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당신에게 자동차는 무엇입니까?

작성일2012.01.25

이미지 갯수image 25

작성자 : 기자단

 

우리 생활 속에서 자동차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만큼 저마다 자동차와 연관된 이야기가 한 보따리는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버스를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MP3 플레이어 볼륨을 크게 해놓아서 원치 않지만, 함께 노래를 들은 경험처럼 자동차가 그들에게 있어 이런 사사로운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매 순간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인 경우도 있을 터이다. 우린 다양한 사람들에게나에게 자동차란질문으로 그들만의 특별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았다. 그럼 이제부터 소소한 일상 속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나가는 대학생 황선아씨

 

 다양한 연령대를 한데 모여 있어 곳,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서로 다른 목적지에서 내리는 이곳은 어디일까 바로 버스 안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대중교통인 버스는 익숙한 존재다. 그런데 버스를 타면서 한 번쯤은 뭐랄까, 생각만으로도 피식~ 웃음 짓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응당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걸음을 언제나 즐거운 법이니 말이다. 이에 요즘 날씨는 무척이나 춥지만 마음만은 싱그러운 봄 같다는 황선아(22, 전남 광주)씨는 "(웃으며) 버스가 없으면 절대로 안돼"란다.   

 

 설렌 마음으로 데이트를 나가는 황선아양에게 버스는 꼭 필요하다.

 

 22살 여대생인 황선아양은 사귄 지 이제 갓 200일을 함께 보낸 남자친구가 있다. 그런데 거주지역이 달라서 각자 교통이용에 불편함이 없는 중간지점에서 데이트를 즐기다 보니, 만나러 나갈 때면 항상 버스를 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곳으로 가는 내내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가실 줄 모른다.

 

 

"버스를 타고 나면 항상 어디쯤이냐고 서로 확인하곤 해, 가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문자메세지로 만나서 뭐할지를 정하는데…… 사실 난 그것보다도 나 혼자 하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야(웃음)."

 

남자친구에게 예뻐보이고 싶은 그녀, 버스안에서도 화장을 몇번씩 고친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으면 일단 화장이 잘 되었는지, 머리 손질 또한 문제가 없는지 거울을 몇 번이고 보며 확인한다고. 어쩔 땐 화장이 뜬 것 같아서 흔들리는 버스에서 화장을 고치느냐고 애 먹은 적이 있다고 한다. 오늘도 역시 점검이 끝날 때쯤 남자친구에게서 어디냐는 문자메세지에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기다리라며 답문을 보낸다. 거의 다 올 때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었다. 

 

 

 

“창 밖을 내다보면서 뭐할지 고민하지. 오늘은 날씨가 좀 포근하니까 걷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버스 안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면서 수만 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 무얼 하자고 할지, 옷 매무새는 깔끔한지 확인하는 버스 안에 있는 시간이 여느 때보다도 가장 설레고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까. 우리 모두 비슷한 기억을 떠올려보며 누군가를 만나러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있는 나를 상상해보자.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자동차에서 보내는 안은기씨

 

  오늘도 제각기 다른 차를 타고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자동차는 이제 현대인의 발이자 든든한 친구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직접 다른 이들의 믿음직한 발이 되어준다. 바로 택시기사 안은기(51, 수원)씨와 같은 사람들이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 머물다 보면 당연히 단순한 자동차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택시의 특성상 키로 수로 많이 뛸 때도 있는데 그럴 때도 잔고장없이 묵묵히 거리를 달려주죠. 이런 모습을 보면 듬직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요."

 

매번 똑같은 메타기를 가지고 운전하는데, 간혹 요금이 비싸게 나왔다고 시비가 붙으면 답답하다고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자동차에서 보내는 택시기사들에게 차는 매우 특별한 존재다. 우리에겐 그저 이동수단일 뿐인 자동차가 그들에겐 동반자인 것이다. 운전을 업으로 삼다 보니 그리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자동차가 마치 사람만큼이나 귀중한 존재다. 게다가 자동차로 세상과의 연결고리가 생긴다면 더욱 소중할 터.

 

 "손님을 태우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죠. 하루 종일 운행을 하면서 라디오를 통해서 듣기도 하지만 직접 태우는 손님 하나하나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취업준비생의 어려움, 수험생의 긴장감, 직장인들의 고뇌 등 손님들이 직접 다양한 얘기들을 터놓기도 합니다.”

 

손님을 위해서 원하는 장소까지 이골목 저골목을 다니곤 한다.

 

 작지만 소중한 공간, 자동차. 택시기사 안은기씨에겐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의 삶과 애

환이 묻어나는 공간인 것이다. 덕분에 안은기씨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카운셀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고민을 상담해주다 보면 더불어 자신에게도 살아갈 생기가 생긴다고. 이런 그에게 택시업에 관한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을까

 

"대전까지 가는 장거리 손님이었죠. 길은 멀지만 별일이야 있겠어 하며 내려갔는데......"

