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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지하철 타고 온 그대

작성일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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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2014년 1월, 이제 곧 다른 세상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이 순간, 나는 지하철 안이다. 1974년. 지하철이 처음 개통되던 그 순간에도 나는 지하철 안에 있었다. 당시 지하철은 빠르고 안락한 하나의 운송수단에 불과했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지하철은 지구인들의 삶 한 가운데서 삶 자체를 운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하철이 지구인들의 현재, 그리고 미래만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하철 안에는 수많은 승객들의 발자취만큼이나 유구한 역사의 흔적이 베어들어 있다. 역사는 감각적인 색감으로, 때로는 생동감있는 곡선으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 당신 뒤에 서 있다. 400년 만에 만난 천송이보다 더 오랜 그리움으로 남을 곳들. 지금 그 오랜 역사의 터널 속으로 발을 내딛으려 한다.   

 <누에고치가 그려진 모습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 사진 구본우>

 

 

열차가 정차되어 있는 5초 동안 누에고치와 눈이 마주친다. 당신이라면 어떨까 잠원역에서 종종 마주칠 수 있는 거대한 누에고치 두 마리는 잠원역의 명칭을 있는 그대로 나타낸다. 내 기억에 한반도에서 누에치기가 시작되었던 것은 약 3천여 년 전 고조선 때부터였다. 이후,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여러 왕들이 누에치기를 장려했다. 누에치기를 통해 지구인들은 비단을 얻었을 뿐 아니라 부산물 등 많은 이점을 제공받았다. 누에똥은 가축의 사료와 초록색 염료로 쓰였고 요즘도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번데기도 식용으로 쓰였다. 태조가 백성들에게 양잠을 권하기 위해 선잠단지를 만들고 친잠행사를 행하곤 했었는제 조선 초의 국립양장소가 있었던 곳이 바로 이곳, 잠원이다.

  

 <누에치기 하는 모습이 담긴 벽화. 사진 구본우>

 

 또 다른 한편에 표현된 견직도는 누에 실로 옷을 짜는 여인들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가족들의 옷을 만들기 위해 온 정성으로 밤새 실을 짰던 여인들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형형색색의 옷들이 잠원역을 스쳐지나갈 때마다 두 마리의 누에고치가 미소 짓고 있는 것 같다.    

 

 <압구정 정자가 그려진 벽화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 사진 구본우>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당신. 바로 1m 뒤에 이렇게 고요하고 넉넉한 정자가 있는데, 눈길이라도 한번 주는 게 어떨까. 압구정은 조선시대 전기 한명회의 호이자, 그가 지었던 정자의 이름이다. 압구정이라는 명칭은 성종에 의해 정해졌으며 갈매기와 친하게 노니는 정자라는 뜻이다. 이를 알려주듯 압구정역에는 갈매기떼와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표현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압구정하면 떠오르는 로데오길, 명품, 패션 등의 키워드와 사뭇 다른 느낌을 볼 수 있다.  

 

 <압구정역 정자가 그려진 벽화의 모습. 사진 구본우> 

  

경쾌한 물결문양과 어우러진 이 정자는 사람들의 피로와 노고를 잠시 쉴 수 있게 해주었던 조선시대 정거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맑고 푸른 물 위에 비상한 갈매기들. 마치 한강 한가운데 떠 있는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학업이며 직장생활에 시달린 당신. 잠시라도 압구정의 시원한 물결소리, 갈매기의 날갯짓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독립문역 독립선언문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 사진 구본우>

 

 

독립문역에는 독립문이라는 문화재가 근거리에 있는 역인만큼 독립선언문이 벽화로 꾸며져 있다. 독립문은 서재필이 이끌었던 독립협회가 주도하여 1897년에 만들어졌다. 지금은 3ㆍ1 독립선언기념탑,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함께 일제강점기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는 곳으로 조성되었지만, 건립될 당시에는 일본에 대한 독립보다는 청나라에 대한 독립 의지가 더 컸다. 실제로 독립문이 있었던 자리에는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모화관의 정문, 영은문이 있었다.

 <교대역에 그려진 벽화를 만지며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 사진 구본우>


 

교대역에는 선생님을 기르는 서울교육대학교가 있어그런지 조선시대 서당의 모습을 그린 벽화가 남아있다. 서당은 주로 16세기부터 많이 생겼던 것으로 기억하고 지방에 건립된 교육기관의 역할을 맡았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이 가장 중요한 학문이었기 때문에 각종 성리학 서적에 대한 교육, 과거응시를 준비하는 등의 기능을 했다. 과거나 현재나 열심히 학문에 몰두하고 있는 학생들. 과거 서당의 모습을 보며 한 번 더 의지를 불태워보는 건 어떨까.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날들을 기대하는 모습. 사진 구본우> 

 

 갈매기가 날아왔다는 정자부터 누에고치를 권장하던 잠실이 있던 잠원, 조선시대 서당, 대한 독립만세를 외쳤던 독립문까지. 평소 지구인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서울의 지하철에는 역사의 한 단면들이 숨어있다. 이제 지하철은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사람들 개개인의 미시사와 서울에서 벌어진 거시사들을 담아내고 있는 캔버스가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그 캔버스에 어떤 그림들이 남아 역사를 이야기해줄까.  지하철을 기다리기 지루한 지금, 잠시 벽화와의 소통을 시도해보자.  지하철의 빈 벽은 또 하나의 역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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