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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 Let's Feel OFF ROAD!

작성일201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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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말만 들어도 거친 드라이브에 압도 당할 것 만 같은 느낌을 주고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단어, 오프로드. 그러나 우리의 상식을 깰 만큼 오프로드를 즐길땐 나름 섬세함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짜릿한 묘미를 누가 알까 이렇게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건 영현대 블루온 팀이 오프로드 동호회와 함께 야산에서 오프로드를 몸소 느끼고자 동행했기 때문. 그럼 이제부터 블루온이 함께 한 생생한 오프로드 체험 현장 속으로 빠져보자!

 

 

 

 10월 1일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모인 블루온 팀은 끼니를 거르면서까지 설렌 마음으로 경기도 연천 동막리의 한 야산으로 향했다. 바로 이날은 오프로드 동호회의 2박 3일간 야영이 예정되어 있던 날이다. 오프로드 동호회답게 동호회의 규모도 자동차만큼이나 굉장했다. 그들은 OFF ROAD 동호회 답게 늘 하는 대화가 ‘오프로드 이야기’, 모여서 하는 활동도 ‘자동차로 산 오르기’ 등 오프로드 마니아였다. OFF ROAD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여야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이었다. 이러한 모임에 우리 영현대 블루온 팀도 그들의 산행 길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조금 늦은 우리를 미소로 맞이해 주셨던 회원 분들. 재미있게도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대한 덩치의 쾌남이셨다. 호탕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해주신 동호회 분들은 모두 여덟 명. 그 중엔 동호회 운영하고 있는 김흥섭 대장의 OFF ROAD 자동차는 단연 눈에 띄었다.

 

 

 

"이래봬도 3월에 산 새 차야. 어때, 튜닝한 모습이"

 

 

 도로 한복판에 일렬로 늘어선 오프로드 자동차들.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특히 김흥섭차장님의 차는 다른 차들과는 모습이 좀 달랐다. 오프로드의 실정에 맞게 문짝과 트렁크가 훨씬 가볍도록 직접 튜닝한 차였다. 산을 오르기 위해 최대한 가볍게 만들었다. 우리는 동막리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기 위해 서둘러 길을 떠났다.

 

 

김흥섭 대장의 차가 앞장서서 'ON ROAD'를 달렸다. 영현대 기자단은 운전석에 꼭 붙어서 그들의 흥미진진한 '오프로드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프로드는 원래 미국 사람들이 처음 시작했어. 서부 개척시대의 그 개척 정신을 그대로 물려받은 레저 활동이지. 말을 타고 개척하던 것이 '자동차'로 바뀐것 뿐이야."

 

일반적으로 오프로드 코스는 계곡, 야산을 가리지 않는다. 

 

 처음 미국에 자동차가 생겼을 때, 미국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땅을 개척해 나갔다. 처음엔 새로운 땅을 발견한다는 목적에 시작했지만, 곧 '개척' 그 자체에 매력을 느끼면서 오프로드 레저가 탄생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이 '오프로드 주행'은 백인들 만 즐긴다는 것이다. 흑인들은 자동차를 타고 산을 오르는 이 행위 자체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이 오랜 역사와 문화가 만든 서로의 차이가 아닐까. 김흥섭 대장은 자신들이 '오프로드'에 갖는 자부심에 대해 말하였다.

 

 

"승마가 최고의 레저이듯, 오프로드도 마찬가지야.

이 차는 내 애마나 다름없지.

이 아이를 타고 산을 오르다보면 얘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야.

 아마 승마도 다르지 않을걸."

 

 

 얼마 안가 '온로드'는 끝나고 '오프로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야산 초입이었다. 한 명씩 모두 4대의 차량에 나눠 탄 영현대 기자단은 서로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사람이 더 이상 다니지 않는 길로 들어선 여덟 대의 차량들. 김흥섭 대장의 차가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갈대가 자라있는 데도 거침없이 달렸다. 조수석의 안전 바를 잡은 기자는 마치 놀이기구를 탄 듯한 기분에 소리를 질렀다.

 

"대장님! 베이스캠프에요!"

 

 

 

 야트막한 언덕에 차량을 모두 세워놓고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테이블도 설치하고 야전침대도 놓고. 서부 영화에서나 볼법한 베이스 캠프가 완성되었다. 아침 끼니도 거르고 달려온 터라 모두 배가 고픈 상태인데 능숙한 솜씨로 삼겹살을 굽기 시작하는 대원의 모습에 모두 탄성을 질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바비큐가 완성되었다. 우리는 고기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맛있게 먹었다.

 

 

 

"원래 온로드 선수였었어. 외국에서 대회도 몇 번 하고 그랬지.

그 때 처음 오프로드 경기를 보게 된 거야.

아, 정말 매력적이다- 근데 한국엔 왜 저런 게 없을까.

워낙에 도전 정신이 뛰어난 터라 바로 한국에 와서 시도해보기 시작했지.

그게 시초였어."

 

 

 한국에 오프로드의 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흥섭 대장. 대장은 원래 온로드에서 활약 하던 선수였다. 지금도 용인에 카레이싱 경기 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블루온 팀이 8월 기사로 취재차 들렸던 '영오토 레이싱 팀'의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97년부터 동호회를 운영 해오고 있는 대장은 외국 경기를 관람하고 직접 참가도 하면서 점차 우리 나라 오프로드의 세계를 점점 확장 해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오프로드를 즐기기 위해선  초기비용이 어느정도 일까 먼저 차 구입에만 5천만 원. 개조 비용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적게는 1천만 원에서 많게는 4천만 원까지 소요된다. 직접 경기에 참가하는 차량의 경우 1억원 가까이 소요된다고 하니, 저렴한 레저생활은 아니다. 조금 저렴한 비용에는 즐길 수 없는 걸까

 

 

"갤로퍼 이후로 오프로드를 전문으로 하는 차량이 국내에선 나오지 않고 있어. 옛날 그 방식 그대로 만든 건 외국 자동차들 밖에 없는 거지. 제대로 오프로드를 즐기려면 할 수 없이 비싼 외국차를 사는 수밖에. 국내에서도 하루 빨리 오프로드 전문 차량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값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국산이 있다면 왜 굳이 외국차를 사겠어."