 

이미 늦은 시각이었고 수원에서 대전까지는 꽤나 먼 거리였다. ...씨는 망설이다가도 이게 내일인데 하며 기꺼이 손님을 태웠다. 오랜 시간 끝에 대전에 도착했는데 막상 손님은 돈이 없단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 돈을 들고 나오겠다는 것을 오랫동안 기다려도 나오지 않자 직접 찾아 들어갔다. 그러나 왠걸, 그 손님은 이미 건물의 뒷문으로 빠져나가고 없었다. 손님이 도망간 것을 알자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터덜터덜 차로 돌아오는데 어두운 거리를 환하게 밝히는 택시의 헤드램프가 보였다.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택시가 그날따라 더욱 대견하면서도 미안하게 느껴졌다. 이토록 그에겐 더할 나위 없는 든든한 동반자인 것이다. 이런 안은기씨도 요즘 소망이 하나 생겼다.

 

택시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오늘도 안은기씨는 도로를 달리고 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손님도 많고 손님들 표정도 활기가 넘쳤었는데 요즘은 사람들 표정이 어두워요. 다들 힘들구나 하고 느끼죠. 경기가 하루빨리 좋아져야 할 텐데......"

 

 자신이라도 더욱 힘을 내야겠다고 덧붙이는 안은기. 안은기씨의 소망처럼 올해는 모두가 희망차고 살기 좋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한번쯤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작은 장난감 자동차부터 도로 위의 자동차까지 누군가에게는 열정을 쏟을 대상일 수 있다.

 

한 카페에서 만난 지영선씨는 자동차 이야기가 나오자 신이나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숭실대학교 기계공학과 지영선(27, 서울)씨는 자동차를 '좋아하고 즐길 수 있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물건'이라고 말한다.

 

"가끔 제가 자동차에 미쳐있는 거 같긴 해요. 제가 만든 자동차가 굴러만 가도 기쁘다니까요."

 

 자동차 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영선씨는 작년 5, 자동차 제작에 매달려 있었다. 전기 자동차 대회에 나가기 위한 준비였다. 다른 학업과 병행하며 자동차 제작에 여념이 없던 지영선씨는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쪽 잠을 자면서 공부했던 시간들. 드디어 대회에 나갈 자동차가 완성되었다. 시험 주행을 해보며 작동 상태도 확인 하였다.

 

제작한 자동차를 직접 서킷에 올려 운행시킬 때의 그 뿌듯한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대회 6일전 고부하 테스트를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어요. 콘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로 그 사이를 왔다 갔다하며 무리한 주행을 하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나왔어요."

 

 모터가 고장 나버린 것이다. 수리를 해보려 했으나 수리 할 수 있는 모터가 아니었다. 다시 모터를 주문하려 했으나 만들 당시 해외에서 구입해 온 것이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대회를 며칠 앞두고 규격에 맞는 다른 모터를 수소문 해야 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대체 모터를 찾을 수 있었고 모터에 맞지 않는 부분은 다시 손질했다. 5일 밤을 새며 모두가 고생했던 시간들.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대회 전날 완성됐어요. 다음날 멋지게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서 아, 진짜 내가 여기에 미쳐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죠."

 

대회 출전 전에 자동차에 주유를 하며 한 컷

 

 영선씨의 열정은 수업시간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때는 자동차 공학 수업시간이었다. 교수님께서 4기통 엔진의 실린더 배열은 180' 위상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영선씨가 알던 자동차에는 90' 위상도 있었다. 그래서 '90' 위상을 가진 엔진도 있다'고 말씀 드렸다. 교수님도 놀라긴 하셨지만 열정이 가득한 학생으로 봐주셨다. 교수님은 다음 수업시간에 그에 관한 자료를 따로 준비해오셨다.

 

"그럴 때 참 보람을 느껴요. 이 모든 게 제가 자꾸 자동차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죠."

 

 

 

 

 

 자동차를 향한 애정 때문에 다른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경험을 해봤다면 올해 출고된지 13년이 되는 프라이드의 오너 박지호씨의 이야기이다

 

자동차를 훤히 꿰뚫는 박지호씨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지호씨에게 있어 자동차는 다른사람들과 이어주는 연결고리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흔히 보이는 평범한 자동차 였지만, 오래 타면서 애정을 쏟다 보니 다른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인연과 경험을 만들었어요. 이렇게 인터뷰 하는것도 마찬가지고요."

 

 그에게 있어 자동차는 처음에 단순한 이동 수단이었다. 중고 차량을 구입하고 보니 손봐야할 부분도,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야할 부분도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자동차에 대해 백지 상태였던 그는 동호회에 가입해서 자동차에 대해 질문을 주고 받으며 배우고, 단골 카센타의 사장님과 친분을 쌓고, 하나 둘 직접 정비와 관리를 해 보기 시작했다.

