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자기 내면을 봐라"- 폴란드 스님의 이야기

작성일2013.08.12

이미지 갯수image 23

작성자 : 기자단


대학생 시절. 가고 싶은 곳이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시절이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가지 못할 곳도 많고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많은 시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꾸 가고 싶은 곳 대신 가야 할 곳으로 가야하고, 하고 싶은 것 대신 해야 할 것을 하게 된다. 학기 중에 공부하면서도 봉사하고, 토익 준비하고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한다. 방학이 되자마자 인턴을 하고, 또 영어를 공부하고, 즉 스펙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의 “우리”를 잊고 미래의 “우리”를 위해 인내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잘 파악하기도 전에 남들이 시키는 것을 하고 모두가 원하는 것을 따라서 원한다. 하지만 먼저 우리 내면부터 성찰해보면 우리 삶의 가치를 남들과는 다른 것을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아주 원초적이고 단순한 사실들을 잊은 채 살고 있기에 우리가 행복을 쉽게 찾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20년 전에 한국에 온 “원통”이라고 부르는 폴란드 출신 스님이, 그런 사실들을 기반으로 하여 살고 있다. 



원통 스님이 20년전에 한국에 왔을 때 화계사라는 절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화계사에서 외국 스님이 머무는 곳이 존재하기 때문에 거기서 다른 폴란드와 다른 국적의 스님과 함께 교육을 받으면서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3년 뒤에 경주로 자리를 옮겨 한국 스님 사이에 살게 되었을 때부터 한국어로 경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여정은 경주에서 끝나지 않고 부산 등 여러 절에서 머물기도 하였다.


 
원통 스님이 현재 거주하는 곳은 불암산의 천보사다. 6호선 태릉입구역에서 내려서 마을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는 교외의 절이다. 절 입구에서부터 경전 소리가 들린다. 원통 스님이 경전을 외는 것이다. 일요일이라서 법회 시간이기 때문일까 평일에 텅텅 비어 있는 이 장소는 일요일만 되면 신도들로 가득 친다. 


 
 
 







 
 



절 뒤로 좀 더 올라가다 보면 바위에 새겨진 조각들이 있다. 비가 많이 내리면 바위가 폭포로 변한다고 한다. 물 통해서 생긴 얼룩들도 관찰 할 수 있었다. 


작은 당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소원을 종이에 써서 천장 밑에 건다. 스님 말씀으로는 옛날에 불교 신도들은 자기발전, 지혜를 위해 기도했지만, 지금은 건강이나 재물을 바라고 절에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불교의 가르침엔 모든 물질적인 욕망을 버리고 자기 내면의 발전에 중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지만 사람들은 자주 그것을 잊고, 물질적인 것에 더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공기, 물 등 자연을 오염시킴으로써 수 많은 병들의 원인을 만들었다. 하지만 절에 와서는 가족의 건강을 바라고 있다. 건강을 바라기 전에 지혜를 바랬으면 환경의 소중함을 더 깨달았을 것이고 그 결과 많은 질병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장소- 교외의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커피숍이다. 오래 전 다른 목적지가 있어 찾다 우연히 발견한 장소라고 한다. 숲 속의 파라솔 아래서 앉아서 메뉴 판을 기다리고 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가운데 직원이 우산을 들고 우리를 향했다. 주문하고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였다.



원통 스님이 불교를 처음에 접한 계기는 태극권 (타이치) 통해서였다고 한다. 그 당시 원통 스님이 펑크 음악을 즐겨 듣는 평범한 젊은이였으나 그러던 어느 날 기차에서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는 선명상 기법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자기 인생의 깊은 의미를 찾지 못하고 지금까지 사는 방식으로 살기에 지쳤던 스님은 처음 본 여자에게 자기 삶 이야기를 다 들려 줬다. 여행이 끝나고 아쉽게 헤어져야 했지만 다음 태극권 워크샵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워크샵 당시 스님이 처음 불교 신도들을 만났고 심지어 처음으로 바닥에서 앉아 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는 모든 것이 그에게 신기하기만 했다. 태극권 학회에 가입하고 자기가 사는 도시에서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찾으려고 결심했지만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우연히 선과 불교를 접할 수 있다는 어느 학교의 10주년 기념일을 알리는 포스터를 보고 그 장소를 가 보기로 했다고 한다. 학교는 작은 두 골목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노력한 끝에 발견해 상당히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였으나 학교의 모습은 부처님 형상, 매트 그리고 차, 탁자뿐이었다. 그 때부터 1주일에 한번 이상 저녁 법회에 다녔다. 그런데 1년 뒤에 결국 군대 갈 날이 다가왔다. 군대 합격 심사 당시 채식주의자라는 문제 때문에 군대에 탈락 되어 병원 세탁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세탁소가 학교와 10분 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근무 장소랑 가깝고 자신이 지내기가 제일 편한 장소이기에 스님은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이후 결국 스님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렇다면 스님이 될 때까지 거쳐야 할 과정은 일단 6개월 동안 학교에서 생활하고, 훈련하고, 경전을 배우고, 명상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경전 책은 그냥 도와 주는 도구에 불과하고 실제로 알아야 할 것은 전부 우리 안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내면을 깊게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 위해서 매일 명상하고 연습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스님이 다녔던 학교는 숭산 스님이 만든 한국식 불교 학교였다. 숭산 스님은 오래 전부터 미국에서 불교 전파하고 폴란드와 다른 주위 유럽 나라에서도 불교를 알리는 데에 힘썼던 유명한 스님이다. 원통 스님이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서 미국이나 한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는데 그는 숭산 스님의 나라인 한국을 택했다. 그 당시에 한국에 폴란드 스님, 미국 스님들이 이미 거주 하고 있었는데 많은 외국 출신 스님들은 한국을 빨리 포기했다. 음식, 문화 차이가 크다는 것이 이유였다.

원통 스님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 원통 스님은 한국에 적응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문화를 비교하거나 비판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드려야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아침 식단에 김치가 있으면 가리지 않고 먹어야 된다. 언어 문제도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현재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지만 따로 공부를 하기 보다는 생활 속에서 보고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한다. 그래서 생각은 세 가지 언어로 즉, 자기 모국어 인 폴란드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로 한다. “내 생각은 다국어의 짬뽕이다” 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스님. 


 



서울의 과거 20년전에는 산업사회 일변도인 풍경이었다. 공원이나 나무 보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똑같이 외국인도 거의 마주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절 생활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절을 방문하는 한국 사람들은 더 넓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졌지만 절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님의 하루는 어떤가 원통 스님은 새벽 3시 40분에 하루를 시작한다. 일어나서 40분 동안 짧은 경정을 부른다. 그 다음 차를 우려서 마시고 잠을 깨기 위해 9시쯤 커피도 마신다. 10시에 법회가 있기 때문이다. 법회를 끝나고 명상하고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10시에 스님의 하루 일과가 끝나며 잠자리에 든다. 

스님의 하루는 우리의 일상과는 다르다. 우리가 바쁜 일정에 시달리고 있고 돈을 쫓겨 다니고 남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힘을 쓰고 있는 반면 스님은 천천히 끊임없는 자기 발전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하면서 산다. 가끔씩 다른 문화를 탐구하기 위해서 재미있는 여행도 떠난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의 생활은 평화로워 보인다. 우리도 바쁜 생활 속에서 한 번쯤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나 자기 내면을 성찰해보는 것이 어떤가 


                                                                                                                                              

해당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 영현대 저작권이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며, 비영리 이용을 위해 퍼가실 경우 내용변경과 원저작자인 영현대 워터마크 표시 삭제는 금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