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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속으로 떠난 여행

작성일201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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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접해보았을 작품이다. 시적인 문체와 향토적인 풍경 묘사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작품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참고로 봉평은 작가 이효석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나는 한번쯤은 봉평에 꼭 찾아가보고 싶었다. 아름다운 메밀밭의 풍경과 작은 시골 동네의 푸른 내음을, <메밀꽃 필 무렵> 그 자체를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음이 분명하다. 봉평에서는 올해로 16회째 ‘효석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가을날 메밀꽃의 정취를 느끼고 이효석의 발자취를 따라가볼 수 있는 장이었다. 



봉평에 가기 위해서는 장평 터미널에 내려 봉평행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동서울에서 장평까지 소요 시간은 2시간. 나처럼 ‘효석문화제’를 방문하려는 것인지 버스 안에는 외국인들이 꽤 많이 있었다.



장평 터미널에 내리자 한적한 풍경이 나를 반겼다. 봉평에 가까워졌음을 알리듯 주변에 몇몇 있는 음식점은 모두 <메밀꽃 필 무렵>을 간판에 걸어두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봉평행 시내버스는 정해진 시간에만 운영되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에 맞춰 이동하는 것이 좋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배차간격은 1시간 정도이다. 나는 10시 봉평행 시내버스를 타고 축제장으로 이동했다.



봉평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길가에서 판매되는 메밀 관련 음식들이었다. 아직 점심시간이 되기 전이었음에도 주변 식당들은 일찌감치 손님을 받고 있었다. 일종의 상술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소설의 장소들을 재현해놓고 관광객들을 소설 속에 와 있는 듯 만들어 주는 것,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봉평은 메밀밭으로 가득한 마을이었다. 소설가 이효석이 사랑한 메밀밭의 풍경은 바로 이런 것들 아니었을까. 화려하진 않았지만 수없이 펼쳐진 메밀밭과 그 위에 피어난 메밀꽃은 꽤나 목가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봉평에 도착해 처음 메밀밭을 발견한 후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인상적인 구절 몇 개가 머릿속을 스쳤다. 80년 전 그곳에 와 있는 기분이 들어 나는 몇 분을 그렇게 가만히, 이곳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 섰다. 방울 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 생원의 이야깃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

좁은 흙길이 나 있는 메밀밭을 가끔가다 발견할 수 있었다. 흙 위에는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발자국이 드문드문 찍혀 있다. 내가 이곳에서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을 떠올린 것처럼 아마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메밀꽃 필 무렵>의 중요한 소재가 되는 나귀도 볼 수 있었다. <메밀꽃 필 무렵> 속 나귀는 허 생원과 20년을 함께한 동반자이다.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했던가. 저 꼴에 제법 새끼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릉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 쫑긋 세우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새끼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까. 그것 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를 도는 때가 있다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

작품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대목으로, 허 생원이 동이와 조 선달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사실 나귀에게 새끼가 있었다는 점을 마지막에 넌지시 알려주며 허 생원과 동이의 관계를 암시하기도 한다.



직접 소설 속으로 여행을 떠난 만큼 작품과 관련된 공부도 해보자.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관련된 이름 하야 메밀꽃 퀴즈를 만들어 보았다. 실제로 ‘효석문화제’ 축제장 사이에 걸려 있는 문제들 중 몇 가지이다. 정답은 잠시 후에 공개!



