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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과거를 딛고 공존의 새 희망을 품다, 서울 백사마을 이야기

작성일 2018.05.24

잊힌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1960년대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마을이 서울시 노원구에 있다. 백사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중계동 104번지의 주민들은 1960년대부터 정부의 이주 정책에 따라 보금자리를 옮겨온 사람들이다. 정부는 서울 도심을 개발하려 했고, 당시 용산과 청계천 일대의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구별로 8평 남짓한 땅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권했다.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주민들이었는데, 도심부 개발로 인한 철거민이라는 슬픈 별명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로부터 잊히고 있었다.

여전히 연탄이 필수



백사마을을 돌아보면 무너져 내리는 담과 더불어 연탄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오늘날 연탄은 사회 약자계층을 상징하는 소재가 되었는데, 백사마을의 주민들에게 연탄은 생활필수품이다. 걷다 보면 자그맣게 열린 문틈으로 사람 키만큼 쌓인 연탄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찬 바람이 불 즈음엔 많은 봉사자가 백사마을을 방문해 나눔을 실천한다. 겨울이 아니더라도 봉사자들이 자주 백사마을을 방문한다. 백사마을의 주민 대부분은 고령의 노인들로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범죄와 붕괴의 위험



이미 많은 주민이 떠났고, 남은 주민들은 그 빈자리를 아쉬움으로 채우고 있다. 그리고 아쉬움 속에는 우려도 있다. 워낙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라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고, 관리가 되지 않은 채 방치된 공간이 많다. 이곳에서 범죄나 화재 혹은 건물의 붕괴 등 생활에 위협이 되는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어 보인다. 주민들만의 힘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엔 버겁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민들은 떠나지도 못한 채 주저앉은 신세다.

재개발이라는 새로운 미래로




2005년부터 이어져 온 재개발 논의는 계속 주민들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이제야 첫 삽을 뜨려 한다. 서울시는 4년여의 갈등을 끝으로 올해 재개발 사업을 시행하는 것으로 주민들과 합의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올해 지금의 백사마을은 사라지는 것이다. 재개발은 주민들의 터전과 백사마을의 역사가 갖는 가치를 최대한 보존하는 쪽으로 이어진다. 주민설명회와 재생센터를 통해 1960~1970년대 서민들의 주거 문화생활사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현대적이고 안전한 임대주택 단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민들의 분담금을 낮추는 방향에 대해서도 계속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어 “상생”이 무엇인지를 떠올리게 한다.

상생의 본보기, 공존의 시작, 조화의 가치



노원구청의 백사마을 재개발 관계자는 기자에게 “주민들의 실리에 맞는 개발을 추진할 것이다.”라고 통화에서 말했다. 보금자리를 잃고 싶지 않아 오랜 시간 구청과 갈등을 겪은 주민들과 절충안을 만든 것이다. 철거민이라는 속 쓰린 별명을 떨쳐내지 못했는데 잠시라도 떠난다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힘겨운 선택이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들은 공존을 모색했다.

시와 구청은 주민들의 의견대로 과거의 정서를 가득 간직한 안전한 보금자리를 백사마을 터에 마련하기로 했다. 주민들이 원한다면 분양권을 얻어 현재의 정서를 간직한 새로운 백사마을에서 정착할 수 있고, 이주를 원한다면 새로운 터전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되돌아온다 하더라도 재개발이 진행되는 기간에는 백사마을을 모두가 떠나야 한다.

유럽의 도시들이 아름답다고 표현되는 이유는 바로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건물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여전히 사랑하며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삼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 또한 받아들인다. 과거와 현재가 한 도시 안에서 아름답게 공존하고 조화를 이뤄 하나의 아름다움을 이룬다. 백사마을의 변화는 이렇게 조화라는 가치가 있다.

과거는 흐르면 잊힌다. 하지만 누군가 떠올릴 수 있다면 과거는 영원히 잊히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소중한, 지나온 정취를 수십 년이 지나고도 느낄 수 있다면 그 정취는 절대 잊히지 않는다.

잊힌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 느낌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백사마을을 잊기엔 정취가 뿜어내는 가치가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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