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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것을 상상하다

작성일201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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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세상에 없는 것을 상상하다

 

이노디자인 대표, 디자이너 김영세

 

뚜껑을 연다는 통념을 깨고 슬라이드 폰처럼 밀어서 열 수 있게 만든 라네즈 슬라이딩 팩트, 액정화면이 가로로 돌아가는 삼성 가로본능 휴대전화, 최초의 목걸이형 MP3플레이어 아이리버 N10, 키보드가 반으로 접히는 초소형 노트북 삼성애니콜 SPH P9000. 모두 이노디자인 김영세 대표의 작품이다. 참기름병에서 휴대전화까지 김영세 대표의 손을 거치면 새로운 옷을 입고, 새로운 기능을 얻었다. 김영세 대표는 단순히 예쁘고 이색적인 게 아니라 세상에 없는 것, 세상이 바라는 것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게 디자인이라 말한다. 

 

이노디자인의 이노(INNO)는 개혁(INNOVATION)의 약자. 김영세 대표는 단순히 제품 디자인만을 개혁한 게 아니다. 디자인이란 개념 자체를 개혁했다. 기업이 물건 디자인을 맡기기 전에 디자인 회사가 먼저 상품을 기획해 기업에 제시하는 방식이 이노디자인의 ‘디자인 퍼스트’론이다. 개별 기업이 상상하지 못한 앞서가는 디자인을 디자이너가 만들어낼수 있다는 발상이고, 그렇게 ‘디자인 퍼스트’로 만든 수많은 제품이 성공을 거뒀다. 일본의 닛케이 BP는 지난해 디자인의 개념 자체를 바꾼 10개의 디자인 회사 중 하나로 이노디자인을 선정하며 ‘존재하지 않던 것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최근에 펴낸 저서 ‘이매지너’를 통해 김영세 대표는 전략적 상상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16살 때 친구 형의 산업디자인 책을 우연히 보고 디자이너의 꿈을 품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도 16살 때였는데. 바로 디자이너의 꿈이 생긴 것은 아닐 것 같은데
바로 생겼다. 바로 생긴 게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그 옛날 일을 기억하겠나 보자마자 ‘이거다’라고 생각했고 디자이너란 길에 확신을 가졌다. 그 후론 미래에 대한 걱정을 별로 안 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해야겠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야겠다. 미국에 가서 디자이너가 돼야겠다는 나름의 인생의 커리어 플랜을 16살 때 찾았다. 지금 생각해도 굉장한 일이었고 그래서 아직 그 순간을 잊지 않는다.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한지 얼마 안 돼 일리노이 대학의 디자인과 교수가 됐다. 어떻게 된 건가 교수 자리란 게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어떻게 될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운명적이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대학교수가 되고자 이것저것 찾아본 것은 아니고, 그냥 직장 점심시간에 디자인 관련 매거진을 뒤져보다가 일리노이 대학에서 교수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봤다. 내가 좀 달랐던 게 있다면 그것을 그냥 넘기질 않은 점이다.
 

될 것이라고 생각했나
그럴 리가 있나. ‘에이 미국에서 디자이너 생활한 지 6년밖에 안 됐는데. 내 영어 실력에 내 경력에 게다가 유학비자만 가진 한국인인데 과연 될까’ 근데 거기서 ‘Why Not 밑져야 본전 아닐까.’ 그때 생각은 아주 단순했다. 도전조차 안 하면 완전한 제로, 만약 도전해서 안 되면 ‘아 이래서 안 됐구나’라는 내 부족한 점을 알게 되는 것. 꿈같이 되면 완전히 날아다니는 거고.(웃음)

 

 

 

교수직 버리고 민간회사로
다시 창업으로

 