  여름 장이란 애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 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

20년 동안 봉평장을 빼놓지 않고 찾아갔던 그리고 나귀새끼를 보기 위해 강릉집에 일부러 찾아갔던 허 생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생전 되어본 적 없는 아버지의 마음까지 학습시킨 것 같다.
활자로만 익숙했던 봉평장의 모습도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축제장 바로 옆에 차려진 장터여서, 소설 속 장면과 달리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이곳에서는 메밀로 만든 여러 음식을 푸드코트()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봉평장을 거닐며 북적거리는 것을 구경하다 허기가 심해져서 나도 메밀음식을 주문해 보았다. 메밀부침개와 옆구리가 터진 메밀전병, 그리고 새콤한 메밀묵사발이다. 전병과 부침개는 느끼하지 않게 맛있었고, 묵사발 역시 메밀의 진한 맛이 잘 느껴졌다. 휙 만들어 재빨리 내어주는 조리 과정과 다르게 인상 깊은 맛이었다.
메밀은 조리 방법에 따라 다양한 메뉴로 먹을 수 있는데, 일본의 경우 메밀소바, 중국의 경우 메밀과자로도 먹는다고 한다. 서양에서도 메밀을 이용한 음식이 다양하다. 미국의 메밀크림케이크, 프랑스의 메밀프릿젤, 이탈리아의 메밀튀김, 슬로베니아의 메밀찜(일본의 소바가끼와 비슷한 것), 스칸디나비아의 메밀팬케이크 등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메밀을 재료로 한 음식이 향유되고 있다.





장터 바로 옆에는 ‘마카 오서요 사투리 한마당’ 중앙무대와 사투리 상품 아이디어 수상작 전시관이 있다. ‘마카 오서요’는 국립국어원 주관 행사로, 지역어 골든벨, 어린이 뮤지컬 그리고 사투리 상품 아이디어 수상작 전시 프로그램 등으로 ‘효석문화제’의 한 부분을 풍성하게 꾸몄다.



“국립국어원이 주최한 ‘마카 오서요 사투리 한마당’과 전국사투리상품 아이디어 공모전은 잊혀가는 지역어의 가치를 제고하고 지역언어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개최되었습니다. 3회째 개최된 이 공모전을 통해 소외돼가는 사투리가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자연스럽고 유쾌하게 향유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립국어원 어문연구과의 홍서현 연구관은 ‘마카 오서요 사투리 한마당’에 대해 두 가지 긍정적인 반응이 있다고 말한다. 봉평 주민의 경우 우리말 문화로(강원도 사투리 문화) 공연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이를 통해 소외감을 치유할 수 있었다는 반응, 그리고 타 지역에서 온 관광객의 경우 내가 몰랐던 말에 대한 학습과 호기심이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다양한 문화 향유에 도움 될 것 같다는 반응이다.



사투리 문구를 이용한 교통카드가 예쁘게 전시되어 있다. 이 외에도 사투리 문구가 담긴 야구모자(롯데 자이언츠), 사투리 컵받침, 사투리 밥공기 등 생활 속에 필요한 용품들에 재미있는 사투리를 넣어 웃음을 유발한다.



담도 생긴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 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거나해짐을 따라 계집 생각보다도 동이의 뒷일이 한결같이 궁금해졌다. 내 꼴에 계집을 가로채서는 어떡헐 작정이었누 하고 어리석은 꼬락서니를 모질게 책망하는 마음도 한편에 있었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

오후 두 시가 넘어서 ‘거리상황극 소설속 명장면’ 프로그램이 시작했다. <메밀꽃 필 무렵> 속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직접 봉평 거리를 걸어 다니며 멋진 극을 보여주었다. 충줏집에서 허 생원과 동이가 만나 신경전을 벌이는 부분이다. 그림자가 더욱더 짙어지는 시각 때문이었는지 더욱 운치 있는 공연이었다. 온몸으로 느끼는 <메밀꽃 필 무렵> 여행은 점점 더 무르익고 있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

재현하지 못한 것은 푸른 달빛뿐. 밤중의 메밀밭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물은 깊어 허리까지 채었다. 속 물살도 어지간히 세인데다가 발에 채이는 돌멩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나귀와 조 선달은 재빨리 거의 건넜으나 동이는 허 생원을 붙드느라고 두 사람은 훨씬 떨어졌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

충줏집에서 나온 배우들은 여울목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개울을 건너던 허 생원이 물에 빠지는 장면이다. 동이가 허 생원을 업어주고, 그렇게 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귀의 고삐를 잡는 왼손잡이 동이를 보고 똑같이 왼손잡이인 허 생원은 자신의 아들임을 확신하지만 나는 궁금해졌다. ‘글쎄, 왼손잡이도 유전이 될 수 있나’



“……봉평서야 제일 가는 일색이었지, 팔자에 있었나 부지.”
아무렴 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를 아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었다. 구수한 자줏빛 연기가 밤기운 속에 흘러서는 녹았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중..