 

 

  점심식사가 끝나자 대원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오프로드 산행을 위해 차체를 가볍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불필요한 짐을 모두 베이스캠프에 내려놓았다. 김흥섭 대장은 차체까지 분리하고 있었다. 베이스캠프는 야영을 위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오프로드 산행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짐을 맡기는 장소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출발한 '오프로드 산행' 블루온 팀도 오프로드의 대원이 되어 기쁘게 모험을 맞았다. 베이스 캠프를 벗어난 차량이 돌밭을 달렸다. 자잘한 돌들에도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조그만 턱이라도 있으면 머리가 차의 천장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마치 '바이킹'을 탄 것 같았다. 뱃속의 모든 내장기관들이 함께 솟았다가 내려앉는 기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꼬불꼬불한 길에서도 대장은 속력 내기에 바빴다. 기자들은 그저 차의 움직임에 몸을 내맡겼다. 덜덜 거리며 안전 바를 잡으면 커브를 도는 차 때문에 이미 반대쪽으로 몸이 기운지 오래다. 기자는 재밌어서 그랬는지 무서워서 그랬는지 산행 내내 소리 지르기에 바빴다.

 

 

 

 

"뭘 그렇게 무서워해. 이건 약과야."

 

 

 

 오프로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이 아닐까

 

 돌밭 길을 내달리다 만난 낮은 절벽. 우리는 '다른 길로 돌아가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 절벽으로 차가 내달리는 게 아닌가. ‘이러다 부딪힐 텐데!’라고 걱정할 때 커다란 바퀴를 가진 차답게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흙의 마찰 때문에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지는 차체. "뒤로 가볼까" 라고 하더니 그대로 차를 꺾어 후진하기 시작했다. 뒤로 절벽을 오르는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보이는 것은 온통 하늘이거나 온통 땅이었다. '이 맛에 오프로드 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 되는 순간, 전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에 길을 만드는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이런 곳에선 전화도 안 터져. 세상과 단절되는 거지. 이렇게 차와 하나가 되어 달리다보면 오롯이 혼자가 되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또 가끔은 자연이 나에게 시험을 하기도 하지. 이런 길을 내가 달릴 수 있을까. 아무도 가지 못할 거라는 길을 가다보면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 난 계속 이 오프로드를 달리고 싶어."

 

 

 김흥섭 대장에게 오프로드는 더 이상 레저가 아니다. 그의 인생 철학과도 같은 것이다. 곧 얼마 안가 그의 인생 철학처럼 '길이 아닌 곳을 길로 만드는' 현장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의 제안으로 계곡을 달리기로 한 것이다.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난 계곡은 큰 바위들로 가득했다. 사람이 걸어서도 힘겨운 계곡 길이었다. 이런 곳을 차를 타고 달린다니!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대원들도 처음엔 다른 길로 가자며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한번 가보지 뭐!'라고 말씀하시곤 그대로 달리셨다. 대원들은 차에서 내려 그의 행보에 장애가 될 만한 게 있는지 살폈다. 한 대원이 바위 사이의 공간을 메워야 한다며 직접 돌을 날라 길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길이 아닌 곳을 길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곧 여섯 명의 대원이 모두 합류해 돌을 나르기 시작했다. 블루온 팀도 작업을 도왔다. 곧 바윗길이 만들어졌고 차가 달리기에 훨씬 수월했다.  오프로드 산행은 혼자하는 레저가 아닌 함께하는 레저였다. 그래서 여성이 하기엔 조금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 대원의 말에 따르면 여성도 이런 길을 만드는 데 충분히 협조할 수 있고 요즘엔 남성보다 더 씩씩한 여성 대원도 많다며 성별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무를 치우고 돌을 나르며 정신없이 계곡을 달리다보니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했다. 어두우면 산행에 힘이 든다는 얘기에 여덟 대의 차량이 모두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블루온 팀은 이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건 대원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고기 먹고 싶으면 내일아침에 또 와!"

 

 

 2박 3일간 이 곳에서 야영을 할 대원들도 우리와의 헤어짐이 아쉬운 듯 소리쳤다. 기자는 대원들과의 헤어짐도 아쉬웠지만 오늘 체험한 오프로드의 매력을 언제 다시 맛볼 수 있을까하는 아쉬움도 컸다. 베이스캠프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의 한마디가 생각났다..

 

 

"취미는 오프로드지만 인생은 온로드!"

 

 

  블루온 팀의 힘찬 내일을 응원해준 뜻에서 하신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프로드를 왜 달리냐고 묻는 다면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갑갑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난 채,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떠날 때 어떤 굳은 결심은 필요 없다. 그저 떠날 채비를 하고 산으로 향하는 것이다. 오프로드를 달리고 나면 마치 한편의 액션 영화를 본 듯한 본듯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설렘-고난-노력-승리’의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악지형이 많은 우리나라에 잘 어울릴 수 있는 레저활동이라 할 수 있는 오프로드 산행!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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