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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앞, 항상 설레는 그곳

작성일 2020.06.29

윤은서(대원방송 성우) / 영현대 11기



안녕하세요. 대원방송의 성우로 일하고 있는 영현대 11기로 활동했던 윤은서라고 합니다. 영현대로 활동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여러분들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나니 감회가 새롭네요. 저는 오늘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직업인 ‘성우’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마이크 앞에 서서 제 목소리를 내는 일은 긴장의 연속입니다.
▲ 마이크 앞에 서서 제 목소리를 내는 일은 긴장의 연속입니다.

성우가 되기까지 & 하는 일


성우의 목소리는 여러분 주변에 생각보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게임 사운드, 애니메이션 캐릭터, 오디오북, ATM 기기나 내비게이션, 지하철 등을 통해 접하게 되는 목소리에 대한 작은 것 하나하나가 모두 성우가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성우분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방송 쪽 활동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성우가 되기 위해서는 방송국 공채시험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합니다. 공채 시험 과정은 방송국마다 다르지만 보통 3-4차에 걸쳐 진행됩니다. 제가 소속된 대원방송국의 경우 1차는 서류 및 지정 연기에 대한 음성파일 접수를 통해 전형을 진행하고 2차는 실기시험(1차)과 면접, 3차 실기시험(2차) 및 면접, 4차 최종 임원면접의 순으로 이루어집니다. 시험에 합격하면 소속 방송국에서 2년간 전속 성우로 활동하게 됩니다. 외부 활동을 자제하며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고, 2년이 지나 전속기간을 마치게 되면 한국성우협회 소속 프리랜서 성우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죠. 그때부터는 비교적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집니다. 위에서 말한 게임,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일을 할 수 있죠.

모든 일상에서 꾸준히 즐기기


저는 24살에 성우가 되는 게 목표였는데, 24살로 정한 이유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성우를 준비할 당시 시험에 합격한 기수별 막내의 나이가 평균 24살 정도였기 때문에 저도 최대한 일찍 합격하고 싶어서 목표를 그렇게 정한 거였죠. 그런데 감사하게도 진짜 24살에 합격해서 성우로 활동할 수 있었어요.

주변 사람들은 저에게 빨리 꿈을 이뤘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성우에 대한 꿈을 꾸고 노력해온 저는 그런 생각을 안 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 밑에서 학교 외 시간에 할 것도 갈 곳도 없던 저에겐 TV에서 만화를 보는 게 유일한 취미이자 낙이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멋진 남자 주인공을 보고 반해서 그 주인공이 실제로 존재할 거라 믿었던 순수한 저는 엄마에게 어떻게 하면 저 친구랑 만날 수 있냐고 물어봤고 엄마는 저에게 “성우가 된다면 만날 수 있어”라고 답변해 주셨죠. 어린 나이에 성우가 어떤 직업인지도 잘 몰랐지만, 그때부터 사람들이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성우요!”라고 대답하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지나 성우가 어떤 직업군인지 알게 된 뒤로는 '성우 놀이'를 즐겨 하곤 했어요. 새로운 취미였죠. 집에 있는 인형들을 가지고 남자 소리도 내보고, 강아지 소리도 내고, 공주님, 왕비, 악당 소리를 내면서 비디오카메라로 그런 모습들을 찍어 주변 사람들한테 보여줬어요. 컴퓨터를 다루게 되면서는 만화 영상을 비디오카메라로 찍으면서 자막으로 나오는 대사들을 연기하는 걸 찍어 보기도 했어요. 비록 성우가 되기 위한 교육이나 수업을 정식으로 받은 건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성우가 되기 위한 훈련을 해온 것 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시 성인이 아닌 초중학생이 들어갈 수 있는 성우학원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틈날 때마다 성우놀이를 하고, 길 가다가 글귀 보이면 성우처럼 읽어보았죠. 그렇게 즐겁게 성우에 대한 꿈을 키워갔습니다. 그 당시엔 그걸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즐겼어요. 그런 즐거운 경험들이 밑거름이 되어서 제가 조금 더 빨리 합격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 더빙을 할 때는 신경써야 하는 게 많아요. 대본과 영상, 내 목소리가 모두 잘 맞아야 하죠.
▲ 더빙을 할 때는 신경써야 하는 게 많아요. 대본과 영상, 내 목소리가 모두 잘 맞아야 하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실천하기


성우학원에 청소년반이 생기면서 19살부터 학원을 다녔습니다. 전 하루라도 빨리 성우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성우 준비에 매달렸어요. 그렇게 2번 정도 시험을 치렀는데, 고배를 마시고 말았죠. 낙방을 하다보니 ‘혹시 내가 떨어지는 게 고졸이라는 학력 때문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성우학원을 그만두고 바로 입시학원을 등록했어요. 그렇게 1년을 열심히 준비한 끝에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성우학원을 다녔을 때, 선생님께서 저에게 “연기하는 캐릭터 성격이 너무 한정적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 캐릭터들을 연기로 담을 수 있는 경험을 하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성우 시험을 미리 경험하고 싶어서 공고 올라오는 모의고사 시험도 꼬박꼬박 신청하고, 성우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오디션이 있으면 떨어지더라도 경험을 위해 꼭 지원했죠.

