차 또한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기차는 한국 전쟁 폭격을 맞아 멈춰버린 기차다. 기차 전체가 총알로 둘러 쌓여 있다. 기차를 보고 실감이 났다, 평화스러운 가운데 끔찍한 일이 버러진 . 마치 쏘는 소리가 들리는 같다. 이제 이상 임진각이 이렇게 평화적인 장소로만은 보이질 않는다.

 

 

3땅굴

 

임진각에서 다리 건너 구경하고 싶으면 관광 버스를 타야 된다. 관광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면 그때부터는 사진 촬영 금지다. 다리 건너 우리의 목적지는 3땅굴이었다.

 

어른쪽 사진 출처:http://blog.daum.net/tkdgjs0/5431268

 

"하나의 갱도는 10개의 핵 폭탄보다 효과적이다"


3땅굴은 북한이 기습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군사통로다. 4 땅굴이 있는데 3땅굴은 서울에서 44km밖에 되는 거리로 제일 가깝다. 3땅굴의 폭은 2m, 높이는 2m, 지하평균 73km 지점을 1635m 굴착, 남쪽으로는 5갈래로 나눠진 출구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의 전술 능력은1시간당 3만명의 병력을 통과 시킬 있는 규모다.


밑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헬멧을 쓰고 작은 열차를 탔다. 열차에서 내린 지점에서 고개를 숙여 터널의 끝점까지 걸어가야 되었다. 끝엔 작은 구멍 하나가 있었는데 구멍을 통해서 북한 쪽의 땅굴이 보였다. 별일이 아니더라도 반대쪽의 어두움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관찰한다고 생각하면 겁이 났다. 또한 1시간이란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땅굴 통과할 있다는 사실도 정말 놀랍고 무섭다 나라가 통일 된다면 자유의 다리를 건너 남으로 자유롭게 통과할 있지만 그런 방법보다 너무나도  터널을 힘들게 파서 몰래 통과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 


도라전망대 

 

 

땅굴에서 나와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이번에는 직접 북한을 있는- 도라전망대다. 망원경에 500원을 넣어 앞에서 펼쳐져 있는 북한을 더욱 자세히 있었다. 하지만 앞에 보이는 북한은 유령 도시다. 다양한 크기의 건물들로 이루어지는 개성시 내에는 아무도 보였다. 멀리 깃대에 바람에 물결치는 인공기가 북한 지역인 것을 알릴 뿐이다. 이렇게 가까이서 한국과 같은 민족인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통일을 바라면서도 매일 매일 힘들게 일하고 때로는 굶어 죽기도 한다. 한국과 이렇게 가깝지만 상황이 완전 다른 나라가 앞에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찬 감격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상황이기도 하다.

 

도라산역 

 

 

마지막으로 도라산역에 도착했다. 도라산역은 크고 아주 현대적이다. 하지만 운영하지 않는다. 어쩌면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게 이런 상황에 처해져 있는 역일지 모른다. 역에 들어가자 벽에 붙인 포스터에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번째 역입니다"라고 있다. 희망적인 말이다. 언젠가 도라산역이 다시 운영하게 되어서 한민족을 연결시키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희망을 잃으면 되니깐.

  도라산역 방문으로 우리의 DMZ여행이 마무리가 되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도 때로는 무섭기도 했다. 지금 상황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통일에 대한 희망을 잃어서는 된다. 양쪽에서 통일을 꼽아 기다리고 바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출처: tourdmz.com

사진: Pawel Op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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