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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그때 그 시절! 문학 작품 따라 낭만 서울 여행

작성일2017.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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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손영래
고등학교 국어 시간 배웠던 작품들, 그때 배웠던 작품의 해석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다. 아직도 그곳은 우리가 배웠던 것처럼 그대로일까? 대학생이 되어서 그 장소를 찾아간 우리는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이번 여름방학에는 그 작품들이 말한 장소로 떠나보자.


1.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의 ‘성북동’



성북동 산에 번지(番地)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廣場)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祝福)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이하 생략)
김광섭, 범우사, 1969년 [성북동 비둘기]


▲ 한성대입구역부터 시작하는 성북동
▲ 한성대입구역부터 시작하는 성북동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는 1960년대 급격하게 진행되었던 근대화와 공업화의 이면적인 모습을 표현한 시이다. 여기서는 자연 생태계와 인간의 순박성이 사라지는 세태를 강조하였으며 비둘기를 의인화하여 자연에 대한 향수를 나타냈다.


▲ 빈촌과 부촌이 공존하는 성북동 (출처: http://blog.naver.com/sodan4)
▲ 빈촌과 부촌이 공존하는 성북동 (출처: http://blog.naver.com/sodan4)

직접 찾아간 성북동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동네와 같았다. 하지만 성북초등학교를 지나 길상사로 가는 길을 따라가다 내게 놀라움을 자아낸 것이 있었다. 그것은 고급 주택들과 허름한 건물이 단 하나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된 것은 역사적인 스토리가 있다. 서울의 중심부에 가까이 위치한 성북동은 한국 전쟁 이후 피난민과 도시 노동자들이 모여 마을의 모습을 갖추었다. 하지만 70년대 초부터 산업화를 통한 신흥 부자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자신의 부에 어울리는 큰 집을 원하였으나 도심에는 지을 수가 없었다. 이 신흥 부자들은 성북동으로 오게 되며 빈촌과 부촌이 공존하는 동네가 된 것이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는 성북동의 북정마을과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인 성북동 330번지가 함께 있는 성북동. 2017년 성북동의 비둘기들은 그들의 터전이 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선에 의해서 떠나가 버린 것이 아닐까?

조용한 분위기의 성북동에서는 간송 미술관과 길상사 등의 볼거리가 있다. 또한 만해 한용운 시인의 심우장이 있어 좋은 문학 여행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성북동 가는 방법]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버스: 삼선교. 한성대학교 정류장
주변 볼거리: 간송 미술관, 길상사, 한국 가구 박물관, 한양도성


2.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경성역(구 서울역)’



안전지대 위에 사람들은 서서 전차를 기다린다. 그들에게 행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갈 곳만은 가지고 있었다.
전차가 왔다. 사람들은 내리고 또 탔다. 구보는 잠깐 머엉하니 그곳에 서 있었다. …(이하 생략)
박태원, 조선중앙일보.1934.8.1~9.19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현재의 서울역
▲현재의 서울역


▲ 1930년대의 서울역 (출처: http://2014.seoulphotofestival.com/Exhibition.aspx)
▲ 1930년대의 서울역 (출처: http://2014.seoulphotofestival.com/Exhibition.aspx)

이 소설은 소설가 구보가 하루 동안 서울 거리를 배회하며 느끼는 내면을 몽타주 기법과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를 통해 1930년대 일제 강점기의 서울 거리의 풍물이나 사람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소설 중 경성역에서의 구보가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과 구보의 내면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박태원 작가의 표현력이 두드러진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구서울역은 90년이 지난 지금에 봐도 이국적이며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이곳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 흉물이었다고 한다. 서울역 신역사가 생긴 이후 경성역은 방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2009년부터 정부에서 서울역을 복원공사를 시행하였고, 현재는 문화역 서울 284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다양한 전시, 공연 등을 하고 있다.


