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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포드 박물관에서 미국 산업 발전사를 만나다

작성일 2018.02.13
▲ 헨리 포드 박물관
▲ 헨리 포드 박물관

▲ 헨리 포드 박물관 입구
▲ 헨리 포드 박물관 입구

세계 자동차 발전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누굴까? 많은 사람이 주저 없이 ‘헨리 포드(Henry Ford)’라 답할 것이다. 1913년 헨리 포드는 자동차 공장에 컨베이어 벨트를 통한 조립 라인 방식을 최초로 도입한다. 이는 조립 생산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킨 시도였는데, 기존 12시간 30분 소요되던 자동차 조립 시간을 2시간 30분 정도로 단축하며 자동차 산업은 대량생산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를 통해 850달러였던 자동차 가격은 250달러까지 조정되고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를 누구나 탈 수 있도록 대중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미국 디트로이트에 가면 헨리 포드가 남긴 업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헨리 포드 박물관’이 있다. 그곳에선 헨리 포드의 조립 라인부터 이를 통해 양산한 포드 ‘모델T’, 그리고 미국 자동차의 역사까지도 한눈에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억만장자였던 헨리 포드가 수집한 수많은 역사적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미국의 발전사 또한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현대 기자단이 헨리 포드 박물관에 다녀와 만난 미국의 근대 산업 발전사를 소개한다.

▲ 헨리 포드의 조립 생산 라인
▲ 헨리 포드의 조립 생산 라인

헨리 포드 박물관은 자동차 박물관이 아니다?


헨리 포드 박물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중앙에 꽂혀있는 ‘삽’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의 사인이 적힌 시멘트 위에 삽이 꽂혀있다. 생전 헨리 포드와 친분이 있었던 토마스 에디슨이 박물관을 건립을 함께했다는 의미의 삽과 사인이다. 실제로 박물관 전시품 중에는 에디슨과 관련된 것들이 많은데, 에디슨의 실험실을 보존해 놓은 전시공간이나 그의 발명품들이 헨리 포드와 에디슨이 동시대를 살며 많은 일을 함께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 박물관 중앙에 놓인 에디슨의 삽과 사인
▲ 박물관 중앙에 놓인 에디슨의 삽과 사인

헨리 포드 박물관에는 에디슨과 관련된 전시물뿐 아니라 라이트 형제(Orville and Wilbur Wright)의 비행기와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미국 16대 대통령의 의자,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의 침대도 전시돼 있다. 그중 인기 있는 전시물은 링컨의 피가 묻은 의자다. 이 의자는 링컨이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암살당할 당시 마지막으로 앉아있었던 흔들의자로, 등받이 윗부분에 피와 같은 얼룩이 묻어있다. 많은 사람은 이 얼룩이 링컨이 암살당할 당시 묻은 피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포드 극장을 찾아 이 의자에 앉았던 다른 관객들의 머릿기름이 묻어있는 것이라고 한다.

▲ 링컨이 마지막으로 앉았던 의자
▲ 링컨이 마지막으로 앉았던 의자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침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침대

이 밖에도 헨리 포드 박물관에는 그가 살았던 당시에 수집했던 수많은 자동차와 산업기계, 농기구, 가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 최초의 억만장자였던 포드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물건들을 사들여 1929년 박물관을 세운다. 1929년은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50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해 박물관을 설립한 것인데, 최초에는 학생과 학자의 연구용으로만 박물관을 개방했었다. 3년 뒤인 1932년에는 일반인에게도 개방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져오게 됐는데, 박물관에 방문해 그가 사들인 전시품들을 보고 있으면 헨리 포드 박물관은 단지 자동차만이 아닌 미국의 근대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헨리 포드가 수집한 초기의 전화기들
▲ 헨리 포드가 수집한 초기의 전화기들

미국 대통령의 자동차


박물관의 입구 오른편에는 가장 눈에 띄는 자동차 전시물이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 탔던 자동차들이다. 과거 마차 같은 모습의 의전 차량부터 현재의 차량과 흡사한 모습의 의전 차량까지 차례대로 전시돼 있다. 미국 대통령 의전 차량의 역사는 1919년 우드로우 윌슨(Thomas Woodrow Wilson) 대통령이 캐딜락에 타고 세계 제1차 대전 승전 기념 퍼레이드를 하던 것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만을 위한 ‘방탄’ 의전 차량이 제작된 것은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가던 1939년이었다.

▲ 역대 미국 대통령의 자동차들
▲ 역대 미국 대통령의 자동차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가 32대 미국 대통령으로 있던 백악관에서는 포드사에 대통령 의전 차량에 대한 특별한 사항을 요청한다. 루스벨트는 소아마비로 다리를 쓸 수 없었기에 손으로만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가 필요했다. 여기에 24mm 두께의 방탄유리와 방탄 타이어, 경고등이 달린 자동차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리고 1939년 ‘특별한 햇살(Sunshine Special)’이라는 이름의 첫 미국 대통령 ‘방탄’ 의전 차량이 제작된다. 그리고 이 자동차를 시작으로 후대의 미국 대통령의 의전 차량은 모두 방탄 기능을 가지게 된다.

