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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조선시대! 그 시절 자동차 이야기

작성일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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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오용근

세계 5대 자동차 강국 중 하나인 대한민국! 자동차는 이제 없으면 안 될 정도로 필수적인 교통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우리 조상들에게 자동차란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요? 그 시절 한국인의 삶을 자동차 이야기로 풀어봤습니다.


우리나라가 들여온 최초의 자동차


포니 / 시-바ㄹ(始發)
포니 / 시-바ㄹ(始發)

다들 한 번쯤 최초의 국산 자동차, ‘시-바ㄹ(始發)’과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 ‘포니’에 대해서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들여온 최초의 자동차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

때는 1903년, 조선의 제26대 임금 고종황제가 즉위 40주년을 맞이하여 자동차를 들여왔다고 합니다. 차종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데요, ‘포드’, ‘캐딜락’ 중 하나일 것이라는 의견과 유럽 브랜드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렇게 이름 모를 자동차는 1년 뒤 발발한 러일전쟁 와중에 자취를 감춰버렸다고 하네요.


순종황제어차 / 순정효황후어차
순종황제어차 / 순정효황후어차

이후 1911년부터 왕실은 다시 자동차를 들여오기 시작했는데요, 이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차량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순종황제어차’(등록문화재 제318호)와 ‘순정효황후어차’(등록문화 재 제319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택시사업은 콜택시?


택시 어플리케이션
택시 어플리케이션

요즘은 길거리에서 택시를 오매불망 기다릴 필요 없이 전화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손쉽게 택시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우리나라 최초의 택시는 일반택시가 아니라 전화를 이용한 콜택시였다는 걸 말이죠.


1930년대 택시광고 - 『동아일보』 1930. 12. 10, 6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30년대 택시광고 - 『동아일보』 1930. 12. 10, 6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엄밀하게 말하자면 콜택시와는 조금 다른데요, 바로 시간당 자동차를 임대하는 대절 택시입니다. 이는 1912년에 일본인 곤도 미치미가 서울에서 2대의 승용차로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대절 택시는 전화로 불러서 이용하는 방식이라고 하니 어떻게 보면 콜택시의 일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택시 정류장
택시 정류장

일반적인 형태의 택시사업은 그로부터 약 6년 뒤 1919년, 일본인 노무라 겐조가 ‘경성택시회사’를 설립하면서 나타났습니다. 그는 당시 미국에서 시행됐던 거리 택시영업을 구상했는데요, 바로 길거리에서 손님을 태워주는 방식이죠. 하지만 당시에는 미터기가 없어서 요금계산이 복잡해 몇 개월 후 대절 택시로 바꿨다고 하네요.


면허시험이 먼저냐 운전학원이 먼저냐


운전면허시험장
운전면허시험장

올해 말부터 운전면허시험이 변경된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면허시험장으로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보통 국가가 시행하는 시험이 생기게 되면 그와 관련된 학원이 차후에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는 면허시험이 있기도 전에 운전학원이 먼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최초의 관인 운전학원, 경성자동차강습소 광고 - 『동아일보』, 1920. 6. 5, 4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최초의 관인 운전학원, 경성자동차강습소 광고 - 『동아일보』, 1920. 6. 5, 4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13년 당시 대절택시 사업을 하던 일본인 곤도는 운송사업확장 과정에서 운전수가 부족하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자동차가 귀해 따로 면허시험이 없었기에 그는 운전학원을 차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지원자가 없어 월급과 상여금까지 주며 어렵게 10명을 모집했다고 하는군요.


포드 모델 T
포드 모델 T

국가가 시행한 최초의 운전면허시험은 1915년부터입니다. 이는 자동차가 급속도로 증가함에 따라 사고가 많이 생겼기 때문인데요,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만 21세 및 초졸 이상, 여기에 운전학원도 졸업해야 했습니다. 면허시험은 매년 한 번씩 치렀으며 시험에는 포드 모델 T가 사용됐다고 하네요.


높은 인기로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 운전사


운전면허증
운전면허증

우리나라에서 운전면허증은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취득할 수 있는 평범한 자격증입니다. 그만큼 자동차가 많이 보편화됐다는 뜻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 시절에는 운전면허증을 따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고, 높은 월급으로 인해 택시와 트럭 운전사가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최초의 여성 운전사, 최인선에 관한 기사 - 『매일신보』, 1919. 12. 6, 3면 / 빅카인즈 뉴스 라이브러리 고신문
최초의 여성 운전사, 최인선에 관한 기사 - 『매일신보』, 1919. 12. 6, 3면 / 빅카인즈 뉴스 라이브러리 고신문

191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 보유대수가 급속도로 늘어난 데 비해 운전사는 상당히 부족했는데요, 이 때문에 운전사의 대우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당시 대졸자의 월급은 30~50원이었는데 택시 운전사는 30~40원, 트럭 운전사는 45~50원을 벌었고 상여금까지 합치면 수입이 한 달에 100원에 달했다고 하네요.


1920년대 자동차 계기판
1920년대 자동차 계기판

또한 기계기술이 약했던 당시에 자동차를 조작한다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었습니다. 게다가 운전사는 최고급 양복까지 입고 운전을 했다니까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겠죠? 이러한 운전사의 인기는 1920년대까지 계속됐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속도위반자


과속단속 표지판
과속단속 표지판

모두들 규정속도는 잘 지키고 있으시죠? 도로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과속카메라는 공도의 무법자를 그 자리에서 식별하는 훌륭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떻게 과속 차량을 단속했으며 또 그 최초의 피해자(?)는 누구였을까요?


종로1가 사거리
종로1가 사거리

1921년 4월, 경기도 경찰국은 미국에서 교통위반 단속용으로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두 대와 함께 속도 측정기로 스톱워치를 도입하여 당시 가장 통행량이 많았던 서울 종로거리에 배치했습니다. 속도는 한 지점부터 다른 지점까지의 도달시간을 측정했다고 하네요.


해당사고를 다룬 신문기사 - 『동아일보』, 1920. 6. 12, 3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해당사고를 다룬 신문기사 - 『동아일보』, 1920. 6. 12, 3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우리나라 최초의 속도위반자가 적발됐습니다. 5월 3일 오전 9시 30분경 종로거리에서 이관호라는 대절 택시 운전사가 약 30km/h의 속도로 질주하다 과속으로 과태료를 냈다고 하는데요, 그 당시 제한속도는 24km/h였다고 합니다.


자동차와 함께한 우리의 삶


1975년에 처음 생산된 포니 / 출처: 현대자동차 H TOUR 홈페이지
1975년에 처음 생산된 포니 / 출처: 현대자동차 H TOUR 홈페이지

세계 최초의 가솔린 내연기관 자동차를 기준으로 약 20년도 채 안돼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 문화가 꽃 피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쳐 우리나라는 최초의 국산 자동차, 시-바ㄹ을 시작으로 70년대에는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 포니, 90년대 초에는 불가능이라고 여겼던 엔진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는 세계 5대 자동차 강국 중 하나로 부상하게 됐죠.


한옥과 자동차
한옥과 자동차

그렇게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동차는 우리의 삶과 함께했는데요, 이번 이야기를 통해 현재뿐만이 아니라 잊힌 그 시절 자동차 문화도 되돌아볼 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


영현대기자단13기 오용근 | 한국외국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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