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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그리고 기자: 여성 저널리즘 강연회 참관기

작성일 2017.07.04
기자라는 직업을 꿈꾸는 20대가 많습니다. 소수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알리고 사회 감시자 역할도 해내는 만큼 그 임무와 책임이 크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것입니다.

기자하면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대부분 강하고 날카로운 남성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분쟁 지역에 뛰어들고 취재를 위해 몸을 던지는 강인한 남자 기자의 모습은 이미 우리의 인식 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는데요.

여성이 저널리즘에 참여하게 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남성적인 직업이라는 인식을 바꾸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여성 기자들이 지난 수십 년간 고군분투하며 쌓아온 변화와 노력을 알아보는 자리에 다녀왔습니다.

▲ 행사장 전경
▲ 행사장 전경

여성 기자들이 지난 십여 년간 고군분투하며 쌓아온 변화와 노력을 낱낱이 알아보는 자리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4월 22일 Korea Expose와 Mediati가 주최한 The Glass Zoo: Women in Journalism이라는 행사입니다.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고 있는 여기자들과 자유롭게 질문을 할 수 있는 토크쇼이자 인터뷰 행사였습니다. 특히 형식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하고 진솔한 대화가 오간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두 시간이 조금 넘게 진행된 토크쇼의 내용과 시사점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하기


첫 번째 게스트는 Stars and Stripes의 Kim Camel 특파원으로 분쟁 지역을 오래도록 활동해온 기자입니다. AP통신에서 10년 가까이 일할 당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그리고 이집트 등 여러 중동 국가에서 활발히 취재 활동을 했는데요. 여기자로서 어려움이 없었냐는 질문에 그녀는 오히려 여자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강점을 찾아 나섰다고 말합니다.

▲ 질문 중인 사회자의 왼쪽부터 Stars and Stripes Kim Camel 특파원, 중앙데일리 Monica Williams, KBS 김양순 기자, 세계일보 황정미 편집국장
▲ 질문 중인 사회자의 왼쪽부터 Stars and Stripes Kim Camel 특파원, 중앙데일리 Monica Williams, KBS 김양순 기자, 세계일보 황정미 편집국장

여성이기 때문에 그녀는 중동 지역 여성의 삶을 더욱 쉽게 취재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남성 기자였다면 기피와 경계의 대상으로 남았겠지만, 외국인 여성이었기 때문에 안전한 인물로 분류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중동 지역은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인만큼 여성의 목소리에 더 다가가야 한다고 믿었던 Kim은 스스로가 여기자라는 사실을 장점으로 승화해 취재에 활용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성 기자와는 말을 섞지 않다가도 그녀에게는 직접 다가와서 말을 걸기도 하는 여성 주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녀의 커리어를 확대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Kim은 오늘날 소통과 설득이라는 부드러운 가치가 주목받고 있어서 여성이 설 자리가 더욱 많아졌다고 말했습니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방식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며 여기자들이 자신의 부드러움과 소통 능력을 활용해 더욱 깊은 곳까지 접근하는 능력을 배양한다면 여성의 무대가 넓어질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강하고 전투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던 분들이라면 반가울 소식이 되겠습니다. 자신만의 부드러움과 소통 능력을 장점으로 극대화하는 것 역시 자기 PR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집단을 대표한다는 책임감


두 번째 게스트는 중앙일보의 영문판 중앙데일리의 Monica Williams입니다. 그녀는 월스트리트저널, 보스턴 글로브 등 다수 신문 매체의 에디터를 거쳐 오늘 서울에서 중앙데일리의 경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성이자 흑인 기자로서 느끼는 유리 천장이나 책임감에 대해 공유했습니다.