성서방네 처녀와 허 생원이 사랑을 나눈 물레방앗간은 ‘효석문화제’에서 제일가는 인기명소였다. 물레방앗간 옆으로 피어난 이름 모를 꽃과 나뭇잎이 쉴 새 없이 바람에 날려 방문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본 <메밀꽃 필 무렵> 속의 물레방앗간은, 처음 만나는 자와 함께 있어도 충분히 사랑에 빠질 만한, 그런 멋진 곳이었다.



메밀꽃 퀴즈의 정답 발표 시간!
<메밀꽃 필 무렵>을 재미있게 읽었더라도 조금은 헷갈릴 수 있을 문제들이었다. 특히 마지막 문제에서 나온 허 생원의 직업은 소설 첫째 장에 직업을 유추할 수 있을 만한 단어가 아주 잠깐 나오기 때문에 문제 풀기에 살짝 까다로웠을 것이다.

1번, 허 생원이 숨을 헐떡거리며 넘던 ‘노루목’, 물에 빠진 허 생원을 동이가 업고 건너며 혈육의 정을 느끼던 ‘여울목’은 모두 봉평에 있다.
2번, 동이와 허 생원이 다투던 충주집은 충주댁이 사는 집이다.
3번, 허 생원은 옷감을 파는 옷감장수이다.



이효석은 주로 소설을 써서 발표했지만 습작기에는 시를 많이 쓰기도 했으며 희곡과 시나리오, 수필 등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다.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여러 목가적인 작품의 분위기와 다르게, 이효석은 서구적 문화를 매우 사랑했다고 알려져 있다. 빵과 버터 등의 음식, 커피, 모차르트와 쇼팽의 피아노곡 연주와 프랑스 영화감상을 즐겼고 서양 화초가 가득한 붉은 벽돌집에서 생활하며 유럽 여행을 꿈꾸는 듯 매우 서양적 취향을 갖고 있었다. 시골과는 거리가 먼 도시인의 삶이 바로 이효석의 삶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서구지향적 모더니스트가 어떻게 <메밀꽃 필 무렵>을 쓰게 된 걸까 <메밀꽃 필 무렵>은 1930년대, 일본의 압력을 심하게 받던 시기에 태어난 작품이다. 그 동안 ‘조선적인 것’에 대해 있었던 열등감을, ‘조선적인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되려 자신감으로 바꾼 것이 바로 이 <메밀꽃 필 무렵>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15회 이효석 문학상 시상식의 주인공은 <누가>의 작가 황정은 씨. 이날 시상식에는 소설가 성석제 씨도 참석하여 수상을 축하해 주었다.

(문) 다시 한 번 직업을 선택하신다면 어떤 방면으로 나가시겠습니까
(답) 역시 예술의 부문 중 그 무엇이겠습니다.
-이효석 <여백문답> 중..
  
문학과 예술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소설가 이효석처럼, 황정은 씨 역시 그 뜻을 이어받아 훌륭한 문인이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한국 현대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가산 이효석의 고향이며 그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강원도 평창의 봉평. 매년 가을날 봉평은 온통 새하얀 메밀꽃의 향연으로 출렁인다. 도심을 벗어나 찾아가게 된 그곳에서 나는 허 생원과 동이, 낡은 굽을 신은 나귀, 눈부신 메밀밭, 후끈거리는 그때의 봉평장까지 모두 만나고 올 수 있었다.

생애 단 한 번 아름다움을 추억하는 첫사랑의 마을. 그곳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메밀꽃 필 무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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