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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따라 찾아 보는 멕시코시티

작성일201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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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노라 존스가 뉴욕의 낭만을 가득 담아 뉴욕시티~’를 노래했다면 오렌지캬라멜이 아시아 공략 프로젝트 1탄으로 '방콕 시티'를 내놓았다면 이번엔 '멕시코시티'다!

 

 

 정식명칭은 Ciudad de Mexico, Mexico D.F;Districto Federal. 멕시코 중앙부 약 224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해 열대기후임에도 불구하고 연평균기온은 15˚C 안팎으로 연교차는 작지만 일교차가 커 하루종일 4계절의 날씨가 나타난다. 서울시의 약 20배, 인구 2500만 이상(2010년 기준), 세계 5위 안에 드는 메트로폴리스이자 중미 최대의 도시. 1968년 중남미 최초로 제 19회 올림픽이 열렸었다. 이 곳이 바로 멕시코시티이다.

 

 

 비교적 온화한 날씨에 주변이 산림과 계곡으로 둘러쌓여 있어 열대고원지대로는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예로부터 도시가 형성되었고 문화의 발상지가 되었다. 7세기 중엽 멕시코시티 북동쪽에서 번성했던 떼오띠우아깐(Teotihuacan) 문명이 붕괴한 이후 10세기엔 똘떼까(Tolteca) 문명이, 13세기 말에는 아즈떼까(Azteca) 문명이 잇달아 자리잡았다. 아즈떼까 문명은 고대 멕시코의 최후 문명으로 멕시코 고원 중앙부의 떼스꼬꼬(Texcoco)호수의 섬에 수도인 떼노치띠뜰란(Tenochticlan;신의 공간)을 건설했다. 아즈떼까 문명은 14세기 초에 시작되어 15세기부터 스페인에 정복당하기 이전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고대의 멕시칸이 누렸던 찬란한 역사·문화 유산은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에서 볼 수 있다.

 

고대 멕시칸을 찾아서 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

 

 차뿔떼뻭(Chapultepec) 공원 안에 자리잡은 멕시코 국립 인류학 박물관은 1964년에 지어진 멕시코 최대의 박물관이며 멕시코에서 내로라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이 곳에서는 고대 멕시코 인디언의 모습과 고대의 유물들, 현재 인디언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 이 곳은 중남미 고대 문화에 관해서라면 그 규모나 소장품의 질적인 면에서 세계 최고라고 평가 받고 있다.

입장료는 51페소(한화 약 5000원), 멕시코 시티의 모든 관광지의 입장료는 51페소이다. 멕시코 국내 학생증이나 운전면허증이 있다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인류학 박물관의 경우 일요일만 무료)

 

▲좌, 빨렝께(Palenque)의 생명의 나무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든 기둥 분수. 기둥 하나가 온 천장을 받들고 있다.

우, Zocalo에서 발굴된 아즈떼까족의 태양의 돌. 아즈떼까인들은 자신들이 제5의 태양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1521년, 에스빠냐의 꼬르떼스(Hernan Cortes)의 침략으로 고대도시는 산산이 부숴져 버렸고 그 위에는 에스빠냐에 의해 식민 도시가 건설되었다. 이 곳은 에스빠냐의 철저한 지배 아래 쏘깔로(Zocalo;중앙 광장)를 중심으로 빈틈없이 짜여진 바둑판 모양의 도시로서 누에바 에스빠냐(Nueva Espana;새로운 스페인)라고 불렸다.

 

구시가지 Zocalo 중심에 위치한 대통령궁

 

  현재 쏘깔로와 그 인접 지역은 구 시가지로 분류되어 중세 유럽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가득 담고 있다. 이 곳은 국가의 보호 아래 스페인 식민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새로 생기는 상점과 건물의 경우 모두 식민 시대의 양식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 곳에서 살짝 의아한 점이라하면, 쏘깔로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16세기 황궁을 이루던 건물들로 현재는 모두 금은방이 되었다는거! 멕시코 독립 이후 황실의 부귀영화를 누리던 금은보화들은 하나씩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금은방이 생기던 것이 하나둘씩 늘어나 지금은 금은매매상가가 되었다.

 

 쏘깔로 중심에 위치한 대통령궁에는 매주 화요일을 제외하고는 간단한 신체 수색만 하면 입장이 가능하다.

 

 

 191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00주년을 맞아 건설된 독립기념탑으로 높이 45m의 탑 꼭대기에는 앙헬(Angel)이라고 불리는 황금 천사상이 세워져 있고 탑의 네 면에는 멕시코의 독립 영웅이 새겨져 있으며, 네 모서리에는 전쟁과 평화, 법, 정의를 주관하는 여신이 놓여 있다. 탑 안에는 멕시코의 독립에 이바지한 이달고 신부(San Hidalgo), 후안 알다마(Juan Aldama), 이그나시오 아옌데(Ignacio Allende)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멕시코시티의 랜드마크 Monumento a la independenciaendencia

▲ 황금 천사상 Angel

 

 천사상은 멕시코시티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멕시코시티의 관광책자나 관광지도, 택시에도 관련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멕시코시티에서 길을 잃었다면 '천사'에 데려다 달라고 할 것! 모두가 알아듣고 데려다 줄 것이다.

 

 중국인들의 금광에 속아 샌프란시스코에 실려 와 금도 없이, 집에 갈 방법도 없이 서글픈 이민 역사를 써 내려갔다면 멕시코에선 1905년, 1033명의 대한제국의 국민들이 베라끄루스(Veracruz)로 실려와 유까딴(Yucatan)반도에 버려져 에네껭(용설란의 종류)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며 긴긴 세월을 눈물로 보냈다.

 

멕시코 한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한국정

 

 차뿔떼뻭 공원 끝자락에 눈에 익은 모양의 건물이 보였다. 곱게 깔려 있는 기와와 오색빛깔의 단청, 버선코처럼 스윽 올라간 처마자락. 게다가 '한국정'이라고 쓰여있는 오랜만에 보이는 한글까지! 멕시코로 이민 와 에네껭 농장의 노예 생활부터 현재의 원단 사업까지 기어가며 멕시코에서 삶을 살아간, 그리고 앞으로 삶을 살아갈 한인들의 희노애락과 멕시코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 사랑을 담아 지은 정자. 한국정이다.

 

 너무나 동양인인 외모 탓에 연예인 취급 아닌 연예인 취급을 받으며 멕시칸의 조롱거리가 되고, 너무나 힘들어서 한국인 찾아 삼만리 떠날 무렵에 이 곳은 내게 말없이 위안을 주는 그런 곳이었다.

 

'멕시코시티'를 잘 모른다면 "거기 위험하지 않아" 그 뿐이겠지만, 어떤가  유구한 역사따라 볼거리 많고 우스갯소리로 동양계집에게도, 한자락 위안이 되는 곳이 '멕시코시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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