성우 시험 중 한 과정인 장기 자랑에서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장기가 없어서 남들이 잘 하지 않을, 그러면서도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하다 영현대를 찾게 되어 또 열심히 준비했고, 합격해서 리포터 활동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리포터 형식으로 짜인 콩트를 만들어 기억에 남는 장기자랑을 준비할 수 있었죠. 저는 지금도 이런 말을 합니다. '만약 내가 더 늦게 성우가 되었더라면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 되어있었을 것'이라고요. 성우 시험은 목소리로 연기하는 사람을 뽑는 시험이기 때문에 연기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건 당연해요.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누구나 합니다. 시험에 떨어지고 나면 연기를 더 열심히 연습하죠. 이것도 누구나가 합니다. 그렇지만 불합격의 이유는 꼭 연기 때문만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자격증이 없거나 학력이 다르거나 경력이 없다고 해서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얻게 되는 경험들이 갇힌 연기에 새로운 흐름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원에서 공부만 하고, 연습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연기가 확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연기는 정답이 있는 수학이나 과학과는 다르기 때문에 붙잡고 있는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

R=VD (Realization = Vivid Dream)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저는 성우가 되기 전에 성우가 된 제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보는 연습을 많이 했었습니다. 학원 선생님들이 현직 성우분들이어서 학원 외 시간에는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했고, 일상생활에서도 진짜 성우가 된 것 마냥 목 관리를 철저히 하고 집에서 하는 연습이나 공부에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공부하는 모든 노트에 ‘xxx 방송 x 기 성우 윤은서’라고 적기도 하면서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며 확신을 가졌어요. 시험 직전에는 시험이 이뤄지는 녹음실 구조를 외우기 위해 더빙 현장 영상을 보고 또 보며 외우고 집에서 그 구조와 비슷하게 꾸민 장소에서 시뮬레이션을 반복적으로 했죠.

'나는 성우다'라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기 때문에 불합격했을 때도 크게 좌절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왜냐면 ‘난 어차피 성우가 될 거고 그게 지금이 아닌 것뿐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시험을 볼 때도 전 제 자신을 성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시험을 하나의 오디션이라고 생각했어요. 덕분에 떨지 않고 가벼운 긴장감을 즐기며 시험을 봤던 게 가장 큰 합격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정작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는 남들처럼 울거나, 엄청 기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건 좀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

▲ 제가 꿈꿔온 성우로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제가 꿈꿔온 성우로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우 생활의 좋은 점, 힘든 점


성우라는 직업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재미있어서 흥미를 느끼고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우로 일하는 매 순간이 좋았어요.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요. 저는 성우 덕후에서 준비를 시작한 지망생이었고, 그래서 팬이었던 선배님들과 같이 대사를 주고받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던 만화나 게임에 출연했을 때도 정말 행복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방영 중인 애니메이션 ‘원피스’나 ‘포켓몬스터’에 참여했을 땐 어릴 때 만화를 보며 성우의 꿈을 키우던 시절이 떠올라 타임머신을 탄 기분일 때도 있었어요. 애니메이션 속은 모든 게 그대로인데 거기에 제가 성우가 되어 들어가는 거니까요. 그 외에도 걸어다니면서 제 목소리를 찾는 재미도 있고,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대에 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성우는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오디션을 거치거나, PD의 선택으로 캐스팅이 이루어지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준비가 되어있어야 해요. 옛날 표준어와 요즘 표준어가 많이 다른 거 아시나요? 말과 언어에도 트렌드가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있어요. 시대에 맞지 않는 단어나 문장으로 연기를 하면 옛날 사람이 말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곤 해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문화생활을 접하고 그에 대해서 연구해야 합니다. 프리랜서라고 해서 정해진 시간에만 일을 뚝딱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일상 생활이 업무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오디션이나 캐스팅을 통해 선택을 받아야만 일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멘탈이 약한 사람일수록 쉽게 포기하고, 무너지기도 쉬운 것 같아요. 저도 초반에는 그게 건강으로 나타나곤 했어요. 끝없는 연습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자존감을 찾으면서 멘탈이 단단해졌고, 일하는 게 편해지고 오히려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성우를 꿈꾸는 분들께


아무리 심금을 울리는 대사로 연기를 하더라도 귀에 들리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이와 관련한 유재석 님의 명언이 있죠. "목소리의 톤이 높아질수록 전하고자 하는 뜻이 왜곡된다. 흥분하지 마라. 낮은 목소리에 힘이 있다" 신뢰감을 줘야 하는 프로젝트나 현장에서는 낮고 정확한 전달이 가장 잘 들리는 거 같아요. 그렇다고 목소리를 억지로 낮게 깔라는 말은 아니에요. 진짜 나만의 목소리로 말하라는 겁니다. 성우 공부를 처음 했을 때, 저는 제 목소리가 되게 하이톤인 줄 알았어요. 오히려 낮은 소리를 내는 게 너무 어려웠죠. 그런데 그게 제 진짜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제대로 된 발성훈련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목소리를 내다보니 편안한 소리가 아닌 억지 목소리가 나온 것이었고 나중에 성우 준비를 하면서 발성훈련을 통해 배의 힘으로 가장 편하게 낼 수 있는 나의 진짜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어요. 내가 내기 편한 소리를 냈을 때 듣는 사람도 편하게 듣게 되더라구요. 천천히 말하기,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기도 성우 준비생에게는 아주 기본이지만 결코 쉽지는 않은 과정입니다. 이런 부분들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해줘야 결실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성우가 되었던 과정과, 성우가 어떤 직업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의 꿈을 만들어준 ‘애니메이션 속 남자 주인공’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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