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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서울대학교에서 다시 살아나다

작성일201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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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서울대학교 관악 캠퍼스 내에는 여러 건물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예스러운 외관을 자랑하는 건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정조시대 정치와 문화의 중흥을 보여주는 규장각! 규장각은 ‘조선 기록문화의 보고’로 불릴 만큼 국가의 공식 연대기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일성록> 등 다양한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연구원 | ⓒ 이은희

 

서울대학교의 규장각은 조선 시대가 아닌 1989년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실제 조선 시대 규장각의 모습과 유사한 모습으로 지어졌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은 문화, 역사, 철학 등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물론 자연과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자료들을 보관 및 연구하며 조선 시대 규장각의 역할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정조와 조선시대 규장각의 모습 | ⓒ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연구실

 

정조는 즉위한 해인 1776년 3월에 규장각을 궐내에 창설할 것을 명하였다. 송나라 제도에 따라 선왕들의 책과 어필ㆍ어제 등을 함께 봉안하기 위한 전각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규장(奎章)’이란 말은, 바로 임금의 어필과 어제를 가리킨다. 하지만 조선 후기 정치,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규장각은 조선과 중국에서 간행된 각종 도서를 소장하고 학식이 뛰어난 정예의 관리들이 소속되어 각종 서적을 편찬하며, 국가의 주요 정책을 마련하는 학문과 정치의 중심 기구로 발전하였다.

 

*참고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연구원

 

외규장각을 파괴시킨 병인양요 | ⓒ 사진으로 본 인천

 

하지만 정조 사후, 세도정치기 동안 규장각의 기능은 그 이전과 달리 급격히 축소되었다. 정조의 정치 이념을 유지한다는 명목상 기능만 남은 채, 국정 최고기관으로서의 규장각의 실질적인 기능은 유명무실화되었다. 또한, 고종 즉위 후에는 종친부와 홍문관의 기능 강화를 통해 왕권을 높이려 했던 대원군의 정책에 따라 규장각은 그 위상이 더욱 약화 되었다. 하지만 고종의 친정(親政) 이후, 규장각은 고종이 추진한 개화 정책의 중심 기관으로써 개화 서적 수입을 주도하는 등 그 기능과 위상이 잠시 회복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도 잠시, 병인양요에 의해 외규장각이 파괴되기도 하였고,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한 이후 규장각은 끝내 폐지가 되었다. 이후 일제의 통치과정에서 규장각에 소장되었던 다양한 자료들은 이왕직(李王職), 조선총독부 취조국(取調局), 창경궁 내에 일본식 건물 봉모당(奉慕堂)과 보각(譜閣), 참사관분실(參事官分室),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 등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참고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연구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연구원 | ⓒ 이은희

 

하지만 1945년 광복과 함께 일제통치가 끝을 맞게 되자, 규장각 자료들은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에서 서울대학교 도서관으로 인계되었다. 광복 이후 6,25전쟁이라는 큰 위기 때문에 규장각 도서의 일부가 포장, 반출되는 사건이 있었으나 다행히 원상복구 되었고, 1989년에 서울대학교 내에 규장각 전용 건물이 준공되어 마침내 규장각 자료들은 지금의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게 되었다. 현재 규장각은 고문헌 자료의 보존관리, 자료의 디지털화와 웹서비스, 연구사업의 활성화, 국제 교류 확대 등 한국학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으며, 2006년 규장각 창립 230주년을 맞아 서울대학교 규장각은 한국문화연구소와 통합하여 ‘규장각 한국연구원’으로 재탄생하였다.

 

 

지금까지 규장각에서는 규장각 도서를 바탕으로 다양한 전시를 진행해 왔는데,  현재 규장각에서는 <규장각, 한국학의 여정>이라는 이름으로 10월 22일부터 12월 15일까지 특별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대동여지도>와 <화성능행병도> | ⓒ 이은희

 

규장각 전시실로 향하는 길에는 한눈에 다 담기도 어려울 만큼 거대한 ‘대동여지도’와 정조가 어머니를 모시고 수원 화성으로 행차한 모습을 그림으로 담은 ‘화성능행도병’이 배치되어 있다. 이 두 점의 자료들을 시작으로 규장각 내에 있는 규장각 내부관람을 시작하면 된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태조실록> | ⓒ 이은희

 

전시실에서 맨 먼저 우리가 만나게 되는 규장각 자료는 바로 조선의 시조인 태조 재위기간의 역사를 기록한 태조실록이다. 조선의 시작을 알리는 태조실록을 시작으로 전시실에는 세계적인 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용비어천가> 등이 차례대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별로 기록한 편년체 사서인<조선왕조실록>과 조선시대 왕의 비서기관인 승정원에서 기록한 일기인 <승정원일기>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아주 훌륭하고 고귀한 우리의 자산인데 이곳 규장각에서 우리는 이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악학궤범>, <삼국유사>. <각선도본>, <동의보감> | ⓒ 이은희

 

이 외에도 조선시대의 의궤와 악보를 정리하여 성현 등이 편찬한 악서(樂書)인 <악학궤범>,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사서(史書)인 <삼국유사>, 허준이 지은 의서인 <동의보감>,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시대 선박에 관한 도면을 모은 책인 <각선도본> 등 이름만 들어도 그 위대함을 알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고문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쌍화점>, <열녀춘향수절가>, <홍길동전>, <구운몽> | ⓒ 이은희

 

또한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열심히 배웠던 <쌍화점>, <열녀춘향수절가>, <홍길동전>, <구운몽> 등 유명한 문학작품 역시 옛 과거에 쓰인 그 모습 그대로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 규장각에서는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 이 훌륭한 고문서들을 통해, 그간 여러 학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온 한국사상을 바로잡고 한국문화의 특징을 밝히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규장각 찾아오는 길 |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연구원

 

서울대학교 규장각을 찾아오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지하철,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최근 5516 버스 노선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신림역에서 5516 버스를 탈 경우에는 법대 정류장이 아닌 경영대 정류장에서 내려 5~10분 정도 걸으면 규장각에 도착할 수 있다. 캠퍼스가 다소 넓기 때문에 한 번에 규장각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이 때로는 어려울 수도 있는데, 그 때는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또한 전시안내가 필요하거나 개인이 아닌 단체로 규장각을 방문할 경우에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연구원 인터넷 홈페이지(http://ekyujanggak.snu.ac.kr/exhi/exhi_rsv01.jsp)를 통해 사전 예약이 필요하니 이를 잊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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