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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따라 달리는 세 친구의 강원도 여행!

작성일201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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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열여덟, 교복을 입은 우리는 자율학습 땡땡이 치고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는 게 즐거웠고, 학교 앞 분식점에서 500원짜리 떡볶이를 먹으며 옆 반에 있는 잘생긴 남학생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수업 시간에 판서를 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선생님의 별 거 아닌 버릇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행복했다. 영원할 것만 같던 그 시간들이 점점 더 아득해지는 것은 우리도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까

 

 

열여덟에 만나서 여덟 번의 해가 지나도록 우린 아직도 굴러가는 말똥만 봐도 즐거운 때라며 주장하는 친구들. 2012년을 맞아 무언가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여행을 계획했다.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로 훌쩍 떠나고 싶기도 했지만 큰 맘 먹고 운전대를 잡은 필자는 떠나기 하루 전,보험을 알아서 들고 오라.’는 짤막한 문자 메시지를 친구들에게 전송했다. 경기도 안산시에 살고 있는 세 친구는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강릉으로 가서 7번국도와 해안도로를 타고 강원도 여행을 하기로 계획했다.

 

 

 

 

 

한반도의 지형은 태백산맥을 따라 동서로 구분되어 있다. 그 중 동쪽 해안가를 따라 길게 뻗은 길이 바로 7번 국도이다. 7번 국도는 남쪽의 기점인 부산에서 출발하여 울산·포항·영덕·울진, 그리고 강원도의 삼척·동해·강릉·양양·간성을 지나고, 휴전선 이북에 있는 북한의 강원도 고성·통천을 통과하여 함경남도 원산에 이른다. 원산부터 함흥까지는 더욱 저평한 동해안 평탄지를 따라 북으로 이어지다가 함흥에서부터는 해안에 절박한 해안지형을 따라 함경북도의 접경지역까지 연결되고, 여기서 함경북도 남쪽에 위치한 성진·길주·청진을 거쳐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함경북도의 끝부분인 아오지를 지나 경원과 온성까지 이른다. 함경북도에서는 국경과 접해 있어서 통일이 되면 러시아나 중국과의 연결성이 기대되는 북방 교통로로서의 의미가 있다.

 

 

사실 7번 국도 여행을 계획하며, 513.4km나 되는 긴 구간 중 어느곳을 선택할지 고민이 많았다. 마음 같아서는 7번 국도 전체 구간을 여행하고 싶었는데 1박2일이라는 여건도 그렇고 처음으로 자가용을 몰고 운전을 가는 상황이라서 가능하면 가깝고 단순한 코스를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으로 가서 강릉부터 속초까지 구간을 7번 국도로 이동하는 방법이였다. 그리하여 전체 구간 중에서는 일부이지만, 우리는 강릉~속초 구간에서 우측으로는 파란 겨울바다를 만끽하고 좌로는 새하얀 태백산맥과 설악산의 설경을 보며 멋진 드라이브와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작년 4,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난생처음으로 고속도로 운행을 하는 필자는 애써 담담한 척 했지만, 운전대를 꼭 쥔 두 손에선 긴장의 기운이 역력했다. 하지만 긴장감도 잠시 오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신나는 노래와 여행에 대한 설렘이 필자와 세 친구를 흥분시켰다. 고속도로를 달린지 2시간 정도가 지나자 어느덧 길 양 옆에는 눈이 채 녹지 않은 산들이 마치 한 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졌고 새하얀 절경은 우리가 강원도에 도착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어느덧 세 친구가 찬 차량은 톨게이트를 지나서 강릉 시내로 나가서 목표했던 7번 국도에 도착했다. 7번 국도 오른쪽으로는 파란 겨울바다가 넘실대고 왼쪽으로는 눈 쌓인 산자락들이 펼쳐지니 그야말로 그림 속을 질주하는 기분이었다. 강릉을 지나 양양에 진입했다. 애초 목표는 하조대부터 가는 것이었지만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겨울바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중간에 해안도로로 빠지기로 했다. 무작정 진입한 해안도로는 지경해수욕장과 연결된 곳이었다.

