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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특별한 동네, 철근속에서 피어난 문래동 창작촌

작성일20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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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옛날 뉴욕의 브루클린은 단지 가난한 부랑자들의 마을이었다. 집값이 싸다는 이유로 배고픈 젊은 아티스트들은 하나 둘 브루클린으로 터전을 잡아갔고 그곳은 머지않아 예술의 성지 아티스트의 천국이 된다. 당신은 한국에도 브루클린과 같은 동네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철근 속에서 피어난 예술 창작촌, 문래동을 찾아가보았다.

 

 

 

 낡은 철근공장지대에 왜 아티스트들이 모여든 것일까 도대체 이곳의 어떤 매력이 그들의 발을 묶어둔 것일까 

2000년 초반부터 예술가들이 문래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홍대, 대학로 부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은 높은 물가와 임대료를 이기지 못해 조금이라도 더 값싼 작업실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도심재개발 사업과 철강수요 감소 등으로 문래동 철재 상가는 점점 빈공간이 늘어나 장기간 방치되어있었다. 시내에 위치했음에도 싼 임대료로 인해 배고픈 예술가들은 문래동 철공소 건물 안의 빈 공간을 임대 창작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 문래동 작업실은 10개 남짓했었다. 곧 예술축제와 각종 아트페스티벌로 문래동이 알려지면서 5년 뒤 예술가들의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는 예술 창작 촌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현재 문래동 예술촌은 1층에는 철재상가가 2,3층에는 예술가들의 창작 작업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단순 개인 작업실이 아닌  공연장이자 전시공간이자 퍼포먼스가 일어나는 각종 예술장르가 펼쳐지고 있는 복합공간이다.

 

문래동의 벽화의 첫 시작. 미술가 김윤환의 새한철강 벽화

 

문래동은 재개발지역으로 정해져있기 때문에 건물주는 물론 아무도 건물의 치장이나 보수공사에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공간을 자유롭게 꾸미고 싶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터전으로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굉장히 낡았던 문래동의 건물 외벽들이 지금의 문래동으로 변하게 된것은 문래동 예술가들과 미대생들의 작품이었다. 오래된 철공소의 매력에 점점 빠지게 된 예술가들은 철문간판에 벽화를 넣기 시작했고 곧 미대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 건물주와 철공소 주인들과 상의 후 문래동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었다. 산업 활동과 예술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곳. 철재상 철문은 예술가들에게 하나의 캔버스가 되었고 곧 예술이 되었다. 문래동의 미술은 창작촌의 확대와 함께 성장해나갔다.

 

 

 

도대체 무엇이 이곳을 유명하게 만들었죠벽화로 가득 찬 휘황찬란한 예술거리를 생각하고 가면 실망을 가득안고 집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할인마트, 아파트 단지가 3분 거리에 있는 이곳이 무엇이 특별한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낡고 오래되어 옛 향수를 느낄수 있는 문래동의 진가는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야하는 것이다. 작업실 투어 같은 자신만의 방문목적을 정해놓고 문래동을 즐겨야한다. 또한 평일에 문래동을 방문한다면 아마 헛걸음 할 가능성이 크다. 문래동은 예술 공장은 말 그대로 철공소 안에 존재한다. 평일에는 철공소 직원들의 바쁜 작업 속에 서로 불편하게 될 테니 주말에 방문하여 진가를 즐기도록 하자.

 

 

 

한국에는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단지가 딱히 없다. 전시관이 유독 많은 문화의 거리 인사동은 이미 상업적으로 물들었고 현재 다양한 예술가들이 공존하는 문화지역을 생각해본다면 바로 생각나지 않는 것이 바로 한국의 현실이다. 문래동 창작촌은 서울시의 정책에 따라 재개발될 위기에 처해있다. 건물주들은 예술작품의 철거를 요구하고 있고, 임대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새로운 곳에서 터전을 겨우 자리 잡은 예술가들의 희망을 꺾어 버린 셈이다. 당장 눈앞의 수익을 원해 얼마 남지 않은 예술가들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토지, 건물주들은 젊은 예술가들을 오히려 걸림돌로 보고 있다. 이는 한국의 문화 후진국의 암담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루르지역은 거대한 탄광지역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20세기후반 쇠퇴하기 시작한 탄광촌을 독일정부는 공장시설물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유해물질을 배출하던 유럽최대 가스저장고 가소메터 세계문화유물을 비롯한 각종 유명작가작품전시와 다양한 장르의 문화공연이 열리는 세계유명 아트센터로 자리를 잡았다. 폐허가 될 뻔했던 탄광촌은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독일의 예술거리로 대표하게 되었다. 루르 지역을 다시 살린 것은 경제도 정치도 아니었다. 루르지역의 발전은 문화에 의한 발전이었다. 세계 여러 문화선진국은 폐쇄되고 고립된 공간, 알려지지 않은 곳들은 새롭게 탈바꿈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루르지역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 철강 산업의 쇠퇴로 함께 하락의 길을 걷게 된 문래동. 이곳을 다시 살릴 정답은 과연 재개발일까 문화, 예술의 보존일까. 우리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박지원 작가의 사진벽화

 

한국인들은 예술을 너무 한발자국 떨어져 생각하는 듯 같다. 집 밖을 나가는데 준비 1시간, 미술관을 찾아가는 데에 소요되는 운전, 주차시간 1시간. 정작 우리는 제대로 된 전시 관람을 몇 분이나 할까 예술이란 꼭 유명작가의 전시나 으리으리한 유명 전시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공간이 예술을 만들었고 곧 다시 그 공간이 예술로 탈바꿈한 문래동. 때론 작가들과 소통하고 소소한 그림들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문래동의 진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술은 시대를 풍요롭게 하고 대표하는 문화이며 상업이 예술을 몰아내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 활동이 그 나라의 강함을 나타내는 진정한 지표가 된다. 경제 개발로 강한 나라가 아닌 문화 예술의 강국이 나는 좀 더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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