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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이별,<해외입양>

작성일201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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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사진출처: http://wielawfirm.com/xe/infowork/page/6

 

 살면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명절에 찾아뵌 부모님과의 인사, 사랑했던 연인과의 헤어짐, 유학 가는 친구와의 작별인사 등도 짧고 긴 것의 차이일 뿐이지 모두 일상속의 ‘이별’ 에 속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별은 우리가 선택하는 이별이고 준비된 이별이기도 하다. 반면에 태어나자마자 선택할 여지도 없이 이별을 경험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부모님에게 길러지지 못하는 입양아들, 그중에서도 해외로 보내지는 해외 입양아들이다.

 

 2007년도 ‘world partners adoption’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 해외 입양 순위에서 5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해외로 보내지고 있는 실정이다. 2005년 kbs2 추적60분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우리나라를 ‘아이를 수출하는 나라’ 로 표현하며 이러한 부분을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결과를 보며 우리는 부끄러워 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매우 매우 부끄러워야 한다. 해외 수출이 많다는 이야기는 곧 국내 입양이 활발하지 못하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입양아과 입양 가족에 대해 남아있는 편견의 시선들은 우리나라 국내 입양의 활성화를 더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다.

 

                                             ▲ 2012년도 국가별 해외 입양아 순위(사진출처:http://news.zum.com/articles/5346639)

 

 

 

 사실 필자도 교환학생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국내 입양 뿐 아니라 해외 입양에는 크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노르웨이 친구,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국에서 입양되어 노르웨이에서 살게 된 친구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입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해외입양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필자가 입양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해준 친구들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해외 입양 시작의 역사

 

 우리나라 해외입양 시작의 역사는 60년 전의 6.25 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전쟁당시 전쟁으로 인한 고아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해외 입양은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하나의 대책이었다. 최초로 이루어진 입양은 1955년 미국 농부 출신인 홀트가 8명을 입양하고, 다른 미국 가정으로 한국 아이 12명의 입양을 알선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홀트는 ‘홀트아동복지회’ 를 발족하며 15000명이 넘는 고아를 입양보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입양 기관으로 남아있다. 더불어 최근 홀트씨는 몸이 매우 불편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 매채와의 인터뷰에서 "입양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안식처를 짓고 싶다" 라고 말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들어냈다. 현재는 정부의 국내 입양 유도 정책으로 대한민국은 해외 입양순위 세계 5위에 머무르고 있지만, 1980년대에는 해외 입양 순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홀트 아동 복지회 이사장 말리 홀트씨(사진출처:http://www.ytn.co.kr/_ln/0106_201312282050182104)

 

 

 

해외 입양 절차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해외 입양이 아직도 많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절차는 꽤나 복잡하고 어려워서 포기하는 사례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먼저 해외로 입양 보내기 전에 입양기관은 5개월 동안 국내 입양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 5개월 이후에도 희망 가정이 없으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해외 입양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하고자 하는 해외의 양부모는 가정법원에서 열리는 입양 허가 재판에도 출석해야 한다. 그리고 입양할 때까지 최소 두 번은 한국에 방문해야 한다.

 

 

해외 입양의 그림자

 

 

 해외 입양은 옛날에는 전쟁 고아를 막기 위한 국가 정책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OECD 회원국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OECD의 34개 회원국 중에서 유일하게 해외 입양을 보내는 국가이다. 강남스타일을 비롯한 케이팝으로 세계를 뒤흔들고, IT 강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이지만 아직도 세계의 다른 빈곤국가 만큼 많이 해외 입양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화려한 발전의 이면에 남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입양아의 90%가 미혼모의 아이들인 만큼, 우리사회가 미혼모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들이 우리나라를 해외입양 누적순위 1위의 국가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노르웨이 교환학생을 하면서 느낀 건, 노르웨이에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미혼모가 정말 많다는 점이다. 실제 2008년 미국 보건센터의 통계에 의하면 태어난 아이들 중 스웨덴 55%, 노르웨이 54%, 미국 50.4%, 대부분 북유럽은 50%, 프랑스 50%, 덴마크 46%, 영국 44%, 호주 38%, 러시아 25%, 일본 3% 가 미혼모의 아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한국은 유독 1.6%에 불과했다. 이미 성에 대한 생각이 많이 서구화되고 개방적이어 지는 우리나라인데 이정도의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미혼모에게 얼마나 제한적인 사회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처녀가 애를 낳냐’ 라는 부정적인 시선은, 미혼모가 아이를 낳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그녀를 가족과 사회로부터 고립시켜 외롭게 만들고 아이마져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게 만든다.