▲ 루즈벨트의 의전 차량 ‘특별한 햇살(Sunshine Special)’
▲ 루즈벨트의 의전 차량 ‘특별한 햇살(Sunshine Special)’

1963년 케네디(John F. Kennedy)가 암살당할 당시 타고 있었던 차는 포드사의 ‘링컨 콘티넨털 X-100’이라는 모델이다. 현재 미국 대통령의 의전 차량은 로켓과 지뢰까지도 막아낼 수 있는 방탄 성능을 가지고 있지만, 케네디가 암살된 퍼레이드에서 탄 의전 차량은 그렇지 않았다. 링컨 콘티넨털 X-100은 차의 지붕이 없는 ‘컨버터블’ 차량이었기 때문이다. 링컨 콘티넨털 X-100은 1961년형 ‘링컨 콘티넨털 4도어 컨버터블’ 모델을 개조한 차량이었다. 이 모델을 대통령 의전 차량으로 개조하는데 6개월간 20만 달러나 들였지만, 개조된 링컨 콘티넨털이 케네디가 타는 마지막 차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케네디 암살을 기점으로 미국 대통령 의전 차량은 지붕까지도 방탄화하는 작업이 이뤄지게 된다.

▲ 케네디가 암살당한 의전 차량 ‘링컨 콘티넨털 X-100’
▲ 케네디가 암살당한 의전 차량 ‘링컨 콘티넨털 X-100’

미국의 자동차 역사 100년


미국 자동차 100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미국 생활 속의 자동차’ 전시 공간은 헨리 포드 박물관의 메인 전시라 할 수 있다. 긴 전시 공간을 따라 미국 도로를 달렸던 자동차들을 연대별로 한눈에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1800년대 말 유럽에서 들여온 자동차가 보인다. 당시 미국에서는 제대로 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1900년대 초 미국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들
▲ 1900년대 초 미국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들

우리가 아는 최초의 자동차 엔진을 개발한 것은 독일의 엔지니어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였다. 1880년대 그가 만든 것은 자동차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작은 고성능 내연기관 엔진이었는데, 그전까지의 투박한 저성능의 엔진과는 비교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1885년 이 엔진을 자전거에 장착하고, 뒤이어 1886년 자동차에 장착한 것이 현재의 자동차까지 이르게 되었다.

1920년대가 되면 미국의 도로는 포드사의 ‘모델T’로 가득 차게 된다. 헨리 포드의 조립 라인 생산 방식이 값싼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것이다. 1908년 처음 생산된 모델T는 이후 컨버터블 형태의 모델T 로드스터와 장거리 운행에 적합한 모델T 투어링카 등 여러 버전을 생산하며 더 많은 미국인들이 타는 차가 된다.

▲ 포드의 ‘모델T 투어링카’
▲ 포드의 ‘모델T 투어링카’

1900년대 초 미국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자동차 회사가 있었는데, 그중 두각을 나타낸 제조사는 포드와 GM(General Motors Corporation)이다. 당시 모델T에 대항하기 위해 GM은 쉐보레라는 브랜드의 ‘클래식C 시리즈6’를 생산하는데, 이 모델은 많은 판매량을 올리며 포드의 모델T를 위협하게 된다. 이후 모델T만은 생산하던 포드와 다르게 GM의 쉐보레는 매해 새로운 자동차를 내놓으며 미국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1900년대 중반에 들어서도 포드와 GM의 쉐보레는 미국의 자동차를 대표하는 제조사로 명맥을 이어간다.

▲ 쉐보레의 ‘코베어(Corvair)’
▲ 쉐보레의 ‘코베어(Corvair)’

1900년대 후반이 되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자동차까지 미국에 진출하게 된다. 일본의 토요타는 1958년 처음 미국 시장으로 진출하지만 미국 소비자들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일본의 자동차는 작고 느리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이후 토요타는 1965년 ‘코로나’ 모델로 다시 미국 시장에 다시 도전하는데, 당시 미국의 자동차는 점점 더 크기가 커지는 추세였고 이에 따라 연비도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작고 효율적인 코로나 모델은 미국인 소비자들의 마을을 사로잡았고 1970년대 미국 시장에서 많은 인기를 끈다. 이때의 인기는 현재까지도 일본의 자동차는 가성비가 좋다는 인식으로 이어지게 된다.

▲ 토요타의 ‘코로나(Corona)’
▲ 토요타의 ‘코로나(Corona)’

헨리 포드가 남긴 것들


헨리 포드는 자동차 이외에도 비행기나 엔진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비행기의 대중화에 앞장섰는데, 자신의 이름을 딴 포드 공항(Ford Airport)을 만들고 모델T를 바탕으로 한 비행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가 만든 공항은 실제로 승객들이 탑승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비행기를 테스트하고 계류하는 격납고로 쓰였다. 모델T의 비행기 버전을 만들어 누구나 쉽게 탈 수 있는 소형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실험을 하기도 했다.

▲ 포드의 비행기
▲ 포드의 비행기

헨리 포드가 사들인 엔진의 크기는 압도적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엔진은 자동차에 쓰이는 작은 엔진이 아닌 물이나 증기를 이용한 거대한 ‘터빈’이었다. 이런 터빈 엔진은 크기가 너무나 커 집 한 채와 맞먹는 크기인데, 초기의 엔진은 성능에 비해 얼마나 큰 크기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전시된 엔진들은 대부분 공장이 댐, 광산에서 쓰이던 것들로 수차나 증기 등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고 기계를 돌리는 데 사용됐다.

▲ 1903년 Washington Water Power Company에서 사용하던 수력 발전기
▲ 1903년 Washington Water Power Company에서 사용하던 수력 발전기

마치며


헨리 포드 박물관을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가 단순히 포드라는 자동차 제조사를 만든 기업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물관의 자동차와 비행기, 그리고 역사적 물건들을 보며 그가 산업과 역사에 얼마나 많은 관심이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됐다. 또한 단지 자동차를 만들어 팔겠다는 생각이 아닌, 좀 더 많은 사람이 자동차와 비행기라는 이동 수단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길 바랐던 마음 또한 엿볼 수 있었다. 헨리 포드가 없었더라도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만들고, 발전시킨 자동차를 타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좀 더 뒤처진 시대의 이동 수단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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