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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수도의 재조명!

작성일201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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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대한민국임시수도거리'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는가

  '임시수도 그거 상하이 아니야'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에 위치한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에 다녀왔다.

 

 

 

 

 

 

 

1. 거리에서

 

 

  '그 거리'에 왔다. 그 거리는 앞서 말한 바로 '대한민국임시수도거리'. 많은 예산 투자하였지만 아직 이 도심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기 보다는, 동네사람들에게만 알려진 실정. 하지만 몇 해 전의 아스팔트 거리에 한적했던 모습과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만큼 발전한 이 거리.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에 위치한 '대한민국임시수도기념거리'

 

▶ 한적했던 예전모습과 달리 새로 정비한 모습.

 

▶ 역사 거리인 만큼 거리 중간중간에 여러가지 볼 거리가 있다.

 

 

 거리를 올라가다 학생들 소리로 북적거리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을 때. 그 곳에 위치한 동아대학교가 있다. 이 거리의 특징은 학교와 기념거리, 임시정부청사, 그리고 박물관이 하나의 짜임새 있는 구조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어른들에게는 구 법원로 더 익숙한 이 곳에 눈에 띄게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학생들의 쉼터인 나무 아래 시선이 향하는 곳. 1952년 무상원조로 한국에 도입되어 1968년까지 부산시내에서 운행되던 부산전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전차를 둘러 보는 대학생의 모습과 전차 유리로 비친 학교와 전차 내부.

 

 

 

 

 

  다시 학교에서 나와, 임시수도기념거리를 따라 올라가면 가지런히 정리된 거리를 따라 시원한 나무냄새가 난다. 조금만 큰 차도를 벗어났을 뿐인데 마치 역사의 한 순간으로 와있는 것처럼 여러가지를 보고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 임시수도가 세워졌을 당시 아이들의 모습 동상

 

 

  잠시 계단이 위치한 곳에 여러가지 문구가 적혀져 있다.

 

「 남을 음해한다거나 또는 남을 결단내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겠다는 불한당의 생각은 다 버려야 되며, 나라를 도와서 나라가 잘 되는 일만을 해서 민중의 복이 되도록 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민중의 지지를 받게 되면 이것이 또한 민주정치의 대 근본이 되는 것이다. 」

 

 「  내가 평생을 자유와 민족 독립을 위해서 바쳐오는 동안 느낀 것은 언론을 존중히 여겨야 된다는 것이니, 참된 민주 자유언론의 권리와 책임은 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항상 주장하는 것이다.」

 

 

 

▶ 계단 위에서 내려다 본 임시정부기념 거리의 모습.

 

 

 거리를 따라 계단 위를 올라가 마침내 도착한 그 곳. 대한민국임시수도. 그곳에는 새로운 사람과의 특별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2.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 대한민국임시정부수도를 알리는 특별한 모양의 표지판

 

▶ 잘 정돈된 나무들과 그 곳. 부산 임시수도

 

 

  거리의 끝자락에 위치한 그 곳. 바로 이 글의 주인공격인 대한민국임시수도 청사이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아는 사람만 안다는 그곳. 임시수도 기념관은 아름다운 수목으로 사진찍기에도 좋아 종종 신혼부부들의 사진촬영을 볼 수 있을만큼 잘 정비되어 있다.

 

  1926년 8월 10일에 준공되어 경남도지사 관사로 사용되다가 한국전쟁기 부산의 임시수도절(1950~1953)에는 대통령관저로 사용되었던 유서깊은 건물로서, 1983년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하게 되자 부산시에서는 건물을 매입하여 한국전쟁기의 각종 사진자료 등을 전시하는 임시수도기념관으로 보수, 활용하게 되었다.

 

 현재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어있으며, 한국전쟁기 당시 대통령관저로서의 모습을 재현하는 건물 복원공사와 전시시설 꾸미기공사를 거쳐 새롭게 단장하였다.

 

 

 

▶ 부산 광역시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된 임시수도기념관

 

 

  임시수도기념관으로 들어서는 순간, 현관에 사연있어 보이는 오래된 글씨가 적혀져 있었다.

 

 사빈당 현관의 글씨는 1980년대 조반 고 한형성 선생이 쓴 것이다. 선생은 동래 출생으로서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독립운동가, 항일 군가의 작곡가로 활동하였다. 사빈당은 '고궁탄보와 빈'의 고사에서 빗대어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현실을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한국전쟁 시기 대한민국은 북한의 침략에 의하여 서울을 내주고 부산에 임시수도를 만들었다. 이처럼 임시수도의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고궁탄보의 빈과 마찬가지로 모든국민들이 대한민국을 따라서 모일것이며,곧 빼앗긴 땅도 수복할 것이라는 의지를담은 것이다.

 

 

▶ 관광지 퍼즐 스팸프 투어

 

 부산광역시에서는 관광지퍼즐스탬프투어로 관광지에 대한 흥미를 높히고 있다. 문화관광해설사가 역사문화 관광자원에 대한 스토리텔링 해설서비스를 해 주고 있다. 안내 공간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의 해설자료를 구비해 놓았으니 외국인 친구와 함께 가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 이승만 대통령이 머무르던 곳.