 

 

 

 

 

지경리 해수욕장 : 백사장 길이 500m, 수심 1m로, 양양군의 남쪽 끝에 위치하며, 주문진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져 있다. 규모는 작지만 경사가 얕고, 백사장과 주변시설이 깨끗하며, 해변 뒤의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는 야영도 가능해 가족 단위 피서지로 적합하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지경리 해안도로. 방문객들을 위한 해수욕장 주차장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했다. 아무도 없는 겨울바다. 여름이라면 피서객과 상인들로 북적거릴 해변은 그 어느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채 고요히 파도만 몰아치고 있었다. 탁 트인 바다를 보니까 마음 속에 있던 답답함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셋이서 바다에 온 건 처음이다. 아무도 없는 지경리 해변을 마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뛰어 놀며 여름에 꼭 다시 한 번 올 것을 약속했다. 한창 놀던 우리들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그리고 독감에 걸려서 오지 못 한 다른 친구들에게 전송하기 위한 염장 동영상을 촬영했다. 단체 카카오톡으로 동영상 전송을 했더니 날아온 건 부러움이 섞인 비난들이었다. 그러면 어떠하리 이렇게 즐거운 것을!

 

 

어느덧 해는 산 너머로 넘어갈 것 같았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하조대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했는데 앞서간 친구들이 주차해 놓은 차를 보며 박장대소하고있었다. 이유인 즉, 바다를 보고 흥분한 필자가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 주차선을 맞추지 않고 그냥 아무렇게나 주차를 해놓았는데 그걸 보며 뒤집어진 것. 사진까지 찍으며 필자의 주차실력을 놀리는 두 친구들에게 필자는 그래 니들이 재밌으면 난 됐다.’라는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굳이 변명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주차소동으로 한바탕 웃고 떠들며 우리들이 도착한 다음 장소는 바로 하조대’였다.

 

 

 

하조대 :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 산3번지 일대에 있는 암석해안이다. 국유지·공유지·사유지가 섞여 있고 양양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지정면적은 약 134,825㎡에 이른다. 해변에 기암절벽이 우뚝 솟고 노송이 그에 어울려서 경승을 이루고 있는데, 절벽 위에 하조대라는 현판이 걸린 작은 육각정(1955년 건립)이 있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며 청유(淸遊)하였던 데서 그런 명칭이 붙었다고 하나, 양양 현지에는 또 다른 별개의 전설도 남아 있다. 이 하조대를 바라볼 수 있는 바닷가에 1976년 신설 개장된 하조대해수욕장이 있다. 2009년 12월 9일 명승 제68호로 지정되었다.

 

동해안의 해맞이 명소인 하조대는 KBS의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인 1 2일에 나왔던 곳이라 최근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5년 전에 갔을 때만해도 인적이 드물었는데, 5년 후 찾아간 하조대는 해가 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건 아찔한 해안 절벽 위에 위태롭게 하지만 늠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소나무였다. 하조대의 소나무와 함께 하얀등대는 하조대를 방문한 사람들이 꼭 다녀가는 장소. 절벽 위에 서 있는 하얀등대는 지금은 불이 꺼져 있지만 파란 바다풍경과 깎아지는 해안 절벽 위에서 늠름한 모습이었다.

 

 

등대에서 내려오니 해는 이미 졌고, 슬슬 허기가 발동한 우리는 배가 고프다며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곧바로 네비게이션 목적지에 대포항을 입력하고 다시금 속초로 가는 7번 국도에 진입했다. 대포항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주말을 맞아 대포항을 찾은 많은 사람들 때문에 대포항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도로에는 차들이 꼬리를 물고 줄을 서 있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픈데, 차를 버리고 갈 수도 없고 겨우겨우 차례를 기다려서 주차를 한 다음 우리는 대포항 입구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대포항 : 일제강점기 때부터 어항(漁港)으로 알려져 왔으나, 1937년 청초호(靑草湖) 주변에 속초항이 새로 생기고, 1942년 10월 속초읍이 생긴 뒤에는 몇 척의 어선만 드나드는 한적한 포구로 바뀌었다. 그러다 설악산과 동해안이 전국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 설악산 기슭에 자리잡은 대포항에도 관광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하자, 이와 비례해 어선들도 덩달아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에는 배를 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어선들이 항구에 가득 차서, 새벽녘이면 고기를 잡아 항구로 들어오는 어선들로 북적인다. 인근 바다에서는 주로 넙치·가자미·방어 등이 많이 잡힌다. 항구로 들어오는 진입로 양 옆에는 500여 미터에 걸쳐 건어물 가게와 횟집이 늘어서 있고, 어판장 쪽에는 활어 난전이 형성되어 동해안에서 갓 잡아온 싱싱한 활어를 맛볼 수 있다. 또 갓길에서는 오징어 순대와 구운 새우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여름철이면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대포항은 입구에서부터 눈 코 입을 유혹하는 각종 먹기리들이 우리를 열렬히 반기고 있었다. 강원도의 명물 감자떡부터 싱싱한 새우를 통째로 튀겨주는 새우튀김, 오징어 순대까지 우리는 밀려오는 음식들에 어느 것부터 먼저 먹어야 할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대포항 골목 오른쪽에는 직접 회를 그 자리에서 떠서 먹을 수 있는 간이 횟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 중 한 횟집으로 들어가서 자연산 광어와 우럭, 멍게와 오징어 회, 매운탕을 주문했다. 입에 착착 감기는 쫄깃한 회를 씹으니 겨울바다의 맛이 느껴졌다.