▲ 답변 중인 중앙데일리 Monica Williams
▲ 답변 중인 중앙데일리 Monica Williams

어떤 집단을 대표한다는 일은 매우 무거운 심리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줄 수 있습니다. 그녀는 여기자로서의 그녀 자신의 커리어가 마치 여성 전체를 대변하는 일처럼 확장되는 현실을 꼬집었습니다. 여러분도 소수가 되는 상황에 속해 본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을 텐데요. 예를 들어 외국에 사는 한국인일 경우 나의 행동이 곧 한국인 전체를 대표하게 되는 상황이 Monica가 느낀 저널리즘에서 여기자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녀가 잘해야만 여기자가 그 존재를 인정받고 그녀가 실수하면 여기자 커뮤니티 전체가 지적받는 상황이죠. 그러면서도 남자 기자는 이와 같은 책임감에서 자유롭다고 비판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 저널리즘이라는 커리어에서 진정한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해


국제 사회에서의 저널리즘을 알아볼 수 있었고 동시에 한국의 저널리즘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자로 일하면서, 즉 위킹맘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에 대한 진솔한 경험담을 공유한 그녀는 KBS 김양순 기자입니다. 아마 한국에서 일하게 될 20대 여러분이,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이 가장 궁금해할 내용으로 예상되는데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어떻게 찾을 수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래와 같은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사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불가능해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죠”

솔직한 그녀의 답변에 관객들은 약간 놀란 얼굴을 했습니다. 물론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이라면 좋겠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일과 가정 모두가 최고를 노릴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2014년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두 달 가까이 집에 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가정에 충실할 수 없게 되자 엄마로서 죄책감이 늘어갔다고 고백할 때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두 달간 집을 비우게 되면서 아이들도 엄마의 빈자리를 느꼈고 그녀가 돌아갔을 때 엄마를 낯설어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눈물을 삼켰다고 회상했습니다. 한 번 아픔을 겪은 김양순 기자는 이후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가정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쌓아온 커리어가 아쉬운 순간도 있었지만, 엄마로서의 기쁨이 그를 덮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김양순 기자가 가정을 선택했다고 커리어를 놓아버린 것은 아니며, 막중한 책임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자리보다 가정에 충실하면서 병행할 수 있는 커리어로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육아 휴직의 사용이나 퇴근 시간이 비교적 유연해져 과거보다 워킹맘의 삶이 나아졌다고 합니다. 여기자가 경력을 쌓으면서 가정에도 충실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업무 환경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는 말인데요. 저널리즘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에서도 여성의 가정과 일의 효율적인 양립을 위해 노력해야겠죠?

▲ 필기 중인 객석의 모습
▲ 필기 중인 객석의 모습

각 패널의 답변이 길어지면서 객석 질의응답 시간이 단축된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한정된 질문만 받았지만 유의미한 질문이 이어져 내용은 더욱 풍부했는데요.

기자로서 좋은 리더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Kim은 잠시 망설이는 듯했습니다. 그녀가 팀의 리더 역할을 맡았을 때 한 팀원은 여자 보스를 두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다며 팀 전환을 요구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여성 리더로서 성공하는 것은 생각만큼 이상적인 그림이 아닐 수 있고 어려울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강하게 몰아붙이는 리더십도 공평하게 모두를 대하기만 한다면 효율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로이터 여기자의 이야기를 다룬 <#girlboss>라는 책을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했습니다.

유리 동물원의 의미


유리 천장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많이들 들어보셨을 텐데요. 본 행사의 이름인 '유리 동물원'은 비교적 생소한 용어입니다. 이는 소수의 여성이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르면 마치 여성 차별이나 유리 천장이 아예 사라졌다고 믿게 되는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여성 보도국장이 있으니 이제 업무 환경이 아주 평등하다고 잘못 믿게 되는 것이지요.

▲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습
▲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습

많은 여기자가 남성 기자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정치나 경제 분야에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습니다. 물론 적은 숫자이지만 분명 그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제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고 쉽게 넘겨 버리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커리어가 바로 기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여성 청소년 관련 뉴스와 사건이 많은 편으로 여기자의 접근 능력이 요구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봐도 여성 인권 신장과 아이들의 생명권 보장을 위해서는 각 나라 여성의 목소리를 한 발짝 더 다가가 취재하고 알려야 합니다. 다시 한번 여기자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확인되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The Glass Zoo: Women in Journalism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뛰고 있는 여성 기자들의 커리어를 들어볼 수 있어 매우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꿈꾸고 있는 분들에게는 동기 부여가 될 내용이고 기자를 준비하다 포기한 분들에게는 다시 한번 희망을 품고 도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분야에서 이렇게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일하는 멋진 여성들을 만나고 오자 제 마음에도 열정이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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