 

밤에도 광택이 돋보이는 표면과 그가 정비를 하며 찍은 사진

 

 그렇게 관리를 하다보니 프라이드는 10년이라는 나이를 먹게 되었고, 수많은 에피소드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동호회 게시판에 차량 사진 한장을 올렸더니 외관 관리를 어떻게 하시냐는 질문이 쏟아졌고, 관리용품과 사용방법, 과정들을 찍어 올렸더니 많은 사람들이 잘 배우고 간다는 댓글을 보고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동호회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보니 도로 위에서 차를 알아 보고 신호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에는 춘천으로 드라이브를 갔는데 차를 보고 휴게소 까지 따라와서 동호회를 함께 하면 어떻겠냐는 제의가 들어왔고, 이렇게 여러 동호회 활동은 물론 다가와 주는 사람들과 함께 수많은 경험과 인맥이 쌓였다. 영현대에서 인터뷰 제의를 받게 된 것도 자동차를 통해 또 하나의 인연이라는 연결고리와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박지호씨와 그의 자동차

 

 그에게 자동차는 생명이 없지만 살아가면서 함께 하는 동반자 이기도 하고, 없으면 허전한 존재라고 한다. 또한 자동차에게 애정을 쏟았더니 나에게 많은 경험과 함께 전혀 모르고 지나갈 사람들과 연결고리 라는 인연을 만들어준 자동차에게 고맙다고 한다.

 

 

 

.

 

 자동차. 그것이 없는 세상을 더욱 상상하기 힘들어진 요즘. 그러나 누군가에겐 빠르게 움직이는 그것들이 아직도 믿기 힘든 별천지다. 당신이 젊었을 땐 어땠나요 할아버지께 듣는 자동차 이야기. "말도 마라. 내 꿈이 운전수였다니까."

 

 자동차 이야기가 나오자 추억에 젖어 이야기를 꺼내셨다,

 

 할아버지(이세구씨, 76) 나이 열여섯, 휴전이 되고 나선 그간 다니던 중학교도 다니질 못했다. 모두가 가난하고 못 배울 때라 고등학교를 못간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소년의 마음엔 단 한가지 꿈이 있었다. '높은 사람들 태우고 이리저리 다니고 싶다.' 서울시에 300대의 택시가 들어온 이후로 본격적으로 많아진 자동차들. 소년의 눈에 비친 차들은 시대의 첨단문물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나마 들여온 차들도 몇 대 되지 않아 자동차를 보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내가 저 차를 몰 수 있다면' 하고 바랐다. 20살이 되자 아버지를 졸라 '제일 자동차 학원'에 등록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니 자동차가 뭔 지나 알았겠니. 끄는 말도 없이 어떻게 달리는 건지, 그저 위험천만한 물건이었던 거야."

 

운전수를 꿈꾸던 청년은 기어코 일 년 만에 학교를 수료했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운전을 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다 군에서 운전병을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원 없이 차를 몰 수 있게 되리라는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운전병이 아닌 행정병으로서 복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병기보급소에서 일을 하게 되어 정비공들이 차를 고치는 것을 어깨너머로라도 볼 수 있었다. 자동차 학교를 수료한 덕에 차에 관한 것이라면 눈에 훤하듯 했던 할아버지. 몇 번은 운전을 직접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워낙 혈기왕성했던 때라 자동차 무서운지를 몰랐던 게지."

 

 책을 보다가도 자동차 이야기가 나오면 추억에 젖으시곤 한다.

 

 한번은 큰 차를 몰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사고가 날뻔했던 적도 있었다. 그 당시 핸들은 앞 바퀴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였었다. 그래서 핸들은 두 손으로 꽉 잡아야 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자동차에 대해 많이 안다는 자만심에 한 손으로 휘휘 운전을 했다. 그러다 마침 앞 바퀴에 돌부리가 걸렸고 그대로 핸들이 돌아갔다. 너무 빠른 시간 안에 벌어진 일이라 할아버지는 얼떨떨했다.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손이 핸들에 말려 그대로 뒤틀려 있었다. 아직도 그때 다친 손가락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제대한 후에도 운전 일을 알아봤으나 아버지의 반대가 너무 심했다. 당시 군에서 받은 면허증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면허증으로 바꿀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면허증도 바꾸지 못하고 그대로 '운전수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 일이 아직도 가슴에 사무치는 할아버지다.

 

"나도 운전했던 사람이지만 운전은 첫째로 안전이야. 욕심안내고 질서만 잘 지키면 운전수란 참 멋진 직업이지."

 

 요즘같이 자동차가 많아진 세상, 정작 바래오셨지만 막상 닥치니 할아버지껜 그저 별천지다. 자동차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과 자동차가 사람만큼이나 많아진 시절을 모두 살아보신 할아버지. 할아버지께 자동차는 추억이자 못다 이룬 꿈이었다.

 

 

 

 

 


해당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 영현대 저작권이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며, 비영리 이용을 위해 퍼가실 경우 내용변경과 원저작자인 영현대 워터마크 표시 삭제는 금하고 있습니다.

SNS 로그인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할 계정을 선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