 

 

 

횟집에서 매운탕 거리를 포장하고 오징어순대와 새우튀김을 사서 숙소인 펜션으로 향한 우리는 직접 매운탕을 끓이고 오징어순대와 새우튀김을 안주 삼아 밤새 수다를 떨었다. 같은 펜션에 묵고 있던 사람들이 동해안의 일출을 보러 간다며 일어날 때, 우리는 도리어 잠자리에 들었다.

 

 

둘 째 날, 안산으로 향하기 전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낙산사였다.

 

 

 

낙산사 : 관세음보살이 머무른다는 낙산(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671년(신라 문무왕 11)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858년(헌안왕 2) 범일(梵日)이 중건(重建)한 이후 몇 차례 다시 세웠으나 6·25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전쟁으로 소실된 건물들은 1953년에 다시 지었다. 3대 관음기도도량 가운데 하나이며,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유명하다. 그러나 2005년 4월 6일에 일어난 큰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은 소실되었다. 이 절의 창건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기 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 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前身)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그곳이 바로 원통보전의 자리라고 한다. 부속건물로 의상대(義湘臺), 홍련암(紅蓮庵) 등이 있고 이 일대가 사적 제495호로 지정되어 있다. 2005년 4월 5일 강원도 삼척, 강릉, 고성을 휩쓴 큰 산불이 일어나 낙산사 원통보전과 여러채의 전각이 소실되고 보물 제479호로 지정된 낙산사 동종이 화마에 녹아버렸다. 낙산사는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낙산사는 지난 2005년 산불로 인해 보물 479호였던 동종과 14여 개 건물들이 소실되었다가 복구되었다.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낙산사에는 7년이 지난 지금도 화재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현재는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데 조만간 유료입장으로 전환할 거라고 한다. 낙산사도 일요일이라 그런지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특히 기념품을 파는 곳은 제대로 구경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용히 절간을 거닐고 싶거나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고 싶은 사람은 평일에 찾아 오는 게 좋을 것 같다.

 

 

낙산사를 끝으로 여행을 마친 우리는 다시금 7번 국도를 따라 강릉방향으로 달리다가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즐거웠던 여행을 뒤로 하고 가는 길이 아쉽기도 했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사실 계획에서는 설악산 국립공원도 가 볼 생각이었지만, 주말이었고 전날 밤 밤새서 놀았기 때문에 낙산사까지 보고 바로 안산으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못 본 게 있다면 다음에 또 다시 그곳을 찾아가면 되니까. 못 간 곳이 있어야 다음 여행을 기약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1 2일의 짧았던 추억들을 뒤로 하고 집으로 오는 길, 차 안에서 우리들은 8년 후에 다시 7번 국도 여행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 동안 또 함께 여행을 갈 일들이 있겠지만, 8년 후에는 다시 이 코스로 여행을 해보기로 약속했다. 그때는 부산에서 시작해서 고성까지 7번 국도를 모두 달려볼 계획이다.

 

 

 

 

대포항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회를 맛보며 했던 많은 이야기들. 고등학생 시절의 고민과 지금의 우리가 하고 있는 수많은 고민들과 이야기는 달라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준 너희들이 아닐까 7번 국도를 달리며 했던 많은 이야기들, 밤새서 매운탕을 재탕하고 또 재탕하며 나누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 그리고 오글거리지만 술에 취해 떠들었던 우리의 우정에 관한 예찬론이 강원도의 파란 겨울 바다처럼 술잔에 넘실거린 그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 8년 전의 우리가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몰랐듯이 앞으로 8년 후, 아니 10년 후, 20년 후, 우리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겠지.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예전이나 계속해서 변함 없는 것은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 사랑해 친구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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