 

▶ 2층으로 나누어진 임시수도 기념관 내부구조

 

▶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모습.

 

 

 

  이 곳에서 만난 첫번째 특별한 만남. 바로 이 정숙 할머니이다. 할머니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 2층에 위치한 할머니의 모습과 설명.

 

▶ 당시 사용했던 것을 복원한 자료

 

  다소 잔인한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철모와 군복. 그리고 이 정숙 할머니. 이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계속 이어진 위험한 임무수행과정에서 일부 대원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나는끝까지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고 오겠다는 일념 하나로 부대에 잔류하였습니다. 당시 국군에 밀려 후퇴하던 인민군들은 낮에는 민간인행세를 하다 밤이면 아군과 교전을 벌이기도 했고, 도주하며 죄 없는 민간인들을 죽이는만행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솔밭에서 집단 학살된 여학생들의 시신, 눈 속에 나뒹굴던 수많은 민간인들의 시신과 같이 참혹한 현장이 곳곳에서 목격되었습니다.」

- 자유에 대한 애정이 회환과 고통으로 6.25참전증언록 중에서

 

 

 

  한국 전쟁 중 특공대원으로 활동한 이정숙 할머니는 1932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나 성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9월 백골부대에서 모집한 G-2 특공대에 자원입대해 수색,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1951년 4월까지 8개월간 복무했다. 

 이후 부산에서 내려와 줄곧 살면서 안보강연, 자원봉사활동 등을 통해 전후 세대들에게 전쟁의 잔혹함과 평화통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 째 특별한 만남. 이 곳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일본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들은 기념관에서 이 영상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 임시수도기념관 영상물을 보고 있는 쿠슈 사가지 로타리클럽 회원들.

 

  이들이 이렇게 영상물을 볼 수있는 이유는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중국어,영어, 일본어로 각기 다른 언어로 상영을 해 주기 때문이다. '임시수도 부산,1000일의 역사'와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라는 7분짜리 영상을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본 일본인들. 이들은 쿠슈 사기지에서 온 로타리클럽 회원들이었다.

 

 

 

 그들 중 한명인 노구찌 기요시(정신과 의사, 64세)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일본으로 넘어오면 한국인을 다시 잡아갔다. 그래서 나는 그때 한국인은 뿔달린 괴물만큼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지금 나는 일본의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써 생각했을 때 우리는 분명히 한국에게 잘못하였다고 생각한다. 중국, 한국, 일본은 한 민족. 그리고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문화를 교류해 왔으며 아시아는 하나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더 사이 좋은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오늘처럼 이렇게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역사를 배우는 일도 중요하다."

 

 

 임시수도기념관에 대해 알고 싶어 간 곳에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와 사상, 그리고 살아온 흔적을 알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이었다.

 

 

 

 

3. 그리고 기록...

 

 다시 부민동 임시정부 기념거리로 내려와,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아대학교의 3곳 캠퍼스 중 경영대,사회대와 법대과 위치한 부민캠퍼스에 위치한 박물관에는 학생들이 오가는 소리에 활기가 넘쳤다.

 

▶ 동아대학교 박물관

 

 

 

 

 6·25전쟁 때는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이용했고, 휴전협정 후에는 다시 경상남도청이 되었으며 이후 부산지방법원 및 부산지방검찰청 본관 등으로 사용했다.

 동아대학교 박물관은 정면성이 강조되고 좌우 대칭을 이루는 외관으로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실미도>, <하류인생>등 영화 촬영지로 활용되었으며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내에 있는 이 건물에 2007년 동아대학교박물관이 이전해 왔다. 우리나라 근대사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인 건물로 구 경상남도지사 관사(지금의 임시수도기념관)와 더불어 부산지역의 대표적 근대 공공 건물이다.

 

▶ 부산지방법원이었던 옛 흔적의 복원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 연혁

 

1923년 경상남도 청진되어 1925년 경상남도청사가 지주에서 부산으로 이전되는 시기에 맞추어 완공되었다. 한국동란당시 부산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되었으며,1953년 한국동란이 휴전되어 정부가 서울로 환도함에 따라 다시 경상남도 청사로 사용되었다. 1983년 경상남도 청사가 창원으로 이전하게 되어 부산지방법원 및 검찰청으로 사용되었으며 2002년 학교법인 동아학숙이 이 일대의 건물과 부지를 매입하여 구조에 대한 보수,보강 및 내부수리 공사를 거쳐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임시수도정부청사의 벽돌과 석재 기와 등을 설명한 자료.

 

  단지 기념으로 그치지 않고, 옛 흔적을 복원하고 그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에게 알리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동아대학교 박물관. 기록은 보존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다른이들에게 전파를 통해서 더 빛을 발할 수있다.

 

 

 

그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기록...

세 가지 시선으로 함께 살펴본 대한민국 임시수도 기념거리. 멀리 있어서 못가는 사람이라도, 여러 사람들과 시간이 묻어있는 이곳이 존재하고 있으며 또한 이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담긴 이 공간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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