▲ 서울로 7017 프로젝트의 조감도 (출처: http://seoullo7017.seoul.go.kr/SSF/H/PRO/010/03010.do)
▲ 서울로 7017 프로젝트의 조감도 (출처: http://seoullo7017.seoul.go.kr/SSF/H/PRO/010/03010.do)

이와 함께 ‘서울로 7017’이 지난 5월 20일 개장하면서, 노후화된 서울역 고가도로가 도심을 재생하고 서울역 일대 총 17개를 연결하는 새로운 관광코스로 재탄생 되었다. 주변에 방치되고 잊혀 가는 것들이 있다면 다시 한번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의 관심을 통해서 다시 한번 그들이 세상에서 빛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서울역 가는 방법]
지하철: 공항철도, 경의·중앙선, 1호선, 4호선 서울역
버스: 서울역 버스 환승 센터 정류장
주변 볼거리: 남산, 서울 시립 미술관, 명동


3. 신동엽, 종로 5가의 ‘종로 5가’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群像)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 (이하 생략)
신동엽. 창비, 1989.4.1 [종로 5가]



신동엽 작가의 ‘종로 5가’는 종로 5가 신호등 앞에서 동대문을 묻는 한 소년과 만남을 시작으로 당대 민중들을 서술하고 있다. 산업화와 근대화가 활발하던 1960년대 시대적 상황 속에서 변해 가는 농민과 민중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새벽 5시 30분 찾아간 종로 5가의 광장 시장은 일찍부터 출근하는 시민들과 환경미화원 그리고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들로 분주하였다. 출근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하였고, 환 미화원들은 열심히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인들의 얼굴에는 오늘에 대한 기대가 담겨있었다. 대한민국의 하루는 우리가 자고 있을 어두울 때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 새벽 5시의 광장시장 내부
▲ 새벽 5시의 광장시장 내부

광장 시장이 생긴 후 벌써 한 세기가 지났고 많은 것들이 변화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상인들의 얼굴에 담긴 기대처럼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통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20살 때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밤새 말하던 그 꿈 이야기, 하지만 지금은 말하지 않는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는 게 어떨까. 오늘도 많은 사람은 종로 5가를 찾는다.

[종로 5가 가는 방법]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
버스: 종로 6가, 종로 신진시장 정류장
주변 볼거리: 흥인지문,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 청계천, 광장시장, 창경궁


4. 양귀자, 비가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으로 가야 한다의 ‘가리봉동’



임씨가 따라 주는 잔을 받으면서 그는 온몸을 휘감는 술기운에 문득 머리를 내둘렀다. 아까부터 비오는 날에는 가리봉동에 간다는 임씨의 말을 술기운과 더불어 떠올랐다.
“곰국만 나오나. 큰놈 자전거도 나오고 우리 농구 선수 운동화도 나오지요. 마누라 빠마값도 쑥 빠집니다요. 자그마치 80만원이오, 80만원. 제기랄….” …(이하 생략)
양귀자, 문학과지성사, 1987 [원미동 사람들]


▲ 중국어 간판으로 가득 찬 가리봉동의 골목
▲ 중국어 간판으로 가득 찬 가리봉동의 골목

양귀자 작가의 ‘비가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으로 가야 한다’는 1980년대 도시 변두리에 사는 서민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등장인물 임 씨는 일용직 노동자로 비 오는 날이면 떼인 돈을 받기 위해 가리봉동에 가야만 하는 도시의 빈민층이다. 자본주의에 익숙해진 ‘그’는 임 씨의 정직한 삶을 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이런 모습을 통해 양귀자 작가는 세속적이고 탐욕스러운 현대인들에게 반성을,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디지털 단지와 가리봉동의 골목
▲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디지털 단지와 가리봉동의 골목

가리봉동의 주변에는 디지털 단지가 세워졌고, 그 속에는 수많은 사무실과 쇼핑 아울렛들이 있다. 아침 일찍 찾은 가리봉동에는 불과 하나의 횡단보도를 두고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중국어로 된 간판이 달린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중국말이 자주 들렸다. 거리에는 쓰레기들이 많아 퀴퀴한 냄새가 났다.

가리봉동은 이 소설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소설 속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오히려 더 생경한 느낌이 든다. 현재 가리봉동은 재개발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 가리봉동 사람들은 비가 온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가리봉동 가는 방법]
지하철: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7호선 남구로역
버스: 만민중앙교회 정류장
주변 볼거리: 차이나타운, 가산디지털단지 패션 아울렛


마무리


지금까지 4곳의 문학 작품 속 서울 여행을 소개해보았다. 당시 시대, 사회 속에서 외치던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다시 따라가 본다.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이끌어 갈 우리 20대들. 다시 한번 우리가 배웠던 그때의 책을 펼쳐 보는 것은 어떨까?


영현대기자단14기 손영래 | 숭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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