그러고 보면 상당히 과감한 선택을 많이 했다. 교수직을 버리고 민간 디자인회사로 들어가고. 또 잘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디자인 회사를 차리고. 때론 밑지면 큰일 나는 선택도 했다. 신개념 골프가방 프로텍을 디자인해 그걸 아예 자체 제작까지 하려고 했는데, 자본금 10만 달러로 시작한 회사에서 금형제작만 50만 달러 정도가 드는 엄청난 일이었다. 밑지면 속되게 말해 망하는 것 아닌가
밑지면 크게 밑지지만. 되면 또 크게 되는 거였다. 그동안 용감한 선택을 자꾸 해봐서 익숙해진 것도 있고(웃음). 사실 어떤 면에선 절박하기도 했다. 미국에 회사를 차린 무명 한국인 디자이너인데 뭔가 획기적인 사건이 없으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리겠는가. 아니 거의 알려질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뭔가 획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성공 확률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했나
내 나름의 확률을 정하자면 한 90퍼센트. 실제로 그런 상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미국의 골프인구를 봤을 때 승산이 있다고 봤다. 결국 다른 업체가 나서서 프로텍 디자인을 샀고, 미국 시장에 많이 팔렸다. 게다가 프로텍으로 IDEA 디자인 워어드 동상도 받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지만 그 동상 하나 받은 게 내 인생과 이노디자인에 얼마나 큰 모맨텀이 됐는지. 프로텍이 있었기에 자신감을 얻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알려졌다.

 

디자이너는 비즈니스를
알아야 한다

 

모 기사에서 당신을 ‘디자인 컨설턴트 겸 비즈니스 컨설턴트’라고 소개한 걸 봤다. 어떤 이들은 당신을 보며 비즈니스 감각이 있는 디자이너라고 평가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못 해석하면 좀 억울한 부분이 있다. 무슨 장사를 잘하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내가 강조하는 ‘비즈니스 마인드’란 고객이 비즈니스 잘하게 만드는 디자이너의 마음이다. 제품 디자인의 목표가 상대방의 비즈니스를 성공시키는 거라면 비즈니스를 모르는 디자이너가 더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디자이너가 제품의 콘셉트를 정할 때 생산자가 생산하는 방식, 소비자가 원하는 취향 등을 아는 게 바로 비즈니스 마인드다. 화장품을 만든다면 비즈니스 콘셉트, 생산 과정, 소비자와의 접점, 그것들을 모르면 최적의 디자인을 할 수 없다.

 

휴대용 버너부터 휴대전화 디자인까지, 장르가 그렇게 다양한데 그런 과정을 다 알 수 있나
다 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여기엔 호기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태어날 때부터 휴대용 버너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다. 디자인을 맡게 된 제품 장르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빨리 배워가는 퀵 러닝이 필요한 것이다. 비즈니스 과정 전체를 알게 되는 건 디자이너에게 큰 자산이 된다. 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냅킨이든 메모지든 아무 것에나 스케치를 한다. 그리고 그런 스케치는 때론 수십억의 매출을 올리는 상품이 된다. 그런데 나중에 그 냅킨 한 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비즈니스 모델, 마케팅 방향, 기술 생산 공정, 소비자 연구, 브랜드 연구, 그 모든 게 다 들어 있다. 모든 게 복잡하게 머릿속을 돌아다니다가 스케치 한 장으로 나오는 것이기에 사실 그 한 장의 스케치엔  12억치의 내공이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방식이 내 디자인 방식이다. 그래서 비즈니스를 많이 아는 디자이너라기보단 비즈니스가 중요하다는 걸 아는 디자이너라는 게 맞겠다. 

 

디자인 회사가 먼저 제품을 기획해 기업에 제시하는 방식을 창안했다. 당신은 이것을 ‘디자인 퍼스트(design first)’라고 불렀다. 언제부터 이런 발상을 했는가
고객과의 만남에서 내 생각과 엇박자가 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고객은 자신이 축적한 경험을 통해 기획을 만들어 내게 오는 건데, 내가 여러 상품의 소비자 취향을 조사하고 디자인을 하면서 배우고 느낀 대로라면 출시 시점에 그 기획은 안 팔릴 것 같다. 그래도 고객이 의뢰하는데 내가 그렇게 안 하겠다고 하는 것도 웃기고. 그러다 언뜻 생각한 게 ‘그러면 내가 먼저 하면 안 되나 내가 먼저 아이디어를 내보자.’ 그래서 해봤더니 효과가 있더라. 그래서 1999년 호주에서 열린 월드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디자인 퍼스트’전시를 열었고 거기서 고객의 요청이 아닌 순전히 이노디자인 디자이너들의 발상으로 탄생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디자이너가 만들어가는 세상
디자인 퍼스트