 

 우리는 저출산문제, 많은 해외입양 등에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미혼모들을 사회의 품안에서 좀더 따듯하게 품어줄 수 있어야 한다. 미혼모들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있는 북유럽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복지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점을 극복 해야지만 한 걸음 더 나은 사회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해외입양의 아픔을 다룬 영화 '여행자' (사진출처: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1049)

 

사실 해외입양 뒤의 가장 큰 그림자는 입양된 당사자들이 가지게 되는 아픔일 것이다. 부모님과 친구들과 다른 생김새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혼란, 친 부모님에 대한 궁금증과 그리움 등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들의 아픔일 것이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에 입양된 한국인들중 72% 가 '백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 한 적 이 있다' 라고 답했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영화 '여행자' 는 이런 입양아들의 아픔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가 더욱 와 닿는 이유는, 영화를 제작한 감독이 실제 입양아였기 때문이다. 감독 우니 르콩트는 1966년 9살의 나이에 프랑스로 입양되었고, 영화 '여행자' 는 그런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있다. 영화는 고아원에 들어와 해외로 입양이 된 아이 '진희' 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아이의 시선에서 낮고 조그맣게 ,관객들에게 입양의 아픔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이다.

 

 사실 필자가 '해외입양' 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교환학생 당시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입양된 친구를 알게 되고 나서 부터이다. 처음에 파티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났을 때 필자는 한국인인 줄 알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냈었다. 사실은 한국인이 아니라 어렸을 적 한국에서 입양되어 노르웨이에서 쭉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그 친구의 외모에서 어딘가 모르게 한국인과는 다른 이국적인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한국에서 입양된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나니 왠지 모르게 다른 노르웨이 친구들 보다 더 그 친구에게 정이 갔고 훨씬 금방 친해졌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입양이 되어 한국에 대한 기억도, 친 부모님에 대한 기억도 전혀 없다고 했다. 또한 그 친구의 누나도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함께 입양되었는데, 같은 부모님으로 부터 입양 된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그 친구의 부모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도 그 친구에게는 같은 모습을 가진 누나가 곁에 있었기에 조금은 덜 힘들었겠다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한번은 그 친구에게 어렸을적 입양아라는 사실 때문에 힘든 점은 없었냐고 물어본적이 있었다. 당연히 '있었다' 라는 대답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너무도 당연하게 '아니' 라고 대답했다. 워낙 노르웨이에서 입양은 흔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부모님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다른 인종' 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것이 당연시 되어있는 문화속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1956년부터 2005년까지 다른 국가들의 한국인 입양 수 통계자료(사진출처:http://hikostat.kr/379)

 

위의 통계자료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노르웨이는 지금까지 많은 한국 아이를 입양했던 국가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그런지 위에서 말한 친구 R군 말고도 필자는 꽤 여러명의 한국인 입양아 친구들을 교환학생 당시 만났었다.

 

 또 한번은 필자가 입양인 친구 R 군에게 지금까지 살면서 한국의 친 부모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느냐고 물어본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는 말했다.

 

" 그들이 나를 버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버릴만큼 큰 이유라면 굳이 찾아가서 물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또 나의 엄마가 미혼모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내가 찾아간다 해도 그녀에게 상처만 줄 것이다. 그래서 찾고 싶지 않다."

 

담담하게 말하는 R군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대답에서 쓸쓸함과 그리움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가 행여나 조금이나마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나쁜 이미지가 없어 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필자와 친구들은 R군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함께 한국음식을 만들어 나눠먹고, 한국 영화도 함께보면서 그가 '한국'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필자에게는 '노르웨이'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생긴 셈이다.

 

▲노르웨이에서 만난 한국인 입양아 R군과 필자 그리고 친구들 (사진:곽예하)

 

 

 

 

 

 해외입양, 누군가는 바다 건너 먼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당연히 우리의 일이고 우리의 문제이다. 우리가 미혼모들, 그리고 입양아를 받아들이는 시선을 바꿔야지만 더이상의 '준비 되지 않은 이별' 을 막을 수 가있다. 또한, 이미 입양보내진 한국 동포들에게도 미움과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따듯함' 그리고 '고향' 의 마음으로 안아 줄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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