 

디자인 퍼스트를 이야기하면서, 당신은 디자이너가 소비자들이 원하는 공통된 취향을 알아낼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수많은 마케터들이 그렇게 원하는 게 소비자의 취향인데 그걸 디자이너가 알아낼 수 있나
보통 기업은 특정 제품을 생산한다. 어떤 회사는 전자제품, 어떤 회사는 신발. 예를 들어 나이키하고 노키아. 발음이 비슷하지만 나이키는 신발 만들고, 노키아는 휴대전화 만든다.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 관계가 있다. 나이키 신발을 신는 그 소비자가 노키아 휴대전화를 쓰는 그 사람이다. 이노디자인은 신발도 디자인하고 휴대전화도 디자인한다. 디자이너의 관심사는 소비자가 원하는 특정 상품이 아니라 소비자의 취향 자체다. 디자이너의 눈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더 빨리 참신한 각도로 볼 수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가 원하는 건 소비자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당연히 맞는 말이다. 왜냐면 소비자는 미래를 모르니까, 소비자가 원하는 미래 상품은 현재 없으니까. 상품을 만들기 위해 여러 시장 조사 방법을 쓰고는 있지만 그게 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시장 조사는 자료는 될 수 있지만 정답은 줄 수 없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두고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일반인들도 미래에 유행할 상품에 대해 뭉뚱그려 상상할 순 있지만 그걸 정확히 그려내기 힘들다. 만약 그런 소비자가 있다면 내가 당장 데려다가 디자이너 시킬 거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자체가 이미 디자이너다.

 

미래를 그리는 능력
이매지닝

 

이매지닝을 ‘전략적 상상’이라고 표현했다. 공상이나 망상이 아니고 상상 속에 필요한 것을 끄집어내 형상화하는 것이란 말인데, 그게 그렇게 쉬울까
난 상상 속에서 세상에 없는 걸 자꾸 본다. 때론 꿈속에서도 디자인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건 노력하면 키울 수 있는 능력이다. 난 그걸‘이매지닝’이라고 부른다.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없는 것을 상상해보는 것, 그러다가 자기 분야에 초점을 맞춰 전략적으로 상상하며 그것을 스케치하고 형상화시켜 그게 현실이 되는 걸 체험하는 것. 그때 그걸 포착해서 생산할 수 있고 그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건 엄청난 비즈니스고 엄청난 기쁨이 될 거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처럼 때론 그런 상상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상상력이 중요하단 건 누구나 알고 있는데 왜 하필 당신의 이야기가 공감을 얻는다고 생각하나
상상 속에서 좋은 것들이 많았는데 그걸 못 했든가 안 했든가 그렇게 지나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 아닐까. ‘에이 내가 뭘’ 이런 생각 말이다. 내 책에선 이매지너란 인재의 생각 방식은 그렇지 않다는 것, 긍정적이고 가능성을 생각하고 즐겁게 생각한다는 것. 그런 인재가 많은 것을 이뤘다는 걸 실제로 보여줘서 그런 것 같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관심을 가진 분야를 묻겠다.
인터렉션 디자인(Interaction design), 인간이 제품을 사용하면서 상호간 작용하는 접점 모두에 대한 디자인이다. 그 제품과 관련한 총체적인 소비자 체험을 디자인한다는 말이다. 인터렉션 디자인은 이노디자인의 또 다른 도전이 될 것이다. 요즘 새로이 등장하는 스마트폰과 그로 인한 세상의 변화를 보면서 정말 충격을 받고 호기심을 느꼈다. 이건 마치 내가 16살 때 처음으로 디자인이란 분야를 만났을 때의 설렘과 같고 그때 봤던 새로운 세계를 또 보는 것 같다. 현실에선 보이지 않지만 내가 상상하는 미래에는 디자인의 힘이 소비자와 생산자의 만남, 인터페이스의 모든 공간에 꽉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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